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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환 목사 서거 20주기를 앞두고 만난 영화배우 문성근씨는 통일 의제마저 보수진영에 빼앗기는 현실을 개탄했다.
 문익환 목사 서거 20주기를 앞두고 만난 영화배우 문성근씨는 통일 의제마저 보수진영에 빼앗기는 현실을 개탄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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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가 올해 왜 통일을 의제로 내걸었을까. 이제 통일 의제마저 보수에 넘겨주는 건가. 2012년 총대선 때 경제민주화와 복지 의제를 내주더니 이제는 통일 의제마저 빼앗기나 싶다. 이 판국에 야권이 갈라져 그래 한판 붙자, 치고 박으면 되는 건지 정말 모르겠다."

통일 할아버지 문익환 목사 서거 20주기를 하루 앞둔 16일 오전 서울 마포의 한 사무실에서 그의 막내아들 영화배우 문성근씨는 창문 너머 먼 산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담뱃재를 툭툭 털던 그는 "도대체 더 얼마나 내려가야 하나"라며 "도무지 해도 되는 게 없으니 답답한 마음 뿐"이라고 말했다. 2012년 총대선 실패 이후 이른바 '학습된 무기력증'에 빠져 좀체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야권에 대고 한바탕 고함이라도 치고 싶은듯 보였다.

문익환 목사 20주기를 맞아 찾아간 기자에게 그는 대뜸 "1987년 노태우의 6·29 선언이 어떻게 나왔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1987년 대선에서 양김(YS-DJ) 분열이 가능하다고 자신한 상태였기 때문에 나온 선언"이라며 "보수는 늘 남북관계를 선거 때마다 이용해왔는데 역시 이번에도 통일의제를 갖고 나와서 써먹을 모양이다, 그것도 현재 지금 우리가 분열돼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것이 요즘 내 생각의 결론"이라고 말했다.

문성근씨는 "지금까지 우리는 단계적 통일론을 주장했다, 결국 통일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니 점차 통합의 정도를 높여가자고 말했는데 그동안 새누리당과 <조선일보>는 통일주장에 대해 늘 '종북'과 '퍼주기'라고 공격만 하더니 최근 <조선일보>의 논조가 달라졌다"고 지적했다.

"통일은 대박? 그럼 10·4 선언 이행부터"

그는 "통일은 대박이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언급도 있었지만 결국 말을 뒤집어보면 10·4 선언을 실천하겠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며 "북한과 교류협력을 강화해 유라시아 철도를 연결하고 물류중심국가가 되자는 것, 또 남쪽의 기술력과 북쪽의 노동력을 결합해 새로운 경제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북한에 SOC를 대폭 투자하자는 것, 결국 이런 것에 우리가 손대지 않는다면 북한은 중국의 속국이 될 것이라는 전망들, 이런 것들이 다 10·4 선언의 실천이 아니고 무엇인가"라고 반문했다. 10·4선언의 실천이 곧 통일은 대박으로 이어지는 것이라는 부연도 곁들였다.

문성근씨는 "한국사회의 노동집약적 산업은 다 끝났다, 그래서 중국으로 동남아로 전부 나갔던 것 아닌가"라며 "개성공단이 어떻게 재개될 수 있었나, 입주업체의 아우성 때문이었다, 실제 1년에 1억 달러의 임금을 주고 5억 달러어치의 물건을 만들어온다면 또 그걸 대기업 납품가로 하면 35억 달러에 시판한다는데 이건 퍼주기가 아니라 오히려 퍼오기"라며 "민주정부 10년간의 남북관계는 퍼주기가 아니라 퍼오기였는데 그걸 다 알면서도 종북, 퍼주기 논쟁으로 민주진보의 주장을 무력화했던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일보>가 통일논의를 앞당기려고 한다는 데 높은 점수를 주었다. 그는 "지금 북한에 SOC 투자를 하면 50년간 한국은 노 난다"며 "우리 주도로 아시아개발은행(ADB)에 '펀드 투 노스 코리아'를 만들고 원하는 국가(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 등) 다 참여하도록 해서 프로젝트 파이낸싱 하자고 하면 다들 할 것이다, 경의선 고속화 작업부터 손대면 이건 정말 노 나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통일도 통일이지만 교류협력만으로도 충분히 남북경제에 시너지가 난다는 얘기다.

