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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모양의 기암괴석
▲ 카파도키아 낙타모양의 기암괴석
ⓒ 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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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아주머니들이다. 터키 패키지 여행을 같이 간 일행 중, 아주머니 세 분의 걸음이 제일 빨랐다. 한 곳도 놓치지 않으려는 열정이 보였다. 나이는 오십대로 보이는데 체력은 제일 좋았다.

여행 내내 아주머니들이 어떤 사이인지 궁금했다. 다섯 번째 날, 버스에서 아주머니께 살짝 물었다.

"세 분은 친구 사이신 거죠?"
"어~ 우리? 초등학교 동창."

사실 여행 중 제일 부러웠던 분들이다. 나중에 저분들처럼 친구와 여행을 다니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려면 건강하고 경제적 여유도 있어야 하며,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무엇보다 함께 여행 할 친구가 제일 부러웠다. 나에게는 10년, 20년이 지나 함께 여행할 친구가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신기한 풍경들
▲ 카파도키아 신기한 풍경들
ⓒ 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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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친구들과 연락이나 하고 사는 걸까? 결혼하고 아이 셋 낳고 살다 보니 일 년에 한 번 친구들 만나기도 쉽지 않다.

"진짜 대단하신 거 같아요. 여자 친구들끼리 이렇게 여행 오는 게 쉽지 않잖아요."

친구들과의 여행이 내겐 하늘의 별처럼, 그림의 떡처럼 보였다. 의기소침해졌는데, 한 아주머니가 말했다.

"한참 아이들 키울 때는 우리도 이렇게 못 살았어. 다 키워놓고 하는 거지."

아주머니는 내 속마음을 알고 계셨나? '아이들 조금 더 키우면 자네에게도 이런 날이 올 거야!'하고 위로해 주는 듯했다. 낙담하고 있었는데, 그분은 '나도 예전에 너와 같았다'고 희망을 줬다. 그래 나를 잃지 않고 열심히 살다 보면 나에게도 그런 날이 오겠지. 그분들은 나의 미래였고, 나는 그분들의 과거이다.

아주머님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주셨다. 모든 이야기의 결론은 하나였다.

"자식에 너무 헌신하지 말고 살아."

삶에서 우러난 이야기는 내 마음을 훈훈하게 했다. 남편과 나는 이야기를 들으며 웃었다. 패키지 여행의 단점이 장점으로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패키지 여행이 아니었다면 내가 이렇게 지혜로운 분들을 어디서 만나 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고마운 일이다.

아타튀르크 초대 대통령 동상
▲ 탁심 광장 아타튀르크 초대 대통령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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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여행 다섯째 날, 우리 식구들은 터키 여행의 백미라 불리는 열기구 관광을 하지 못 했다. 안타깝게도 말이다. 이유는 딱 한 가지. 4인 가족이 타려면 백만 원 정도 내야 하는데, 비용이 부담스러웠다. 열기구 관광을 포기한 대신 우리 가족은 아침을 여유롭게 시작할 수 있었다. 열기구 관광은 해 뜨는 장면을 보기 위해 새벽에 진행된다.

새벽에 나간 열기구 투어 일행이 호텔에 도착할 때까지 우린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출발 준비를 했다. 일행이 돌아온 뒤 호텔을 나섰다. 우린 괴레메 골짜기 그리고 파샤바 계곡의 멋진 모습을 사진기에 담았다. 카파도키아의 멋진 돌들은 버섯을 닮았고 그곳에는 교회들도 있었다고 한다. 괴이한 암석은 이곳을 지구가 아닌 외계로 착각하게 한다.

군밤장사
▲ 탁심 광장 군밤장사
ⓒ 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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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녀석은 어디에서 들었는지 카파도키아 아이스크림을 사달란다. 비가 부슬부슬 내려서 덜덜 떨고 있어서 아이스크림을 안 사주려고 했는데. 카파도키아 아이스크림이 유명하다고 했다. 아이들이 먹는 것을 한 입 먹어 보니 꼭 찹쌀떡을 얼려 만든 것처럼 쫀득했다. 추위에 오들오들 떨면서 먹을 만큼 맛이 좋았다.

우린 카파도키아를 둘러보고 터키석 전시장에 갔다. 터키석을 몸에 지니고 있으면 행운이 온다 했다. 사람들은 꽤 관심 있어 했다. 그리고 건물 지하에 있는 식당에 가서 항아리 케밥을 먹었다. 케밥의 종류는 진짜 다양했다. 형태도 많이 달랐다. 항아리 케밥은 한국에서 먹는 갈비찜 느낌이 났다. 물론 맛도 좋았다.

