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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대기업에 다니던 A는 지친 몸과 마음을 그만 쉬게 해주고 싶다며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가족과 함께 고향인 경북 상주로 귀촌했다. 간간히 소식을 듣다가 그를 4년 만에 찾아갔다. 아이들에게 물려줄 생각으로 직접 설계했다는 아담한 집에서 그동안 고생한 이야기를 들으며 밤새 술잔을 기울였다. 고향에 내려온 첫해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내가 보내준 자연농법에 대한 <신비한 밭에서서>의 책처럼 무농약·무비료·무비닐의 농사에 도전했다가 처참하게 농사를 망쳤다는 것과 그 일로 한동안 동네에서 놀림을 받았다는 그간의 일들에 한바탕 크게 웃었지만 마음고생이 심했음을 알 수 있었다.

아침에 그의 부인이 맑은 물 한잔을 건넸다. 맹물인 줄 알고 마시려는데 화아한 향이 코끝으로 들어오고 달콤한 맛이 부드럽게 목으로 넘어갔다. 처음 맛보는 독특한 물 맛에 정신이 번쩍들었다.

"내가 농사지은 것으로 만든 생강효소야. 단감도 넣었는데 맛을 좀 평가 해줘."

첫 해 농사를 망치고 난 뒤에 정석으로 농사를 배우며 지역의 기후와 토질에 맞는 작물 몇개를 지었는데 생강이 잘 되었다고 한다. 때마침 옆집으로 귀촌한 발효음식 전문가에게 효소를 배우고 담궜다는 1년된 생강효소의 깊은 맛에 연거푸 두 잔을 더 마셨다. A는 지금 농작물을 효소로 가공하여 부가가치를 높이는 사업을 주민들과 준비하고 있다.

좌측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1.생강 싹 2.씨눈 3~4개를 남기고 자른 씨생강을 심고 흙을 3~4cm덮는다 3.한달이 넘어서야 나온 생강의 새싹 4.날이 더워지면서 잘 자라지만 풀관리에 신경써야 한다.
 좌측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1.생강 싹 2.씨눈 3~4개를 남기고 자른 씨생강을 심고 흙을 3~4cm덮는다 3.한달이 넘어서야 나온 생강의 새싹 4.날이 더워지면서 잘 자라지만 풀관리에 신경써야 한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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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려도 너무 느리게 자라서 답답해

생강의 생육기간은 6개월정도로 무척 긴 편이다. 특히 초반의 발육은 답답할 정도로 매우 느리다. 처음 생강을 키울 때는 한 달이 넘도록 싹이 나오지 않아서 흙을 걷어냈더니 이제 겨우 콩알만한 싹이 달려있었다. 그 후로도 한 달이 지나서야 겨우 파란싹이 고개를 내밀었다. 열대기후 작물답게 7월 중순부터 날이 뜨거워지자 거침없이 쭉쭉 자라는 폭풍성장이 있었지만 그 사이에 풀을 뽑아주는 김매기를 하느라 땡볕에 고생했던 기억이 특별하다.

"어머, 이거 뭐예요? 대나무처럼 생겼다. 열매도 없고 잎도 뻣뻣한데 뭘 먹는 거죠?"

농장의 내 밭을 둘러보는 사람마다 무엇이냐고 궁금해하는 생강을 처음 본다는 나이 지긋한 어른들도 많았다. 가까이에서 냄새를 맡아본 후에야 생강이란 것을 알고는 무척 신기해한다. 잎에서도 생강은 냄새를 풍기는데 잎을 갉아먹는 천적들이 근처에 얼씬도 안해서 곤충피해가 없다. 아주 드물게 잎을 갉아먹는 녀석이 찾아오지만 잎이 얼마나 뻣뻣한지 '사각사각' 갉아먹는 소리가 멀리서도 들릴 정도다.

