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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나다를 출발해서 바로셀로나행 야간 침대열차에 몸을 싣는다. 11시간의 긴 이동이다. 바르셀로나 입성이다. 열차식당에 들러 커피 한잔을 놓고 창밖을 내다본다. 중국인의 웃음소리가 옆좌석에 바로 들려온다. 이제 유럽도 중국인들의 대규모 관광시장이 되고 있다. 어디를 가나 동양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아시아의 소득수준이 향상되었고 이를 통해 나름의 질적 생활을 향유하고 있다는 반증이라 여겨진다. 문득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스페인은 남성에겐 투우, 여성에겐 플라멩코의 나라다. 남녀간의 극단적 성격을 구분짓는 상징적인 대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피를 토하듯이 강렬한 열정을 둘다 강요하고 있다. 투우를 통해 그 속으로 몰입하고 플라멩코를 통해 그 열정을 발산하고 있다. 그 정열의 광기너머로 스페인은 모든 대상에 대한 관조와 이해를 희화화시키고 있는 감성적인 돈키호테와 이성적인 샨초가 또한 살고 있다. 

아침에는 비가 온 모양이다. 영국의 생활 속에서 흔히 경험했던…. 새벽 빗줄기는 왠지 아침을 신선하고 맑고 활기차게 만드는 그 무엇을 지닌 것만 같다. 비개인 카탈루니아 광장은 아침의 활력이 충만하다. 유럽의 다른 도시와는 달리 활기가 넘친다. 햇살에 모든 것이 반짝거린다. 심지어 대형건물위의 삼성 입간판까지 말이다. 기념동상이 있고, 비둘기들이 있으며, 청소부들의 아침 물청소가 있고, 나무들이 가득하다. 빨강버스의 동화적 관광분위기와 노랑과 검은색을 띈 스페인 택시가 줄지어 있고 그리고는 해변도시답게 신선한 갯내음과 함께 바람이 분다.

분수대와 공원이다. 공항버스의 출발과 종점이어서 시내를 처음들어오는 사람들이 마주치는 바르셀로나의 도심이다. 번화하고 활기롭다..
▲ 바르셀로나 중심가 분수대와 공원이다. 공항버스의 출발과 종점이어서 시내를 처음들어오는 사람들이 마주치는 바르셀로나의 도심이다. 번화하고 활기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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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시 바르셀로나는 미소의 도시같이 모두가 친절하다. 가방을 끌고 거리를 배회하는 관광객들의 기대 찬 눈동자와 나지막하게 내뱉는 탄성소리와 약간은 떨리는 듯한 몸동작까지 바르셀로나는 환영한다. 유럽의 도시에서 보는 중년의 부부들의 팔짱낀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평생을 반려로 살아온 부부의 정은 독신들은 결코 경험하지 못했을 진정한 사랑과 포용 그리고 모든 인생의 희로애락을 함께 했을 동지적 유대감이기도 하다.

바로셀로나는 환상이다. 현실과 비현실의 중간지점에서 도시는 온통 가우디로 열광하고 있다. 어느 천재건축가의 기발한 조형미술의 극치가 오늘의 바르셀로나를 국제적인 건축의 메카로 자리매김시켰다. 마치 동굴의 입구를 걸어 나오는 꿈의 도보여행을 연상하게 한다. 그 자연석의 투박한 이미지와 미로의 유연한 곡선이 서로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볼수록 그것은 건축이라기보다 형언할 수 없는 괴물 같은 형상으로 다가온다.

가우디의 건축은 현대적 시멘트건축의 차가운 직선적 엄격함을 곡선으로 변형한 느낌이 든다. 한편으로는 장송곡이 흘러나오고 죽음의 안식처 같은 섬뜩함을 느끼게도 한다. 어딘지 기존의 건물과 건축에 익숙한 우리들에게는 썩 다가오지 않는 그러한 분위기와 외관이 낯설기만 하다.

하지만 단순한 곡선처리의 발상이 그토록 많은 이들에게 감동적인 역사적 현장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특히 내부와 지붕에 이르기까지 온통 건물이 던지는 생경한 이미지는 보는 이들의 가슴 속에 감탄과 신기함을 선사하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그라시아 거리의 카사밀라. 그 담대한 건축미에 대해 일반이 가지는 인상은 시각적 구도가  발산하는 나름의 의미로 다가올 것 같다.  

