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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추산 가마골 용소. 영산강의 발원지다.
 용추산 가마골 용소. 영산강의 발원지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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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은 '남도의 젖줄'로 통한다. 장장 350리를 굽이돌아 호남의 너른 평야를 적시기 때문이다. 굴곡진 남도의 역사와 손마디 굵은 남도사람들도 보듬는다.

이 영산강의 발원지가 용소(龍沼)다. 담양 용추산 기슭에서 솟은 물이 바위를 타고 내려와 연못을 이루고 있다. 젖줄의 젖샘인 셈이다. 물줄기 주변으로 하얗게 얼음이 얼어 있다. 여기에 서린 전설도 전해진다.

옛날 담양부사가 이 계곡을 보려고 행차를 준비하는데, 행차 전날 밤 꿈에 백발의 신선이 나타나 오지 말라고 했다. 내일은 용이 승천하는 날이라는 이유였다. 하지만 부사는 가마골 행차를 강행했다. 때문에 하늘로 솟아오르던 황룡은 다 오르지 못하고 떨어져 피를 토하며 죽었다. 부사도 기절해 회생하지 못 했다.

담양 추월산. 산의 형세가 누워있는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다.
 담양 추월산. 산의 형세가 누워있는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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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호 수변데크. 뒤로 보이는 산이 추월산이다.
 담양호 수변데크. 뒤로 보이는 산이 추월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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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사람들은 이 연못에서 용이 솟았다고 해서 '용소'라 했다. 용소에서 흘러내린 물은 담양호로 모여든다. 담양댐은 영산강 본류의 최북단에 자리한 호수다. 담양호 산성길은 이 댐의 수변을 따라 데크로 이어져 있다. 길은 누워있는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는 추월산의 주차장에서 시작된다.

주차장 건너편 목교를 따라 담양호를 가로지른다. 지난 25일이다. 댐을 건너게 해주는 목교의 모양새도 이채롭다. 오르락내리락 부드러운 곡선미를 뽐낸다. 그 다리 위를 삼삼오오 건너고 있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나온 가족단위 여행객도 많이 보인다.

목교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찔하다. 호수 바닥까지 거리가 그만큼 멀다. 목교를 건너니 나무로 만든 데크가 수변을 따라 놓여있다. 금성산성 쪽으로 간다. 오른쪽으로 한 폭의 풍경화를 연상케 하는 호수를 끼고 걷는다.

왼편은 숲이다. 소나무와 졸참나무, 떡갈나무, 단풍나무가 빼곡하다. 빛바랜 마삭줄도 지천이다. 데크와 어우러지는 연리지도 눈길을 끈다.

담양호 수변데크. 담양호 산성길은 이렇게 수변을 따라 이어진다.
 담양호 수변데크. 담양호 산성길은 이렇게 수변을 따라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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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호 수변데크에서 보는 추월산. 산 중턱에 보리암이 들어앉아 있다.
 담양호 수변데크에서 보는 추월산. 산 중턱에 보리암이 들어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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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서 쉬어갈 수 있는 나무의자도 군데군데 있다. 잠시 의자에 앉아 담양호의 물살을 바라본다. 일렁임 없이 잔잔하다. 물속에 건너편의 추월산이 들어앉아 있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 추월산도 멋스럽다. 추월산은 해발 729m로 그리 높지 않지만 기암절벽으로 이뤄져 있다. 풍광이 빼어나다.

산 중턱 절벽에 암자도 매달려 있다. 보리암이다. 고려 때 보조국사가 나무로 매 세 마리를 만들어 날렸단다. 매는 순천 송광사와 장성 백양사, 그리고 이곳 추월산에 날아와 앉았고 그 자리에 절집을 세웠다. 그 가운데 하나가 보리암이다. 임진왜란(1592) 때 의병장 김덕령 장군의 부인이 순절한 곳이기도 하다.

추월산은 깊은 산세만큼이나 마디 굵은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금성산성과 함께 임진왜란 때 치열한 격전지였다. 동학농민군의 항전지이기도 하다. 수많은 백성들의 피로 물들었던 산이다.