잎은 끝이 뾰족하고 가늘며 좁아서 그늘을 넓게 만들지 못하는 탓에 풀들이 잘 자란다. 생강주변의 풀은 어린 싹으로 올라올 때부터 뽑아주고 기운을 꺽어놔야 생강이 자리를 잘 잡는다. 줄기가 한 뼘 정도 자라기 시작하면 뽑아낸 풀이나 볏짚·왕겨 등의 유기물을 흙 위에 두껍게 덮어주면 햇볕을 차단시켜 풀 자람을 막아주고 흙의 보습을 유지하여 생장에 도움을 준다.

좌측 상단 시계방향으로 1.대나무처럼 생긴 생강잎 2.더위가 물러가면서 잎이 누렇게 변한다 3.생강이 커지면서 흙이 갈라졌다 4. 수확한 생강
 좌측 상단 시계방향으로 1.대나무처럼 생긴 생강잎 2.더위가 물러가면서 잎이 누렇게 변한다 3.생강이 커지면서 흙이 갈라졌다 4. 수확한 생강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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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향으로 잡냄새도 없애고 건강에도 좋아

생강은 생장속도가 느리므로 감자처럼 처음부터 미리 싹을 틔운 후에 심는 것이 좋다. 싹을 틔우는 시간도 온도에 따라서 3~4주 정도 걸리므로 4월 중순경부터 싹 틔우기를 해서 절기상으로 소만(小滿)이 있는 5월 중순경에는 밭에 옮겨심도록 한다.

재래시장에 가면 싹을 틔운 씨생강을 구입할 수 있으며 인터넷에서도 재배농가나 판매상에서 구입이 가능하다. 3~4개 정도로 싹을 남기고 칼로 잘라낸 후, 그늘에서 잘린 상처부위가 아물도록 4~5일 기다렸다가 심을 수도 있고 전통방식으로 나무를 태운 재를 상처부위에 발라주면 소독이 된다. 물론 그냥 심기도 하고, 농사용 소독약에 담궜다가 심는 방법도 있다.

밭에 심기 1~2주 전에 퇴비를 뿌리고 흙을 갈아 엎어서 여러개를 한 줄로 심을 수 있는 평평한 이랑을 만들고 장마철에는 물빠짐이 좋도록 두둑을 높여주는 것이 좋다. 심는 간격은 25~30cm정도 하여 호미로 구덩이를 파고 씨생강을 넣은후 3~4cm정도 흙을 덮어준다.

몸집이 크고 색깔이 하얀 중국종자의 생강(왼쪽), 작고 가늘며 노랑색의 토종생강(오른쪽)
 몸집이 크고 색깔이 하얀 중국종자의 생강(왼쪽), 작고 가늘며 노랑색의 토종생강(오른쪽)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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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름 폭풍성장으로 몸집을 키우다가 더위가 물러가는 8월 말의 처서(處暑) 절기를 지나면서 녹색의 푸르름을 뽐내던 잎들은 점차 누렇게 변하기 시작한다. 10월 중순경부터 찬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는 11월 초에 수확을 하지만 김장철에 맞춰서 조금 더 늦게 수확을 해도 된다. 올해는 내년에 종자로 쓸 생강만 오래 보관하기 위해 서리 피해가 없도록 10월 말쯤에 캐내고, 찬서리에 영하로 떨어져 살얼음까지 얼었던 11월 말의 김장 때에 남은 생강을 수확했다.

갓 캐낸 생강향은 무척 진하고 곱다. 특유의 향으로 잡냄새를 없애주고 발효가 되면 건강에 좋을 뿐만 아니라 얇게 썰어서 효소를 담거나 생강차를 만들어서 마시면 감기예방과 면역력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어릴적 할머니는 기침을 하는 손자에게 항아리에 숙성시킨 생강즙을 따뜻한 물에 타서 내밀었다. 콧속과 목을 알싸하게 자극하는 그 맛에 진저리를 치면서도 마셨던 것은 할머니의 손에서 빛나고 있는 하얀 박하사탕 때문이었다.


태그:#생강, #효소, #박하사탕, #소만,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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