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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우리나라에선 사교육기관을 무슨 악(?)처럼 치부할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20년 동안 컴퓨터 학원을 운영해오면서 청소년들과 웃고 울며, 안성청소년의 대부처럼 살아온 이가 있다. 그가 바로 한우리 평생직업교육원 박광열 원장이다. 그를 지난 12일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가출한 제자 찾아 삼만리

93년도, 안성에선 아무도 가지 않던 컴퓨터 학원의 길을 시작했다. 20대 초반의 나이로 제약회사에 선발되어 출근을 일주일 앞둔 무렵, 우연한 기회에 학원청소년과 상담하며 자신의 재능을 발견했다는 그. 2박3일 고민하다 안정된 길보다는 모험의 길, 즉 컴퓨터학원에 도전했다.

93년도 첫 해에 영화 같은 일을 만났다. 수강료를 3~4달 밀려두고, 가출한 여학생이 있었다. 그는 그 속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가 그 속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는 이유는 마지막에 가서 밝히겠다. 하여튼 그 소녀를 찾아서 사방팔방 수소문 하다가 결국 찾았다. 그 소녀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박광열 원장 또한 가난한 청소년 시절을 보내면서 누구보다 청소년들의 고민과 아픔을 잘 아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 그가 컴퓨터 학원(사교육)을 하면서도 누구보다 청소년 사랑과 교육에 열정을 쏟고 살아왔다.
▲ 박광열 원장 박광열 원장 또한 가난한 청소년 시절을 보내면서 누구보다 청소년들의 고민과 아픔을 잘 아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 그가 컴퓨터 학원(사교육)을 하면서도 누구보다 청소년 사랑과 교육에 열정을 쏟고 살아왔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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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녀는 알고 보니 이혼가정의 아버지와 살았다. 그 소녀의 아버지와 상담을 하니,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며 소녀에게 잘못했다고 했다. 그 후 그 소녀는 열심히 컴퓨터를 하고 공부를 해 중앙대 무용학과에 진학하고 졸업했다.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해서 박원장에게 찾아왔다.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고맙습니다."

뭐 이런 심정이었을 터. 뿐만 아니라 그동안 만 명 이상의 수강생을 상대해왔다. 그 중에서 졸업했다고, 군대 간다고, 결혼한다고, 아기 놓았다고 그렇게 연락하며 찾아오는 제자들이 수두룩하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사제지간의 일들이 여기에도 다반사란다.

박원장의 청소년 사랑은 계속 진화 중

93년도에 농촌도시 안성에서 최초로 청소년 음악회를 열었다. 단지 청소년의 문화를 위해 그의 사비를 털었다. 안성 기업인들의 스폰서를 받는 문화도 그때 시도했다. 연예인도 섭외했다. 안성시민회관에 청소년들로 꽉 찼다.

매년 그 행사를 치르다가 96년도엔 청소년 댄스경연대회도 열었다. 청소년의 끼와 꿈을 키워주기 위해 열었다. 안성의 내로라하는 청소년들이 경합을 벌이는 전설 같은 일들이 벌어졌다. 청소년들을 위해 야간 순찰을 하기도 했다.

2004년엔 안성에서 최초로 청소년 적성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청소년의 적성을 평가하기 위해 컴퓨터 시스템을 도입했다. 단순한 평가가 아니라 그 청소년의 적성과 진로 등을 위해 상담하는 수준까지 이뤄졌다.

청소년을 살리려면 부모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는 취지에서 부모교육도 이루었다. 그동안 청소년을 위한 부모교육 강의를 무료로 해왔다. 이젠 가정이 바로서야 청소년이 건강해진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가정 바로 세우기 운동을 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요즘은 플라잉 디스크를 보급하고 있다. 가족이 함께 하는 운동으로서 적합하다고 했다. 그의 사무실엔 이런 장비들이 준비되어 있고, 누구라도 섭외하면 달려가서 강의하고 보급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사교육과 공교육이 얼굴 맞대고 교육 살려야

이렇게 살아온 그가 사교육을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에 대해 따끔하게 한마디 한다.

"지역에서 교육을 위해 모일 때, 사교육 전문가는 찬밥 취급을 하거나 들러리로 해선 안 된다고 봅니다. 사교육 전문가와 공교육 전문가가 서로 얼굴을 맞대고 토론하고 합의해서 지역의 교육을 살려야 합니다. 사교육 종사자들은 공교육 종사자들보다 오히려 더 청소년들과 격 없이 밀접하게 부대끼기에 그들의 성향과 고민을 누구보다 잘 아는 전문가들입니다."

그가 그렇게 말한 데는 이유가 있다. 20년 동안 컴퓨터 학원을 해오면서 별의별 청소년들을 만났다. 학교 교사 보다 더 가까이서 그들의 고민과 아픔을 들어왔다. 때론 오빠처럼 형처럼 아버지처럼 그들과 함께 부대끼며 살아왔다.

"사교육을 악(?)으로 보는 것은 잘못 된 것입니다. 다만 고액 과외나 불법 사교육 등으로 인해 사행심을 조장하는 걸 지양해야겠지요. 현재 방과 후 학교를 열어 사교육 강사에게 강의료를 지급하는 형태는 옳지 않다고 봅니다. 차라리 사교육기관을 인정하고, 서로 바른 교육을 모색하는 게 중요합니다."

가난했던 그의 청소년 시절이 동력이 되다.

그가 이렇게 사교육기관에 있으면서 청소년과 교육에 대해 열정을 잃지 않은 것은 그의 가난했던 청소년 시절과 맞물려 있다. 중고교 시절, 학교 수업료가 없어 학교 교사에게 소위 '빳따'를 줄곧 맞았다(수강료를 못낸 여학생을 이해하는 마음은 이때부터). 고 1때는 축구를 하다가 허리디스크가 왔다. 전국일주를 하며 막노동을 해보자는 심정으로 가출을 했다. 다행히 힘든 일을 하다가 '뚜두둑' 허리가 맞춰지는 기적이 생겼다.

이렇게 가난한 청소년 시절을 보냈던 그가 청소년에게 관심을 가졌던 건 당연하고 운명적인 일이 아니었을까. 그의 아픔이 힘이 되어 청소년을 사랑하는 길을 계속 해오고 있다. 앞으로 안성에서 그의 '청소년 사랑의 길'이 어디로 갈지 기대가 된다.


태그:#평생직업교육원, #컴퓨터학원, #사교육, #청소년, #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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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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