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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운 한파가 불어오고, 지역에 따라 대설이 내린 곳도 많습니다. 그리고 눈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지역도 적지 않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 요즘, 눈으로 인한 피해는 없지만 추운 겨울날 일거리가 줄어든 고향집 어머니는 하루하루 적적하기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휑하기만한 들판은 기약하기 이른 봄날을 가끔 생각할 뿐 더 이상 할 일이 없는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추수 끝에 볏자루를 들다 허리를 다치신 어머니는 거의 한 달 이상 치료를 받으며 고생하셨습니다. 연세가 있으셔서 쉽게 나아지지 않아 더 고생을 한 셈입니다. 그런 어머니는 겨울 추위가 시작되면서 쉬는 날이면 먼저 전화를 해오셨습니다. 많이도 적적하고 심심한 모양이셨지요. 오남매가 돌아가며 휴일마다 찾아뵙고는 있지만, 지난해와 달리 유독 올 겨울 어머니의 기다림은 더해진 듯합니다.

그러고 보니 고향집 개 장군이가 떠난 지도 벌써 6개월이 더 지났습니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장군이가 고향집을 떠나갔지만 장군이의 남은 자리는 너무 컸습니다. 어머니를 찾아뵐 때마다 덩그러니 놓인 장군이의 집을 보면서 언제쯤 새 주인이 올까, 뭐 이런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닙니다. 그저 어떤 녀석이 다시 와서 어머니의 저 허전함을 달래줄 수 있을지 궁금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달리 방법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얼마 전, 반가운 소식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장군이를 대신 할 녀석을 찾았다는 큰언니의 반가운 전화였습니다.

장군이의 빈자리를 채울 '녀석'을 찾았습니다

어머니의 말벗이 되고 있는 착한 동생(?)입니다.
▲ 이제 제법 의젓합니다. 어머니의 말벗이 되고 있는 착한 동생(?)입니다.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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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생활을 하는 아는 분이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왔는데, 데리고 있을 상황이 안 돼서 새 주인을 찾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급히 큰언니가 데리러 가겠다고 했다는 겁니다. 어떤 녀석인지 가서 보고 와서는 사진 한 장을 제게 보내왔습니다. 작고 귀여운 녀석이었는데 첫눈에 '아, 요 녀석이구나!' 싶었습니다. 큰언니와 제가 좋다고 무조건 고향집에 데리고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머니가 키울 수 있을지, 어머니의 허락이 일단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지요.

아직 결정된 게 없는데 언니와 전 녀석의 이름부터 지었습니다. 사진 한 장으로 서로 무슨 이름으로 할지 고민하다 그냥 '순이'라고 했습니다. 막내 이름과 같으면 어머니도 생각이 달라질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때 큰언니는 어머니한테 세 명의 딸, '삼'자에 모두 '순'자를 돌림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삼순'으로 짓자 했습니다. 듣고 보니 그럴듯한 예쁜 이름이었습니다.

이름까지 다 지어놓은 마당에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데리고 가서 어머니한테 소박(?)을 맞을 수도 있어서 일단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봤습니다.

"와아, 안 춥나?"
"뭐 하고 있는교? 마이 추울낀데 보일러 틀고 조심해서 댕기소."
"안 그래도 추버가 나갈 엄두 안 난다. 마아 집에 있다 아이가. 안 바쁘나?"

이쯤 대화를 주고받으니 어머니의 현재 심리상태까지 파악이 됐습니다.

"엄마, 근데 큰언니가 사진 한 장 보내왔는데, 강아지가 참한 게 있다카네."
"뭐어? 어딨는데?"
"그기 언니 아는 분, 와아 예전에 시골서 전원생활한다는…. 그 집에 강아지를 한 마리 데리고 왔는데 사정이 생겨 못 키우게 되었다카네."
"그래가아~."

"그래가지고, 언니가 엄마한테 데불고 올라꼬 달랐고 했다카네. 이름은 '삼순'이다. 진짜 귀엽더라. 엄마도 보믄 좋다할끼다."
"뭐어? 삼순이, 이름이 뭐 그런노?"
"언니하고 내가 지은 이름이다. 딸 셋에 '삼'자하고 순자 돌림이라 '순'하고 해서 '삼순'이다. 이름 괜찮제?"
"히히, 웃기네. 근데 언제 오노?"
"아마 주말쯤에 갈끼다. 그때 데불꼬 온단다. 작은언니네하고 우리도 그날 갈까 싶다. 엄마 이번에 삼순이 가믄 잘해주자. 알겄제?"

