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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밥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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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점심만 먹고 빨리 가봐야 해."
"오자마자 왜 이렇게 서둘러?"

"너희들도 다 알잖아. 우리 영감, 집에 있는 거. 아마 나 올 때까지도 밥 안 먹고 있을 거야."
"아무리... 오늘 두 달 만에 친구모임 하는 거 알잖아?"

"물론 알지. 갔다 오라고는 했지만 보나마나 뻔하다. 안 먹고 내가 가면 혼자 먹으려고 해도 밥맛이 없어서 안 먹었다고. 그러다가도 내가 차려 주면 밥 한 공기 뚝딱 해치운다."
"야. 우리 남편도 집안일을 안 하지만 내가 모임 있는 날엔 밥 한 끼 정도는 스스로 해결하는데. 네 남편 너무 하는 거 아니니?"

"나도 너무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싸워도 안 되는 것을 어쩌냐? 내 팔자려니 해야지. 별별 방법을 다 동원해 봐도 안 된다."

친구의 대답에는 힘이 빠져 있었다. 

며칠 전 친구모임이 있었다. 그런데 친구 A가 자리에 앉자마자 빨리 간다는 소리를 한다. 우리들은 입을 모아 "네 남편이 정말 배가 고프면 라면이라도 끊여 먹을 테니깐 오늘만큼은 느긋하게 있어봐. 네가 끼니를 너무 잘 챙겨주니깐 그러지"했다. 하지만 그는 점심식사가 끝나자마자 안절부절 못하는 눈치였다. 그런 모습을 보곤 몇 명의 친구들이 "그래, 그럼 너 먼저 가라. 우린 조금 더 수다 떨다 갈게"했다. 그러자 A가 기다렸다는 듯이 미안하다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쟤는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까지도 저러고 사는지 모르겠다. 점심 한 끼 정도 남편이 찾아 먹게 놔둬도 괜찮을 텐데."
"그러게 말이다. 성격이 팔자 소관이다. 아무도 못 말려. 쟤는 1박2일 여행도 못가잖니. 남편눈치 보느라."

A가 가는 것을 보니 안쓰럽기도 하고 왜 저러고 사나 싶기도 하는 마음들이 생긴다. 그의 남편은 6년 전 퇴직을 했다. 듣자하니 전형적인 퇴직자의 모습을 다 가지고 있는 듯했다. 외출도 안하고 친구도 잘 안 만나고, 집안일도 전혀 안하고, 집에서 인터넷 게임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한다. 하니 친구가 꼼짝 못할 수밖에.

남 얘기 할 때가 아니라 내 남편도 비슷하지

그런데 그게 생판 남의 얘기가 아니었다. 지난해 어느 날이었다. 남편이 집에 있는 날이었다. 외출했다 돌아와 보니 오후 3시를 넘어 4시로 향하고 있었다. 시간이 그렇게 되었으니 당연히 점심은 먹었으려니 하고 밥 먹었냐고 물어보지도 않았다.

내가 아무 소리 안하자 남편은 "나 아직 점심 안 먹었는데"한다. 그 소리에 나도 모르게 짜증이 확 올라왔다. "그래서 어떻게 하라고. 이제 막 들어온 사람한테 밥 차려 달라고. 해놓은 뜨끈뜨끈한 밥에 냉장고 문만 열면 반찬 잔뜩 있는데 왜 아직 안 먹었는데. 배가 아직 안 고팠나 보지. 나도 너무 힘들다"하곤 그대도 소파에 누워 버렸다.

속으로 '내가 놀다 온 것도 아니고 손자들 돌봐주고 마트에 가서 장보고 왔는데 어쩌라고 배고프면 알아서 먹겠지. 라면을 먹든지 밥을 먹든지 몰라몰라'하곤 모르는 척하고 눈을 감고 꼼짝 않고 가만히 누워있었다. 내가 꼼짝도 하지 않자 남편은 할 수 없다는 듯이 일어서더니 라면을 끓여 먹는다면서 주방으로 간다. '진작 그러지 못하고...' 그때부터 나도 안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여 그 후부터는 밥상을 차릴 때에 "지금 상 차려요. 수저와 물 좀 놔주지요"하면 남편은 무거운 몸을 일으켜 마지못해 상 차리는 것을 도와주곤 했다. 그런데 남자들이 다 그런지, 내 남편만 그런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 간단한 일조차 잊어 버리고 가만히 있을 때가 태반이다. 나도 일일이 잔소리하기 가 정말 싫어 그냥 넘어갈 때가 더 많다.

그런데 그 친구의 말을 듣고 보니 수저 놓는 사소한 일이라도 꾸준히 하는 습관이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말로 내가 밥을 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설거지를 해달라는 것 도 아닌데 왜 그게 그렇게 안 될까?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밥통 뚜껑도 못 연다는 형부

얼마 전 만났던 언니의 푸념도 생각났다. 형부는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가 5년 전 퇴직을 했다. 형부도 친구 남편처럼 밥 한 번 챙겨먹지 않는 사람이다. 언니가 병원에 갈 일이 있어 병원에 가기 전에 냉장고에 꺼내 먹기 좋게 반찬을 담아놓고 여기 있다고 가르쳐 주고, 국은 여기에 있고 등등 자세히 가르쳐 주었단다. 그런데 "밥통 뚜껑은 어떻게 열지?"하고 물어 기가 막혔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듣고 나도 기가 막혀서 "아무리 그래도 그럴 리가, 나이가 몇 살인데 밥통 뚜껑을 못 열어? 그건 그동안 언니가 너무 잘 해줘서 그랬거나 아예 밥 차려 먹기 싫어서 그런 거야"했다. 그랬더니 언니가 이렇게 말했다.

"아니야. 얘, 몇 년 전인가 어느 드라마에서 그런 장면이 나왔었잖아. 그거 전부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이야. 하루 세끼 챙겨주는 것이 보통일이 아니다. 나 혼자 있으면 찬밥이면 찬밥, 밥 없으면 라면으로 대충 먹어도 될 일을 남편이 있으면 식탁에 백반정식으로 꼭꼭 차려 주어야 하잖아."

하루에 한 끼만이라도 해방되고 싶다는 언니의 말이 안쓰러웠다.

"언니, 그러게 우스개 소리로 그런 말도 있잖아. 하루에 한 번도 안 먹으면 영식님, 한 끼만 먹으면 일식이 두 끼 먹으면 두식이, 세 번 다 먹으면 삼식이란 말."

아는 말이지만 언니가 박장대소를 터트린다.

아내들도 퇴직한 남편들의 고충을 잘 안다. 50~60대의 남자들이 주방하고 친하게 지내는 세대가 결코 아니라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주방 살림을 도맡아서 해달라는 것도 절대 아니다. 다만 아내들이 잠시 외출했을 때에 한 끼의 끼니를 해결하는 정도로도 아내들은 아주 고맙게 생각한다.

아내들도 나이 먹으면 귀찮고 기운 빠져 힘들고 지칠 때가 많다. 그럴 때 아주 사소한 식탁 차리기라도 남편이 도와주면서 함께 하자는 것이다. 그러면 작지만 따뜻한 대화로 새로운 시작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태그:#한끼의 상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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