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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 늦겠다!"
"안 되는 걸 어쩌라고..."
"어젯밤에 미리 했는데도 그래?"

'똥 누다가 늦었습니다! 제가 아니고 '큰 일'을 보아야 할 아내를 돕느라...'

'똥 누다가 늦었습니다'... 험난한 종신간병인 외출기

혹시 지각하면 이렇게 말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몰려왔다. 다른 때는 한 번 '하면' 다음 날은 좀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미리 어제 아내와 '큰 일'을 끝내기 위해 화장실에서 씨름을 했다. 무려 한 시간 가까이를, 그래서 느긋했는데... <오마이뉴스>에서 2014년 '2월22일상'을 줄 테니 오라는 지난 14일 아침, 아내는 아랫배가 다시 아프고 불편하다면서 마음 바쁜 나를 기어이 잡아 앉혔다.

'아, 시작하면 30분은 기본이고, 한 번에 안 되면 또 어쩌지?'

내 머리 속에는 다음에 해야 할 일들이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아내를 씻기고 옷 입혀 아들이 사는 자취방에 데려다 주고 점심을 먹이고 서둘러 시외버스터미널로 가서 서울로 출발해야 하는 과정들이... 자기 몸을 감당 못하는 환자를 둔 가족이 외출 한 번 하는 게 이렇게 시작도 하기 전 지치게 하는 일이 많다는 걸 또 확인한다.

깜짝 출연해 주신 가수 김장훈씨.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반갑고 더 재미있는 시상식 추억을 가지게 되었다. 키가 큰 김장훈씨 때문에 억울하게 나는 '변태'가 될 뻔했지만...
▲ 2014년 오마이뉴스 창립 14주년 및 시민기자상 수상식 깜짝 출연해 주신 가수 김장훈씨.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반갑고 더 재미있는 시상식 추억을 가지게 되었다. 키가 큰 김장훈씨 때문에 억울하게 나는 '변태'가 될 뻔했지만...
ⓒ 김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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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었는지 건너 뛰는지 애매하게 때우고 버스, 지하철, 택시 그렇게 갈아타며 간신히 예정된 오후 4시에 맞추어 도착했다. 사람들의 밝은 기운과 기쁜 행사 분위기에 묻혀 잠시 내 신분을 망각할 수 있었다. 중증난치병 아내를 돌보는 '종신 간병인' 남편의 신분 말이다. 보너스로 예정에 없던 가수 김장훈씨의 등장으로 사람들과 같이 우르르 몰려 사진도 찍고 웃었다.

"어, 누가 내 엉덩이를 만져요!"
"아, 아니요! 그게 아니라니까요!"

당황스러웠다. 김장훈씨가 나더러 '혹 변태?'라고 말할까 봐 민망했다. 김장훈씨 바로 옆에서 단체사진을 찍는데 카메라를 든 분이 사이를 더 좁혀달라고 해서 어깨를 겹치면서 팔을 허리에 두른다고 뒤로 뺐는데...

'아뿔싸! 이럴 수가~'

다리 기럭지가 보통 사람보다 긴 김장훈씨를 계산하지 못했다. 아무 생각 없이 허리 위치로 뻗은 내 팔과 손은 김장훈씨의 엉덩이에 닿고 말았다. 억울했다. 이건 순전히 평균키를 가진 내 잘못이 아니라 너무 긴 하체를 가진 김장훈씨 때문인데 말이다. 그래도 뭐, 재미있는 추억을 남겼다. 본의 아니게 스타의 엉덩이를 터치해 주었으니!

상 받는 이들을 향해 박수도 치고 소감도 듣다보니 1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나도 수상 소감을 말하고, <오마이뉴스> 덕분에 책으로 낸 6년간 간병일기 <그러니 그대 쓰러지지 말아>를 오연호 대표님께 감사 인사로 드렸다. 대부분 수상자분들은 다들 1박2일의 강화도 오마이스쿨 축하 숙박 모임을 갔다. 하지만 난 아쉽게도 다시 돌아와서 본연의 자리에 복귀해야 했다. 종신 간병인 남편의 자리로.

'서른'은 벌써 지났고, 이제 잔치도 끝났다. 많은 아픈 사람들과 그들을 돌보는 가족들, 간병하는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꿈꾸는 자유로운 외출의 잔치가. 보통 건강한 사람들이 10번, 100번은 할 때 1번이나 하는 기회, (6년 동안 5~6번 정도였으니 그런 계산이 나온다) 보통 사람들이 그저 외출 전 1시간 안팎이면 준비 끝내고 후딱 나서면 되는 걸 몇 시간, 하루 전부터 준비를 해야 하는 그런 외출이지만...

