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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칸타라 다리 위에서 바라본 톨레도 전경
▲ 톨레도 전경 알칸타라 다리 위에서 바라본 톨레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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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레도에서 천상의 소리를 듣다

여행 둘째날이다. 첫날 미술관 하나만 보고 쉬어서인지 몸 상태가 괜찮다. 오늘은 마드리드에서 한 시간여 가량 떨어진 톨레도에 가기로 했다. 톨레도대성당(카테드랄)을 보기 위해서였다.

톨레도 구시가지에는 큰 건물은 많은데 골목이 좁다. 톨레도대성당이 렌즈 안에 다 잡히지 않는다.
▲ 톨레도 대성당 톨레도 구시가지에는 큰 건물은 많은데 골목이 좁다. 톨레도대성당이 렌즈 안에 다 잡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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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레도는 스페인 역사에서 두 번이나 수도였던 도시다. 그런 까닭에 톨레도는 스페인에서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 또 16세기 서양미술사에 큰 획을 그은 엘 그레코의 예술적 자취로도 세상 사람들에게 주목 받는 도시다. 톨레도대성당 역시 스페인 카톨릭의 총본산이라기에 규모나 생김새가 궁금했다.

엘립티카 역에서 톨레도행 버스를 탔다. 버스는 쾌적했고 한 시간여 정도의 시간은 금방 흘러갔다. 톨레도 버스터미널에 내려 대성당을 찾아 올라가는 길에 식료품가게가 보였다. 식료품 중 바게트 3개에 1유로, 만다린 1KG에 1.1유로라고 쓰여인 종이가 붙어 있었다.

딸과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물어보지도 않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나 착한 가격인가? 바게트 3개와 만다린 1kg을 샀다. 바게트이 길어서 백팩에 들어가질 않는다. 반으로 뚝 꺾어서 백팩에 넣었다. 2.1유로에 가방이 가득 찼다. 가방이 차니 마음도 넉넉해졌다.

건축물의 주된 출입구가 있는 정면부에 있는 것으로 건축의 성격을 잘 드러낸다고 한다. 조각이 섬세하고 화려하다.
▲ 톨레도 대성당의 파사드 건축물의 주된 출입구가 있는 정면부에 있는 것으로 건축의 성격을 잘 드러낸다고 한다. 조각이 섬세하고 화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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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한 개를 들고 한입 베었다. 스페인의 바게트는 어떤 맛인지 궁금해서다. 한국 바게트와 비슷한 맛이지만 좀더 질긴 것 같은 건 나만의 느낌일까? 질긴 빵을 물어 뜯으며 비탈길을 걸어 올라갔다.  중세의 어느 시간으로 들어온 것 같다. 구시가로 들어와서 톨레도대성당을 찾으려고 둘러봤더니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손에 지도를 한 장씩 들고 있다. 물어봤더니 관광안내소에 가보라고 한다.

우리도 지도를 받아서 보고 싶은 곳 몇군데를 표시해놓고 먼저 톨레도대성당으로 향했다. 가는 길이 이색적이다. 골목길은 작은 돌들이 박혀 있어서 우툴두툴하다. 발바닥이 편하지 않다. 한국에서처럼 힐을 신고 걸으면 구두가 다 망가지고 발에 무리가 많이 갈 것 같다. 운동화를 신고 걷기엔 그런대로 괜찮았다. 지압한다고 생각하면 나쁘지 않았다. 단단해 보이기도 하고 예뻤다.

제단 위에 병풍처럼 둘러진 벽으로 황금이 칠해져 있다고 한다. 예수님의 생애를 표현해 놓았는데 정교하며 아름답다.
▲ 톨레도 대성당의 황금제단 뒤 장식벽 제단 위에 병풍처럼 둘러진 벽으로 황금이 칠해져 있다고 한다. 예수님의 생애를 표현해 놓았는데 정교하며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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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선 성당을 카테드랄 또는 이글레시아라고도 부르는 경우가 있다. 건물의 크기와 중요도에 따라 카테드랄(Catedral 대성당), 이글레시아(Iglesia 성당), 에르미타(Ermita 예배당)로 구분한다. 에르미타는 인적이 드문 곳에 있는 작은 규모인데 반해서, 카테드랄은 도심부에 있는 큰 성당을 의미한다.

