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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4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모두발언하고 있다. (자료사진)
▲ 국무회의 주재하는 박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모두발언하고 있다. (자료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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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공기업 방만경영·모럴해저드 작심질타'

솔직히 제목만 보고 '자아비판'이라도 한 줄 알고 깜짝 놀랐다.

지난 10일 박근혜 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부채 상위) 12개 공기업의 총부채 규모만 해도 지난해 말 기준으로 400조 원이 넘고, 295개 전체 공공기관 부채의 80% 이상을 차지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직원들의 구체적인 복지사례를 들며 '방만경영'이라 질타했다. "공공기관 노조가 연대해 개혁에 저항하는 게 우려스럽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발언만 놓고 보면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공기업에 다니면서 세금으로 흥청망청 복지까지 보장받는 노동자들이 마치 부채 증가의 원흉인 듯하다. 기사를 읽은 이들은 당연히 분개했을 게다. 아니, 왜 내 돈으로 걔네들 치과 치료비를 지원하는 거야?

하지만 이날 박 대통령의 발언은 진단 자체가 틀렸다. 따라서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올 리도 만무하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상당 시간을 '직원들의 복리후생' 실태를 조목조목 언급하는 데 할애했다고 한다. 진짜 문제는 '직원들의 복지'가 아닌데 말이다. 

지적된 12대 과대부채 공기업의 부채가 발생 시키는 이자 지급액은 현재 한 달에 약 6000억 원인데, 이는 월 300만 원 받는 노동자 20만 명의 임금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들 공기업 종사자는 비정규직까지 모두 합쳐도 9만 명밖에 되지 않는다. 또한 박 대통령이 표적으로 삼은 직원들의 복리후생비를 전부 삭감해도 1년에 약 600억 원의 재원 절감에 그치는 상황이다. 한 달에 50억 원 남짓이란 소리다.

사실 '공기업 혁신'이란 단어는 오래됐다. 공공부문 경영합리화라는 미명 아래 각종 구조조정이 진행된 게 10년이 넘는다. 상대적으로 손쉬운 고용 부문은 이미 상당부분 '합리화' 대상이 됐다. 사실상 현재는 더 이상의 인력 구조조정이 힘들 정도로 비정규직화와 외주하청이 확대된 상태다.

공기업 부채 증가의 진범은 누군가

한국조세재정연구원 공공기관연구센터가 지난해 말 발표한 '공공기관 부채의 원인과 대책'을 보면 최근 5년간 12개 공공기관에서 증가한 금융부채 167.3조 원 가운데 78.5%는 '10개 주요사업'에서 발생했다. 10개 주요사업이 4대강 사업, 해외자원개발, 보금자리주택 등 정부가 추진한 사업이다. 이를 감안하면 공기업 부채의 상당 부분은 강제로 떠안게 된 정부정책 실패에서 비롯됐다.

또한 사회공공연구소가 비슷한 시기에 펴낸 워킹페이퍼 '진단도 알맹이도 따로 노는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의 노림수'를 봐도 마찬가지다. 공기업이 자체사업을 수행하면서 발생시킨 금융부채는 33.4조 원으로 전체 금융부채 증가액 115.2조 원의 29% 수준이다. 나머지 70% 이상은 공기업에게만 부채 증가의 책임을 묻기가 곤란하다는 분석이다.

본질을 살펴야 한다. 다행히 박 대통령도 "4대강 사업 등 정부의 정책사업과 전시행정을 추진하면서 부채를 떠안게 된 것"에 대해서는 인정을 했다. 그러나 지난 5년간 공공기관 선진화를 한다면서 부채만 200조 이상 불려놓은 정부와 관료들에 대한 책임 추궁은 없고, 온전히 노동자들에게만 전가하는 인상을 주는 발언은 잘못됐다. 우선순위에 대해 조금 헷갈리는 모양이다.

