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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길을 걷다, 혹은 어떤 장소에서 만나지는 안면이 있는 이들과 일상적으로 나눔직한 인사 아닌가. 그런 인사가 이 시대 우리에겐 전혀 다른 의미로 자리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선배님들, 학우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제 막 1학년 2학기 기말고사 시험이 끝나 놀면서 SNS나 하고 시간을 보내던 1학년입니다. 저는 차타고 15분도 안 걸리는 롯데마트 앞에서 국가기관인 국정원이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선거에 개입한 정황들이 속속들이 드러나 촛불집회가 일어났을 때도 안녕했고, 그것이 직무중 개인의 일탈이며 그 수가 천만 건이라는 소식이 들릴 때도 전 안녕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앞 수송동성당에서 시국미사가 일어났을 때도, 또 철도민영화에 반대하여 철도파업이 일어났을 때도 전 안녕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고등학생이니까요."

이렇게 시작하는 한 여고 1학년 학생의 대자보가 학교에 붙고, 이를 학교 측이 떼어내는 오늘에 이르러 "안녕하십니까?"란 말은 더 이상 우리들에게 미래에 대한 확신에 찬 인사가 되지 않음을 깨달았다. 이 어린 학생은 자신이 배우는 국어교과서의 한 부분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고 있다.

"여럿의 윤리적인 무관심으로 해서 정의가 밟히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거야. 걸인 한 사람이 이 겨울에 얼어 죽어도 그것은 우리의 탓이어야 한다. 너는 저 깊고 수많은 안방들 속의 사생활 뒤에 음울하게 숨어 있는 우리를 상상해보고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생활에서 오는 피로의 일반화 때문인지 저녁의 이 도시엔 찬바람만이 지나간다."

오늘 난 이 새벽 잠 못 이루고 창밖 흐린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우리 자식들에게 과연 어떤 미래를 물려주고 싶은가? 조용히 있으면 나에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 다행스러운 일인가? 과연 그것이 내가 안녕하고 우리 아이들의 내일이 안녕하게 할 수 있는 일인가?'

생각은 생각을 물고, 의문은 또 다른 의문을 물어 끝없이 해답을 찾아 생각의 바다로 흘러간다. 불의를 보면 그에 항거하라 가르쳐야 할 우리가, 고통을 나누는 법을 가르쳐야 할 우리가 지금 우리 자식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외면하는 법부터 가르치고, 몸 사리는 법부터 가르치는 우리 아닌가.

세상이 이렇게 미리 예보되는 날씨처럼 어떤 현상들이 발생할 것이란 예보는 없다. 그러나 그 세상에서 발생할 미래의 사건들은 현재의 움직임으로 예측되어 지는 법 아닌가.
▲ 흐린 하늘에 폭설이 예고된 오늘의 한계령 자락 '필례길' 세상이 이렇게 미리 예보되는 날씨처럼 어떤 현상들이 발생할 것이란 예보는 없다. 그러나 그 세상에서 발생할 미래의 사건들은 현재의 움직임으로 예측되어 지는 법 아닌가.
ⓒ 정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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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격을 높인다며 이명박 정권이 호들갑스럽게 설치던 그 때, 사이판에서 불의의 총격으로 무고한 우리 국민이 고통을 겪은 일이 있다. 경상자만 있었다 해도, 그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해도 상관하지 않았으련만…. 하반신을 평생 사용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국민이 있음에도 당시 우리를 지켜야 할 정부는 너무도 무관심했다.

현지에서 길안내를 하던 가이드는 총격을 알아차리고 저 살자고 숨었어도 그 책임도 묻지 않고, 오히려 연예인들을 사이판으로 보내 관광을 시키며 홍보에 열을 올리던 정부와 방송사를 보며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1개월 이상 이 사건을 다루어 글을 쓰고, 서울을 몇 번 찾아 직접 피해자를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전달했다. 미미하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그들의 고통을 나누고자 했던 것이다. 그 때 무관심한 이들에게 내가 던진 질문도 이와 다르지 않다. "지금 당신은 안녕하십니까?" 바로 이 내용이다.

다른 사람의 고통으로 생각되어 지금 피하면 될 줄 알지만, 세상은 항상 부지불식간 내가 외면하고 피했던 고통의 시간이 자신에게 찾아온다는 사실을 알면 "지금 당신은 안녕하시느냐"는 질문에 두려움부터 느낄 것이다.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 우리는 이미 안다. 알면서 방관자로 남아 내 자식들에게 그 방관의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인가? 다시 이 새벽 흐린 하늘에 조용히 묻는다.

"지금 우리는 안녕한가?"


태그:#안녕하십니까?, #사이판 총격사건, #이명박 정부,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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