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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 타작은 10월 말에서 11월 초에 끝이 났다. 12월도 끝나가지만 이웃 마을 대동씨네 콩밭에는 두 달 전 베어 둔 콩이 그대로 있다.

"이거 왜 그대로 두셨어요?"

그는 웃고 있지만 말이 없다. 그가 웃기만 하는 이유를 나는 알지 못했다. 그의 답답함도 모르고 내가 물었다.

"콩, 일 킬로그램에 얼마예요?" 

그의 작은 눈이 커졌다 작아진다. 그리고 한 숨을 깊이 들이마신다. 아무래도 내가 실수를 한 것 같다. 그러나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지 못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지라. 돈이 중요하지라. 콩이 얼마나 필요하요? 고거 내가 그냥 줄라요."

나는 언니들로부터 콩을 사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작년에 검은 콩 서리태는 1만5000원, 매주 콩은 8000원이었다고 한다. 허나 올 해는 콩 가격이 절반으로 떨어졌다. 나는 콩을 싸게 사겠다는 생각만 했던 것이다.

콩 농사만 삼십 년을 했다는 대동씨는 올해 콩을 베어두고도 거둬들이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무 농약을 고수하다보니 콩 주위에 풀이 자라도 약을 치지 않았다고 했다. 이것을 제거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동이 필요했다. 내 가족이 먹는다는 마음으로 콩을 심었건만 가격은 터무니없이 내려갔단다. 온 정성을 들인 콩에 가격을 매기는 일은 매번 괴로운 일이라고 했다. 싼 가격으로 콩을 구매하겠다는 나의 생각이 그를 더 괴롭게 했다.

"아니요, 아는 사람이 콩을 사달라고 부탁을 해서...한 이십 키로. 그래서 육만 원 받았는데...."
"뭣이여. 육만 원! 됐소. 지가 그냥 드리지라. 돈이 문제가 아니라 아끼는 사람에게 뭔들 못 주겄소. 이십 킬로라고 했지라. 알것소."

"타작기에 넣어서 세번이상 걸러야 해요"

다음 날 대동씨는 콩을 싣고 집으로 찾아왔다. 나는 콩을 공짜로 얻어 좋긴 했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연신 고개를 숙이던 사이에 그는 한 쪽 팔을 들어 보이며 급히 가버렸다.

그날 오후 집주인은 대동씨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콩밭으로 간다고 했다. 시간이 되면 같이 가자는 말을 전했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내 방으로 달려가 옷을 갈아입고 그보다 먼저 마당으로 나가 차 옆에 섰다. 콩밭에는 대동씨와 아내 미지오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를 보자마자 대동씨는 허공을 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냥 버릴라고 했는디. 매주라도 쑤어야 쓰것네. 청국장도 맨들고..."  

팔백 평에서 천 평이 넘는 콩밭은 한 곳에 있지 않았다. 주택가나 도로와 많이 떨어져 있고 산 속에 있어 차 없이는 이동하기 힘든 곳이었다. 산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 밭은 평평하지 않고 이십 오도 정도로 기울어 있었다. 그곳에는10월에 베어두었다는 콩 가지가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우리는 밭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일을 시작했다. 먼저, 흩어진 콩가지들을 모아야 했다. 콩가지를 모으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콩도 공짜로 받았으니 그 값을 해야지. 가만히 앉아서 하는 일도 아니고 콩을 모아서 나르기만 하면 되는 일인데모. 운동을 한다고 생각해야지. 빨리 끝나면 시원한 막걸리라도 한 사발 사달라고 졸라야지.'

넓은 밭에 베어둔 콩가지를 모아 나르고 있다.
▲ 콩가지 나르기 넓은 밭에 베어둔 콩가지를 모아 나르고 있다.
ⓒ 김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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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씨 부부는 빌려온 콩 타작기를 돌리고 나와 집주인은 흩어진 콩을 커다란 포대에 모아 기계 근처로 옮겼다. 그러면 대동씨가 타작기 안으로 콩을 집어넣었고 미지오씨는 자루를 들고 콩이 나오는 것을 담거나 옆으로 세어 나온 콩가지들을 모아 다시 기계 속으로 집어  넣는 일을 했다.

