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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 1000조 원' 시대입니다. 등록금 때문에, 결혼자금 때문에, 내 집 마련 때문에, 사업자금 때문에…. 빚을 지게 되는 까닭도 각양각색이겠죠. 빚이 많은 사람만 힘든 건 아닙니다. '빚 권하는 사회'에서 빚 없이 살려는 사람도 참 힘듭니다. 이래저래 빚 때문에 달라지는 우리 삶의 모습, 20대·30대·40대·50대 시민기자의 이야기로 직접 한번 들여다봅니다. [편집자말]
너무나 당연해 하나마나한 얘기겠지만, 한 사람의 지출내역을 보면 그 사람의 욕망을 읽어낼 수 있다. 피아노를 산 사람은 음악을 좋아할 테고, 책을 많이 산 사람은 지적 욕구가 강할 것이며, 핸드백을 많이 산다면 겉모습을 가꾸는 데에 신경을 쓰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빚'은 이런 단순한 지출내역과는 차원이 다르다. '빚'은 인생에서 상당 기간의 미래를 저당 잡혀서 현재의 소비로 바꾸는 행위이다.

세계 역사에서 부와 권력,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틀어쥔 사람을 꼽으라면 분명 진시황도 들어갈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위세 당당했던 진시황이 그렇게 찾아 헤맸던 것이 무엇인가? 바로 불로초다. 그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도 지나가는 '시간'을 부여잡으려고 발버둥 친 것 아니겠는가.

내가 살아 숨 쉬고 있는 '시간'만큼 소중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게 소중한 내 미래의 시간 일부를 저당 잡혀서라도 실현하고 싶은 소비 행위라면 단순히 그 사람의 '욕망'이라는 단어 정도로는 부족함이 있다. 그런 이유로 나는 '빚'의 사용처를 통해 한 사람의 인생관과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를 읽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금융감독원이 2013년 6월 30일에 박원석 의원(정의당)에게 제출한 주택담보대출 현황에 따르면, 2012년 말 기준으로 주택담보대출 총액은 546조8000억 원이라고 한다. 특히 연령대별로 따졌을 때 40대의 대출비중이 가장 높아 전체 대출액의 3분의 1이 넘는 188조 원(34.4%)에 이를 정도라고 한다. 한편 2013년 12월 9일 경찰청이 발표한 '대출사기 피해분석 결과'에 따르면 작년 8~11월 발생한 대출사기 4476건 중 40대 피해자가 1570건(35.1%)으로 가장 많았다고 한다. 40대 대다수가 주택담보대출금을 갚느라 허덕이고 있으며, 그 와중에 대출사기까지 제일 많이 당한다는 얘기 되겠다.

나는 주택과 관련한 '빚'은 없다. 서울시 금천구 독산동이 침수된다면 아마도 우리 집이 최후에 침수될 것이다. 그러니깐 산꼭대기 빌라 건물 최상층인 4층에서 산다는 얘기다, 그것도 '전세'로. 소유주가 타인이라서 '우리 집'이라고 말할 때마다 약간 소심하게 머뭇거리게 된다. 지구의 중력을 한참 이겨내야 도착할 수 있는 그곳은 겨울이면 사람 사는 집이 이렇게도 추울 수 있다는 것을 우리 네 식구에게 일깨워준다. 그래도 살아온 세월만큼 정이 들어 그런지 마음은 편하다.

우리 가족은 집을 소유해야 한다는 강박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벗어났다. 지금의 수입으로는 서울에서 집을 산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체념도 없다고는 못하겠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경기도 포천시에 소재한 A호텔에서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주택담보대출 제일 많이 내는 40대... 난 그런 빚은 없다

청담동 '스시○'의 회, 보기만 해도 입에 군침이 돈다.
 청담동 '스시○'의 회, 보기만 해도 입에 군침이 돈다.
ⓒ 임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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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는 둘 다 전업 작가다. 그래서 남들이 한창 일하는 평일에 작당해서 어딘가를 갈 수 있다. 때는 2011년 5월 2일 월요일, 당시 우리 가족은 아내가 결혼할 때 가져온 칼로스 승용차를 타고 경기도 포천시의 A호텔로 갔다. 평일에 여행 비수기였기 때문에 조식 포함 1박에 10만 원이 살짝 넘는 부담스럽지 않은 패키지 가격. 아내가 '욕조 있는 집'에 살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 욕조가 있는 A호텔에 가게 된 것이다.

도착하고서 알았다, 그날 호텔 건물 전체에 투숙객이 우리밖에는 없다는 사실. 그야말로 하루 전세 낸 '우리 집'이었다. 솔직히 그렇지 않은가. 독산동의 빌라 4층이 막말로 우리 소유인가? 아니다. 전세다. 그렇다면 포천시 A호텔은 우리 소유인가? 아니다. 하루 전세다. 그러니 반대로 생각해보면 전세 기간만 다를 뿐 둘 다 '우리 집'인 셈이 되는 것 아닌가! 그때 깨달음을 얻었다. 세상천지가 다 내 집이라는 사실을.

