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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전북 순창에서 소들을 굶겨 죽인 사건이 있었다. 당시 농장주는 솟값은 폭락하는데 사룟값은 오르자 소 매각을 거부한 채 자신의 소들을 굶겨왔다. 2011년 여름 즈음부터 굶기 시작했다는 소들이 2012년 1월을 넘기며 대량으로 죽어 나가자 당시 동물사랑실천협회는 사료를 공급해 주고 농장주로부터 재발 방지 약속을 받았다.

그러나 3개월이 지난 시점인 2012년 5월에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50여 마리의 소들은 축사에서 굶어 죽었고, 뼈만 남은 25마리의 소만 생존했다. 2012년 5월 22일 동물사랑실천협회는 살아남은 25마리 중 9마리 소를 구출해 과천 정부종합청사에 찾아갔다. 정부의 대책 마련을 호소하기 위해서였다. 동물사랑실천협회는 남은 16마리의 소도 구출하려 했지만, 농장주는 소들을 포기하지 않았다. 대신 동물사랑실천협회와 농장주 그리고 순창군은 협의를 통해 지자체가 먹이를 제공하고 1년 동안 농장주가 16마리의 소를 맡는 방식에 합의했다.

2012년 순창에서 굶어죽은채로 발견된 소의 사체.
 2012년 순창에서 굶어죽은채로 발견된 소의 사체.
ⓒ 동물사랑실천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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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 아사 사건'을 계기로 동물보호법이 개정됐다. 2013년 4월 5일부터 고의로 급수·급식을 하지 않아 동물을 죽이면 동물학대죄로 처벌받는 조항이 신설된 것이다. 그러나 살아남은 16마리의 소는 삶의 평안을 되찾지 못했다.

2013년 현재 16마리의 소 중 12마리가 죽고 4마리의 소만이 남았다. 농장주는 더 이상 4마리의 소를 맡을 수 없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한다. 2013년 12월부터 사실상 4마리의 소가 갈 곳은 없게 된 것. 대한민국에서 소는 먹기 위한 자원인 만큼 일정 정도 보호하고 도살장에 보내는 게 상식이다. 소를 죽음의 순간까지 반려동물처럼 보호해줄 사람이 과연 있을까.

남아있는 소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 장면, 뒷모습에서 이미 뼈가 앙상한 것을 볼 수 있다.
 남아있는 소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 장면, 뒷모습에서 이미 뼈가 앙상한 것을 볼 수 있다.
ⓒ 동물사랑실천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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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전주시의회 오현숙 시의원과 박정희 녹색당 전북 공동위원장·동물사랑실천협회의 노력으로 4마리의 소는 전주 지역에 임시 거처를 마련했다. 이게 2013년 12월 19일의 일이었다. 이제 소들은 좀 안정적인 삶을 누릴 수 있을까.

그런 바람도 잠시. 2014년 1월, 4마리의 소를 임시보호하던 분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그 중 누렁소가 쓰러져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며칠째 아예 아무것도 입에 대지 못한다는 소식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시름시름 앓다 죽게될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수명을 다한 것이라면 이제 먼 곳으로 떠나야 할 때. 그러나 질긴 목숨은 그 고통을 연장시키고만 있다.

임시보호를 하는 분도, 주변의 많은 분들 모두 안락사 이야기를 꺼냈다. 회복 가능성은 희박해지고, 고통스러운 삶이 지속적으로 연장될 가능성이 있다면 고려할 수 있는 방법은 안락사였다. 보호소에서 개나 고양이를 안락사한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 있으나, 막상 소를 안락사한다니…. 막연하고 낯선 상황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대동물의 긴급 안락사, 참 어렵다

주저앉아있는 누렁이에게 다가갔다.
 주저앉아있는 누렁이에게 다가갔다.
ⓒ 전경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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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적인 안락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죽는 순간의 고통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어떤 방법이 좋을지 여러 수의사 선생님들께 조언을 구하고자 했다. 동시에 외국 동물단체의 가이드라인을 참고했다.

영국동물보호협회(RSPCA)의 안락사 규칙과 가이드라인(Euthanasia rules and guidelines, 2014)에는 소, 양, 염소, 돼지, 말, 당나귀와 같은 대동물을 안락사할 경우, 캡티브 볼트(captive bolt, 가축총으로 불리며 금속봉을 발사하며 가축을 도살하기 전 기절시키는 용도로 쓰임)를 이용하거나 펜토바비톤 소듐(pentobarbitone sodium)을 정맥으로 주사(1.5kg 당 1ml)하는 방법을 쓰도록 조언하고 있다.