고딕 양식의 대표적 장식인 스테인드 글라스를 넣은 장미창
▲ 토레도 대성당의 장미창 고딕 양식의 대표적 장식인 스테인드 글라스를 넣은 장미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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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레도대성당은 워낙 크고 높아서 멀리서도 눈에 띄었지만 입구를 찾느라 한 바퀴를 돌았다. 건물에 비해 입구가 그리 크지 않아서 몰라보고 지나쳤던 것이다. 입장료는 1인당 8유로였다. 적지않은 돈이지만 둘다 할인 받을 방법이 없었다. 대신 열심히 보는 것으로 본전을 빼야지.

들어가자마자 놀라서 입이 쩍 벌어졌다. 우선 규모의 웅장함에 놀랐고, 아름다움에 또 한번 놀랐다. 중앙의 높이가 45m나 된다니 아파트 16, 17층 정도의 높이인 듯하다. 규모가 그렇게 크건만 섬세하기도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림이나 장식, 조각 등 이렇게 큰 건축물에 빈틈이 없었다.

이렇게 큰 성당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세계사 수업 시간에 사진으로만 보던 것을 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는 이 감격스러움. 고딕 양식이란 어떤 모양으로 지은 건축인지, 스테인드 글라스는 어떤 모양이고 창문의 크기는 어느 정도인지, 장밋빛 천창은 어떤 것을 지칭하는 것인지를 실제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채광을 위해서 천정에 설치해 놓고 그림을 그려 넣었다. 은은한 빛을 받은 그림은 당시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였을까?
▲ 톨레도 대성당의 천창 채광을 위해서 천정에 설치해 놓고 그림을 그려 넣었다. 은은한 빛을 받은 그림은 당시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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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생애, 예수의 제자들 또는 성인의 삶을 그려놓은 것들은 가이드북 설명으로만 간략하게 파악할 뿐이고 깊이있는 감상은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건축과 회화, 조각을 감상하는 걸로도 행복했다. 성가대 파이프 오르간의 규모도 대단했다.

여기에 앉아서 미사를 보며 파이프 오르간 연주를 들었던 사람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마치 천상의 소리를 듣는 듯 황홀하지 않았을까? 영혼까지 흔들어 깨우진 않았을까? 눈을 감고 파이프오르간 연주를 마음으로 들어본다. 어두운 성당은 좀더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였을 것이고, 아름답게 장식된 스테인드 글라스 창을 통해서 비치는 햇빛은 얼마나 성스럽게 느껴졌을까? 저 높은 천정과 창을 통해서 들어오는 빛은 당시 사람들에게 구원의 빛이었을까?

천천히 돌아보았다. 눈이 가는 곳마다 황홀하다. 성당 안의 어느 곳도 밋밋한 곳이 없다. 벽이고 기둥이고 창문이고 조각 또는 그림으로 가득 차 있다. 특히 천정의 황금 장식, 세공기법도 뛰어났다. 제단 위의 장식은 화려함의 극치를 이룬다. 고딕에서 르네상스까지 건축양식의 종합세트라더니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갔다. 당시 스페인의 국력을 과시하는 듯하다. 당시 장인들은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작업을 했을까?

여름 성수기엔 가이드가 이끄는 단체 관광객들이 많아 복잡하고 시끄러워 관람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했는데 겨울이라 그런지 한가하다. 관광객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관람하는 데는 큰 지장은 없었다. 여유있게 천천히 돌아보는데 지루하질 않다. 기독교 신자가 아니어도 아름다움만으로도 감동적이었다. 계획된 일정만 아니라면 하루종일 머물면서 바라보아도 좋을 것 같다. 입장료 8유로가 아깝지 않았다.

오늘은 대성당을 관람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더 돌아다니며 다른 것을 볼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냥 이 감동 그대로 유지하고 싶었다. 넋을 놓고 감상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3시 가까이 되어 나왔다. 3시간 이상 둘러본 것 같다. 배에서도 배고프다는 신호가 온다.

대성당을 나오니 근처에 벤치가 보였다. 우선 앉았다. 숙소에서 준비해온 따뜻한 차로 속을 데웠다. 사놓은 바게트와 만다린을 꺼냈다. 만다린은 달았다. 한국에서 먹는 오렌지와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아름다운 대성당을 보면서 먹는 바게트빵 맛과 오렌지는 잊을 수 없으리라. 행복했다.

