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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10월 충남 문화상품으로 지정된 세한도 붓통
 2013년 10월 충남 문화상품으로 지정된 세한도 붓통
ⓒ 강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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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추사 세한도(국보 180호)가 새겨진 물푸레나무로 만든 원통 모양의 붓통이 충남 대표문화 상품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충남 예산의 목공예가 정봉기 장인의 오랜 경륜(38년)으로 추사의 세한도가 예술로 승화된 문화상품으로 태어났는데요. 요즘 정 선생님은 세한도 붓통 만들기에 분주하다고 합니다. 그 현장을 찾아가보았습니다.

잔설이 간간이 남아 있는 2014년 새해에 찾은 충남 예산군 봉산면 사석리. 이곳에서 봉대민속 공방을 운영하는 민속 공예가 정봉기님(56). 현판 공방을 하신 부친 정희석 선생의 영향으로 정봉기 선생은 16살에 서각을 시작했습니다.

20년 전에 경기도 성남에서 추사체 서각을 하다가 추사 고택을 방문했고, 이곳에 둥지를 틀게 됐다고 합니다. 추사 고택 부근에서 터를 찾았으나 자연경관이 있는 적당한 곳을 찾지 못해 지금의 봉산면 사석리에 살게 됐다고 하네요.

충남 예산 봉산면 사석리에 있는 민속공예가 정봉기 선생님댁을 방문했습니다.
 충남 예산 봉산면 사석리에 있는 민속공예가 정봉기 선생님댁을 방문했습니다.
ⓒ 강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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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입구에는 괴이한 장승과 함께 크고 작은 구부러진 소나무들이 예술적인 모습으로, 한겨울에도 청청한 모습으로 나그네를 반기고 있었습니다.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 유배생활 중에 제자 이상적이 청나라에서 구한 귀한 책을 스승 추사에게 건넸습니다. 제자의 정성에 깊이 감동한 추사가 그 답례로 세한도를 그려 제자 이상적에게 주었다고 전해집니다.

세한도의 구부러지고 볼품없는 소나무는 추사의 유배생활을 상징하며 한편으로는 추운 겨울에도 흔들리지 않는 의리와 충절의 정신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제자 이상적은 그 귀한 서적을 고관에게 주었다면 벼슬을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배 중인 스승에게 드렸습니다. 이러한 스승과 제자의 의리가 오늘날 우리 세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봅니다. 나에게도 추사와 이상적 같은 의리있는 벗이 과연 몇이나 되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집 앞에는 돌을 쌓아 올려 만든 돌탑이 있습니다. 나무를 어루만지며 아름다운 예술로 승화 시키는 민속 공예가는 무엇을 생각하며 돌탑을 쌓아 올렸을까 생각해 봅니다.

별관 한지문을 열고 선생님이 내다볼것 같습니다.
 별관 한지문을 열고 선생님이 내다볼것 같습니다.
ⓒ 강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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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선조의 흉내를 내며 헛기침을 몇 번 하고 주인장을 불러 봤지만 대답은 없고 집안에는 고요만 감돕니다. 한지를 바른 전통문을 열고 선비가 내다볼 것만 같은데 아무리 불러도 묵묵부답입니다. 사실 이번 방문은 작은 여식의 정서적인 함양과 우리 고유의 것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고자 마련한 시간이었습니다.

민속 공예가 정봉기씨댁의 정원에 있는 물을 품은 바위
 민속 공예가 정봉기씨댁의 정원에 있는 물을 품은 바위
ⓒ 강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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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장을 잠시 기다리며 집 앞을 서성이는데 구멍 난 바위 속에 고인 물을 보았습니다. 작은 동물들이 놀다가 갈 만한 바위 속의 호수에 마음을 놓아 봅니다. 예술인의 감성이 우러나는 이 해괴한 바위 속 작은 호수에서 자연과 하나가 된 추사를 떠올립니다. 물과 돌이 이미 잘 어울리는 줄은 알지만 물을 품은 바위를 보기는 처음입니다.

나무를 품고 있는 작은돌 화분
 나무를 품고 있는 작은돌 화분
ⓒ 강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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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의 솜씨로 만든 작은 돌들이 모여 꽃나무를 품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연은 서로 품어주며 지켜줍니다. 경이로운 모습입니다. 집 주인을 기다리며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 정원에서 황홀해 합니다.

손님을 마중 나오시는 정봉기님
 손님을 마중 나오시는 정봉기님
ⓒ 강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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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의 향기가 서려 있는 작은 자연 정원에는 물과 나무, 돌들이 서로 어우러져 한겨울에도 멋진 정원의 향기로움을 자아내고 있었습니다. 정원에 흠뻑 빠져 삼매경을 헤매는 중에 저기서 도인처럼 생긴 분이 빠른 걸음으로 오십니다.

허름한 헛간 같은 작업실에서 일하다가 나오실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추사체가 그려진 집안을 바라보며 주인장님을 부른 소인을 부끄럽게 여기게 했습니다. 그것도 잠시, 사람을 반갑게 맞이하는 정봉기 장인의 구수한 모습이 나그네의 시름을 잊게 합니다.