하지만 하늘은 또 어떤 면에서 공평하다. 그만큼 횟수가 드물어서 더 소중해지고, 그만큼 더 오랜 시간 여러 가지를 준비해야 하니까 그 외출의 순간들이 더 깊고 절절하게 남는다. 열 배 백 배로 적은 기회니까 열 배 백 배로 설레고, 더 짧게 끝나는 외출이라 더 오래 기억에 남는지도 모른다. 이건 약자들에게 내려오는 하늘의 선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목마르고 갑갑해도 쉬이 죽지 않고 살아지는 하늘의 배려.

아내와 함께 일본 갑니다, 미친 짓일까요

그 바람에 중증 아내가 바다를 건너 처음으로 외국을 가게 되는 모험을 하게 되었다. 이것이 살아서 한 잘한 일 중의 하나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내가 아프지 않았을 때는 오히려 늘 생활에 끌려다니느라 못하다가 중한 질병에 걸려서는 목숨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없어져서 가능해졌다. 사는 거 다시 점검해볼 기회다.
▲ 일본의 아내 페이스북 친구가 보내온 밸런타인데이 초콜릿 그 바람에 중증 아내가 바다를 건너 처음으로 외국을 가게 되는 모험을 하게 되었다. 이것이 살아서 한 잘한 일 중의 하나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내가 아프지 않았을 때는 오히려 늘 생활에 끌려다니느라 못하다가 중한 질병에 걸려서는 목숨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없어져서 가능해졌다. 사는 거 다시 점검해볼 기회다.
ⓒ 김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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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 일본에 사는 분이 병상에 있는 아내에게 초콜릿과 5000엔짜리 종이돈 한 장을 보내왔다. 얼굴도 모르고 만난 적은 당연히 없는 분이 지난 겨울 크리스마스에는 우아한 숄을 보내주더니 이번에는 또 다른 선물을 보내준 것이다. 아내가 얼마 전부터 더듬더듬 전화기로 안부를 주고받더니 친구가 되었다. 두어 달 전에 출간한 내 간병일기 책 <그러니 그대 쓰러지지 말아>를 보고 나서 더 그러고 싶으신가 보다. 그분 근무처가 요양원이라더니 더 아픈 사람들의 심정을 많이 이해하시는 듯했다.

"하나님이 일본으로 한 번 오라는데?"
"무슨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을..."
"집도 넓고 먹여주고 재워주고 다 해준다고 와서 밤새 이야기도 나누고 하자고,"

그 분 이름 뒷글자가 '花', 일본식으로 hana 다. 그래서 닉네임도 'hana sai'라고 쓴다. 어떤 분이 그 분을 '하나님이 가라사대'란다. 나름 일리가 있다. 흐흐!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사람이 이름만 잘 지어도 이렇게 큰 칭송을 받는 법이다 그러며 웃는다. 어느 분은 이름을 '최형'이라고 지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형님'하고 부른단다. 성별 나이를 불문하고!

아내가 농담처럼 한 번 꺼낸 말이 웃고 끝나지 않고 계속 가슴 속에 남았다. 나는 이전에 업무로, 또는 방문차 외국을 다녀왔었다. 게다가 유럽 수도공동체 탐방차 외국 여러 곳을 다녀온 나를 아내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혼자 다녀왔다고 늘 남에게 일렀다. 그렇게 나를 부러워하던 아내는 한 번도 외국을 간 적이 없다. 여권도 한 번 만들어 본 적 없는 순수 한국체류민이다. 막내딸이 스무살이 되면 두 달 정도 일정으로 스페인 산티아고 870km 순례를 가자던 약속과 희망이 유일한 외국행 꿈이었다. 그런데 난치병 중증질환으로 무너졌다.

한 사람이 꿈을 꾸면 꿈이고 여럿이 꿈을 꾸면 계획이 된다고 했던가? 아내와 나, 두 사람 외에도 초청해준 분, 같이 가주겠다는 또 다른 사람, 그렇게 여러 명이 아내의 일본 힐링 나들이를 꿈꾸기 시작했다. 도저히 거절도, 외면도 할 수 없도록 한다. 어쩌라고...

"그래! 가자!"
"뭘?"

"일본 친구네 머무르면서 아픈 사람들 만나서 수십 년 쌓인 거 밤새 털어놓기 프로젝트!"
"진짜?"

