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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분신자살한 김기설 씨의 유서를 대필했다는 혐의(자살방조)로 1992년 징역 3년을 선고받았던 강기훈 씨가 지난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재심 결심공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이석태 변호사와 함께 법정을 나오고 있다.
이날 강기훈 씨의 곁에서 23년 동안 변론을 맡아온 이석태 변호사는 그 누구보다 더 기뻐했다.
▲ 23년 동안 강기훈 씨 변론 맡은 이석태 변호사 노태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분신자살한 김기설 씨의 유서를 대필했다는 혐의(자살방조)로 1992년 징역 3년을 선고받았던 강기훈 씨가 지난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재심 결심공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이석태 변호사와 함께 법정을 나오고 있다. 이날 강기훈 씨의 곁에서 23년 동안 변론을 맡아온 이석태 변호사는 그 누구보다 더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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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피고인이 50대가 되는 사이, 30대 변호인은 60대가 됐다.

23년 세월 동안 강기훈씨 옆에는 늘 한 변호인이 서 있었다. 이석태 변호사(법무법인 덕수 대표). 그는 1991~1992년 1·2·3심 재판은 물론, 재심개시결정 재판 두 번(서울고법, 대법원)과 최근 재심까지, 총 여섯 번의 재판을 강씨와 함께했다. 지난 13일 마침내 무죄가 났을 때 정작 강씨는 표정에 변화가 없었지만, 이 변호사는 누구보다 기뻐했다.

아직 판결이 나지 않았던 지난달 16일 재심 법정에서 이 변호사는 최후 변론요지서를 읽다가 중간에 목이 메었다. 눈가를 훔치는 이 변호사 대신 후배 변호사가 넘겨받아 마쳤던 변론요지서의 맨 마지막 문장은 이랬다. "진실 만세!"

18일 오전 이 변호사를 만났다. 그는 판결 다음날 다른 사건 때문에 일본으로 출국했다가 인터뷰 전날 귀국한 상태였다. 맨 먼저 그 날의 눈물에 대해 물었다.

- 결심공판 최후 변론하면서 좀 우시던데.
"좀 목이 메었죠."

- 왜 그랬는가.
"음…글쎄…(웃음) 강기훈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이 사건에서 나는 다른 변호사들과 좀 다르다. 91년 당시 사건이 터지자마자 관여하게 돼서 출두하기 전까지 상당기간을 직접 옆에서 봤다. 명동성당에서. 이 사람들 논의하는 것을 들었고, 검찰과 공방을 벌일 때 서류를 제출하는 것을 봤다. 조작 논란이 있었던 수첩도 당시 내가 직접 검찰에 제출했다. 그걸 가져다주면서 이제 끝날 거로 생각했다. 아주 홀가분하게. 그런데 그렇게 되니까… 나로선 굉장히 충격이 컸다. 변호사라는 게 기본적으로 억울함을 밝혀주는 직업인데, 명백히 무고한 것을 아는데, 그게 안 되니까 말이죠. 그런 등등이 겹쳐져서…." (☞ 이석태 변호사 최후 변론요지서 보기)

너무 힘들어 택한 미국행, 거기서 본 한 사건

이석태 변호사가 18일 오전 강남구 법무법인 덕수 자신의 집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검찰의 대법원 상고에 대해 "지금 이 사건을 보면 검사가 내세울 증거가 없다. 완벽히 무너졌다"며 "상고가 아니라 이건 공소를 취소해야 할 사건이다"고 말했다.
 이석태 변호사가 18일 오전 강남구 법무법인 덕수 자신의 집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검찰의 대법원 상고에 대해 "지금 이 사건을 보면 검사가 내세울 증거가 없다. 완벽히 무너졌다"며 "상고가 아니라 이건 공소를 취소해야 할 사건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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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난 장면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듯했다. 당시 그는 7년차 변호사였다. '김기설 분신 후 주변인물이 검찰에 불려가 오지 않는다, 좀 도와달라'는 지인의 부탁을 계기로 이 사건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강기훈씨와 만난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다. 모든 과정을 똑똑히 지켜본 그에게 법원의 유죄 판결은 충격이었다. 그는 "당시 유죄는 내게 내려진 거라고도 생각했다"고 말했다. 판결 이후 그는 너무 힘들어 변호사 일을 잠시 놓고 미국으로 가야 했다.

