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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에서 산천어축제를 빛낸 사람들 초청행사가 열렸다.
 화천에서 산천어축제를 빛낸 사람들 초청행사가 열렸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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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산천어축제 홍보대사로 임명되었던 때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어요."

2014 화천 산천어축제장에서 만난 짧은 머리의 양철훈군은 멋진 군인이 되어 있었다.

지난 1월 13일, 산천어축제가 열리는 화천에서 흥미로운 행사가 열렸다. 민간인 홍보대사 및 MOU체결 기관단체 초청행사. 2003년에 시작한 산천어축제가 대한민국 대표축제가 되기까지 기여한 단체(사람)들에 대한 감사 이벤트다.

일반적으로 축제 또는 행사 '홍보대사'는 연예인이나 사회적 저명인사를 위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효과가 크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화천군도 예외는 아니다. 산천어축제를 앞두고 해마다 연예인 등 유명 인사를 선발해 축제 홍보대사로 위촉해 왔다. 차이가 있다면 유명인보다 민간 홍보대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산천어 축제가 대한민국 대표축제로 선정된 배경엔 민간인 명예홍보대사의 역할이 매우 컸다. 선발은 산천어축제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 열정적으로 참여한 사람들 중에서 축제 조직위원회의를 거쳐 위촉한다.

산천어축제를 빛낸 민간 홍보대사들

산천어축제 첫번째 민간인 명예홍보대사는 양철훈군이다. 2003년 1월 11일. 16일간의 일정으로 제1회 산천어축제를 열었다. 첫 회라 미숙하기 그지없었다. 축제 성공여부를 가늠하기 어려운 시점이라 주민들의 참여도 없었다.

축제장엔 사회단체에서 운영하는 국밥집이 전부였다. 편의시설 또한 턱없이 부족했다. 축제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연일 불만이 쏟아졌다. 축제조직위원회는 곤경에 빠졌다. 이때에 등장한 인물이 당시 초등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이던 양철훈군이다.

산천어축제 초대 홍보대사 양철훈 군
 산천어축제 초대 홍보대사 양철훈 군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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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수원에 사는 초등학교 5학년 양철훈 입니다. 저도 산천어축제에 갔었는데요. 아저씨 말씀은 틀린 거 같아요. 제가 볼 때는 산천어도 잘 나오고, 쓰레기도 없었어요."

그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악성 댓글에 일일이 답 글을 올렸다. 어른이 아닌, 화천과 아무 연고가 없는 아이. 초등학생이라고 신분을 밝힌 소년의 글에 험담을 일삼던 사람들은 입을 닫아 버렸다. 단번에 축제 비하성 글들이 사라진 것이다. 조직위원회에서는 이 학생이 누군지 수소문했다. 이듬해 화천군수는 그 소년의 학교를 방문해 감사장을 수여하고 산천어축제 홍보대사로 위촉했다.

두번째 명예 홍보대사는 2009년 '나 홀로 소년'으로 유명세를 탄 김현태군이다. 서울에 사는 현태군은 뉴스에서만 보던 산천어축제에 꼭 가고 싶었다. 2009년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던 김 군은 어머님과 상의를 해봐야 반대를 할 것이 뻔하다고 생각했다. 아버님이 계시지 않은 환경. 어머님께 불효를 저지르고 싶지 않았지만, 딱 한번만 어머님을 속이기로 했단다.

1월 어느 눈이 내리던 날, 어머님이 출근을 한 틈을 타 화천행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축제장으로 뛰었다. 어머님이 퇴근하시기 전에 집으로 돌아 가야하기 때문이었다. 산천어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단다. 

나홀로 소년으로 유명세를 탄 김현태 군
 나홀로 소년으로 유명세를 탄 김현태 군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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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았을까,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산천어 한 마리를 낚았다.

"엄마, 나 화천에 와서 산천어 잡았어!"

