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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 전화기의 신호음이 울렸다. 이른 아침에 남의 집에 전화를 건다는 건 실례이기 때문에 대개의 사람들은 그 시간에는 전화를 잘 하지 않는데 누가 전화를 한 것일까. 아침상을 차리다가 전화를 받으니 윤숙씨였다.

식전(食前)일 텐데 실례인 줄 알지만 의논할 게 있어서 전화를 했다면서 "오늘 세 사람이나 결석을 하게 되는데, 어떻게 할까요?"하며 조심스럽게 내 의향을 물었다. 다섯 명이 공부하는 모임에서 세 명이 사정이 있어 결석을 하게 되었으니 아닌 게 아니라 걱정스럽기는 했다. 그러나 그 생각도 잠시 '역시 우리 부처님이야. 내 처지를 어찌 아시고 이리도 살펴주시지?'라는 생각이 들어 입가가 저절로 올라갔다. 

식전(食前)에 걸려온 전화

그 전날 밤에 뭘 하느라 새벽닭 울음소리를 듣고서야 잠자리에 들었더니 잠이 부족했다. 아침에 일어나 비척대며 주방으로 가서 밥상을 차렸지만 몸이 무거웠다. 한 숨 더 자면 좋겠는데 그럴 수도 없다. 경전반 수업이 있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참이었는데 결석생이 많아서 수업을 뒤로 미루면 어떻겠느냐고 묻는 전화는 그야말로 가뭄에 단비가 오듯 반갑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우리 부처님' 타령을 했던 것이다.

전등사에서는 템플스테이(사찰 체험)를 합니다.
 전등사에서는 템플스테이(사찰 체험)를 합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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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 해 동안 금강경을 비롯해서 반야심경 등의 불교 경전을 공부했다. 지지난해(2012년)에 불교대학을 졸업한 우리는 내쳐서 경전공부까지 같이 하기로 했고, 이제 졸업을 앞두고 있는 참이다. 다섯 명이 시작했는데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끝까지 함께 했으니 그것은 서로가 서로를 보살피는 마음이 있어서 가능했던 것 같다.

그런데 가을이 되자 결석을 하는 사람이 하나둘 생기더니 김장철이 되자 아예 세 사람씩이나 결석을 하게 되었다. 많지도 않은 인원에 셋이나 빠지면 공부하는 사람들도 영 힘이 나지 않고 재미도 없다. 그래서 반장 격인 윤 씨는 다음 주로 미루면 어떻겠냐고 의견을 모으는 전화를 했던 것이다. 

'서당개 삼 년에 풍월 읊는다'라는 말이 있다. 가방만 메고 학교에 다녀도 어느 결에 공부가 스며든다는 말이리라. 나도 처음에는 같이 어울리는 재미에 불교대학에 다녔다. 공부에 마음이 있어서라기보다는 함께 하는 사람들이 좋아서 매주 나갔다. 그것은 경전반으로 올라와서도 마찬가지였다. 공부는 뒷전이고 사람들과의 인연이 좋아 계속 다녔다.

그런데 참 희한도 하지, 어느새 풍월을 읊고 있는 나를 본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조금씩 내게 스며들고 있는 것 같다. 더러 상(相)을 짓는 나를 보며 반성하기도 하는 걸 보면 종이에 물감이 번지듯 어느 결에 나도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가고 있나 보다.

서당개 삼 년에 풍월 읊는다더니...

지난번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아그배나무에 꽃이 활짝 피었던 때였으니까 아마도 5월 중순이었나 보다. 한낮에 꽃나무 밑에 앉아 마당 구경을 하고 있는데 승합차 한 대가 우리 집 쪽으로 오고 있었다.

차는 우리 집을 지나 이웃집을 향해 천천히 올라갔다. 그 차에는 아무런 표식도 없었는데 이상하게도 꼭 전도(傳道)를 하는 차 같이 느껴졌다. 그래서 만약에 우리 집에 전도하러 오면 뭐라고 말을 해서 돌려보낼까 하는 생각을 문득 했다.