우리가 모은 콩가지를 기계 속에 넣고 있는 대동씨
▲ 콩가지를 타작기에 넣는 대동씨 우리가 모은 콩가지를 기계 속에 넣고 있는 대동씨
ⓒ 김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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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콩이 달린 대가 타작기 안으로 들어가면 콩이 저절로 분리되어 콩은 콩대로 나오고 콩깍지와 대는 다른 구멍으로 뿜어져 나온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생각과는 달리 콩깍지, 잘게 부서진 대가 일부는 기계의 바람에 날아갔지만 그것들은 콩과 함께 자루 속으로 떨어졌다.

그 속으로 콩과 콩깎지나 부서진 가지들이 같이 들어간다.
▲ 자루속으로 들어가는 콩 그 속으로 콩과 콩깎지나 부서진 가지들이 같이 들어간다.
ⓒ 김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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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왜 이래? 콩에 불순물이 왜 이리도 많아요? 이렇게 해서 콩을 팔 수 있어요?"
"무슨 소리요. 이렇게 나온 것을 다른 타작기에 넣어서 세 번 이상은 걸러야 허요. 그 다음에 다시 손으로 일일이 골라내야지라."

타작기를 거친 콩은 다시 분리기에 여러 번 들어갔다 나왔다.
▲ 분리기에서 나오는 콩 타작기를 거친 콩은 다시 분리기에 여러 번 들어갔다 나왔다.
ⓒ 김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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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타작기를 거친 콩은 다시 분리기에 여러 번 들어가고 나야 손으로 고르는 작업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이건 무슨 소리. 내가 밥을 할 때 넣어 먹던 콩, 청국장 콩이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친단 말이야.'

나는 왜 콩은 쉽게 수확할 수 있는 작물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매일 정제된 콩만 손으로 만지고 보았기 때문이다. 한 번이라도 이런 일을 했었더라면 '콩의 가격이 비싸다느니 차라리 안 먹고 말지'라는 헛소리는 하지 않았을 터인데 말이다.

나는 잠시도 쉬지 않았다. 콩 타작기에서 나오는 먼지를 들이마시며 재채기에 콧물을 줄줄 흘려가면서도 쉴 수가 없었다. 대동씨에게 일 킬로의 가격을 물어본 것이 미안했고 공짜로 콩을 받고 좋아했던 내가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또다시 눈에서 피가 나는 일이 생긴다하여도 일을 하다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내 일처럼 온 정성을 다하여 도울 것을 다짐했다.

갑자기 기계가 작동을 멈추었다. 이런 바쁜 와중에 기계가 고장이 나다니 큰일이다. 나는 걱정이 되어 타작기를 돌리는 대동씨 부부에게 달려 가 부부의 표정을 살폈다. 그런 나를 보던 대동씨가 입을 열었다.

"너무 열심히 허요. 쪼까 쉬시라고. 전혀 일도 못 할 줄 알아드마. 아, 대단 허요."
"오메, 내 일이라고 생각 허고 하지요. 지가 농사군 체칠인갑소. 헤헤."

나는 그 말에 어깨의 통증을 잊었다. 제채기를 하고 훌쩍 거리는 나를 보며 나의 지인도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정말, 나는 농사꾼 체질인가보다.

"농작물은 사람 입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 것소. 먹는 거 갖고는 장난을 치면 안 되제. 양으로 승부할게 아니라 질이 좋아야 지라. 지는 삼십 년간 농사를 지으면서 사람 몸에 나쁜 것은 만들어도 안 되고 먹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 허요. 먹는 것 갖고 장난치는 건 나쁘제. 빨리 만들어지는 음식이 시간을 아껴주기는 하지라. 근디 살아가는 시간을 줄일 수도 있고 몸을 괴롭게 한당께."

사위가 어두워지고 있었지만 콩 타작을 끝내지 못하고 산속을 나와야 했다. 내일도 그 다음날도 대동씨 부부는 콩을 타작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긴 시간동안 쓰라린 눈을 비벼가며 콩 고르기를 할 것이다.

늦은 저녁까지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나는 과로로 쓰러지지도 피곤을 느끼지도 않았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자지 못했다. 아니 잠을 청하지 않았다.

대동씨가 온 정성을 기울여 심었다는 콩을 받아들고 그냥 잠이 들 수가 없었다. 콩자루에 가득한 콩은 타작기와 분리기를 여러 번 거쳤다지만 골라내야 할 것들이 많았다. 나는 날이 새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일하는 대동씨의 부부를 생각하며 콩을 골랐다. 


태그:#콩, #콩타작기, #콩고르기, #분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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