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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박물관 초기화면
 한글박물관 초기화면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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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는 박물관이 있다. 이런 것을 사이버 박물관이라 부른다. 국내의 대표적인 사이버 박물관이 바로 국립국어원에서 운영하는 디지털 한글박물관이다. 2001년 5월 데이터 베이스 구축작업에 착수, 2003년 10월에 문을 열었으니 그 역사가 벌써 10년이 넘었다. 디지털 한글박물관은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고, 한글 문화유산을 보존하는데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디지털 한글박물관은 우리 민족의 언어인 한글의 중요성을 찾아내고 우수성을 알리는 일을 한다. 이를 위해 한글문화 관련 콘텐츠를 구축하여 한글에 관한 정보를 다양하게 제공하고 있다. 이곳에 구축된 상설전시 콘텐츠의 주제는 모두 다섯 가지다. '한글의 탄생과 역사', '아름다운 한글', '생활 속 한글', '한글과 교육', '한글의 진화와 미래'. 그리고 해마다 다른 주제로 특별전시를 열어 한글 문화유산을 전문적으로 조명한다. 특별전은 2006년부터 한글 편지, 사전, 교과서, 고전소설 등을 심층적으로 연구하고 조명해 왔다.

한글박물관은 곳곳에 흩어져 있는 한글 문화유산을 수집·정리하고, 이를 디지털 정보화하여 국민에게 제공하고 있다. 또한 한글문화 관련 콘텐츠를 구축하여 다양한 한글의 모습을 알려준다. 그리고 매년 특별 기획전을 개최해 국민들에게 흥미롭고 깊이 있는 한글 관련 정보를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는 외국인과 어린이를 위한 콘텐츠를 더 많이 만들어 한글의 세계화와 보편화에도 기여할 계획이라고 한다.

훈민정음에서 한글이 되기까지

훈민정음
 훈민정음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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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의 원형 훈민정음은 조선 세종 28년(1446년) 9월 백성들을 가르치기 위해 반포한 문자 이름이다. 그런데 이 문자가 만들어진 것은 1443년(세종 25년) 겨울이다. "계해년(1443년) 겨울 우리 전하께서 정음 28자를 창제하시어 간략히 예와 뜻(例義)을 들어 보이고 이름 하기를 훈민정음이라 했다"는 표현이 정인지의 서문에 보인다. 훈민정음 해례(解例)에 따르면 정음 28자는 상형을 해 만들었다. 그리고 이들 문자를 만든 원리에 대해 예를 들어 해설하고 있다.

초성은 17자이다. ㄱ(아음), ㄴ(설음), ㅁ(순음), ㅅ(치음), ㅇ(후음)의 기본자는 발음기관을 상형하여 만들었다. 그 외의 글자는 소리의 세기(稍厲)에 따라 획을 더해(加) 만들었다. 중성은 11자이다. ㆍㅡㅣ의 세 기본자가 천·지·인을 상형하여 만들었다. 초출자(初出字) ㅗ ㅏ ㅜ ㅓ와 재출자(再出字) ㅛ ㅑ ㅠ ㅕ의 음감과 형상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리고 종성으로 초성을 다시 쓰는 것을 순환의 관점에서 설명했다.

용비어천가
 용비어천가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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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로 쓰인 최초의 시문은 1445년에 나온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다. 조선왕조의 건국을 정당화하고 이를 이룩한 시조(始祖)를 찬양한 서사시다. 그 후 <불경언해>, <삼강행실도 언해>, <소학 언해> 등이 나왔으나, 한글은 조선시대 내내 주류 문자로 대접받지는 못했다. 한글이 민중의 언어생활에서 제대로 대접받게 된 것은 1894년 갑오개혁을 통해서다. 우리글을 국문(國文), 우리말을 국어(國語)라고 부르고, 공문서 작성에 한글사용을 보장했기 때문이다.

1895년 유길준은 <서유견문>을 한글로 기록했으며, 1896년 최초의 순 한글신문 <독립신문>이 창간되었다. 1897년 이봉운의 <국문정리>, 1898년 주시경의 <국어문법>이 나왔고, 1906년 순 한글 월간지 <가정잡지>기 발간되기에 이른다. 1920년에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창간되고 <조선어사전>이 출간되었다. 그리고 1921년 조선어연구회(현 한글학회)가 창립되었다.

1926년 조선어연구회는 훈민정음 반포일인 음력 9월 29일을 가갸날로 정해 기념하기 시작한다. 1928년 가갸날이 한글날로 바뀌었고, 이때부터 한글이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사용되었다. 1931년 조선어연구회가 조선어학회로 이름을 바꾸고, 1933년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발표한다. 1937년에는 조선어학회가 한글 가로 풀어쓰기안을 채택한다. 이를 통해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한글의 내용과 형식의 토대가 갖춰지게 되었다.

해방 후인 1947년 <조선말 큰사전>이 나왔고, 1948년 한글전용에 관한 법률이 공포되었다. 1949년에는 조선어학회가 한글학회로 그 이름을 바꿨다. 국무회의 의결로 1970년부터 한글전용이 시행되었고, 1980년 한글학회에서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수정해 <한글맞춤법>을 발표했다. 그리고 1988년 국어연구소가 제정한 <한글맞춤법>을 문교부가 공포하기에 이른다.     

생활 속의 한글 이야기

항아리 표면의 한글
 항아리 표면의 한글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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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은 조선시대 이후 우리 생활 속에 있었다. 한글은 특히 불교와 많은 관련을 맺어 불경 언해 형식으로 대중과 함께 했다. 그리고 복장유물 속에서도 한글을 발견할 수 있다. 장의(長衣) 속에 넣은 발원문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다. 이것은 한국무속박물관에 있다.

