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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봉인 운장대(1126미터)에 오른 일행들 서상규, 서진석, 이승노씨
 주봉인 운장대(1126미터)에 오른 일행들 서상규, 서진석, 이승노씨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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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8일. 스치듯 지나가는 짧은 가을철의 끝자락을 붙잡고 전북 진안에 있는 노령산맥의 주봉인 운장산 산행에 나섰다. 아침 일찍 승용차 한 대를 몰고 서울을 출발한 일행 4명은 11시에 산행 들머리인 진안군 주천면 내처사동에 도착했다.

늦가을의 월요일이라 그런지 제법 넓은 주차장은 차량 한 대 보이지 않고 썰렁한 풍경이다. 마당 한쪽에 차를 세워놓고 곧바로 산행에 나섰다. 개울을 건너자 등산로 옆에 서있는 감나무에서 40대 주민부부가 감을 따고 있다.

등산로 초입에서 감폭탄을 맞다

"앗! 이게 뭐야?"

그런데 앞서 걷던 일행이 갑자기 비명을 지른다. 감나무 밑을 지나는 순간 감 한 개가 일행 한 사람의 머리 위로 툭 떨어져 내린 것이다. 주민이 따고 있는 감나무 줄기와는 전혀 다른 감나무 줄기였다. 감은 서리를 맞아서인지 전혀 단단하지 않고 아주 물렁한 홍시상태여서 일행의 머리에 부딪치며 곤죽이 되어버렸다. 일행의 모자와 저고리에 먹칠이 아니라 감칠을 해버린 것이다.

"우왓, 이게 웬 날벼락이야"

주먹만큼이나 커다란 감폭탄을 맞은 일행은 황당한 표정을 짓는다. 함께 걷던 일행들이 휴지를 꺼내 모자와 등산복 저고리에 범벅인 된 감 찌꺼기를 닦아내고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산길 양쪽으로는 푸른 산죽이 지천이다.

감폭탄(?)을 떨어뜨린 감나무
 감폭탄(?)을 떨어뜨린 감나무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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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 서있는 이정표엔 삼장봉 2.5Km, 운장대 3.1Km라 쓰여 있다. 정상인 운장대가 3Km 거리라면 산행시간은 충분한 여유가 있을 것 같아 느긋한 마음으로 산을 올랐다. 능선길에 서있는 활엽수들은 대부분 잎이 져버려 앙상한 모습이어서 조금은 쓸쓸한 풍경이다.

가끔씩 급한 경사길이 나타났지만 등산로는 대체로 좋은 편이었다. 그렇게 1시간 30분쯤 오르자 저 멀리 높은 봉우리 하나가 바라보인다. 운장산 줄기에서 이어진 구봉산이다. 잠시 후 급경사 길에 걸린 밧줄을 붙잡고 오르려는데 밧줄 중간이 너무 달아버려 금방이라도 뚝 끊길 것 같은 불안한 모습이다. 밧줄을 포기하고 바위 모서리를 잡고 오르자 저만큼 첫 번째 봉우리인 삼장봉이 바라보인다. 삼장봉의 다른 이름은 동봉이다.

바위로 뒤덮인 삼장봉에 오르자 주변경관이 탁 트여 시원한 풍경이다. 앞쪽으로 바라보이는 봉우리가 주봉인 운장대, 주봉 능선을 따라 오른편으로 이어진 봉우리가 서봉인 칠성대다. 그런데 동봉인 삼장봉 표지석을 살펴보니 '삼장봉 1133m'라고 쓰여 있다. 뭔가 이상하다, 산행정보엔 운장산의 높이가 1126m라고 했는데 말이다.

주봉인 운장대보다 7마터나 높은 삼장봉
 주봉인 운장대보다 7마터나 높은 삼장봉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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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회 리본으로 뒤덮인 운장대 봉우리 송신소 울타리
 산악회 리본으로 뒤덮인 운장대 봉우리 송신소 울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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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봉이 주변 봉우리보다 7미터나 낮은 산과 리본으로 뒤덮인 송신소울타리 

삼장봉에서 잠깐 땀을 들이고 주봉인 운장대를 향해 다시 걷기 시작했다. 운장대까지는 불과 600미터. 약간의 내리막 능선길을 걷다가 다시 완만한 오르막길을 오르자 곧 주봉인 운장대에 도착했다. 주봉 표지석엔 '운장대 1126m'라고 쓰여 있다. 그렇다면 주봉인 운장대가 주변봉우리인 삼장봉보다 7m나 낮은 것이다. 주봉이 주변봉우리보다 낮은 산, 지금까지 60여개의 100대 명산을 올랐지만 이런 산은 처음이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왜 주변 봉우리보다 낮은 봉우리를 주봉으로 이름 붙였을까? 운장산의 산 이름은 19세기 중엽까지는 주줄산으로 불렀다고 하나 정확한 기록은 없다. 운장산의 산 이름은 오성대에서 은거한 조선 중종 때의 성리학자 운장 송익필의 호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운장대 표지석 옆에는 측량할 때 기준이 되는 삼각점이 표시되어 있었다.