연리지와 수변데크. 담양호의 수변데크를 따라 길이 만들어져 있다.
 연리지와 수변데크. 담양호의 수변데크를 따라 길이 만들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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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호의 겨울 풍경. 담양호 산성길의 시작점인 수변데크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담양호의 겨울 풍경. 담양호 산성길의 시작점인 수변데크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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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반에 겨울 찬바람이 머물러 있다. 그래도 풍광은 한없이 멋스럽다. 싸목싸목 걸으며 호수와 추월산을 감상하니 운치도 있다. 아직 금성산성까지 연결되지 않은 게 흠이라면 흠이다. 담양군은 2014년까지 여기서 금성산성으로 가는 길을 이을 계획이다. 호반 데크에서 기존의 임도와 잇는다는 것이다.

하여, 금성산성에 가려면 담양호를 돌아서 가야 한다. 금성산성 답사는 담양리조트 뒤편에 있는 금성산성 주차장에서 시작된다.

산성으로 가는 길은 여전히 호젓하다. 길도 걷기에 불편함이 없다. 길 위로 드러난 소나무의 뿌리도 애틋하다. 세월의 더께가 묻어난다. 지난 여름 휘몰아친 태풍 볼라벤에 의해 뿌리를 드러낸 소나무도 아직껏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금성산성으로 가는 길. 올라가는 길이 말끔히 단장돼 있다.
 금성산성으로 가는 길. 올라가는 길이 말끔히 단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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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용문에서 본 보국문. 금성산성의 겨울 풍경이다.
 충용문에서 본 보국문. 금성산성의 겨울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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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을 따라가니 가파른 바위 위로 성벽과 성문이 우뚝 솟아 있다. 금성산성의 외남문인 보국문이다. 성밖을 살피고 적의 공격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앞으로 도드라져 있다. 여기서부터 산성과 본격적으로 만난다.

금성산성은 고려 때 쌓았다. 임진왜란 때 의병의 거점이었다. 성내에는 주민과 관군이 머물렀다. 동학농민전쟁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마을과 관아, 절이 모두 불에 타 없어졌다. 1990년대에 동문과 서문, 남문, 북문 그리고 성곽을 복원했다.

1877년 세워진, 당시 파견 관리의 불망비를 지나면 두 갈래 길이 나온다. 왼쪽은 보국사 터로 가는 길이다. 오른편은 북문 방향이다. 충용문(내남문)에서 보국사 터를 거쳐 북문으로 간다. 여느 곳과 다를 바 없는 산길이다.

북문에서 내려다 본 전망이 좋다. 산봉우리가 첩첩이 잇대 있는 풍경도 한 폭의 수묵화다. 여기서 왼편은 연대봉과 운대봉, 동문으로 가는 길이다. 오른쪽으로는 서문을 지나 철마봉, 노적봉을 거쳐 다시 남문으로 간다. 이 능선과 성벽이 전남 담양과 전북 순창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금성산성의 겨울. 보국문에서 올려다 본 모습이다.
 금성산성의 겨울. 보국문에서 올려다 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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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산성 성곽길. 산성의 성곽을 따라 길이 이어져 있다.
 금성산성 성곽길. 산성의 성곽을 따라 길이 이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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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담양호 산성길과 연결될 서문을 거쳐 철마봉과 노적봉으로 간다. 길이 조금 가파르지만 위험하지는 않다. 성벽을 따라 걸으니 기분도 상쾌하다. 발아래로 펼쳐지는 담양호도 넉넉하다. 며칠 전 내린 눈에 흰옷으로 갈아입은 추월산도 한눈에 들어온다.

산성에서 내려오다 들른 절집 연동사도 별나다. 암벽 밑에 지장보살 입상과 삼층석탑이 서 있다. 자연석실 노천법당이다. 누구라도 지나면서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열린 법당이다. 절집의 분위기도 다르다. 일정한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다. 웅장하거나 거창하지도 않다. 소나무와 대나무, 차나무가 어우러진 요사채도 소박하다.

연동사 노천법당. 누구라도 부담없이 드나들 수 있는 야외법당이다.
 연동사 노천법당. 누구라도 부담없이 드나들 수 있는 야외법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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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찾아가는길
88고속국도 담양나들목에서 29번 국도를 타고 추월산 방면으로 간다. 추성삼거리에서 추월산·정읍 방면으로 가다보면 추월산 주차장이 나온다. 주차장 맞은편에서 담양호 산성길이 시작된다.



태그:#담양호산성길, #금성산성, #연동사, #추월산, #담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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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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