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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인간의 예술혼을 자극한다. 그리고 어떻게 생활하는 것이 멋있는 인생이며,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하게 한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진정한 인간다움에 대한 일말의 회의와 성찰이 없다면 그것은 허상이다. 그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애정의 깊은 심연의 내면에 프랑스의 파리가 있다. 그 파리를 보지 못하고 그 파리를 만끽하지 못하고 그 파리를 체험하지 않고 우리는 유럽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

파리쟌느의 향수어린 세련됨을 뒤돌아보지 않아도 그곳은 늘 풍부한 시각적 충만과 더불어 다양한 형태의 감각적 유혹이 자리한다. 오후 한나절, 햇살이 비껴간 어느 파리의 뒷골목에서 문득 마주치는 낯선 외로움. 그것은 마치 실루엣의 잔영같이도 창백한 절망과 회색빛으로 거리를 배회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파리는 맑고 밝은 예술혼이 시내의 모든 공간에 칩거하 듯 움츠리고 있다가 어느 순간 기지개를 켜고 시내를 활보하는 건강한 도시임에는 분명하다. 파리는 웅장함에서 오는 압도적 경탄과 더불어 거리의 작은 레스토랑에 앉아 커피한잔을 앞에 놓고 시내의 정취에 잠길 수 있는 소박한 한가로움을 또한 구비하고 있다.

사크레쾨르 대성당에서 내려본 파리시내의 전경이다. 도시는 역사의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늘 그렇게 오후의 아늑한 감미로움으로 깊어간다.
▲ 파리의 오후.. 사크레쾨르 대성당에서 내려본 파리시내의 전경이다. 도시는 역사의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늘 그렇게 오후의 아늑한 감미로움으로 깊어간다.
ⓒ 김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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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가 정취가 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세계적 도시이지만 그 속에 아직도 느낄 수 있는 고전적 살결을 감각할 수 있다. 그만큼 파리는 관능적으로 우리들의 감수성을 자극하고 흥분시키는 매력을 또한 갖고 있다. 왠지 한바탕 애정 어린 섹스에 대한 욕정이 일순간 치솟는, 파리적 유혹에 누구나 전신이 뜨거워짐을 느낄지도 모른다. 문득 파리는 환락의 도시같이 모든 것이 자유분방한 흥분과 클라이막스의 절정으로 다가온다.

카페거리 무명화가의 찬란하고 서정어린 미학적 이미지가 오늘의 파리 모습을 가감없이 담아내고 있다. 로마에서는 목소리에 진실을 담아 노래하고 파리에서는 그림 속에 순수함이 그려지고 있음을 본다. 모두들 감성적 자기표현의 능력은 대단하다는 느낌을 갖는다.

수많은 역사적 뒤안길에서 시민들의 의지가 서양의 주류가 될 수 있었던 그 중심에 프랑스 혁명이 우뚝 자리하고 있다. 시민혁명과 더불어 인간으로서의 자아와 평등을 확인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 그들의 혁명은 오늘날 우리 인간의 존엄과 인간다움에 대한 일종의 나침반같이 현대인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기에 파리의 현실은 과거의 산물이며 또한 미래에 대한 거울이기도 하다.

몽마르트르 언덕에 위치한 백악의 성당이다. 성당앞의 계단에 앉아 파리시내를 내려다 보는 여유와 안식이 항상 여행객들을 편하게 하는 곳이다.
▲ 사크레쾨르 대성당 몽마르트르 언덕에 위치한 백악의 성당이다. 성당앞의 계단에 앉아 파리시내를 내려다 보는 여유와 안식이 항상 여행객들을 편하게 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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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예술의 흔적이 깃든 몽마르뜨로 언덕을 오른다. 비잔틴 로마네스크 양식이라고 할 만한 사크레쾨르 대성당에서 내려다보는 파리시가지는 아련한 오후의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신비한 감미로움을 느끼게 한다. 역사적 도시로서의 파리의 면모를 한눈에 대할 수 있는 기회이다. 인간은 자연과 시간이 공존하는 현실 속에 갇힌 존재 같아도 수많은 세월동안 대물림의 역사적 인과관계의 틀 속에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지나 아닐는지..