덜컥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지불도 했다. 3개월 무이자 할부로... (이제 내 책이 더 많이 팔려야 한다. 안 그럼 그 돈 못 갚고 병원비로 쓰라고 준 남의 돈을 축내게 될지도 모른다.) 죽이 될지 밥이 될지 모르지만 죽은 후에 땅 치고 통곡하며 베옷 입히느니 살아서 시도라도 해보고 후회하지 말자 싶었다. 그리고 한 가지씩 점검을 해본다. 소변은 폴리백 주머니를 달기로 하고, 비상용으로 넬라톤 도구랑 기저귀 여유분을 챙기고, 혹시 과로로 재발 조짐이 보이면 먹일 스테로이드 알약도 몇십 알을 가져가기로 한다.

뭐 어떻게 될 것이다. '다시는 도전하지 말자'는 경험이 될지, 어쩌면 몇 년 더 재활치료를 하면 목숨 걸고 산티아고 순례길도 한 열흘 정도는 견딜 수 있다고 간이 더 부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배낭을 휠체어에 묶고 공항으로 두근거리며 쫄래쫄래 나갈지도 모르고.

내친 김에 아내를 데리고 여권용 사진을 찍으러 나갔다. 화장하고 머리도 손보고 조명 아래 찰칵! 그리고 인화해서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아내가 많이 먹고 싶어 하던 등갈비도 사주었다. 일을 저지르기는 했지만 한쪽 가슴으로는 아무 일이 없을지, 혹 다녀와서 된통 홍역을 치르지는 않을지 염려가 솔직히 떠나지 않는다.

사람은 왜 아픈 것일까요

돌아보니 어쩌면 구석구석 이 땅위의 그늘지고 어두운 면을 다 표현하면서도 꿋꿋하게 이겨내는 모습을 그렸나 대견했던 영화. 어두울수록 더 밝아지는 촛불 같은 사람들의 삶을 생각나게 했던 영화 <애자>.
▲ 어두울수록 밝아지는 촛불같은 삶 돌아보니 어쩌면 구석구석 이 땅위의 그늘지고 어두운 면을 다 표현하면서도 꿋꿋하게 이겨내는 모습을 그렸나 대견했던 영화. 어두울수록 더 밝아지는 촛불 같은 사람들의 삶을 생각나게 했던 영화 <애자>.
ⓒ 김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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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식당에서 고기를 먹으며 기다리는 동안 몇 해 전 보았던 <애자>라는 영화가 자꾸 생각이 난다. 아픈 엄마(김영애 분)를 차에 태우고 벚꽃이 눈처럼 날리는 길을 달리던 애자(최강희 분)는 끝내 엄마와 그렇게 차안에서 이별을 했다. 가장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있을 수 있다면, 가족과 함께 가는 곳이라면 괜찮다, 다 괜찮다 그런 생각을 하게 한 영화였다.

사람들은 두 종류가 있다. 산 사람과 죽은 사람. 그런데 그 두 종류의 중간에 무지 많은 여러 상태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아주 건강하고 죽음 같은 것은 까마득해서 상상도 잘 안되게 사는 진짜 산 사람들부터, 비록 생존은 살았다고 분류하지만 거의 죽은 것과 다름없이 하루하루를 사는 사람들까지...

'왜 사람은 아픈 것일까?' 종종 스스로 물어 본다. 얼마를 살든지 좀 건강하고 씩씩하게 고통 없이 살다가 순식간에 딱 숨지고 사라지도록 인간의 생명을 만들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서너명 건너 한 명씩 암이나 중증병을 가지고 살고, 그 가족들까지 물려서 무거워진 채로 사는 것을 감안하면 온 인류가 아픈 중이라고 해도 되겠다.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고, 죽음 직전은 누구나 아픔과 고통을 과정처럼 지나간다. 비록 사고로 세상을 떠날 경우도 그렇다. 더 짧은 순간이지만 거치기는 마찬가지니...

질병만 사람을 죽은 사람처럼 살게 하는 게 아니다. 사업 실패, 실연, 전쟁과 폭력의 피해, 실직과 감금 고문 등 온갖 종류의 원인들로 사람들은 끙끙 앓으며 산 사람으로 세월을 헤쳐나가게 한다. 마지막 정해진 지점까지, 그리고 그 모든 원인들은 어둠이 되어 둘러싸고 압박하면서 작고 여린 사람들을 촛불로 만든다. 살아서 버티는 하루하루 자체가 촛불이 되도록 한다. 묘한 것은 촛불들로 하여금 어두울수록 그 순간을 더 밝게 빛나게 만든다. 상대적으로.

그런데 어두울수록 밝게 느껴지는 촛불처럼, 늘 우리를 감싸고 압박하며 조여드는 이 땅의 삶에 가족이 함께 있다는 것은, 그 가족이 서로 힘을 보태주고 곁에 있어만 준다면 더 밝아지는 촛불이 된다는 것은 정말 다행인 희망의 법칙이다. 2월 겨울의 어느 날에 비나리 노래를 부르는 심정으로 빌어 본다. 질병과 다른 모든 원인으로 어두울 데로 어두워진 곳에, 시간을 버티는 분들에게 다시 훈훈해지는 복이 내려오라고! 그래서 나도 다시 날고 싶다. 다시 밝아지고 싶다.

