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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강국을 다시 상상한다> 겉그림
 <방통강국을 다시 상상한다> 겉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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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딱히 방송정책이나 미디어 영역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종편 논란이 불거졌을 때도 난 볼거리의 다양화란 측면에서 (부끄럽지만)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였던 게 사실이다. 우선 시민의 지성을 믿었고, 전체적으로 '콘텐츠의 질이 향상되지 않을까'란 실낱같은 기대도 있었다. 사회가 어떻게든 발전과 진보를 이뤄나갈 것이란 희망을 가졌다. 홍역은 치르되 균형점을 찾아가리란 믿음.

그럼에도 지난 정부의 미디어 정책에 대해 쓴 <방통강국을 다시 상상한다>란 책을 집어든 건, 지금의 방송은 그 공공성에 심각한 침해가 가해지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정부 비판적인 프로그램에 제작진이 물갈이 되고, 반대 여론에도 문제적 인물을 방송사 사장에 앉힌다거나, 언론사 노조를 탄압하는 모습을 보며 말이다. 공공재인 방송에 사유화의 그늘이 짙게 깔렸다.

게다가 그렇게 송출되는 방송 영상에서도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지금까지 회자되는 '내 귀에 도청장치 사건(1988년 MBC에서 발생한 방송사고)'처럼 방송 사고는 큰 반향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나 다채로운 사고들이 쏟아지니, 무감각해질 정도다. 인물사진이 뒤바뀌는 건 예사고, 사회적으로 지탄 받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상징하는 마크가 다른 자료 사진에 교묘히 섞여 공중파에 노출된다. 제대로 검토조차 하지 않았단 얘기다.

미디어 정책은 마치 길을 잃은, 신호등 없는 사거리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헤매는 초보운전 딱지가 붙은 차가 돼버렸다. 방송은 스스로 되물어야 한다. 공동체 안에서 부여된 자신들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가. 군사정권 시절 누더기가 돼버린 신문지처럼, 세상의 아우성에 귀를 닫고 '날씨'나 '음식'이 시급한 뉴스인양 떠들지는 않았는가. 차이라면, 전자가 '타의' 지금은 '자의'란 것.

2013년 10월 8일 MBC 뉴스데스크 방송화면 갈무리. 당시 이슈였던 교학사 교과서 부실 검정, 국방부의 노무현 전 대통령 NLL 수호 의지 확인, 국정원 개혁 등의 뉴스는 전혀 방송되지 않았다.
 2013년 10월 8일 MBC 뉴스데스크 방송화면 갈무리. 당시 이슈였던 교학사 교과서 부실 검정, 국방부의 노무현 전 대통령 NLL 수호 의지 확인, 국정원 개혁 등의 뉴스는 전혀 방송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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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종편'이었나

<방통강국을 다시 상상한다>는 지난 정부의 미디어 정책을 상세히 담고 있다. 총체적인 문제의식을 가지고 쓰였다. 책을 쓴 신혜선 <머니투데이> 기자는 정보통신과 미디어 분야만 19년째 담당했다. 책을 쓰기 위해 이명박 정부 5년 열렸던 '방송통신위원회'의 속기록을 다시 일일이 뒤졌다. 완급조절을 해나가며 최대한 중립적인 입장에서 사건들을 기술했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 해석하든 변명의 여지가 남지 않는 부분이 '종편'이다.

정권을 새로 잡은 이명박 정부는 IT 흐름은 별 고려 없이 지난 10년간 시달렸던 진보매체의 압박에서 벗어나는 것이 과제였고, 보수매체의 요구에 응답해야 했다. 어찌 보면 이명박 정부가 방통위의 역사성은 물론이거니와 통신산업정책이나 콘텐츠정책을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던 것은 당연한 결과다. 그리고 그 자리를 종편PP정책이 대신 차지했다.(113쪽)

누가 종편 자격을 얻을 기회를 가질 것이냐는 점에서 당시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정책은 마치 그 자격을 '신문사'에 주기 위한 것처럼 인식될 정도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명박 정부의 종편PP정책은 거대 신문사의 방송시장 진출 요구를 수용한 결과물이다.(114쪽)

책에서 살펴본 이들의 성적은 처참하다. 낙제 수준이다. 마치 방송 시장에 진출만 시켜주면 곧 될 것처럼 호언장담하던 '글로벌 종합 미디어그룹'은커녕 사업 지속 의지가 있는지 조차 의심스럽다. 더욱 큰 문제는 이행 성적이 그들 스스로 승인받을 때 지키겠다고 제출한 목표치를 한참 밑돈다는 사실이다. 콘텐츠 투자 계획은 반토막이 났고, 방송시간의 절반 이상을 재방송으로 채우고 있다.

종편PP의 2012년 콘텐츠 투자계획과 실제 이행성적 비교. 출처: 방송통신위원회 2013 (<방통강국을 다시 상상한다> 150쪽에서 재인용)
▲ 종편 콘텐츠 투자계획 이행실적 종편PP의 2012년 콘텐츠 투자계획과 실제 이행성적 비교. 출처: 방송통신위원회 2013 (<방통강국을 다시 상상한다> 150쪽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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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편PP의 2012년 재방송 비율 계획과 실제 이행성적 비교. 출처: 방송통신위원회 2013 (<방통강국을 다시 상상한다> 150쪽에서 재인용)
▲ 종편 재방송 비율 종편PP의 2012년 재방송 비율 계획과 실제 이행성적 비교. 출처: 방송통신위원회 2013 (<방통강국을 다시 상상한다> 150쪽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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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위는 작년 8월, 전체 회의를 개최해 승인조건을 위반한 종편PP에 대해 시정명령을 의결했다. 종편PP는 계획서에 제출한 투자 금액을 모두 이행해야 한다. 이들이 시정명령을 이행할지는 미지수다. 만만찮은 금액이기 때문이다. 이행하지 않는다면 방통위는 '시정명령 미이행'에 따른 추가 제재를 할 수 있다. 물론 재승인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종편PP들은 사업권을 승인받기 위해 제시한 계획을 그동안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방통위 관계자들조차 "승인 받은 사업계획서는 캐비닛에 쳐박고, 현실적인 사업계획서를 다시 짰다"고 평가할 정도였다.(149쪽)