"한두망의 연이 갑진생     한두망에 사는 갑진(甲辰)생 연이가
권시 병오생 백년 동참        병오(丙午)생 권씨가 백년가약을 맺었습니다.
무병 댱슈 부귀 자손 만당    무병장수하고 부귀하며 자손을 많이 낳고
급뎨하여 일품까지 하여      과거급제하여 1품까지 올라갔으면
지이다.                            좋겠습니다.
댱의 하나                         장의(長衣) 하나
백지 닷 권                        백지(白紙) 다섯 권
황사 한겯 보텬하노이다.     황사(黃絲) 한 한 묶음을 하늘에 바치나이다."

한글은 남성보다는 상대적으로 여성에게 많이 통용되었다. 그것은 배우기 쉽고 쓰기 쉽기 때문이었다. 그런 연유로 한글로 된 음식조리서가 많이 남아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1670년경 안동 장씨가 쓴 <음식디미방>, 1600년대 말 하생원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주방문>, 1809년 빙허각 이씨가 쓴 <규합총서>가 있다. 이 중 예천 맛질 마을에서 태어나 영양 두들 마을로 시집가 산 정부인 안동 장씨(1598-1680)에 의해 쓰여진 <음식디미방>은 문화사적인 측면에서 다양하게 연구되고 있다.

음식디미방 속의 한글
 음식디미방 속의 한글
ⓒ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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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이리 눈 어두온대 간신히 써시니
이 뜨잘 아라 이때로 시행하고
딸자식들은 각각 벗겨 가오대
이 책 가뎌 갈 생각을 안 생심 말며
부대 샹치 말게 간쇼하야
수이 떠러 바리다 말라."

이 책을 이렇게 눈이 어두운데 간신히 썼으니,
이 뜻을 알아 이대로 시행하고,
딸자식들은 각각 베껴 가되,
이 책을 가져 갈 생각일랑 절대로 내지 말며,
부디 상하지 않게 간수하여
빨리 떨어져 버리게 하지 말라.

한글이 가장 많이 쓰인 것은 아녀자들의 한글 편지다. 한글 편지를 언간(諺簡)이라고 했는데, 이 언간은 시집간 딸이 부모에게 소식을 전하는 내용이 가장 많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어머니가 딸에게 답장을 보내곤 했다. 그리고 부부 사이 편지도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편지는 공식적으로 쓰기는 어려워 사별한 남편에게 보내는 경우가 가끔 보인다. 대표적인 것이 '이응태(李應台)묘 출토 언간'(1586)이다. 이것은 원이엄마 사부곡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자내 샹해 날 다려 닐오대 둘히 머리 셰도록 사다가 함끠 죽쟈 하시더니
엇디하야 나랄 두고 자내 몬져 가시난 날하고 자식하며 뉘 긔걸하야
엇디 하야 살라 하야 다 더디고 자내 몬져 가시난고"

그대 항상 내게 이르되, '둘이 머리 세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 하시더니,
어찌하여 나를 두고 그대 먼저 가시는가? 나하고 자식하며 누가 분부하여
어찌 하여 살라 하고 다 던지고 그대 먼저 가시는가?

문제는 한글 맞춤법이다

이토록 읽기 쉽고 쓰기 쉽다는 한글에 맞춤법이 생기면서 한글은 누구도 완벽하게 쓸 수 없는 글이 되었다. 너무나 많은 규정을 두어 그 규정을 누구도 기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1984년 국어연구소가 생기면서 더욱 심화되었다. 1988년 종래의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수정하여 '한글 맞춤법'을 제정했고, 문교부에서 '한글 맞춤법'을 공포하였는데, 이게 정말로 어렵기 때문이다.

한글 맞춤법은 제1장 총칙, 제2장 자모, 제3장 소리에 관한 것, 제4장 형태에 관한 것, 제5장 띄어쓰기, 제6장 그 밖의 것, 그리고 부록 문장부호로 이루어져 있다. 이 맞춤법은 본문이 모두 57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제4장 형태에 관한 것, 제4절 합성어 및 접두사가 붙은 말 부분은 정말 어렵다. 그 중에서도 제30항 사이시옷 규정은 어떻게 만들어진 건지 보통 사람으로서는 틀리지 않는 게 불가능할 정도다.

사이시옷이 붙는 환경은 순우리말 합성어에서 세 가지, 순우리말 + 한자어 합성어에서 세 가지, 한자어에서 한 가지로 모두 일곱 가지다. 어째서 제삿날에는 '사이 ㅅ'이 들어가는데, 인사말에는 안 들어가는가? 마구간과 전세방에 '사이 ㅅ'이 안 들어가는 이유는 뭘까? 그러면서 장맛비에는 왜 '사이 ㅅ'이 들어가나? 장마철에 오는 비를 장맛이 나는 비로 만들려는 건가? 화병에는 '사이 ㅅ'을 안 붙임으로 해서, 화가 나서 생긴 병이 꽃병으로 변할 판이다.

한글 맞춤법이 얼마나 어려우면 <100명 중 98명이 틀리는 한글 맞춤법>이라는 책이 나왔을까? 1988년에 공포된 한글 맞춤법이 불필요한 조항을 삭제하고 미비점을 보완하고 현실에 맞게 고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는 과정에서 너무 어려워지고 복잡해진 부분도 있다. 법이라는 것이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다 만족시킬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이 수긍할 수 있는 쪽으로 일부 개정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 한글 고어 표기가 안 돼 일부를 현대식으로 표기했다. 디지털 한글박물관의 누리집은 http://www.hangeulmuseum.org이다.



태그:#디지털 한글박물관, #국립국어연구원, #훈민정음, #한글, #사이버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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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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