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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세연이의 놀이터는 농성장이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농성장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벌써 여섯 해다. 농성장이 어린이집보다 더 편안한 것 같다. 이곳에서 사귄 이모와 삼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젠 노래와 팔뚝질도 제법 잘 따라하고 기분 좋으면 춤까지 춘다. 집회 풍경도 농성장 생활도 낯설지 않다.

최근 나쁜 회장이 회사 집기를 빼돌리고 야반도주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관련기사: 회사가 사라졌다, 이런 사장 보셨나요?). 그래서 엄마와 이모들이 다시 모여서 농성을 시작한 사실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해맑은 세연이의 모습은 기륭전자 투쟁 내내 또 다른 즐거움이자 행복이었다. 그런데 지금 엄마와 세연이의 소박한 꿈이 사라지려고 하고 있다.

세연이 엄마와 아빠는 구로공단에서 투쟁을 하면서 만났다. 엄마는 기륭전자 조합원이었고 아빠는 근처 공장인 천지산업 조합원이었다. 두 사람은 아주 평범한 노동자였다. 엄마는 전자회사에 입사한 후 정규직이 되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근무했다. 하지만 회사일은 갈수록 힘들어지고 임금은 최저임금보다 10원 더 주는 등 힘든 노동과 저임금의 악순환은 계속되었다.

회사 측에 조금만 불만을 표시하면 문자해고, 잡담 해고 등으로 하루아침에 공장 밖으로 쫓겨 나가야 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결국 노조가 만들어졌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간절하고 순진한 마음으로 노조에 가입했다. 김소연 전 분회장과의 인연과 우정 때문에 쉽게 떠나지 못하고 지금까지 기륭전자투쟁에 함께 하고 있는 순하디 순한 시골 처자다.

아빠도 천지산업에서 투쟁을 막 시작한 새내기 노조간부였다. 구로공단 지역에서 함께 투쟁하는 사업장이기 때문에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고 기륭전자 투쟁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그러면서 어느 날부터 세연이 엄마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후로부터 더 열심히 참석했다고 한다.

이런 아빠의 속마음도 모른 채 세연이 엄마는 힘든 사람이 힘든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며, 천지산업 투쟁에 늘 함께 했다. 두 사람의 사랑은 이렇게 품앗이연대투쟁의 결실로 맺어졌다. 2008년 기륭전자 1000일 투쟁이 한창일 때 엄마아빠는 구로지역노동자들의 시샘과 축하를 받으며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신혼의 설렘과 기쁨도 잠시뿐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투쟁에 다시 몸을 담아야 했다.

2008년 긴 투쟁이 끝나고 2009년 2월 12일 세연이가 태어났지만, 농성엔 빠질 수가 없었다. 이때부터 세연이는 기륭 이모들의 공동육아를 통해 길러졌다.(2009년 7월 16일)
 2008년 긴 투쟁이 끝나고 2009년 2월 12일 세연이가 태어났지만, 농성엔 빠질 수가 없었다. 이때부터 세연이는 기륭 이모들의 공동육아를 통해 길러졌다.(2009년 7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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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과정에서 세연이가 태어났다. 자칫 잘못했으면 세상의 빛을 보기 힘들었을 수도 있었다. 세연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인 2008년은 격렬했다. 당시 기륭조합원들은 두 번의 고공농성에 이어 전 조합원이 무기한 집단단식에 들어가 있었다. 세연이 엄마는 차마 세연이를 가졌다는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집단단식에 함께 했다. 우리가 그 사실을 안 것은 그해 8월 1일 한나라당 원내대표실을 점거농성하던 과정이었다.

배 속에서부터, 투쟁에 함께 한 세연이

두 돌이 지나 무럭무럭 자라나는 세연이. 기륭투쟁은 끝이 보이지 않았지만 생명의 자람은 그 자체로 힘이 되었다.(2010년 9월 27일)
 두 돌이 지나 무럭무럭 자라나는 세연이. 기륭투쟁은 끝이 보이지 않았지만 생명의 자람은 그 자체로 힘이 되었다.(2010년 9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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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집회에 참석 중. 왼쪽부터 유흥희, 강화숙(세연엄마), 박행란, 오석순 조합원(2011년 5월 11일)
 연대집회에 참석 중. 왼쪽부터 유흥희, 강화숙(세연엄마), 박행란, 오석순 조합원(2011년 5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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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그해 7월 10일날 기륭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1차 원내대표실 점거 당시 홍준표 원내대표까지 참석해 성실교섭과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합의했다. 당시 협상 내용 이행을 위해 서울노동청장이 직접 교섭 중재자로 참여했지만,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고, 다시 농성장을 찾은 것이다.

집권 여당 역시 이번엔 무력으로 진압해 들어왔다. 당시 끌려간 영등포경찰서에서 세연이 엄마의 임신 사실을 알고 모두가 얼마나 가슴이 무너졌는지 말할 수 없다. 다행히 건강히 태어난 세연이는 그래서 우리 모두의 기쁨이고 희망이었다. 세연이가 태어나고서도 죽는 것 빼놓고 할 수 있는 투쟁은 다해 봤지만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았다. 세연이는 그렇게 배 속에서부터, 보에 쌓여서부터 이 투쟁에 함께 해왔다.

