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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학교마다 비정규직인 기간제 교사가 많은 속에, 대구시교육청이 인턴교사제를 도입해 논란이 되고 있다. 사진은 한 고등학교의 팻말.
 각 학교마다 비정규직인 기간제 교사가 많은 속에, 대구시교육청이 인턴교사제를 도입해 논란이 되고 있다. 사진은 한 고등학교의 팻말.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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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정식' 교사예요, 기간제 교사예요, 아니면 시간 강사예요?"

철딱서니 없는 아이들이 선생님들에게 조롱하듯 내뱉는 말이다. 새로 부임한 교사들마다 아이들로부터 숱하게 질문을 받지만 그때마다 답변하기가 여간 껄끄럽지 않다고 말한다. 그들 중엔 드물게 '정식' 교사로 발령받은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내년을 기약할 수 없는 비정규직이기 때문이다.

학교 내에서는 정규직보다 '정식' 교사라는 말이 더 보편적이어서, 기간제 교사나 강사는 마치 '가짜' 교사인 양 취급 받는다. 비정규직 교사들이 수업시간 아이들 앞에서 위축되고, 없던 자격지심마저 생기는 건 그래서다. '정식'이 아니라는 게 알려지면 아이들의 수업태도 자체가 돌변한다고 하소연하는 분들도 여럿 봤다. 심지어 '네 담임은 기간제 교사'라며, 자녀 앞에서 교사를 대놓고 욕보이는 학부모들도 드물지 않다. 그럴진대 신분 불안에 떠는 그들이 학교 내에서 소신껏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리 많지 않다.

갑자기 비정규직 동료 교사들의 고단한 삶이 떠오른 건 얼마 전 대구광역시 교육청이 올해부터 전격 시행한다고 발표한 '인턴 교사제' 소식 때문이다. '인턴 교사제'란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인턴(실습) 과정을 운영해온 의료계의 시스템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보인다. 신규 교사 선발 인원을 필요한 정원의 2배로 늘리는 대신, 최소 1년 동안의 인턴 과정의 성과를 반영해 최종 임용하겠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일정 기간 기간제 교사로 근무시켜 현장 적응력과 실무 능력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언론에 따르면, 우동기 대구시 교육감은 "임용 대기자들이 교사로서 갖춰야 할 자질과 전문성을 쌓을 수 있는 기회"라고 강조했지만, 오매불망 임용시험을 준비해온 예비 교사들 입장에서 보면,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다. 기존의 임용시험에 합격했다고 해서 '정식' 교사가 되는 것이 아니고, 최소 1년 동안 '2차' 임용시험을 또 준비해야 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렇잖아도 교사 임용시험이 사법고시 등에 빗대어 '임용고시'라고 불리는 판에, '인턴 교사제'가 본격 시행되면 교사 되기란 그야말로 '하늘에 별 따기'가 될 것이다. 전국적으로 임용시험 대비 사설학원이 성업 중인 걸 감안하면, '2차' 관문 통과를 위한 인턴 실무 대비 과정이 생기지 말란 법도 없다.

청년 하면 실업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시대, 예비 교사들이 직면하게 될 이중고는 접어두자. 17년 차 교사로서 단언하건대, 이는 교사 양성 기관인 교육대학과 사범대학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꼴이며, 무엇보다 시행 과정에서의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말이 좋아 인턴교사... '충직한 마름' 검증받으란 것"

교사의 품성과 자질을 키우고자 한다면, 교육대학과 사범대학의 커리큘럼을 보완하는 것이 먼저다. 물론 현재 대학이 제구실 못 하고 외려 사교육이 공교육 교사들을 양성하고 있다는 뼈아픈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지나치게 많은 스펙을 요구하는 임용시험의 가산점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예비 교사들을 대상으로 인성 수련을 위한 교육과정을 강화하는 한편, 교육실습 기간을 연장하고 내실화하는 등의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으며, 임용시험 제도의 개혁도 추진 중인 것으로 안다. 어떻든 교육대학과 사범대학을 폐지할 요량이 아니라면, 시교육청이 시행지침에서 밝힌 '교직 부적합자'는 대학의 양성 과정에서 걸러져야지, 임용시험 합격자들 중에서 선별한다는 건 온당치 않다.