무엇인가 유연한 사고의 틀을 가질 수 있고 또한 가져야만 그 속에서 호흡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유의 도시, 파리는 그래서 늘 시간적 연속성 속에 우리들을 구속하지 않고 자유롭게 하는 정신적, 물리적 유연함을 갖고 있는 듯 하다. 그러기에 지치지 않고, 그래서, 변함없이 파리의 잔상들은 우리들에게 늘 새롭게 다가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이면에는 인간에 대한 사랑과 연민이 항상 그들의 가슴속에 내재된 채로 일상을 채워가고 있는 데서 우리는 감동하고 우리는 좌절하는 감성적 미학을 경험하게 된다. 그것은 어쩌면 모두들 진지하게 그리고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일종의 애착 같은 현실감각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파리를 걸으면 시내의 건축물이 지니는 나름의 이미지에 주목하게 된다. 개선문의 보나파르트식 웅장함과 기개, 루브르박물관의 위엄적 궁전스러움, 에펠탑 고도의 과학적 존재의 경이로움, 수 많은 파리의 건축물들. 그리고 현대적 의미의 라테팡스의 거리 등등..

도시가 던지는 인간들의 거주공간으로서의 파리는 단순히 세상 사람들의 일상의 터일지라도, 에펠탑이 있는 파리는 생활 그 자체가 일종의 예술적 낭만과 추억의 흑백사진 같은 진한 감동의 순간으로 다가온다..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자유와 권리, 누구를 의식함이 없이 비록 개체로서의 독립적 자기영역을 구축할 수 있는 자유분망함, 기존의 틀 속에서 몸부림치듯 누구의 간섭이나 구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해방감 그리고 설익은 진보니 인권이니 하는 미숙함이 아닌, 진정한 진보와 보수의 안정감.. 혹시 이러한 것이 서양이 지향해온 이념적 가치인 동시에 우리 인간의 본연의 모습으로 거듭나는 지향점이 아닐까..그것이 깨어있는 도시 파리이다.

어느 한적한 봄날의 파리의 하늘, 하얀 순백의 구름이 마치 하늘공원 속에 자유라는 이미지로 형상화된 채로 채워지고 있다. 눈이 시리도록 푸르른 우주의 창속으로 마냥 영원으로 빠져드는 몰입의 자아해체를 경험한다. 그 순간 솟구치는 에펠탑의 장대한 위용과 우람찬 기립의 단조로움은 아예 파리를 상징하는 예술적 광기로 다시 태어난다. 누가 저런 괴물스러운 철각의 단순 구조물이 낭만과 추억의 표본같이 항상 우리들의 가슴속에 알알이 자리매김할지 상상이나 했을까.. 최고정상에서의 파리시내를 내려다 보는 일종의 모험같은 경이로움, 이것이 인간의 손과 영혼이 합작하여 창조해낸 인간의 유산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문득 주위의 숲과 잔디의 초록 평화가 왠지 그 차가운 철골물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대비가 신선하게 다가온다..

세느 강변에 위치한 마르스공원의 끝, 에펠탑은 파리의 대표적 랜드마트로 모든 이들의 사랑을 받는다.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개최된 파리만국박람회때 세워진 탑이다.
▲ 에펠탑 세느 강변에 위치한 마르스공원의 끝, 에펠탑은 파리의 대표적 랜드마트로 모든 이들의 사랑을 받는다.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개최된 파리만국박람회때 세워진 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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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곳에는 에펠탑이 있다. 에펠탑은 신기루 같다. 인간들의 시야 속에 자리하는 그 웅장한 구조물에 일단 숙연할 정도로 머리가 숙여지는, 이단아 같이 반항적이며 도전적인 자세로 내 던져진 건축적 기개에 우리들은 침묵한다. 그 당시의 기술력과 과학이 오늘 이 순간에도 우리들을 감동과 불가사이의 한계에 대한 인간의 순수한 열정에 가슴을 뛰게 한다.. 비록 철제의 삭막한 연결고리로 이어진 철탑이어도 그 형태적 유연함과 하늘을 치솟는 고딕의 양식은 파리의 야경 속에 화려하게 발광한다. 밤의 에펠탑은 어느 시인의 상상력같은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다.