- 결국 재심에서 무죄가 나왔다. 아쉬움은 없는가.
"법률가로서는 특별히 없다. 무죄가 쉬운 것도 아니고. 다만 법원은 왜 사과를 하지 않는가라는 지적이 있는데, 그것은 내 생각에 만약 여기서 끝이라면 법원에서 사과를 할 수도 있었겠지만, 다시 대법원에 갈 수 있기 때문에."

- 그렇죠. 검찰이 상고할 가능성이 크죠.
"그런데 대법원에서 지난번 재심개시에 대한 검사 재항고를 기각할 때, 우리가 보기엔 마지못해 기각한 거였다. 실제 내용은 1991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의 감정이 반드시 틀렸느냐, 그 뒤 진실화해위(진실위)에서 의뢰했던 국과수 감정과 비교할 때 명백히 진실위 감정이 우월해 보이지 않는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그것을 이번에 법원에서 확실하게 정리한 것이니까. 어쨌든 그런 점에서 사과는 쉽지 않을 수 있겠고, 그래서 가급적 건조하게 판결한 것 아닌가 짐작한다."

- 대법원에서 다시 뒤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다."

- 혹시 검찰이 상고를 안 할 가능성은?
"배제할 수는 없는데, 모르겠네(웃음). 이 사건 직후 미국에서 한 1년 있었는데, 그때 미국에 유명한 사건이 있었다. 1심에서 사형 선고된 살인사건이, 중간에 검사가 바뀌었는데, 그 검사가 조사해보니 기소가 잘못된 거라. 그래서 공소를 취소했다. 1심에서 유죄가 났기 때문에 그대로 가면 또 유죄일 가능성이 컸음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취소했다. 당시 신문에 크게 났다. 정말 용기 있는 검사다, 검사의 본령을 보여줬다, 이렇게.

그걸 보면서 생각했다. 우리나라 검사들 중에 과연 그런 사람이 있을까. 지금 이 사건을 보면 검사가 내세울 증거가 없다. 완벽히 무너졌다. 그럼 공소를 취소해야죠. 상고가 아니라, 이건 공소를 취소해야 할 사건이다. 지금 물어본 '혹시 상고를 안하지 않을까'라는 것은 공소 취소와 관계없이 그걸 포기하는 거니까, 한 단계 낮은 거다."

역시나였다. 인터뷰 이후 기사를 작성하는 도중인 19일 늦은 오후, 속보가 떴다. 검찰이 대법원에 상고했다는 소식이었다.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의 형사소송법은 공소 취소를 '1심판결의 선고 전까지'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형사소송법 255조). 따라서 이미 고등법원 재심 무죄 판결이 난 상황에서 공소 취소는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검찰로서는 판결 전 공소를 취소하든가, 아니면 사과의 의미로 무죄를 구형하든가, 아니면 판결 후에는 상고를 포기하는 길이 있었다. 하지만 어떤 것도 검찰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상고했다.