'여기가 어디지?' 하는 삼순이... 어머니께 벗이 생겼습니다

어머니 곁에 함께 할 삼순이를 소개합니다.
▲ 고향집 어머니의 새 동거견 '삼순이' 어머니 곁에 함께 할 삼순이를 소개합니다.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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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좋다 싫다 결론 없이 통화를 마치고, 큰언니와는 주말에 삼순이를 데리고 고향집에 가기로 했습니다. 사실, 사진 한 장으로 본 녀석의 모습은 고향집 어머니의 동거견으로 '이건 인연이다' 싶었습니다. 물어볼 것 없이 그냥 데리고 오라고 했고, 며칠 뒤 주말이 됐습니다.

점심 무렵, 고향집에 도착하니 아직 큰언니는 오지 않았고, 어머니는 작은언니네와 이웃 사찰에 가시고 안 계셨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쯤 시간이 지나자 '삼순'이가 왔습니다. 작은 박스 안에 앉아 머리만 내밀고 밖을 쳐다보고 있는 삼순이가 신기하기까지 했습니다. 마당 경운기 안에 박스를 올려놓고 한참을 쳐다보며 삼순이를 불렀습니다. 어리둥절해 하는 녀석은 여기가 어딘가 싶어 주위를 살피더니 박스 안으로 쏙 들어가 버립니다.

아직 어리둥절한 삼순이가 세 자매로부터 첫 대면을 합니다.
▲ 첫 만남이 어색하지만 좋습니다. 아직 어리둥절한 삼순이가 세 자매로부터 첫 대면을 합니다.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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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후에 어머니의 목소리가 담장 너머 들립니다. 작은 언니와 작은 형부가 먼저 들어와서는 삼순이를 보며 여기저기 살폈습니다. 이제 어머니와 삼순이가 극적인 상견례(?)를 할 준비를 했습니다. 경운기 주위를 둘러싼 큰언니와 큰 형부, 작은 언니와 작은 형부 그리고 남편과 저. 이렇게 어머니를 기다렸습니다. 대문 안으로 들어오시며 어머니는 경운기로 바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세 자매가 숨죽이며 어머니의 표정을 살폈습니다. "삼순아~" 어머니는 박스 안에서 머리만 내미는 삼순이를 쓰다듬어주셨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야아, 춥겠다. 얼릉 안에 데리고 가자. 춥겠다아."
"그라믄 삼순이하고 엄마는 서로 같이 사는 걸로 이상!"

뜻밖의 어머니의 태도에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언니와 제가 이렇게 노심초사 어머니의 반응을 살피는 데는 앞서 장군이와의 아픔이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웠습니다. 어머니가 그렇다고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한 해 두 해 움직이는 것에 버거워 했기 때문에 힘에 부쳐 못 키우겠다면 어쩔 수 없이 다시 데리고 가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한번 같이 살아보겠다는 다짐을 해 보이시는 어머니를 보니, 새삼 기분이 좋으면서도 '아, 우리 어머니도 이제 세월을 맞는구나' 싶어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어머니 기뻐하시니 만족이지만, 가슴이 아리기도

앞으로 요 녀석 때문에 고향집에 웃음이 가득할 것 같습니다.
▲ 너무 순진해서 걱정입니다. 우리 삼순이~ 앞으로 요 녀석 때문에 고향집에 웃음이 가득할 것 같습니다.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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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형부는 삼순이를 넣어 온 박스를 다시 재구성해 작은 집으로 만들어줬고, 어머니는 당분간 추위가 누그러질 때까지 발코니에 놔두기로 했습니다. 힘에 버거웠던 장군이에 비하면 삼순이는 얌전하고 아직 어려 당분간은 어머니의 극진한 보살핌이 있을 것 같아 여러모로 안심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삼순이를 어머니의 새 동거견으로 보내고 며칠이 지난 뒤, 걱정이 돼서 전화를 했더니 전화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어머니는 매일 햇볕 잘 들어오는 계단에 앉아 삼순이에게 이야기를 한다고 합니다. '밥 묵어라, 이거 묵어봐라, 저거 묵을래, 오늘은 날이 찹데이, 요번 주말엔 누가 올낀가 모르겠데이~' 그러면서 어머니는 말씀하십니다.

"야야, 이제 삼순이가 있어 안 심심하데이."

올 겨울은 삼순이가 어머니 곁에 있어 잠시나마 걱정을 덜게 됐습니다. 저는 항상 강한 어머니의 모습만 봐왔습니다. 하지만 강아지 한 마리에 마음 붙이며 적적함을 달래며 좋아하시는 팔순 어머니가 가슴 벅차게 아려오기도 합니다. 그래도 어머니가 좋아하시면 그것으로 대만족입니다. 강아지 한 마리를 둘러싼 우리 가족의 별난 수다는 당분간 계속될 것 같습니다.


태그:#어머니, #동거견, #적적함, #고향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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