하지만 이들은 이미 '편법'을 쓰려는 모습이다. 종편PP들이 '사업계획서 변경' 의견서를 제출한 것이다. 이들은 방통위의 시정명령 사전통지를 받고 사업계획서 변경 의견서를 제출했다. 변경 내용은 비공개라 구체적으로 파악되지 않지만 투자 축소 및 재방송 비율을 대폭 낮추는 쪽으로 수정됐음을 쉽게 알 수 있다.(151쪽)

정부 스스로 종편정책을 왜곡시키고 있다. 애초에 약속했던 잣대를 적용해야 공평한 게 아닌가. 이건 반칙이다. 소위 '보수'를 지향한단 언론들이 꼼수를 부리다니 창피하지도 않나? 법치를 부르짖으며 일갈하던 서릿발 같은 노호는 어디로 갔나. 이것이야말로 표리부동이 아니고 뭔가.

특혜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종편에 대한 중앙부처의 광고집행금액이 해매다 대폭 늘었다. 반대로 지방지에 대한 광고지원금액은 줄었다. 민주당 김윤덕 의원이 언론진흥재단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방지 광고 금액이 종편 개국 전후로 크게 달라졌다. 2010년에는 10억 297만 원이던 것이 2012년에는 3억 9천만 원으로 삭감됐다.

종편에 대한 중앙부처의 광고집행금액은 2011년 13억 8172만 원, 2012년 52억 6694만 원으로 대폭 늘었다. 반대로 지방지에 대해서는 2010년 10억 297만 원, 2012년 3억 9천만 원으로 줄었다. 출처: 언론진흥재단 (<방통강국을 다시 상상한다> 159쪽에서 재인용)
▲ 종편에 대한 중앙부처의 광고집행금액 종편에 대한 중앙부처의 광고집행금액은 2011년 13억 8172만 원, 2012년 52억 6694만 원으로 대폭 늘었다. 반대로 지방지에 대해서는 2010년 10억 297만 원, 2012년 3억 9천만 원으로 줄었다. 출처: 언론진흥재단 (<방통강국을 다시 상상한다> 159쪽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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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미디어 정책, 다시 출발점에 서기를

"이명박 정부가 광고시장 확대, 일자리 창출 등 경제효과를 이유로 종합편성 4개 채널을 출범시켰으나, 결국 종편을 살리기 위해 이중·삼중고를 겪고 있는 지방신문의 광고비를 줄이는 최악의 선택을 한 셈" (민주당 김윤덕 의원 - <방통강국을 다시 상상한다> 159쪽에서 재인용)

종편은 올해 재승인을 앞두고 있다. 사실 방송 사업자의 사업권을 박탈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거기다 여야 추천 방통위원 구도가 3대2인 상황에서 정치적으로 여당의 입김이 작용할 확률이 크다.

그러나 야당 추천으로 1기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을 역임했던 서울대 이병기 교수의 발언을 주목하자. 이 교수는 "종편정책의 성공 여부는 지금부터"라며, "애초 사업승인 당시 조건을 얼마나 잘 이행했는지, 그 여부를 법대로 잘 판단해 처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말했다.

또한 이왕 선정된 사업자에게 어떻게 재승인을 해주지 않을 수 있겠느냔 지적에 대해서는 "원래 승인요건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는데도 재승인을 한다면 종편 및 보도PP 정책이 '특혜 정책'이었음을 정부가 인정하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재승인 심사 과정을 국민 모두가 똑똑히 지켜볼 일이다.

이밖에도 책에는 공중파 방송 중단 사태, IPTV, 통신비, 스마트폰 등이 실렸다. 책은 상당히 객관적인 자세를 견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충분한 반론을 실었고 의사결정 과정도 투명하게 담으려 애쓴 기색이 역력하다. 전체적으로 균형 감각이 훌륭하다.

문제는 과제를 잔뜩 남긴 지난 5년 방송 정책을 복기했을 때, 필연적으로 도출되는 해결책이다. 이 책에서도 그걸 묻고 있다. 관성 때문에, 정치적 입장 때문에 미디어 정책의 앞길을 호도해선 안 된다. 알면서도 교묘히 잘못된 길로 이끄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그 반대급부는 고스란히 누구에게 가겠는가.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말했다. "모든 것은 무르익어야 한다. 다만, 변화의 흐름을 잡아두려 정책을 거꾸로 추진해서는 안 된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고, 동시에 멀리 보고자 하는 노력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미디어 분야에 대한 애정이 잔뜩 묻어난 충고다.

최대의 가치가 되어야 할 공정성과 공익성을 포기한 미디어 정책은 공동체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다. 지난 5년, 길을 잃어버린 미디어 정책은 지금 기로에 서있다. 지금 정부가 털건 털고 가야 맞는 게 아닐까. 그래야 '방통강국을 다시 상상할 수' 있지 않겠는가.

덧붙이는 글 | <방통강국을 다시 상상한다>, 신혜선 지음, 메디치 펴냄, 2013.12, 1만7천원



방통강국을 다시 상상한다 - 방송통신위원회 2000일의 현장 기록

신혜선 지음, 메디치미디어(2013)


태그:#방통강국을 다시 상상한다, #신혜선, #메디치, #종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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