특히 문씨는 '동양 최대 철광 무산철광'을 예로 들면서 "현재 북한에 도로와 철도, 전기가 없어서 다 못 캐 그렇지 우리가 힘을 보태면 더 개발이 가능한 게 무산철광"이라며 "이런 북한의 자원들에 대해 삼성도 전경련도 <조선일보>도 알기 때문에 보수가 통일의제를 진보로부터 빼앗아 의제설정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뭐하고 있냐"고.

문씨는 "외교적으로 우리는 중국과 일본, 미국 사이에서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며 "대표적인 게 미국이 일본의 집단자위권을 인정한 것이다, 중국의 환구시보는 우리의 외교에 대해 이렇게 지적한 바 있는데, 경제는 중국과 하면서 군사외교는 미국과 일본과 하나, 손봐줘야 한다, 이런 말을 했다, 실제 중국이 한국상품 한달만 통관을 늦추면 한국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한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제적으로도 또 외교적으로도 난국인데 도대체 그럼 그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라며 "북을 적대시하니까 그런 것"이라고 자문자답 했다. 문씨는 "결과적으로 우리가 주도적으로 남북관계를 풀지 않고는 방법이 없는 것"이라며 "역시 방법은 민주당이 국민 전체의 마음을 묶어낼 수 있는 시민참여형 정당모델을 만들고 혁신하면서 의제설정에 나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씨는 "민주당이 현재 자꾸 퇴보해서 문제인데 통일 의제마저 보수진영에 빼앗기면 결국 '<조선일보>판 제2의 6·29'가 나올 수 있다"며 "그걸 그냥 보고 있어야 하나, 정말 답답한 노릇"이라고 개탄했다.

그는 아버지 문익환 목사에 대해서도 평가했다. 평소 아버지를 객관화 해 '문목'이라 부르는 그는 "남북분단 이후 가장 획기적인 변화는 1989년 문목의 방북이었다"며 "4·2 공동성명이 완벽한 전환점이 됐는데 이때 문목이 제기했던 핵심이슈는 남북 교차승인과 UN 동시가입이었고 그것은 실제 현실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아버지 '문목' 살아 계셨다면 노동운동 했을 것"

평소 아버지를 객관화 해 '문목'이라 부르는 문성근씨는 "남북분단 이후 가장 획기적인 변화는 1989년 문목의 방북이었다"며 "4·2 공동성명이 완벽한 전환점이 됐는데 이때 문목이 제기했던 핵심이슈는 남북 교차승인과 UN 동시가입이었고 그것은 실제 현실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평소 아버지를 객관화 해 '문목'이라 부르는 문성근씨는 "남북분단 이후 가장 획기적인 변화는 1989년 문목의 방북이었다"며 "4·2 공동성명이 완벽한 전환점이 됐는데 이때 문목이 제기했던 핵심이슈는 남북 교차승인과 UN 동시가입이었고 그것은 실제 현실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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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89년 당시 문익환 목사의 방북 한 토막을 전하기도 했다.

"당시 문목은 평양에서 김일성 주석과 만나 '지금도 고려연방제를 주장하느냐'고 물었다. 김 주석이 그렇다고 하니까, 문목은 '그건 부지 하세월이다. 우리는 이념으로 분단돼 전쟁까지 치른 나라인데 어떻게 외교와 국방을 합치나'라며 '그 이전에 경제문화교류부터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그때 문목이 강조했던 게 북쪽의 인민, 남쪽의 민중을 믿고 가자는 거였다. 남북의 민중과 인민에게 통일에 대한 열망이 생기면 점차 높은 단위의 합의까지도 갈 수 있다면서 차츰차츰 통일의 단계를 높여가자고 한다.

실제 김일성 주석은 1990년 신년사에서 남쪽과 교류협력을 해나갈 의사가 있다고 공식으로 발표했다. 그렇게 11년이 흐른 뒤 2000년 6·15 선언이 나왔다. 그러니까 지금의 남북관계는 1989년 4·2 남북공동성명에서 출발해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2000년 6·15선언, 2006년 10·4 선언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명박정부에서 박근혜정부로 오면서 중단된 상태지만."