안락사를 도와줄 수의사 선생님을 찾았다. RSPCA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펜토바비톤 소듐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봤으나, 현재 국내에서는 마약류로 분류돼 있어 급하게 구하기는 매우 어려운 약물이라는 답변뿐이었다. 그렇다고 아파서 주저앉은 소를 위해 캡티브 볼트를 구해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무엇보다 그 장비를 사용하는 데는 숙련자가 필요했다. 캡티브 볼트는 아무나 조작할 수 있는 장비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소를 도살 처분할 때 많이 쓰이는 근육이완제 석시니콜린(succinyncholin)을 단독으로 쓰면 인도적인 안락사 방법이라 할 수 없다. 석시니콜린은 짧은 시간에 작용하는 근육이완제로, 근육이 마비돼 통증에 반응하지는 못하지만 의식이 또렷해 그대로 고통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통을 경감 시키기 위해서는 사전에 반드시 마취제를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연락을 시도한 수의사 선생님들 모두 시원한 답변을 주지는 못했다.

지난 1월 23일 안락사를 도와주시겠다는 수의사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안락사할 때 어떤 약물을 쓰시나요?'라는 질문에 그 선생님은 짐짓 놀라는 듯했다. '왜 물어보냐'는 반응. 나는 인도적 안락사가 누렁이에게 이뤄져야 할 이유를 설명했다. 수의사 선생님은 그제서야 럼푼(Rompun)을 쓴 뒤 석시니콜린을 쓰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나는 럼푼은 전마취제로 진정제일 뿐, 충분히 정신을 잃게 만들 수 없으니 마취제를 써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수의사 선생님은 마취제로 그간 많이 쓰였던 케타민(Ketamin)은 2006년 2월부터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됐다고 설명했다. 케타민 외에 많이 쓰였던 졸레틸(Zoletil) 역시 2013년 12월부터 임시 마약류로 지정돼 관리 대상이 됐기 때문에 긴급하게 마취제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게다가 소의 경우 개와 달라 마취제가 있어도 고용량이 필요하다. 결국 소 같은 대동물의 긴급 안락사는 매우 어렵다는 결론. 결국 다른 수의사 선생님을 찾기로 했다.

어렵게 다른 수의사로부터 안락사를 도와주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지난 1월 24일 약속을 잡고 나는 동물사랑실천협회 활동가들과 전주로 향했다. 농장에 도착하니 수의사 선생님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 AI 방역 중이니 소우리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방역복을 입으라고 했다. 우사 안으로 들어가니 구석에 주저앉아 있는 누렁소가 보였다. 보기에도 이미 뼈가 앙상했다. 배설한 뒤에도 몸을 움직이지 못해 소의 항문 아래는 배설물이 가득했다. 누렁소를 처음 본 수의사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안락사하는 소가 거의 없는 까닭

등은 이미 뼈만 앙상하게 남아있는 모습. 몇 차례 수의사선생님이 찾아와 치료했지만 이미 소용없는 상태까지 갔다고 한다.
 등은 이미 뼈만 앙상하게 남아있는 모습. 몇 차례 수의사선생님이 찾아와 치료했지만 이미 소용없는 상태까지 갔다고 한다.
ⓒ 전경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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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일찍 연락하지 그랬어요. 이렇게 말랐을 정도면 고통이 심했을 텐데…."
"왜 며칠째 밥을 못 먹고 있을까요?"
"그때 얼마나 굶었다고 했죠?"
"두 달간 물만 먹였대요."
"아마 그때 내장기관이 많이 상했을 거예요. 이미 신체기관이 거의 손실돼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거죠."

고통을 덜어주자. 이미 살아날 가능성은 0%. 수의사 선생님이 가방에서 주사기와 약병을 꺼냈다.

"소를 안락사할 때 마취제는 거의 안 써요. 하지만 동물단체에서 그렇게 부탁하니까…, 쓰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알게 됐다. 소에게 안락사가 없는 이유를. 소는 식용을 위해 인간이 키워낸 존재가 돼버렸다. 즉, 먹기 위한 재료이니 몸이 아파 쓰러져 죽어갈 때까지 키울 이유가 없는 존재라는 이야기다. 안락사에도 비용이 소요되므로 그냥 방치하거나 도살장으로 보내면 그만인 동물이 소였던 것이다.