주거공간을 통한 미학적 도시개발. 이것이 바로셀로나의 현주소인 것은 아닌지. 카탈로니아의 본거지로 아직도 스페인어와 카탈로니아어가 공식용어라고 한다. 귀국길 비행기 옆 좌석의 바로셀로나 대학의 사진학과 졸업생은 카메룬을 3개월 졸업작품을 하려간다고 했다. 그녀는 무척 친근감있고 우호적이었다. 그녀가 그려준 스페인의 지역분할은 한국의 지역구도를 연상케 했다. 또한 향후 소득수준이 높은 북부지역이 독립을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할 예정이라고 하니, 스페인도 결코 편하지 않은 국가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도시는 단순한 주택까지도 실용성과 더불어 예술적 이미지를 지향하고 있다. 어딘지 어수선한 느낌을 주는 듯하지만, 도시속에 원시적 자연미와 더불어 아름다움을 던져주고 있다..
▲ 바르셀로나의 주택 도시는 단순한 주택까지도 실용성과 더불어 예술적 이미지를 지향하고 있다. 어딘지 어수선한 느낌을 주는 듯하지만, 도시속에 원시적 자연미와 더불어 아름다움을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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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어와 스페인어에서 '카사(casa)'는 집을 의미한다. 바르셀로나는 카사의 미학적 주거형태를 최대한 추구하는 도시다. 가우디는 건물에서 특히 주택은 주거공간으로서의 실용성과 때로는 웅장함, 심지어 자연과의 조화를 통한 친숙함을 갖추려고 까지 노력한 것 같다. 특히 그와 친분이 있었던 사람들의 주택을 가우디는 항상 최선의 열정으로 만들어주었다. 기이한 형태의 굴뚝과 탑들, 구엘공원의 파도모양의 통로를 지날 때는 마치 현기증을 일으킬 정도의 감각적 불균형에 사로잡히는 흥분이 있다. 마치 융프라우의 3454m의 정상을 협궤열차로 오르면 마주하는 전시공간과 휴식공간을 이동하는 과정에서 느낀, 산소부족의 어지러움 같기도 했다. 

가우디의 도시 바로셀로나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사그라나 파밀리아 성당이다. 아직도 공사 중이라는 사실에서 보듯 끊임없이 가우디의 건축정신을 이어가는 역사의 현장임을 실감케 한다. 지하에 그의 묘가 있다는 사실에서도 진정 가우디의 혼이 깃든 건물임을 실감케 있다. 건축의 양식 또한 시초에 네오양식에서부터 초현실주의까지 다양한 변화를 거쳐 오고 있다. 아직 100년이란 세월이 남아있다니 200년간에 걸친, 몽환적인 가우디의 건축의 결정체가 어떠할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되기도 한다.

현대화의 차가운 도시생활에서, 따뜻한 인간의 세상을 향해 내던지는 메시지를 담으려는 시도에서 출발한 성가족성당은 신의 이름으로 오늘도 건축의 과정에 있다..
▲ 사그라다 파밀리아 (La Sagrada Familia ) 현대화의 차가운 도시생활에서, 따뜻한 인간의 세상을 향해 내던지는 메시지를 담으려는 시도에서 출발한 성가족성당은 신의 이름으로 오늘도 건축의 과정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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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디의 사그라나 파밀리아 성당이 없었다면 바로셀로나는 어떠했을까. 그는 자연을 통해 도시건축을 형상화하려 했다. 동굴의 종유석을 통해 성당을 자연과 결합하는 형태로 아직도 짓고 있다. 그속에는 신의 하늘과 인간의 육지가 들어있다. 중간에 아우름을 완성한다면 그것은 완전한 성당이 될 것이다. 석조의 성당은 그 자체로 거대한 자연 동굴이었다. 도시속의 자연의 모습을 재현하려는 그의 시도는 돌과 동굴과 해바라기를 통해 신과 조금이라도 가까이 하려는 인간의 의지를 고층으로 완결하려 했다. 그것은 곧 신, 인간 그리고 자연의 일체적 융합을 시도하는 것이었다. 마치 바로셀로나의 아이콘 같이 오늘도 육중한 크레인의 작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바르셀로나는 피카소의 추상화같이도 신비와 상상의 나래를 한껏 펼치고 있는 스페인의 미술적 걸작이었다. 상상과 형이상학적 관념이 실체화하는 곳에서 바르셀로나는 무엇인가 꿈틀거리는 내적 열정으로 활화하고 있는 현재 진행형이었다. 권위와 절대 그리고 존엄이 아닌 햇살모양의 해바라기는 염원과 평화 그리고 사랑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이었다. 신에 대한 절대적 간구와 기다림이 차가운 석조의 조형물이 공존하는 곳이었다. 누구인가를 향해 간구할 수 있는 의지를 품은 자는 늘 그렇게 순수하게 절대자에게 다가가는 순간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순간 종소리가 음악같이 들린다. 괴물 같은 동굴의 성당이 가깝게 느껴진다.