"아니 저건 뭐야. 송신소인가? 그런데 울타리에 주렁주렁 매달린 저것들 모두 산악회 리본들이잖아"
"우와! 정말 그러네, 그동안 산에 많이 올랐지만 산악회 리본이 저렇게 많이 매달린 풍경은 처음 보는 걸"

일행들이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주봉 표지석에서 10여 미터 근처에 안테나가 세워져 있는 송신소처럼 보이는 컨테이너 박스가 놓여 있었다. 그런데 그 주변에 둘러쳐진 철제울타리 한쪽 면이 온통 각양각색의 산악회 리본들로 뒤덮여 있었기 때문이다. 리본은 100개가 훨씬 넘을 것 같았다.

해발 1120미터로 세번째 봉우리인 칠성대
 해발 1120미터로 세번째 봉우리인 칠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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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장대에서 바라본 1133미터 삼장봉
 운장대에서 바라본 1133미터 삼장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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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봉에서 잠깐 쉬며 바라보는 경치가 일품이다. 주변에 더 높은 산이 없어 일망무제로 펼쳐진 높고 낮은 산들과 골짜기가 늦가을의 풍치를 아낌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간식을 나누어먹고 서봉을 향했다. 능선으로 이어진 중간에 우뚝 솟은 바위봉우리 칠성대는 600미터 거리에 있었다.

능선길을 따라 잠깐 걷자 곧 거대한 바위봉우리가 앞에 버티고 솟아있다. 서봉인 칠성대 바위 아래엔 등산객들이 쉬어갈 수 있는 벤치가 두 개 놓여 있었지만 앉아 쉬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스산한 바람이 휩쓸고 지나가는 쓸쓸한 풍경이다. 벤치 왼쪽 뒤로 열린 길은 연석산으로 가는 길이다. 칠성대라는 이름의 유래는 북두칠성의 전설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전설의 내용은 알 수 없었다.

봉우리 표지석에는 '칠성대 1120m'라고 쓰여 있다. 높이는 주봉이나 삼장봉에 비해 조금 낮았지만  바위봉우리의 위용이 주변의 봉우리들을 굽어보는 듯하여 독제봉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도 불린다. 근처에는 전망 좋은 너른 바위가 있다. 멀리서 바라보았을 때는 웅장한 고래처럼 보이는 산의 머리 부분에 해당되는 지점이다.

산죽으로 뒤덮인 등산로
 산죽으로 뒤덮인 등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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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밭두렁의 단풍
 마을 밭두렁의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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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사라져버린 골짜기 바위들을 밟고 내려오다

운장산을 대표하는 3개의 봉우리를 둘러보고 하산길로 나섰다. 하산코스는 칠성대 정상 직전에 세워져 있는 이정표의 '피암목재-내처사동' 방향으로 잡았다. 산길 주변은 여전히 푸른 산죽들이 뒤덮여 있다. 20여분을 내려가자 갈림길이 나타난다. 활목재 갈림길이다.

왼쪽으로 가는 길은 피암목재 방향이어서 내처사동 방향인 오른쪽으로 길을 잡았다. 이곳에서부터는 이전까지의 산길과 달리 비교적 거칠었다. 몇 년 전에 휩쓸고 간  태풍의 영향인지 울퉁불퉁 불규칙한 돌길에 쓰러진 나무가 자주 눈에 띈다. 어떤 곳은 아예 길이 사라져버려 당황하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골짜기와 산자락엔 아직 누렇고 빨갛게 물든 단풍이 조금씩 남아 있었다.

그렇게 조금 더 내려가자 말라버린 골짜기에 크고 작은 바위들만 즐비하다. 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할 수없이 바위들을 밟고 건너뛰며 200여 미터를 더 내려갔다. 매우 피곤하고 위험한 길이었다. 어렵사리 오른편 작은 능선에 오르니 다시 산길이 나타난다. 산길을 따라 잠깐 내려오자 외딴집과 마을길이 나타났다.

산행 들머리 내처사마을 표지석
 산행 들머리 내처사마을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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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입구에 서있는 수령 300년이 넘은 보호수 소나무의 멋진 모습
 마을 입구에 서있는 수령 300년이 넘은 보호수 소나무의 멋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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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로 내려서자 눈에 보이는 풍경이 달라진다. 양지바른 곳이어서인지 산자락도 개울가도 온통 빛깔고운 단풍천지다. 아름답고 멋진 풍경에 취해 피곤함도 잊고 산행 들머리였던 내처사동으로 걸었다. 마을입구에는 수령 300년이 넘은 소나무 거목이 보호수로 지정되어 멋진 모습으로 늠름하게 서있다.

주차장엔 여전히 우리들의 애마 한 대가 석양빛에 쓸쓸한 모습이었다. 산행시간은 휴식시간을 포함에서 5시간 10분이 걸렸다. 저녁은 다음 산행지인 추월산 아랫마을에서 먹기로 하고 전남 담양을 향해 달렸다. 산행을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 때문이었을까, 굽이굽이 돌아 나오는 '운일암반일암' 골짜기의 풍광이 더없이 아름답기만 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0월 말에 다녀온 100대 명산 65번째 산행기입니다.



태그:#운장산, #삼장봉, #칠성대, #내처사마을, #보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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