카이세리 공항에서 탄 비행기는 우리를 이스탄불 공항에 내려주었다. 한 시간 반이 걸렸다. 금요일 오후 5시,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공항 앞은 혼잡했다. 버스와 경찰차 그리고 짐을 끌고 다니는 여행객들로 뒤엉켜 있었다. 사람들은 신호등의 불빛에 상관없이 움직였다.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렸다.

이스탄불 번화가
 이스탄불 번화가
ⓒ 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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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먹을거리들
▲ 이스탄불 시내 다양한 먹을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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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나온 우리는 시내로 야경투어를 하러 가야 했다. 시내로 향한 길은 더 막혔다. 버스에 짐을 올리고 자리에 앉으니 이스탄불 시민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어딘지 모르게 들뜬 모습이다. 여기 사람들은 금요일 저녁이면 가족들과 멋지게 차려 있고 식사를 하러 가는 경우가 많단다.

그런데 우리 버스 바로 앞의 승용차에서 젊은 여자가 내렸다. 승무원복을 입고 있다. 남자가 내려서 포옹을 하고 키스를 한다. 콘야 등 내륙지방에서는 상상도 못 할 모습이다. 시내로 한참을 들어가니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수로가 보인다. 웅장하다. 수로를 통해서 먼 거리에 있던 지하수를 끌어다 상수도로 사용했고, 오는 동안 자연스럽게 정수까지 되었다고 한다.

꽉 막힌 도로 덕분에 버스 안에서 이스탄불 도심을 구경할 여유를 얻었다. 그런 한가로움이 좋았다. 그런데 순간 버스 밖에 무언가 쌩하고 지나갔다. 숨이 멎는 듯 깜짝 놀랐다. 도로에 사람이 서 있었다. 그것도 어린아이가. 한국에서 길 막히는 곳에 서 있던 오징어 장수처럼. 가이드에게 물으니 꽃을 파는 집시 아이란다. 터키뿐만 아니라 유럽의 다른 도시에도 노숙을 하는 집시가 많다고 한다. 너무 위험천만한 일인데 마음이 아팠다.

우린 탁심 광장에 내렸다. 쇼핑센터 건립을 반대하면서 올 초에 대규모 시위가 열렸던 곳인데 쇼핑센터는 어떻게 되었을까? 가이드에게 물었다. 다행히 쇼핑센터 만드는 계획은 무산되었단다. 버스에서 내리니 공기가 쌀쌀했다.

가이드는 우리에게 자유시간을 주었다. 둘째 녀석이 군밤을 사달란다. 군밤 장사에게 가서 군밤을 샀다. 달라는 대로 터키리라를 내고 밤을 까먹으며 걸었다. 그런데 군밤값이 얼마지? 계산하고 보니 군밤값이 6천 원이다. 가장 작은 봉투였는데.

"야, 이게 6000원이래. 겨우 이게 엄마는 이렇게 비싼 군밤을 처음 먹어본다. 한국에선 3000원일 텐데 어쩜 이렇게 비싸냐?"

군밤을 사달라고 졸랐던 둘째 녀석도 깜짝 놀라는 눈치다.

거리엔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명동거리와 같았다. 사람이 너무 많으니 소매치기당하면 어쩌나 아이들 손을 놓치면 어쩌나 긴장이 되었다. 그런데 그 사람 많은 길을 그 밤에 청소차가 지나가며 청소를 한다. 신기했다.

다리 아래 카페, 늘어진 줄은 낚싯줄이다.
▲ 이스탄불 야경 다리 아래 카페, 늘어진 줄은 낚싯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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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시간이 끝나서 일행을 만났다. 그리고 지하철을 탔다. 그리고 우린 강가 다리 밑 카페에서 차를 마셨다. 그런데 무슨 줄들이 아래로 늘어져 있다. 가만 보니 그 줄을 따라 물고기가 위로 올라간다. 다리 위해서 낚시하는 사람들 낚싯줄이다. 카페에서 아주 귀여운 돌쟁이 아기를 만났다. 그런데 아기는 낯을 가리지 않고 우리에게 와서 안겼다. 부모에게 돌아간 아기를 보고 있는데 아빠가 아기를 안고 있고 엄마는 담배를 피우고 있다. 담배에 대해서 관대한 나라라 하더니 참말인가 보다. 한국에선 상상도 못 할 광경이다. 그러고 보니 카페에는 물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많았다. 나도 물담배를 처음 보았다. 우린 성 소피아성당과 블루 모스크와 돌마바흐체 궁전의 야경을 보고 호텔로 갔다.

호텔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늦은 밤이었다. 피곤했지만 쉽게 잠에 들지 못했다. 동양과 서양이 어우러진 매력 도시 이스탄불을 밝은 대낮에 만난다는 기대감과 터키에서의 마지막 밤이란 아쉬움 때문에.


태그:#터키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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