다시 걸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 골목길은 좁았다. 좁은 길인데 바닥에는 하나같이 돌이 깔려 있고 아기자기하면서 깨끗했다. 골목이 좁은데 비해 500여년 전의 중세 도시라 하기엔 건물들은 높고 컸다. 당시에 인구밀도가 그렇게 높았나? 그런데 이 골목으로 사람만 걸어다니는 것이 아니라 승용차까지 다닌다. 때로는 차가 건물에 닿을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느껴질 때가 있지만 운전자들은 여유있어 보인다. 스페인 사람들은 진정 베스트 드라이버다.

올리브나무를 보며 힐링을 하다

스페인에는 역사 유적지, 문화재, 관광지, 풍광, 수많은 미술관이 있지만 너무 욕심부리지 않기로 했다. 다 돌아보기엔 시간도 짧고 많이 본다 하더라도 기억에 남는건 한정되어 있고, 관람료도 무시할 수 없었다. 하루에 한 곳 또는 두 곳 정도는 유료로, 그외에 무료관람이 가능한 곳을 찾아서 보기로 했다. 그래서 오늘의 관람은 대성당 하나로 족하다 생각하고 남은 시간은 골목 골목 들여다보며 예쁜 길 찾아 마드리드로 돌아갈 버스터미널 쪽으로 내려오면서 몇가지 볼 요량이었다.

원래는 병원이었던 것을 미술관으로 개조해 전시를 하고 있다. ㅁ자형의 건축으로 아랍식인 아치형 회랑과 정원이 소박하게 느껴진다. 정원의 올리브나무를 보고 있으면 편안해지는 듯하다.
▲ 산타크루즈 미술관의 정원 원래는 병원이었던 것을 미술관으로 개조해 전시를 하고 있다. ㅁ자형의 건축으로 아랍식인 아치형 회랑과 정원이 소박하게 느껴진다. 정원의 올리브나무를 보고 있으면 편안해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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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길에 산타크루즈 미술관을 보았는데 관람료가 무료란다. 무료? 시간을 보니 좀 여유가 있었다. 들어갔다. 정원이 넓고 올리브나무 몇 그루가 서 있었다. 오래된 올리브나무를 보면 마음이 푸근해지며 편안해진다.

2층 건물에 ㅁ자형 건축으로 가운데는 네모난 정원이 있다. 아주 예쁘게 섬세하게 잘 가꾸어진 정원은 아니지만 올리브나무 몇 그루가 미술관을 지켜주는 듯했다. 검은 올리브가 많이 달려 있었다. 올리브나무는 많이 보았지만 올리브 열매가 달린 것은 처음 보았다.

미술관은 아치형 회랑과 기둥으로 이루어진 이슬람식 건축이다. 1층엔 어디서 발굴된 것인지 조각상 등의 석재가 전시되어 고고학박물관 같았고 2층은 여러 개의 넓은 방에 많은 화가들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었다. 가이드북 설명에 의하면 엘 그레코, 리베라, 고야의 그림도 전시되어 있다는데 눈에 띄지 않는다. 직원에게 물어서 찾았다. 프라도미술관에서 본 그림이 생각나 마치 화가를 잘 아는 것처럼 반가웠다.

미술관은 생각보다 넓었고 무료임에도 관람객이 거의 없어서 여유있게 감상할 수 있었다. 유명화가의 그림뿐만 아니라 현대화가의 그림도 전시되어 있어 볼거리가 다양했다. 엘 그레코나 고야의 그림도 좋았지만 현대화가의 그림이 전시된 공간도 좋았다.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었다. 플래시만 터트리지 않으면 된단다. 조심스럽게 몇 장을 찍었다.

 톨레도와 외부를 연결해주는 다리끝에 견고해보이는 성문이 있다.
▲ 알칸타라 다리끝에 서있는 성벽 톨레도와 외부를 연결해주는 다리끝에 견고해보이는 성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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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묘미란 일정에 없던 새로운 것을 하는 것

마지막으로 알칸타라 다리를 찾아 내려왔다. 타호강 위를 흐르는 이 다리는 톨레도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로 로마시대에 건축되었다고 한다. 현재의 다리는 15~16세기에 건축되었다는데 다리 양끝에는 방어를 목적으로 한 탑이 거대하게 서 있었다.