그 기간 동안 기륭 조합원들은 지치지 않고 공장점거 농성, 공장 앞 컨테이너 농성, 삭발, 고공농성, 삼보일배, 목숨을 건 94일간 단식투쟁 등을 통해 사회적 울림과 연대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문자해고, 잡담해고의 실상이 폭로되면서 불법파견노동자들에 대한 인간적 멸시와 차별, 열악한 노동조건이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고 있었다.

2013년 5월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메이데이 행사장. 어느덧 자라서 이모들 사진 찍어주는 게 취미가 된 세연이. 늘 ‘폼 잡아’라고 말한다. 왼쪽 모자 쓴 이부터 박행란, 문재훈(기륭공대위), 김소연, 세연엄마, 윤종희 조합원(2013년 5월 1일)
 2013년 5월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메이데이 행사장. 어느덧 자라서 이모들 사진 찍어주는 게 취미가 된 세연이. 늘 ‘폼 잡아’라고 말한다. 왼쪽 모자 쓴 이부터 박행란, 문재훈(기륭공대위), 김소연, 세연엄마, 윤종희 조합원(2013년 5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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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세연이가 공장 앞 집회 때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다. 세연이한테는 절대로 비정규직의 설움을 물려줄 수 없다는 엄마의 소박한 마음은 꺾이지 않았다. 도저히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던 투쟁도 기륭자본의 공장부지 개발 저지를 위한 마지막 집단단식과 포클레인 농성 투쟁으로 극적인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그 결과 지난 2010년 11월 3일 국회에서 사측과 '정규직으로 고용한다'는 내용이 담긴 합의서가 체결됐다.

세연이 엄마와 이모들의 1895일 동안의 투쟁은 종이 한 장의 합의서로 끝을 맺어야 했다. 한낱 종이 한 장이었지만 근 십수 년만에 한국사회 불법파견 비정규직노동자가 정규직노동자가 되는 첫 사례로 기록이 되었다.

한국사회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희망을 줄 수 있다는 소중한 소식이었다. 세연이에게 이제 엄마도 '정규 엄마'가 될 수 있다는 눈물겨운 선물이었다. 합의서 체결할 때도 승리보고대회를 할 때도 세연이 엄마와 조합원들은 설움과 기쁨의 눈물을 연신 흘렸다. 세연이도 눈물의 뜻을 아는지 그리 놀라지 않는 표정이었다. 오히려 어느 때보다 해맑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생산설비를 마련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측의 강력한 요청으로 부득이하게 2년 6개월의 유예기간을 갖게 되었다. 그 기간 동안 기륭전자 조합원들은 하루도 쉬지 않았다. 투쟁이 있는 곳이라면 전국 어느 곳이라도 달려가서 직접 몸으로 연대를 하였다.

노동자투쟁현장뿐만 아니라, 철거민, 노점상, 농민투쟁 등에 함께 했다. 또한 희망버스 운동의 실질적인 기획자이자 실무자로서 손발이 되어주었다. 희망뚜벅이, 쌍용자동차비정규직 희망버스, 현대차비정규직 희망버스, 그리고 근래의 밀양탈핵희망버스까지 기륭조합원들은 지치지 않는 연대의 손발이 되어 주었다. 이것이 기륭투쟁의 승리를 직접 나누는 것이며 사회적 연대투쟁을 더욱 더 확대하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엄마와 세연이에게 꿈을 돌려주세요

013년 메이데이 다음날 2010년 11월 1일 합의 후 2년 6개월만에 복직하던 첫 출근날 풍경. 사측은 이조차 받으려하지 않았지만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선포하고 회사로 들어갔다. 그날 펑펑 울고난 뒤 회사로 들어가고 있는 강화숙 조합원(2013년 5월 2일)
 013년 메이데이 다음날 2010년 11월 1일 합의 후 2년 6개월만에 복직하던 첫 출근날 풍경. 사측은 이조차 받으려하지 않았지만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선포하고 회사로 들어갔다. 그날 펑펑 울고난 뒤 회사로 들어가고 있는 강화숙 조합원(2013년 5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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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륭투쟁에 연대했던 다큐감독 중 돌아가신 김천석님과 이상현(숲속홍길동) 님을 기려 기륭조합원들과 공대위가 나서서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에게 힘을'이라는 기금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첫 기금 전달을 하던 마석모란공원에서 밝은 모습의 세연이. 첫 기금전달은 지엠대우비정규직 영상작업과 밀양송전탑 영상작업, 그리고 쌍차 대한문 영상작업을 해왔던 감독들에게 주어졌다.(2013년 6월 23일)
 기륭투쟁에 연대했던 다큐감독 중 돌아가신 김천석님과 이상현(숲속홍길동) 님을 기려 기륭조합원들과 공대위가 나서서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에게 힘을'이라는 기금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첫 기금 전달을 하던 마석모란공원에서 밝은 모습의 세연이. 첫 기금전달은 지엠대우비정규직 영상작업과 밀양송전탑 영상작업, 그리고 쌍차 대한문 영상작업을 해왔던 감독들에게 주어졌다.(2013년 6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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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곤 작년 2013년 5월 2일, 2년 6개월 동안의 기다림 끝에 그토록 원했던 기륭전자 정규직으로 회사에 복직했다. 국회에서 맺은 사회적 약속과 사회적 합의가 당연히 지켜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측은 8개월여 동안이나 업무를 주지 않고, 임금도 체불했다.