꽃사과나무에 환하게 꽃이 피었습니다.
 꽃사과나무에 환하게 꽃이 피었습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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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합차는 이웃집을 지나 더 위쪽으로 올라갔다. 이제 좀 있으면 차가 내려올 것이다. 왜냐하면 그곳은 막다른 길이기 때문에 더 이상 갈 수가 없다. 나는 계속 생각을 이어갔다. 그 사람들이 전도를 하러 오면 "저는 부처님의 제자입니다"라고 대답을 하리라 생각했다. 부처님의 제자라니, 불교를 믿는다는 말보다 얼마나 더 멋진 말인가. 나는 그런 생각을 한 내 자신이 흐뭇해서 빙긋이 웃음을 베어 물었다. 

얼마 안 있어 차가 우리 집 앞에 섰다. 그리고 차 안에서 한 남자가 내리더니 우리 집 마당 안으로 들어왔다. 그 사람은 내 짐작대로 종교를 전도하러 온 사람이었다.

"제가 좋은 소식을 전해 드리려고 합니다. 시간을 내주실 수 있으신지요?" 라고 묻는 그 사람에게 수고가 많다고 치사를 한 뒤 "저는 부처님의 제자입니다"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분도 그러시냐고 정중하게 내 말을 받아주며 인사를 차리지 뭔가. 온통 하얀 꽃으로 뒤덮인 아그배나무 아래에서 우리는 서로의 종교를 존중하였다.

불교대학을 다닐 때 예불을 올리는 시간이 늘 거북했다. 특히 삼보에 귀의하겠다는 다짐을 하는 노래를 할 때면 마지막 구절인 스님들에게 귀의한다는 말이 마음으로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그것은 매스컴을 통해서 보고 들은 스님들의 모습 때문이었을 것 같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중생일 뿐인데 왜 내가 그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절을 올려야 하는지 늘 의문이 들었고 불편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스님들이기 보다는 승가(僧伽)에 귀의하겠다는 내용이었는데 나는 그것을 스님들로 보고 그렇게 거부감을 가졌던 것이다. 그랬던 내가 어떻게 스스로를 부처님의 제자라고 생각했던 걸까. 

부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

전등사의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수계(受戒)를 받는 모습입니다.
 전등사의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수계(受戒)를 받는 모습입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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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못 잤다고 일상을 흐트러뜨릴 수는 없다. 한 번 흐트러지면 다음에는 무너져 내리는 것이 세상 이치이므로 한 번의 유혹에 빠져서는 안 된다. 그래서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결석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처음부터 하고 있었다.

수업을 듣다가 정 힘들면 뒤에 누워서 눈을 좀 부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으니 결석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찌 이리도 부처님은 내 생각을 해주시냐 말이다. 간청하지도 않았는데 부처님은 벌써 내 처지를 다 아시고 선처를 내려 주셨다. 그러니 내 입에서 저절로 '역시 우리 부처님이야'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겠는가.

곤히 자는 아내를 위해 보일러를 돌려 방을 데워주고 출근을 한 남편 덕분에 집 안에는 훈훈한 기운이 돈다. 또 뒤처지지 않도록 이끌어 주고 힘을 보태주던 도반들이 있어서 중도에 작파하지 않고 끝까지 불교대학과 경전반 공부를 잘 할 수 있었다. 내 곁에는 이런 보이지 않는 부처님의 가피가 늘 함께 한다.

생각지도 않았던 오전 한나절이 내게 주어졌다. 못다 잔 잠을 더 잘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좀 더 의미 있게 보내고 싶다. 그래서 일어나 앉아 지난 이 년을 돌아본다. "저는 부처님의 제자예요" 라고 입 속으로 가만히 뇌어본다.


태그:#불교, #정토회, #법륜스님, #불교대학, #전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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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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