소박한 모습의 민속 공예가 정봉기님
 소박한 모습의 민속 공예가 정봉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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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예당조각공원에서 열린 옛이야기 축제에 목공예전시품을 진열하던 정 선생님을 처음 뵈었습니다. 그때 전통의상을 입으신 모습에 관심이 있어 인사를 하고 명함을 건네받은 것이 인연이 되어 오늘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정봉기님의 공방 내부모습
 정봉기님의 공방 내부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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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전시장에 온 듯한 공방에 들어섰습니다. 정 선생님이 손수 제작한 목공예품들을 보니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마치 멋진 전시장에 온 듯합니다. 한쪽 구석에는 정 선생님이 조각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과 그림도 있네요. 또 한켠에는 그동안 받은 상들이 액자 속에 걸려 있습니다. 정 선생님이 만든 추사체 서각 작품이 마치 튀어나올 듯 살아 움직이는 모습입니다.

정봉기 민속 공예가는 전남 벌교가 고향이며 서울 근교 성남에서 목기공장을 운영하던 부친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목공예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20년 전에 충남 예산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충남에 살게 되면서 상도 많이 받고 민속 공예가로서의 인정을 받게 되었다고 하네요. 그 전에는 전국 관광지로 돌아다니시며 목공예 전시를 하셨다고 합니다.

2000년에는 충남도에서 인정한 전통문화의 집에 선정된 데 이어 2004년에는 대전지방 국세청으로부터 전통향토기업으로 선정, 2013년에는 충남도를 대표하는 충남대표 문화상품에 선정되었습니다.

저도 5년 전에 아이들의 앞날을 놓고 고민하다가 충남 예산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귀촌을 했답니다. 그리고 틈나는 대로 한창 사춘기인 아이를 데리고 충남 지역 명인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현대에는 교과서 교육보다 현장 교육이 중요하니까요.

추사체가 살아 꿈틀거리는 듯한 목공예
 추사체가 살아 꿈틀거리는 듯한 목공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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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살아 꿈틀거리는 듯한 추사체가 작품 안에서 숨쉬며 절묘하고 조화로운 모습이 경이롭네요. 깊은 산골 계곡 옆에서 자생하는 물푸레나무에 48시간 먹물을 먹여 사포질을 하면 나뭇결 따라 고운 먹물선이 나타납니다. 그 위에 세한도 그림을 음양곽으로 조각한다고 합니다.

선대 정희석 선생이 목공예를 시작하고 2대 정봉기 선생 그리고 3대 자녀들이 가업을 이어 대를 잇는 민속공예가 가문인데요. 아들(30)은 가족 생계를 위해 직장에 나가고 딸(28)은 아버님의 가업을 이어 상패 만드는 일을 돕고 있다고 하네요.

목공예작품 재료는 참죽나무, 물푸레나무입니다. 물푸레나무는 우리나라 깊은 계곡에서 자생하는 나무로 1년 이상 선반과 가공 말리기를 반복하다가 사용합니다. 그리고 나무의 결을 최대한 살리고 먹물을 입혀 공예품으로 탄생합니다.

더욱 놀랄 일은, 세한붓통 뒤면에 새겨진 표창패 글귀인데요. 안희정 충남지사님께서 충남 지역에 공헌한 분들의 표창패로 세한도가 새겨진 목공예 붓통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목공예 장인의 손끝이 나무결에 닿아 절묘한 조화가 이루어진 세한도 붓통은 추사 김정희의 고결한 세한도의 의미를 깨닫고 선비의 정신을 되새기는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정봉기 선생은 2013년에 세한도 붓통을 특허청에 특허를 냈습니다. 또 미국에서 도입한 3D 기계로 입체 음양각의 많은 글씨를 수월하게 만들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정 선생님은 대흥 황새 마을에서 주민들에게 목공예를 지도하기도 합니다.

정봉기 공예가 부인 심혜숙 여사가 만든 거북이 목공예
 정봉기 공예가 부인 심혜숙 여사가 만든 거북이 목공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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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은 정 선생님의 부인 심혜숙씨가 만든 공예품인데요, 거북이들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합니다. 심 여사님은 추사고택 야외 공원에 서있는 잠자리, 황새 등 조형물들을 제작하셨다고 합니다. 나무로 만든 공예품을 아이들이 갖고 놀면 정서적 심리적 안정에 좋다고 합니다.

정봉기 선생님의 목공예 작업실을 지키는 흰 닭
 정봉기 선생님의 목공예 작업실을 지키는 흰 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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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앉아서 손님을 맞던 정 선생님은 다시 최근에 주문 받은 새한도 붓통 제작에 분주하셨는데요. 나무 먼지 나는 작업실에서 작업복을 입고 추운 날씨에도 난로 없이 작업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 옆에는 벼슬이 빨간 흰 닭 한 마리가 반려동물처럼 일하는 주인을 바라보고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1500년 전 시대의 혹한 속에서도 추사 김정희는 서릿발 같은 지조와 기개로 세한도를 그려냈습니다. 그처럼 장인의 손길로 나무에 숨결을 불어넣어 예술로 다시 태어난 추사 정신이 현대 물질만능주의에 젖은 사람들에게 정신을 가다듬게 했으면 합니다. 또 우리나라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예술문화인들이 생계 걱정을 잊고 전통예술 발전에 헌신할 수 있도록 재반 여건이 마련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태그:#세한붓통, #김정희 추사체, #목공예가 정봉기, #충남민속문화상품 선정, #추사 세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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