수차례 노사협의회와 단체교섭을 했지만, '회사가 어려우니 기다려 달라'는 말만 되풀이 하더니 급기야 '도망 이사'를 강행하곤 '일하지 않으면 직원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이에 조합원들은 이미 지난해 8월 29일 또 다시 투쟁을 선포했다. 그동안 보지 않았던 세연이의 모습도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는 '사회적 합의 이행'과 '경영투명성 보장' 그리고 '생산시설 마련'이라는 요구를 분명히 했다. 정규직화에 대한 절박한 요구 조건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최동열 회장은 투기 자본가로서 생산보다는 기업사냥과 매각에만 관심이었다. 그러니 정규직화라는 사회적 합의는 시간 끌기 위한 사회적 사기였으며, 국회에서 합의는 마지막으로 자신과 기업의 이미지를 제고하고 먹튀를 숨기기 위한 장소에 불과했다.

이런 우려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기륭전자 조합원들의 투쟁 강도가 높아지자, 최동렬 회장은 지난 12월 30일 새해를 이틀 남겨두고 회사 집기를 빼돌리고 야반도주했다. 3/4분기 5억8000만 원의 흑자공시를 한 상태여서 건물임대료 5000만 원을 체납한 사실도 드러났다.

2013년 12월 30일, 기륭전자 사측은 조합원만 놔둔 채 새벽에 도망이사를 가버렸다. 빈 사무실에서 24시간 점거농성에 들어가게 되었다. 세연이는 이제 이곳으로 엄마와 함께 출근한다.(2014년 1월 10일)
 2013년 12월 30일, 기륭전자 사측은 조합원만 놔둔 채 새벽에 도망이사를 가버렸다. 빈 사무실에서 24시간 점거농성에 들어가게 되었다. 세연이는 이제 이곳으로 엄마와 함께 출근한다.(2014년 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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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륭전자는 조합원들에 대한 복직 약속을 미루던 시기, 중국공장과 신사옥을 위장 매각하고 남은 직원들을 모두 해고시키면서, 회사 자산을 모두 빼돌렸다. 이런 불량기업은 사회적으로 퇴출시켜야 한다며 증권거래소 앞에서 상장 폐기를 요구하며 그간 싸워왔다. 곧 마지막 실질심사가 예정되어 있다.(2014년 1월 16일)
 기륭전자는 조합원들에 대한 복직 약속을 미루던 시기, 중국공장과 신사옥을 위장 매각하고 남은 직원들을 모두 해고시키면서, 회사 자산을 모두 빼돌렸다. 이런 불량기업은 사회적으로 퇴출시켜야 한다며 증권거래소 앞에서 상장 폐기를 요구하며 그간 싸워왔다. 곧 마지막 실질심사가 예정되어 있다.(2014년 1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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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지금까지, 기륭전자 조합원들은 야반도주한 회사에서 철야농성 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세연이의 발길도 잦아진다. 단전 단수된 공간이지만 세연이는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회의할 때는 한쪽 구석에서 혼자서 역할 놀이를 한다. 엄마와 이모가 되기도 하고, 친구 엄마가 되기도 한다. 혼자서 중얼거리지만 꽤 진지하다. 철야농성을 시작할 때 "최동열 회장 정말 나빠!"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세연이를 볼 때마다 이 말이 정말 떠나지 않는다.

세연이 엄마의 꿈은 기륭전자 회사에서 정규직으로 열심히 일하고 싶을 따름이다. 남보다 월급을 더 달라는 것도 대우를 더 잘해 달라는 것도 아니다. 열심히 일하는 엄마를 보면서 세연이가 건강하게 잘 크길 바란다. 엄마의 꿈이 세연이의 꿈으로 이어져도 상관없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 노동자가 되는 것이 큰 꿈처럼 보이지만 엄마의 작은 노력으로 비정규직이 대물림되지 않고 세연이가 정규직으로 일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행복이 없을 것이다.

엄마와 세연이의 꿈을 지켜 주기 위해, 오늘도 기륭전자 철야농성장은 못난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런 세연이가 우리 사회엔 참 많다. 90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자녀들이 모두 그렇다. 부디 그런 세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다시 전할 수 있는 기륭전자 투쟁이 되길 바라 본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황철우 기륭전자비정규직투쟁 공동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입니다.



태그:#기륭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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