공원의 분수대가 춤을 춘다. 물을 내뿜는 것 이상의 시각적 미학을 창출하고 있다. 바람이 불어오면 분수는 노래하는 무용수가 되기도 한다. 대도시의 면모가 줄줄이 보이고 어딘지 귀한 티가 배어있는 청결한 도시이다. 동시에, 인공적 건축으로 인한 따스함이 결여된 듯한 빈약함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카달로니아 광장의 고급백화점의 9층 레스토랑은 가난한 스패니쉬 이지만 역시 백인의식의 실용성과 평등이 자리한다. 약간 깔끔하게 꾸미고 고급주문을 받는 창가식당과 단지 간단한 음식의 주문을 받는 실내공간, 그리고 창과실내를 함께하지만 카페테리아를 두고 있다.

바르셀로나의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도시의 오후는 비개인 날의 기분 좋은 상쾌함과 평범하고 정감어린 일상적 생활로 채워지고 있다. 인생은 그런 것이 아닐까 아마도. 그렇게 거창하게 나서지도 않고 하루의 일상에 충실하면서 가족과 이웃과 연인과 친구가 함께하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사랑으로 채워가는 그런 소박한 시간적 공간이 아닐까.    

바르셀로나는 관광도시이다. 어디를 가나 유럽은 독특한 관광자원을 지닌 도시와 유산을 가지고 있다.
▲ 바르셀로나의 거리 바르셀로나는 관광도시이다. 어디를 가나 유럽은 독특한 관광자원을 지닌 도시와 유산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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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는 바르셀로나는 야누스의 이중성에 흔들리는 도시같기만 하다. 도시를 채우고 있는 조형물과 주거공간이 인위적인 동시에 계획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도시. 극도로 짜여지고 빈틈 없는 도시화와 짜증이 날 정도로 인간미가 실종된 듯 한 황폐함…. 도시화의 잔재같이 피폐하고 무뎌져버린 현장 같다. 그리나 어느 순간, 귀족적 품위를 느끼는 것은 사실이다. 삶의 질이 있을 듯도 하다. 섬세하고 우아한 세련미를 눈여겨 볼 만도 하다. 하지만 스페인은 어느 잃어버린 왕국의 녹슨 철문의 황량함 같이 이제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지만 그속에서 자연과의 친화를 강조하려는 시도나 모습은 여러 군데서 발견할 수 있다. 나무가 있는 도시, 야자수가 남국의 향수를 자극하는 굵고 곧은 강렬함으로 우뚝 솟아 있다. 가우디의 자연친화적 건축에 대한 시도와 노력들도 한몫하고 있다. 또한 전체적인 분위기가 근대적 도시의 추억어린 낭만의 멋을 간직하고 있다. 유럽도시가 지니는 흑백사진 속의 아련한 회상의 간절함. 또한 현대빌딩은 현대대로 나름의 외관에 이미지를 구현하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건축에다 시대를 반영하려는 것이다. 현대적 창의성과 추상적 시도, 그것은 발상의 전환이었다. 한 사람의 영웅이, 한 사람의 발명가가 그리고 한 사람의 건축가가 세상을 바꾸었다.

수백 년을 간직한 카달로니아의 정체성, 그 건너편에 몬주익의 언덕이 있다. 지금은 이전 보다 예술과 문화공간과 체육시설로 가꾸고 있다. 다음으로 바르셀로나 항만. 언젠가 로마에서 이곳까지 크루즈유람선을 타고 하선한 곳이다. 이제는 이태리와 북아프리카를 잇는 유람선노선이 발달되어 있고 상업항으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다. 항만의 컨테이너 박스들이 즐비하고, 멀리는 콜럼버스의 동상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항만을 지키고 있다.

바로셀로나는 스페인의 주요한 항만이다. 무역 물동량의 움직임과 더불어 크루즈항으로도 알려져 있다. 또한 친수항만이라고 할 정도로 항만주변이 시민들 편안한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여유로운 공간들이 있다.
▲ 바르셀로나 항만 바로셀로나는 스페인의 주요한 항만이다. 무역 물동량의 움직임과 더불어 크루즈항으로도 알려져 있다. 또한 친수항만이라고 할 정도로 항만주변이 시민들 편안한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여유로운 공간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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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13년 2월에 여행한, 유럽의 도시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김진환 기자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무역학과 교수입니다



태그:#스페인 , #바르셀로나,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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