약물이 들어가자 옆에 누운 모습.
 약물이 들어가자 옆에 누운 모습.
ⓒ 전경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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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럼푼으로 소를 안정시킨 뒤 마취제를 주입했다. 소의 눈이 점점 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석시니콜린을 주입. 수의사 선생님이 "약간의 경련이 있을 수 있으니 너무 놀라지 말라"고 말했으나 생각만큼 경련이 심하지는 않았다. 몸이 약간 흔들리고 잠시 후, 눈이 완전히 감기고 몸의 작은 움직임마저 멈췄다. 수의사 선생님은 손으로 호흡과 심장 박동을 확인했다.

"이제 호흡이 멈췄네요."

그렇게 누렁이는 세상을 떠났다. 누렁이는 2009년도 생이니, 5살 정도가 됐다. 내가 누렁이를 처음 본 날은 누렁이가 죽은 날이 됐다. 지금까지 나는 동물이 죽어가는 것을 많이 봐왔다. 그런 상황은 익숙했지만, 그날 내가 본 장면은 마음 속에 편하지 않은 순간으로 남을 것이다. 모든 생명은 태어나 죽는다. 그러나 그 죽음이 모두에게 행복은 아니다. 적어도 이윤을 위해 동물을 굶겨 죽이는 게 동물학대라는 상식을 넘어 법이라는 강제규정이 됐다.

'가축'이라는 슬픈 삶

남아있는 세 마리의 소
 남아있는 세 마리의 소
ⓒ 전경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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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렁이를 보내고 돌아오는 길. 멀리 너른 농토가 보였다. 새들이 날아가는 모습도 보였다. AI가 충청·전라 지역을 강타하면서 겨울철새가 먹이를 구하는 곳은 죽음의 땅으로 변하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그 죗값은 말 없는 철새가 뒤집어쓰고 있다.

야생상태에서 철새가 AI바이러스를 보유하고 있어 병이 발생해 대량으로 죽어 나가는 일은 없다. 적어도 인간의 개입이 없었다면 그들은 자신만의 생태계 흐름 내에서 살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가축'인 오리와 닭은 인간의 개입에 의해 만들어진 창조물이다. 유전자는 단일하며 환경도 열악하다. 개체 한 마리 한 마리 삶의 행복을 모두 고려하다가는 이윤은커녕 손해만 보고 농장 문을 닫아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만의 잘못은 아니다. 우리가 '많이' '자주' 그리고 '풍족하게' 먹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가축'을 생산해냈다. '가축'으로 태어나 죽어가는 그들의 삶. 누렁이는 그나마 우리들의 '극성스러운' 부탁으로 진정제·마취제·안락사 약물까지, 최대한 인도적인 처우와 배려를 받았다. 우리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누렁이의 뺨을 쓰다듬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가축들은 이름도 없이, 최소한의 마지막 배려도 없이 땅에 묻히고 있다.

'생명이 소중하다'는 말은 지금 상황에서 매우 공허한 말이다. 자식 같은 닭을 땅에 묻는다고 토로하는 분들의 말이 되레 냉혹하고 차갑게 다가왔다. 생명보다는 경제적 가치가 더 우선인 사회다. 그렇지 않았다면 자식 같은 소를 왜 굶겼을까. '가축'은 그저 자식을 공부시키기 위해, 자식을 키우기 위해 돈을 벌 수 있는 중요한 자원이었다. 그 자원이 '똥값'이 됐으니 처치 곤란한 '쓰레기'가 됐을 뿐이다.

2014년 1월 27일 현재, 전국적으로 64만4000마리의 오리와 닭이 도살 처분됐다고 한다. AI로 인한 농가보상액은 2008년의 경우 1817억 원, 2010년에서 2011년에는 807억 원에 달했다. '가축'에 경제적 가치만을 부여한다면 누렁이 같은 굶어 죽어가는 소들, 자루에 담겨 땅에 집단으로 묻히는 오리·닭들은 계속 나타날 것이다. 2000년부터 거의 매년 발병하는 가축 질병에 수를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가축이 땅에 묻혔다. 대한민국, 동물에게는 공포의 킬링필드다.

덧붙이는 글 | 전주 인근의 농가에 임시보호되고 있는 남은 3마리 역시 곧 농가를 떠나야 한다고 합니다. 소들이 여생을 보낼 수 있는 곳을 찾고 있습니다.



태그:#동물보호법, #동물학대, #순창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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