영화 <애자>를 보면서 쓴 비나리, 혹은 격려문

애자야 날자꾸나!
사마리아는 버림받은 사람들, 그러나 그럼에도 강도 만난 사람을 돕는 집단,
남들이 버린다고 버려지나 어쩌면 반대로 지들이 버림받은 것인지도 모른다.
날자꾸나 ! 깐따비야 꼬스뿌라떼!

애자야 날자꾸나!
비만 오면 공부가 안 되는 사람들, 그러나 바다로 가서 시를 쓰는 사람들
동전이 남아도 선생에게 전화도 한번 안 해본 사람들은 모른다.
날자꾸나 ! 깐따비야 꼬스뿌라떼!

애자야 날자꾸나!
초짜처럼 공모전은 싫어도 목돈에는 약한 사람들,
그러나 밤을 세우면서도 딴 길로는 못가는 사람들,
남의 약점으로 돈 빌딩을 쌓아가는 부자들은 죽었다 깨도 모르는 일하는 신성함
날자꾸나 ! 깐따비야 꼬스뿌라떼!

애자야 날자꾸나!
과학과 윤리가 금지해도 따라가지 못하는 사고뭉치 사람들,
그러나 죽는 사람 소원도 들어주려고 환자에게 회 한 점에 소주 한잔 주는 사람들
어디 사는 것이 산수처럼 풀리고 경영비결로 된다더냐
날자꾸나 ! 깐따비야 꼬스뿌라떼!

애자야 날자꾸나!
지지고 볶고 엄마 속 썩이고 짐 보따리 안기는 자식노릇 하는 사람들,
그러나 아무도 안 볼 때는 가다가도 길 돌아오는 독하지 못한 자식,
부모 후광 유산 지원 다 받고도 늙고 힘들 때면 고개 돌리는 세상의 자식들은 모른다.
'ㄴ ㅣ에 ㅁ ㅣ 다' 삐뚤 타자에 덧붙이는 외계어 '깐따비야 꼬스뿌라떼!'
날자꾸나 ! 깐따비야 꼬스뿌라떼!

애자야 날자꾸나!
시집도 못가주고 돈도 못 벌어오는 애물단지 사람들,
그러나 피 토하는 엄마 땜에 밤새 꺼이꺼이 우는 사람,
남들에게는 모범자식이고, 남몰래는 이기적인 자식들은 모르는 눈물주머니,
날자꾸나 ! 깐따비야 꼬스뿌라떼!

애자야 날자꾸나!
벗꽃이 눈처럼 쏟아지는 길을 목숨 걸고 태우고 가는 무지한 딸,
그러나 너무 고통스러워하는 엄마의 임종을 허락하는 딸,
남의 눈을 더 무서워하는 사람들은 모르는 죽음 넘어 동행하고픈 사랑...
날자꾸나 ! 깐따비야 꼬스뿌라떼!

애자야 날자꾸나!
떠나가는 어미를 보내버린 욕먹는 사람,
그러나 장례 중에도 만나고, 남기고 간 글에서도 만나는 사람,
'멀보노... 평생몬할쭈알았나이년아????ㅋㅋㅋㅋ'
몇 번을 같이 살아도 못들을 자식들은 영영 모른다.
날자꾸나 ! 깐따비야 꼬스뿌라떼!

애자야 날자꾸나!
산모 옆에서 담배 피우는 못된 년 소릴 다 듣는 사람,
그러나 잘 가라 잘 있어라 다 뒤집어쓰고도 웃어주며 떠나는 열린 애정 있는 사람
산전수전 엄마 아빠 애인 다 떠나보내고도 해탈 못하는 사람들은 모른다.
날자꾸나 ! 깐따비야 꼬스뿌라떼!

부탁이다. 제발...
다시 날자꾸나 ! 깐따비야 꼬스뿌라떼! 

덧붙이는 글 | 2014년 2월 중순의 간병일기입니다.



태그:#희귀난치병, #시민기자상, #그러니 그대 쓰러지지 말아, #애자, #투병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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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 인생의 핸들이 내 손을 떠났다. 아내의 희귀난치병으로, 아하, 이게 가족이구나. 그저 주어지는 길을 따라간다. 그럼에도 내 꿈은 사람사는세상을 보고 싶은 것, 희망, 나눔, 정의, 뭐 그런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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