"검사가 고문 수사관 옹호할 때 충격... 그게 어떻게 공익의 대변자인가"

이석태 변호사는 "검찰이 자체적으로 바뀌길 기대할 수 있을까"라는 기자의 질문에 "검찰은 법원보다 더 권력의 하수인 역할을 해왔다"며 "조직체 성격이 강한 기관이 과연 쉽게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두고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석태 변호사는 "검찰이 자체적으로 바뀌길 기대할 수 있을까"라는 기자의 질문에 "검찰은 법원보다 더 권력의 하수인 역할을 해왔다"며 "조직체 성격이 강한 기관이 과연 쉽게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두고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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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심 과정을 보면 검찰은 끝까지 유죄를 주장할 뿐 아니라 조작 등 파렴치범으로 몰았다. 특히 마지막에는 김기설씨 아버지가 돈을 받고 말을 바꿨다는 식으로까지 주장했는데. 검찰은 왜 그런다고 생각하는가.
"글쎄… 내부를 잘 모르겠는데, 짐작하기론 이번에 담당한 검사는 옛날 담당했던 검사는 아니고 그 사건 후에 검사로 임관된 사람들이다. 선배들이 맡아서 유죄를 확정했던 사건인데 이걸 후배들이 맡아서 부담이었던 것 같다."

- 아무리 선배들이 했던 중요한 사건이었다고 해도, 본인들이 직접 했던 것도 아니고, 벌써 20년도 더 지난 일이고, 21세기가 밝은 지 14년이나 지났는데, 검찰이 이렇게밖에 할 수 없었을까?
"검찰 전체 수준을 속단하긴 어렵지만, 이따금 접하는 사건에서 보면 확실히 문제가 있다. 다른 예인데, 내가 한 사건 중에 과거 간첩조작 사건이 좀 있다. 멀쩡한 사람 불러다 놓고 수사기관에서 엄청난 고문을 가해서 간첩이란 걸 자백하게 했는데, 그게 재심을 하면서 다 밝혀지게 된다. 그런데 재심에서 검사가 옛날 수사관들, 경찰이든 보안사 요원이든, 그들을 증인으로 신청하고, 그러면 그들은 법정에서 고문한 적이 없다고 위증을 한다. 하지만 판사는 판결에서 그 증언을 믿지 않고 고문 사실을 인정하는데, 검사가 항소하면서 그 부분을 강력하게 항의를 하더라. 그때 나는 참 충격을 받았다.

사실 국민 입장에서 보면, 공소시효가 있어서 고문한 수사관들을 처벌은 못한다 하더라도 검사가 문제를 삼아야 하는 거 아닌가. 적어도 그렇게는 못하더라도 이미 진실위에서도 고문이 있었다고 판단이 끝났고, 법원에서도 고문을 했다고 판단했는데도, 마치 전혀 아닌 것처럼 예전 고문 수사관을 옹호하는 건 도저히 공익을 대변하는 입장이라고 할 수 없다. 한 사건에서 검사를 원고 또는 피고의 대리인이라고 하지 않고 공익의 대변자라고 하지 않는가. 내가 너무 화가 나서 대학에서 강의할 때 그걸 시험 문제로 낸 적도 있다. 판결문이랑 검사의 항소이유서를 주고, 그걸 보고 검사의 행동을 공익의 관점에서 평가하라고 한 적도 있다.

최근에는 이런 사건들 무죄가 나오면 검찰은 거의 무조건 항고한다. 왠지 그런 방침이 정해진 것 같을 정도다. 그래서 재판을 더 오래 끌고, 고통은 더 오래 지속되고. 문제다."

- 검찰이 자체적으로 바뀌길 기대할 수 있을까?
"판사들도 예전에는 검사 못지않게 정치권력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몇 차례 사법파동을 겪으면서 기본적으로 독립성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변해왔다. 하지만 검찰은 법원보다 더 권력의 하수인 역할을 해왔으면서도, 그걸 스스로 자정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런 게 있어야 후배들도 용기를 내서 뭔가 하는데, 오히려 굴종의 역사는 많이 있지만 그걸 깨가는 기회를 못 가지니까. 검찰 같은 조직체 성격이 강한 기관이, 더군다나 기소를 독점한 기관에서, 과연 쉽게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두고봐야 되겠다."

변호인이라는 직업

강기훈 씨의 곁에서 23년 동안 변론을 맡았던 이석태 변호사.
 강기훈 씨의 곁에서 23년 동안 변론을 맡았던 이석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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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후배 변호사는 13일 무죄 판결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선배의 얼굴이 떠오른다"며 이런 글을 남겼다.

