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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천왕봉 오르는 길
 지리산 천왕봉 오르는 길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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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이름만 들어도 푸근함이 느껴진다. 한자로 쓰면 지리산(地理山)이다. 땅의 모든 것을 통칭하는 말이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산이라는 뜻이다. 지리산은 뜻도 깊다.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고 하여 지리산(智異山)이라 하였단다.

지리산 천왕봉은 1915m로 웅장함이 다른 산들과 비교를 불허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천왕봉에 서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려고 한다. 산의 정기를 받는다고 하면서….

지리산에 오르는 이유 중 또 하나는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고 아픈 마음을 치유 받고 싶은 것도 있다. 그래서 이원규 시인은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에서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행여 견딜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라고 노래를 했다.

순례자의 마음으로 오르는 산길

겨울 지리산에 오르는 것은 큰마음을 먹어야 한다. 산행을 하기 전에 꼼꼼히 준비해야 한다. 추위를 대비한 옷과 양발, 두꺼운 장갑, 아이젠, 그리고 만약에 대비한 비상식량. 그리고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다는 마음.

중산리 순두류 환경교육원 입구에서 천왕봉으로 오르는 순례길
 중산리 순두류 환경교육원 입구에서 천왕봉으로 오르는 순례길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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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계사로 가는 순례길. 숲이 조용하다. 계곡에 물흐르는 소리도 숨을 죽였다.
 법계사로 가는 순례길. 숲이 조용하다. 계곡에 물흐르는 소리도 숨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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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으로 향한다. 산청은 이름에서 풍기는 맛이 아주 깊은 산중 같은 느낌이다. 중산리로 들어선다. 도로 옆으로 흐르는 물은 겨울이라 그런지 가늘고 힘이 없다.

중산리에서 천왕봉을 오르는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칼바위를 지나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길과 버스를 타고 순두류(환경교육원 입구)까지 가서 오르는 길이 있다. 어느 길로 가나 로타리대피소에서 만난다.

버스는 두류동에서 법계사 입구까지 3.2km를 운행한다. 버스비는 2천 원이다. 작은 마을버스지만 좀 더 편하게 올라가려는 사람들로 아주 만원이다.

버스에서 내리니 법계사까지는 2.8km라는 이정표를 만난다. 조금 더 올라가니 '순례길'이라고 쓴 문을 만난다. 법계사까지 가는 길인지 천왕봉까지 가는 길인지는 모르겠다. 하여튼 천왕봉으로 향하는 길은 순례자의 마음으로 가라는 말로 새기고 문을 지난다.

지리산 천왕봉 오르는 겨울산행. 앞으로 보이는 봉우리가 천왕봉이다.
 지리산 천왕봉 오르는 겨울산행. 앞으로 보이는 봉우리가 천왕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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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산길은 조용하다. 가끔 산새들이 우는 소리만 들려온다. 산길은 오르막길과 평평한 길을 반복한다. 등산객들이야 산에 오르는 게 즐거운 일이겠지만 절에 가는 신도들은 쉽지 않은 길이다. 그래서 순례자의 마음으로 가라고 순례길이라고 했나보다.

법계사 입구에서 1시간 정도 걸었더니 로타리대피소가 나온다. 많은 사람들이 앉았다 갔는지 의자와 평상은 반질거린다. 잠깐 쉬었다 간다. 이정표는 이곳이 해발 1335m라고 알려준다. 높이가 실감나지 않는다. 잠깐 걸어온 것 같은데.

대피소에서 조금 더 오르면 법계사가 있다. 이 높은 곳에 절을 지은 스님들에게 일단 존경을 표하고 산길을 재촉한다. 산길은 가파르게 올라가다가도 쉬엄쉬엄 가기도 한다. 하얀 눈길을 밟으며 올라가는 기분은 마음을 깨끗하게 한다.

개선문을 지나고 천왕샘에 다다른다. 커다란 바위틈에서는 겨울에도 얼지 않고 물이 흘러나온다. 한 모금 마셔본다. 얼음같이 차가운 물은 싱싱하고 깔끔한 뒷맛을 준다. 천왕샘에서는 천왕봉까지 300m를 남겨 놓았다. 산길은 아주 가파르다.

마음을 비우려고 왔는데...

파란 하늘아래 천왕봉은 하늘의 모든 정기를 끌어서 모을 듯이 맞닿아 있다. 가파른 계단길이다. 사다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기분이다. 속도가 더디다. 산에 오르는 사람들 체력이 다 같지를 않다보니 중간에 힘들게 올라가는 사람들을 배려해 해 준다. 그러면서 잠시 숨을 돌린다.

지리산 천왕봉으로 오르는 길. 바로 위 바위 능선이 천왕봉이다.
 지리산 천왕봉으로 오르는 길. 바로 위 바위 능선이 천왕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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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천왕봉 오르는 길 주변 풍경
 지리산 천왕봉 오르는 길 주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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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의 상징인 구상나무와 고사목
 지리산의 상징인 구상나무와 고사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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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풍광은 눈을 심심하지 않게 한다. 절벽에 힘들게 자라고 있는 작은 나무, 허전한 씨방만 남기고 있는 마른 풀들. 눈 위로 동물 발자국도 보인다. 추위에 아랑곳 하지 않고 높은 산정을 홀로 거닐었을 이름 모를 동물에게 경의를 표한다.

하늘을 뚫고 올라가듯 산 능선으로 올라선다. 올라선 곳이 바로 천왕봉이다. 천왕봉에 올라선 것만으로도 큰 성취감이 밀려온다. 감동이다. 정상 표지석에 쓰여 있는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라는 문구는 가슴을 뜨겁게 한다.

산정은 정상 표지석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나도 사진한 장 남기려는 욕심에 줄을 선다. 사진 찍기가 쉽지 않다. 마음을 비우려고 지리산에 올랐는데 또 다른 욕심에 사로잡힌다.

지리산 천왕봉 정상 표지석
 지리산 천왕봉 정상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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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봉에서 노고단으로 이어지는 능선
 천왕봉에서 노고단으로 이어지는 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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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천왕봉 가는 길. 마음을 비우며 걷는 산길
 지리산 천왕봉 가는 길. 마음을 비우며 걷는 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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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정에 서서 빙 둘러본다. 겨울 산들이 눈에 들어온다. 말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산. "마음을 비우자"를 되뇐다. 지리산에 오르려고 했던 건 한 해를 새로 시작하면서 다짐하고 싶어서였다. 천왕봉에서 마음을 풀어놓으면 기분이 좋아질 것 같았다. 지리산 바람을 맞는다. 차갑다.

덧붙이는 글 | 중산리 법계사입구에서 천왕봉을 오르는 길은 4.8km 약 3시간 소요된다.



태그:#지리산, #천왕봉, #겨울산행, #눈꽃, #눈꽃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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