전혀 미적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차갑고 건조한 조형물인데도 불구하고, 왜 인간들의 감성적 자아를 혼돈스럽게 할 정도로 세련되고 날렵한 모습으로 모든 파리의 방문객을 사로잡는 것인지...갈피를 잡을 수 없다.

에펠탑과 함께 파리를 대표하는 명소이다. 전쟁터에서 승리를 안고 돌아오는 황제나 장군을 기리기 위해 세운 문이다.
▲ 개선문 에펠탑과 함께 파리를 대표하는 명소이다. 전쟁터에서 승리를 안고 돌아오는 황제나 장군을 기리기 위해 세운 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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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들리제의 거리를 걸어 걸어 개선문으로 다가가는 그 파리에 대한 막연한 외경이 문득 인간으로서의 위대함과 자긍심으로 비약한다. 서양은 웅장함 속에서 어떠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을까..영웅의 문인 개선문의 위용은 나폴레옹의 정치적 자신감과 로마의 길을 파리에도 조성하고자 하는 열망이었는지도 모른다. 현대를 걸어가는 파리쟌느들은 이 문을 지나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나 있을지 궁금하다. 위대한 선대의 우렁찬 군화소리가 들리는 영광의 행진을 연상할지 아니면 오늘날 파리의 EU국에서의 위상을 생각할지 아니면 향후 프랑스의 미래를 생각할지 아니면 단순히 생활인의 단조로운 하루를 채워가는 발걸음일지...

세느강에는 다양한 형태의 다리가 있다. 나름의 개성과 풍경을 갖고 있다. 사랑과 예술의 징검다리와도 같이 파리의 교각은 흥미롭다.
▲ 세느강 세느강에는 다양한 형태의 다리가 있다. 나름의 개성과 풍경을 갖고 있다. 사랑과 예술의 징검다리와도 같이 파리의 교각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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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여느 도시의 강처럼 유람선이 운항된다. 세느강변의 많은 볼거리를 찾아 유람선이 노르트담 사원을 지나간다. 주변의 회색빛 범람 방어벽 위를 많은 교각이 이어져 있다. 그 중에는 퐁네프다리도 있다. 가슴이 시원할 정도의 파리의 가로수와 거리는 항상 유럽적이며 이국적이다. 차도는 좁아도 인도는 넓은 서양식 인간중심의 교통체계임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파리의 하늘은 푸르름의 전형이다. 잠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면 구름이 형체를 이루며 떠다니는 모습이 마치 손에 잡힐 듯 분명하다. 그리고 파리는 아름드리 숲을 이루는 자연친화적 도시이다. 도시에 나무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시민들의 의식적 순수함과 따뜻한 체온을 지닌 인간들의 도시임을 확인시켜 준다.

파리의 밤. 비록 세느강은 푸르른 젖줄같이 풍만하게 선을 내리고 있어도, 그것은 마치 욕망의 늪을 지나는 질퍽한 광란의 잔치같이 인간들의 성적 욕구의 탐닉적 실체로 다가온다. 그래기에 프랑스인들은 어떠한 형태의 사랑과 행위에 대해서도 관대한 의식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지...가로등 아래, 교각 위 연인들의 모습 하나하나가 마치 수면 속에 투시된 활동사진처럼 곡선의 유희같이 활발하게 어른거린다. 그들의 뜨거운 포옹과 사랑의 허깅(hugging)에 뒤이어지는 키스의 순간을..

언젠가 크리스마스이브, 런던 템즈강을 밝히던 가스등의 초췌하고 산란한 불빛 너머로, 보석같이 아름답게 빛나던 교각의 황홀한 야경을 잊을 수 없다. 마치 동화속의 황금다리위에 수놓은 축복 같은 a holy night의 유럽적 실체가 눈앞에 펼쳐지던, 그 추억의 순간들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파리의 밤도 그렇게 기억되고 그렇게 깊어만 간다.

덧붙이는 글 | 2013년 2월에 여행한 기록입니다. 김진환 기자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무역학과 교수입니다.



태그:#프랑스, #파리, #에펠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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