"당사자의 고통을 나눠지는 것은 변호인의 직업적 숙명이다. 그래서 진실을 놓고 싸우는 과정에서 당사자뿐만 아니라 변호인 또한 깊은 내상을 입게 된다. 23년 전, 강기훈의 재판을 맡았던 변호인들 또한 그러했다. …(중략)… 그 20여 년간의 짐을 내려놓은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23년 만의 무죄라는 결과 앞에 세상이 강기훈씨를 주목하는 동안, 그의 옆에 늘 함께했던 한 변호인을 조명해보는 것이 이번 인터뷰의 기획 의도였다. 자연히 질문은 사건 자체를 넘어 이 변호사 개인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매우 부담스러워했다. "강기훈 사건 관련 인터뷰인 줄 알고 응했는데, 난감하다"고 했다.

- 이번 사건을 하면서 가장 힘들 때는 언제였나?
"23년 전, 예전 재판이다."

- 그동안 여러 가지 공익·인권 소송을 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강기훈 사건 외에 기억에 남는 사건은 무엇인가.
"호주제 폐지, 긴급조치,  재일교포 간첩사건 정도. 동성애 관련 사건도 기억에 남는다. 트랜스젠더 성별 전환 정정 신청 건인데, 남자를 여자로, 여자를 남자로, 둘 다 해봤다. 지금은 큰 문제 없이 가능한 것 같은데, 예전에는 쉽지 않았다."

- 변호사 생활하면서 좌우명이랄까, 그런 게 있는가.
"변호사야 뭐, 일반적으로 진실을 밝히려고 노력하고, 또 약자의 소리를 경청하고 공감하고… 그런데 이게 어쩌다 보니까 개인 인터뷰처럼 됐는데, 나는 원래 그런 거 안 하는데… 배려해달라(웃음)."

-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창립 멤버이고, 참여연대 공동대표, 환경운동연합 상임집행위원 등 시민단체 활동뿐 아니라 참여정부 초기에는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으로도 있었다. 왕성한 활동력인데, 어떤 일을 할 때 제일 보람이 있었는가.
"보람이라고 하면 과분한 표현이다(웃음). 기본적으로 일을 하다보면, 강기훈씨도 그렇지만, 늘 사회적 약자, 억울한 사람들, 오히려 그런 어려움이 알게 모르게 전달이 돼서 어찌보면 늘 가슴이 아픈데, 그런 일들이 때때로 좋은 결과가 나오면 아주 잠깐…."

- 30년차 변호사로서 후배 변호사들이나 예비 법조인들에게 당부의 말이 있다면?
"그건 내가 은퇴할 때."

- (웃음) 변호사가 은퇴가 있나?
"내 스스로 이 정도면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다 하는 때가 오면… (하겠다.) 30년이면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여전히 나는 변호사 초기와 큰 차이가 없다. 후배들보다 약간 경력이 있다는 정도로 생각하고 일하고 있다. 스스로 평가가 있어야 (그런 말을)할 텐데 아직 내 일도 벅차서 쩔쩔매는 입장이라 뭐… 후배들한테 그런 말 하는 건 쉽지 않다. 미안하다."

일본에 가있는 동안 그의 책상 위에는 축하 꽃다발이 몇 개 배달되어 있었다. 아직 포장도 뜯지 않은 상태였다. 사진기자가 그 꽃다발과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없느냐고 부탁했지만, 그는 정중히 거절했다. 재차 요청했지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변호사는 사건이 종결이 되면 빨리 잊고, 다음에 오는 사람을 찾아서 가야한다."

그는 이런 변호인이었다. 이제 그는 대법원에서 또 7번째 강기훈씨 옆을 지킬 것이다.




태그:#이석태, #강기훈, #유서대필, #검찰, #변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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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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