또한 문익환 목사가 서둘렀던 언어공동체 복원사업에 대해서도 말했다. 그는 "문목은 남북이 너무 오랫동안 떨어져 이질화 되니 제일 심각한 문제는 언어라고 생각했다"며 "그래서 언어에 대한 통합논의를 준비해야 한다면서 남북공동국어사전을 만들자고 했고, 남북은 이에 합의했다, 그게 지금 진행 중인 겨레말큰사전 사업인데 정권이 바뀌면 도중에 사업이 중단될까봐 특별법까지 만들었다, 결국 이명박 전 대통령이 예산지원을 끊었다"고 전했다.

아버지 문익환 목사에 대해서는 '꿈을 꾸는 사람'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그는 "문목은 꿈을 꾸는 사람이었다, 미래에 이뤄져야 할 일들을 미리 당겨온 사람이다, 그리고 민중을 믿었다, 통일방안을 얘기할 때도 김일성 주석에게 그걸 말한 것이다, 늘 말했다, 민주화와 통일은 같은 일이다, 민주화는 민중의 부활이요 통일은 민족의 부활이다, 그랬다"고 회고했다.

그는 "MB시절 문목 말대로 민주화와 통일은 같이 간다는 걸 절감했다"며 "만약 문목이 살아 계셨다면 신자유주의에 맞서 노동운동을 했을지 모른다"고도 전했다.

그 이유는 "DJ부터 노무현까지 민주정부는 맨날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이라고 했지만 민주정부 10년간 비정규직이 폭발했고 서민의 삶이 고통스러워진 게 사실이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나 따지기보다는 정치권 너흰 다 똑같아 하면서 고개를 돌린다, 박정희가 보릿고개를 넘게 해줬다는 인식이 너무 강하니까 박정희는 서민을 살게 해준 대통령으로 민주정부 10년은 서민을 어렵게 만든 대통령들로 기억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한길, 안철수, 문재인 머리 맞대라"

그럼에도 문씨는 "희망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며 "최근 역대 대통령 지지율 조사에서 처음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넘어섰다, 김대중, 노무현 합쳐 48%가 됐고 박정희가 46%였다, 분열만 안 되면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민주진보진영은 1987년 YS와 DJ 때부터 또 지금까지 분열이 문제"라며 "아무것도 아닌 일로 감정다툼을 해서야 되겠나, 50년 정치한 사람들도 사소한 오해 때문에 앙심 품고 일을 그르친다, 민족사가 있는데 역사가 있는데 이래서야 되겠나"라고 개탄했다.

그는 "그래서 제안하고 싶은 게 있다"며 "김한길, 안철수, 문재인 셋이 만나 머리를 맞대라, 지난 대선에서 야권에 48%나 지지를 보낸 국민들 보기에 창피하지 않나,<조선일보>가 통일 어젠다까지 빼앗아 가는 이 마당에 뭐하고 있나 묻고 싶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민주진보진영의 정치지도자들은 반드시 국민들에게 상당 부분 길게 집권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예상을 심어줘야 한다"며 "제발 이 분열을 끝내고 시민참여형으로 결속하는  정당으로 가자, 김한길, 안철수, 문재인이 만나서 야권재편의 큰 그림을 잡아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나는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 대박선언'을 환영한다"며 "그러니 그동안 퍼주기가 욕했던 것 사과하고 종북놀이 중단 선언하시라, 그리고 이제 남북이 서로 마음 합쳐 점진적으로 통합하자, 심지어 <조선일보>도 민주세력도 모두 동의하니 그 길로 가자"고 제안했다.

끝으로 그는 한 가지 아쉬움을 토로하고 싶다고 했다. 문씨는 "민주진보진영이 통일의제에 대해 아주 공격적으로 나가야 할 때에 민주당이 왜 북한인권법을 꺼내는지 정말 안타깝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말하고 <조선일보>가 통일은 점진적 통합과정이어야 한다고 하는, 이 마당에 왜 북한인권법인가, 남북기본합의서에 따르면 상호체제 존중과 비방금지는 기본이다, 서로 신뢰하지 못하고 상호비방하면 점진적 통합과정을 이룰 수 있겠나"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태그:#문익환 목사, #문성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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