우선 원인을 명확히 규정하자. 공기업의 부채 대부분은 정부가 무리하게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부담을 떠넘겨 발생한 것이고, 여기에는 공공기관의 낙하산 인사들이 관여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이후 새로이 임명된 77명의 공공기관장 중 낙하산 인사라 볼 수 있는 인사는 34명으로 거의 절반에 육박한다. 이명박 정부의 출범 초기 임명된 공공기관장 180명 중 78명이 낙하산 인사였다. 비율로 따지면 비슷한 수치다. 

물론 정치 경력이 있다고, 관료 출신이라고, 대선 캠프 인사라고 해서 공공기관장이 되지 말란 법은 없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에게서 딱히 전문성을 찾아볼 수 없단 것이다. 지난해 6월 발표된 '2012년도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해임건의나 경고 등 낙제점을 받은 기관장 18명 가운데 15명이 정치권이나 공공기관의 주무부처 등에서 온 낙하산 인사로 분류되는 인물들이었다.

공기업은 개혁이 필요하다. 빚이 그렇게 많으니 허리춤을 졸라매야 한다. 공기업 개혁은 많은 국민이 공감하는 숙제다. 잘못된 관행과 도덕적 해이를 바로잡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마치 노조와 직원 복지가 그 빚을 양산했다는 식의 뭉뚱그린 화법은 곤란하다. 원인에 대한 문제인식이 틀리면 더 곤란하다.

더군다나 박 대통령은 후보시절 '낙하산 인사는 없을 것'이라며 호언장담했다. 선거 직전인 2012년 11월에는 "부실인사가 아무런 원칙 없이, 전문 분야와 상관없는 곳에 낙하산으로 임명되는 관행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라고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박 대통령 "낙하산 인사는 없을 것"이라더니...

그러나 왜 실천을 하지 않는지 의문이다. 심지어 정부가 지난해 11월 "파티는 끝났다" 운운하며 공기업 개혁 의지를 밝힌 당일에도 김학송 전 의원은 한국도로공사 사장으로, 김성회 전 의원은 한국지역난방공사 사장으로 내정됐다. 그 이후 줄줄이 들어선 공공기관 기관장과 감사 40명 중 15명이 새누리당 출신 정치인이었다. 기관장과 감사뿐 아니라, 의사결정권을 가진 이사까지 확대하면 낙하산 비율은 더 높아질 것이다.

전하진 의원이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최근 3년간 산업부 산하기관들의 이사회 부결 안건은 총 2657건 중 단 19건으로 1%를 밑돈다. 기관장의 전횡을 감시해야 할 이사들이 사실상 거수기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식으로 통과된 안건 중에는 당연히 기관의 부채 증가 요인으로 작용한 국책사업도 포함됐을 게다.

민간부문과 달리 공기업에서는 시장을 통해 경영 효율성이 확보되지 않는다. 따라서 책임성을 확보하기 위한 첫 단추는 경영진 인사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흔히 공기업이 '주인 없는 기업'으로 지칭되는 이유는 기업의 소유 주체가 명료하게 정의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기업 또한 '국민-정부-공기업'으로 이어지는 '주인-대리인' 연쇄과정을 거치고 있다. 결국 공기업의 주인은 국민이다. 정부가 대리인 선출과정에서 공기업의 진정한 주인인 국민의 이익을 반영하지 않고, 정부의 이익을 대변하는 대리인을 선정하면 필연적으로 운영의 비효율성이 발생한다.

낙하산을 타고 임명된 이들은 향후 거취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들에게 막중한 책임이 있는 공공기관장 자리는 임기 2~3년 동안 잠시 쉬었다가 가는 자리 정도로 인식될 뿐이다. 그러니 정치권의 눈치를 보는 것도 당연하다. 자신들이 책임진 기관의 재무건전성을 돌볼 여력이나 있을까?

공공기관 부채 문제가 정확하게 어떤 과정에서 누적됐으며, 이를 책임질 사람이 누구인지부터 밝히는 일부터 시작하라. 아무리 생각해도 '낙하산 인사' 근절이 먼저다. 이를 외면한 채 무작정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행위는 옳지 않다. 그 후에야 비로소 개혁도 가능하다.


태그:#공기업 혁신, #낙하산 인사, #공기업 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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