또 교사의 전문성을 키우기 위한 장치가 없는 것도 아니다. 교사들은 임용된 후 몇 해가 지나면 한 달 남짓의 '1급 정교사' 연수 과정을 필수적으로 이수하도록 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교육청과 각종 연수원, 심지어 사설기관에서 마련한 전문성 향상을 위한 연수 프로그램은 그 수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연수 과정의 내실화를 통해 얼마든지 전문성 향상을 기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대구시교육청 누리집 갈무리
 대구시교육청 누리집 갈무리
ⓒ 대구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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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서울의 한 사범대학에 진학해 임용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제자는 대구의 '인턴 교사제' 소식에 씁쓸해하며 이렇게 말했다.

"말이 좋아 '인턴 교사'지, 기존의 교육실습 기간이 한 달에서 1년으로 늘어난 거죠. 그것도 멀쩡한 교사 신분으로. 가르치는 데 필요한 지식은 임용시험으로 검증받았으니, 이제 '충직한 마름'의 자질을 갖췄는지를 검증받으라는 의도 아니겠어요?"

'현장 적응력'을 테스트하겠다는 건 사실상 '눈치껏 행동하라'는 무언의 압력일 수밖에 없다며, 이 제도가 확산되면 소신 있는 교사는 사라지고 교단에는 학교장을 해바라기처럼 바라보는 '처세의 달인'들만 득시글거리게 될 거라는 우려를 쏟아냈다.

"공부 잘 하고 시험 잘 치른다고 교사로서 자격이 있다고 보지는 않아요. 교사 임용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건 예비 교사들 모두가 공감해요. 그런데 정작 제도를 손보려는 이들이 '경쟁 지상주의'에 물든 기득권을 지닌 관료들이라는 게 문제죠. '장고 끝에 악수'라는 표현,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닐까요?"

'교사 간 서열화' 폐해 뻔해... 피해는 아이들 몫

예비 교사인 그의 말마따나, '인턴 교사'들의 자질과 현장 적응력을 누가 평가하는지가 관건이다. 만약 현행 기간제 교사나 시간 강사처럼 학교장이 전권을 행사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안 봐도 비디오다. 고작 1년 단위 계약을 연장하기 위해 명절이면 선물 꾸러미를 들고 학교장 집 초인종을 누르는 기간제 교사들도 적지 않다. 하물며 '정식' 교사가 되느냐 여부가 걸린 상황일진대.

더욱이 같은 해 부임한 동기 교사라지만, 그들끼리의 협력이 애초 불가능하다는 점도 큰 문제다. 1년 뒤 둘 중 하나는 교단에 서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들은 서로 '네가 죽어야 내가 사는' 경쟁자일 수밖에 없다. 수업시간엔 협동 학습을 강조하면서, 동료 교사들끼리는 생존 경쟁을 벌여야 하는 모순된 처지를 아이들이라고 모를까.

우려되는 가장 큰 폐해는 교사 간 서열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교사란, 나이의 많고 적음은 있었을지언정, 교장과 교감, 그리고 평교사가 전부였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우선 평교사라고 다 같은 교사가 아니다. '정식'이라고 불리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갈리고, 정규직은 다시 수석교사와 일반교사, 그리고 시간제 교사로 나뉜다. 물론 비정규직이라고 다 같은 처지는 아니다. 기간제 교사와 시간강사로 구분되고, 이제는 '인턴 교사'라는 직함까지 생길 판이다.

아이들 입장에서야 다 같은 '선생님'이지만, 이렇듯 교사들마다 입장도 처지도 모두 다르다. 사정이 이럴진대, 동료 교사끼리 화합이 가당키나 한가. 교사들끼리 서로 서먹서먹하고 심지어 소 닭 보듯 하는 현실에서, 아이들 생활지도가 잘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는 건 연목구어다.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 몫이 될 수밖에 없다.

한 선배 교사는 '인턴 교사제'를 '듣보잡'이라며 이렇게 꼬집었다.

"딱 보면 몰라? 교사를 단순히 '일자리'로 보는 천박한 인식이 느껴지잖아. 비정규직이 넘쳐나는 일반 회사들처럼 학교도 그렇게 바뀌어가고 있는 징후야. 이젠 교육 현장도 정권의 요구에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고. 대구시 교육청이라면, 이태 전 아이들의 자살 사건을 예방한답시고 교실 창문마다 '방범창'을 설치한 곳이잖아. 쇠창살 설치하면 아이들이 뛰어내리지 못하고, 교사들끼리 피 터지게 경쟁시키면 자질이 향상된다는 '단순함'으로 무장된 사람들인데, 뭘 더 기대해? 이건 자질도 전문성도 뭣도 아니야."


태그:#인턴교사제, #대구광역시 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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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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