톨레도와 외부를 연결하는 이 다리는 규모는 작지만 전망이 좋았다. 무엇보다 톨레도 시내가 한눈에 보였다. 우리는 다리 위에서 톨레도 시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도 하고 다른 관광객들의 사진도 찍어주다가 한국인 젊은 처자 두사람에게 물었다.

"몇 시 버스 탈 예정에요?"
"저희는 파라도르에 가서 야경 보고 가려구요!"
"차 안 끊겨요?"
"10시까지 마드리드행 버스가 있대요. 파라도르에서 택시타면 터미널까지 9유로 나온대요."
"우리도 야경투어에 끼어도 되나요?"
"네, 같이 가요."

버스터미널로 돌아가려던 우리는 진로를 급수정하였다. 이런게 여행의 묘미지. 젊은 처자 둘과 우린 알칸타라 다리에서 올라와 소코도베르 광장에서 버스를 타고 성을 개조해서 만든 국영호텔인 파라도르로 향했다.

파라도르는 겉에서 보면 소박해 보였다. 내부의 카페는 깔끔하고 복잡하지 않은 인테리어로 장식이 되어 있었다. 카페의 테라스로 나가보았다. 톨레도의 전경이 보였다. 시간이 지나 어두워지자 톨레도 시가지엔 하나 둘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아름답다. 안 왔으면 후회할 뻔했다. 파라도르에서 보는 톨레도의 야경은 전혀 알지 못했던, 그래서 계획에도 없던 일정이었다.

카페에서 제일 저렴한 맥주 한 잔(2.65유로)씩을 시켰다. 기본안주로 올리브 절임이 나왔는데 짭쪼롬하니 맛있었다. 올리브의 아삭아삭 씹히는 식감과 고소함이 좋았다. 카페에는 우리 외에 한두 테이블 정도의 사람만 있었다. 싼 것을 시켜놓고 자리만 차지한 것 같은 눈치는 보지 않아도 되었다.

한국 호텔에서 4000원 정도의 맥주 한 잔을 시켜놓고 몇 시간 동안 앉아서 수다 떨 수 있을까? 물론 이런 가격조차도 없을것 같지만... 이래서 스페인이 맘에 들었다. 관광지에서도 크게 바가지 쓸 일이 없고, 인도처럼 값을 깎겠다고 실랑이할 일도 없다. 딸이 말한다.

"엄마, 이번 유럽여행은 너무 심심한 여행이 되는 것 아녜요?"

야경을 잘 즐기고 마드리드 숙소로 돌아오는데 갑자기 딸이 "엄마, 감자국 먹고 싶어요"라고 한다. 한마디로 "헐"이다. 내가 나와서까지 밥해야 하니? 하는 말이 올라왔지만 일단 목 뒤로 넘겼다. 숙소근처 마트에 갔더니 의외로 물건값이 싸다. 슈퍼에 가면 눈이 반짝거리는 우리는 최대한 사고싶은 욕심을 자제하면서 최소한으로 쌀과 과일, 버섯, 감자 정도만 샀더니 10유로가 채 안 된다.  

숙소에 들어와 짐을 내려놓고 바로 주방으로 갔다. 밥을 하고 감자국을 끓였다. 감자를 들기름에 달달 볶은 후 물을 부어야 국물맛이 구수하게 살아난다.  하지만 없는데 어쩌랴! 올리브기름을 넣고 감자를 볶다가 양파를 썰어 넣고 물을 부어 한소큼 끓은 후 계란을 풀었다. 간은 소금을 넣어 맞췄다.

조리를 시작하기 전에는 언제 해서 먹고 자랴 싶었는데 생각보다 많이 걸리지 않았다. 딸은 엄마표 감자국이 최고라며 맛있게 먹었다. 하루 종일 먹은 것이라곤 질긴 바게트빵, 삶은 계란 한 개, 만다린 몇 개와 준비해간 녹차뿐이었으니 무엇인들 맛이 없었을까?


태그:#톨레도, #카테드랄, #마드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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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과 감동은 늙지 않는다"라는 말을 신조로 삼으며 오늘도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주저앉지 않고 새로움이 주는 설레임을 추구하고 무디어지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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