방송에서만 보던 산천어를 잡았다는 것이 스스로도 믿기지 않았던 김 군은 그 기쁨을 어머님께 제일 먼저 알려 드리고 싶었다. 그런데 그 말을 끝으로 휴대폰이 방전이 됐다. '집에 있어야 할 녀석이 화천은 뭐고, 산천어는 뭔지' 휴대폰이 끊긴데 더욱 불안을 느낀 어머니는 다급하게 축제 조직위원회로 연락을 했다. 축제장에는'김현태'군을 찾는다는 방송이 연이어 나왔으나 낚시에 몰두해 있던 아이는 그 소리가 들릴 리 없었다. 산천어를 한 마리 더 낚았다.

축제 조직위원회에서는 비상이 걸렸다. 어머님으로부터 들은 인상착의를 경찰서와 119소방대에 알렸다. 저녁 늦은 시간까지 수색을 했지만 아이를 찾는데 실패했다. 수소문한 끝에 비슷하게 생긴 아이가 서울 행 저녁 5시 버스를 탔다는 것을 확인했다. 어머님께 이 사실을 알렸다.

"현태 군이 버스를 탄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터미널에서 기다리시면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아이의 엄마는 화천군수와 전화를 끊자마자 구의동 시외터미널을 향해 달렸다. 그로부터 3시간여 만에 도착한 버스. 사람들이 다 내려도 아이가 내리지 않았다. 덜컥 겁이 난 어머니가 버스에 뛰어올라 갔더니 버스 중간쯤 좌석에 앉아 산천어가 든 까만 봉지를 껴안고 잠든 아들이 보이더란다. 기가 막힐 노릇.

김 군의 산천어축제에 대한 지나칠(?) 정도의 사랑은 많은 사람들을 웃기고 또 울렸다. 이에 감동한 조직위원들이 만장일치로 그를 명예홍보대사로 임명했다.

세번째 홍보대사는 당시 부천 북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반크 회원인 고아라 양이다. 반크(VANK: Voluntary Agency Network of Korea)는 1999년에 만들어진 대한민국의 비정부 민간단체로 이들 회원들은 국가홍보와 상호 교류를 통한 사이버 민간 외교의 역할을 한다.

잘못된 국가정보에 대한 알림을 비롯해 교정권고까지 하는 등 폭넓은 활동을 하고 있다. 반크 회원인 고양은 산천어축제 관련 내용을 영문으로 사진과 함께 실어 전 세계인들을 대상으로 알림이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네번째는 소녀 작가인 서울(徐蔚)양이다. 그녀는 2008년 초등학생 시절, '화천 산천어축제'를 다녀온 후 '체리새먼'이란 동화를 썼다. '체리새먼(cherry salmon)'은 서울 양이 쓴 동화 제목이다. 내용은 이렇다.

동화를 통해 산천어축제를 홍보한 서울양(우측, 좌측은 정갑철 화천군수)
 동화를 통해 산천어축제를 홍보한 서울양(우측, 좌측은 정갑철 화천군수)
ⓒ 참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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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에서 화천으로 이주해 온 한 외국인 꼬마 아이가 화천에서 우연히 머리가 유난히 하얀 읍장을 만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동화 속 주인공인 소년은 자신이 앓고 있던 '심장판막증'에도 불구하고 공사장에서 다쳐 몸져누운 아빠의 약값을 벌기 위해 추운 한 겨울 날씨에도 파로호에서 산천어를 낚아 시장에 팔았다.

강을 배경으로 살아온 화천 사람들은 아무도 민물고기를 사려하지 않았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소년은 늘 사람들의 조롱의 대상이었다. 이유도 없이 산천어를 발로 차 뒤집어엎는 사람들도 있었다.

말없이 매일 산천어를 사 가는 하얀 머리의 읍장만이 유일한 고객이었다. 눈물 담은 눈망울과 읍장의 그윽한 눈빛이 점철된 동화는 많은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했다. 서울양은 또 이 동화를 영문판 으로도 출간해 산천어를 해외에 알리는 역할도 했다.

위와 같이 위촉된 민간인 명예 홍보대사들은 축제의 모든 프로그램에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 축제 기념품도 선물로 지급된다. 민간인 홍보대사 위촉은 관광객들의 저변확대와 더불어 시너지효과를 통한 축제의 매력을 더해주는 역할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앞으로 또 어떤 이유로 민간인 홍보대사가 위촉될지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기자는 강원도 화천군청 기획담당입니다.



태그:#화천, #산천어축제, #민간 홍보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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