아내는 313호 객실 욕조에서 나올 줄 모르는 상황인데, 나는 침대에 누워 이 위대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경험하고 있었다. 만약 내가 A호텔을 소유했다면? 악몽이다. 전기요금, 수도요금, 가스비 등 관리비 일체를 내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내가 소유하지 않으니 다른 누군가가 전기요금, 수도요금, 가스비 등을 부담하며 2011년 5월 2일을 위해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이 이렇게 바뀌니 무리하게 집 사는데 '빚'을 낼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우리 가족은 도대체 어디에다 '빚'을 낼까? 지난 1월 3일 금요일 우리 부부는 돌도 안 된 둘째를 데리고(첫째는 어린이집에 다닌다) 서울 청담동에 소재한 일식당에 갔다. 스시의 달인 안효주 조리장이 운영하는 곳으로, 공신력 있는 레스토랑 평가서 '블루 리본 서베이'에 "극상의 스시를 맛볼 수 있다"고 나와 있다. 리본이 무려 최고를 뜻하는 세 개나 달려 있는 곳. 저녁 식사 가격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에 우리는 전업 작가의 장점을 살려 상대적으로 가격이 많이 저렴한 평일 점심을 예약했다.

맛이야 리본이 세 개인데 말해서 뭣하리. 혀끝의 행복한 기운이 채 가시기 전에 결제를 하는데, 내가 일부러 아내보다 좀 저렴한 메뉴를 시켰음에도 가격이 무려 13만7500원이 나왔다. 그렇다. 우리는 바로 이 순간에 '빚'을 낸다. 카드 3개월 할부! 다행히 내가 보유한 카드는 10년이 훨씬 넘게 꾸준히 실적을 올린 덕분에 모든 가맹점에서 3개월까지는 무이자로 할부가 가능하다. 우리 가족은 미래를 담보 잡혀서라도 맛있는 것을 먹고 싶은 것이다.

'우리 집'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 생각의 전환!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트 생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아내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트 생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아내
ⓒ 임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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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 가족이 좀 더 큰 '빚'을 내는 것이 있다. 이게 진짜다. 바로 해외여행이다. 역시 '빚'은 카드 할부로 낸다. 카드 할부로 떠난 첫 번째 여행지는 오스트리아와 체코였다. 자초지종은 이렇다. 때는 2009년, 언론사 기자였던 아내가 다니던 신문사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를 선언하면서 나에게 통보했다. 퇴직금을 가지고 해외여행을 가겠다고. 그래서 나는 단서조항을 달았다. 나를 데려가면 동의하겠다고. 그래서 함께 오스트리아와 체코에 가기로 결정했는데 빠듯한 기자 월급 덕택에 안 그래도 적은 퇴직금의 절반이 여행경비로 날아가게 생겼다.

퇴직금도 생활비로 이용해야 하는 헉헉대는 살림살이인데 그렇게 큰 목돈이 당장 없어지면 가계에 타격이 크기 때문에, 결국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6개월 카드 할부 결제를 한 것이다. 여행 어땠냐고? 말해 뭣하랴. 촌놈이 배꼽 떨어지고 처음 유럽 가봤는데 그저 입만 찢어지고 돌아오기 싫을 뿐. 그 뒤로 우리는 좀 무리를 해서라도 카드 할부로 해외여행을 다니게 됐다. 왜냐고? 여행을 하는 '시간'이 너무나 즐겁고 행복했기 때문이다.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한 기분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이후로는 저렴한 곳으로 다니긴 했지만.

이쯤에서 지난 2013년 7월 <세계일보>에 난 기사를 소개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기사 내용의 일부를 옮긴다.

국내 부유층 소비자들은 명품 브랜드나 보석 등의 사치품보다 저녁외출·가족여행·고급외식 등 직접 '경험'하는 항목 지출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9일 비자코리아의 '2013 비자 부유층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내 부유층 중 지난해 '야간·저녁외출'에 지출했다는 비율은 91%였고, 향후 1년간 지출 계획이 있다는 비율도 38%에 달했다. 다음으로 '가족휴가'(82%), '좋은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67%), '자선단체 기부'(55%) 등이 뒤를 이었다. '명품 디자이너 의류 구입'(46%), '보석류 구입'(30%) 등 사치품에 돈을 썼다는 비율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부유층이란 18~55세 신용카드 소지자 중 소득 분포 상위 20%에 속하는 이들을 말한다.

정말 이 기사를 읽고 얼마나 흐뭇했는지 모른다. 우리 가족은 '카드빚'을 내서 해외여행과 고급외식을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유층들은 저녁에 외출하는데 우리는 그들이 열심히 일하는 평일 대낮에 외출한다. 삶의 질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우리 쪽이 좀 더 높다는 얘기 아닌가.

앞서 나는 '빚'의 사용처를 통해 한 사람의 인생관과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를 읽어낼 수 있다고 했다. 서울 금천구 독산동 침수 시 제일 마지막에 침수되고, 욕조가 없어 아내가 불평을 터트렸던 그곳에서 사는 우리는 사실 부유층이었던 것이다. <세계일보> 기사를 읽은 순간 3개월 무이자 제공하는 '카드빚'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고맙다! 앞으로도 자주 애용할게. 물론 과학적으로 계산해서 갚을 수 있는 만큼만 쓸 테지만 말이야.


태그:#빚나는 인생, #부채, #카드빚, #카드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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