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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주최하는 공모전의 '저작권 귀속조항'이 대학생들의 저작권을 침해한다.
 기업이 주최하는 공모전의 '저작권 귀속조항'이 대학생들의 저작권을 침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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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꿈이 있는 대학생 양윤식(25)씨는 바쁜 학업 중에도 시간을 쪼개 시나리오나 수필 공모전에 참여한다. 공모전에 지원할 때마다 많은 시간을 들여 준비하지만, 한 번 제출한 작품은 다시 쓸 수 없다. 주최 측이 공모 요강에 넣은 '저작권 귀속조항' 때문이다. 기존의 작품을 수정하는 것 또한 유사 시비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에 응모 때마다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내야 하는 실정이다. 그는 "직접 쓴 작품인데 제출하고 나면 당선되지 않아도 저작권을 돌려 받지 못해 버리는 기분"이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대학생들의 저작권이 위태롭다. 한 음악 프로듀서가 저작권료만 연 10억 원을 벌어 화제인 요즘, 대학생들의 저작권은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취업을 위해 수많은 공모전에 대학생들이 지원하지만 그들의 저작권은 응모하는 즉시 주최 측에 넘어가기 때문이다. 일부 당선작의 경우 상금을 받지만, 그마저도 큰 공모전이 아닐 경우 한 학기 학비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 금액인 경우가 허다하다. 작품의 사용 수익에 대한 언급이 아예 없는 공모전도 상당히 많다.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들 사이에 '5대 스펙'이라는 말이 있다. 그중 하나가 공모전 수상내역이다. 대학생 김효진(23)씨는 "누구나 다 하는 공모전을 안하면 뒤처질 것 같다"며 "어떻게든 이력서의 한 줄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고 공모전 참여 이유에 대해 말했다.

지난 2006년 취업사이트인 잡코리아에서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대학생 684명 중 공모전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51.8%(354명)로 절반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공모전 참여 경험이 없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향후 공모전 참여'에 대해 물었을 때 59.7%인 197명이 그럴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비록 7년 전 설문조사이긴 하지만, 대학생들의 공모전 참여는 더해지면 더해졌지 줄지 않았다.

대학생 울리는 '저작권 귀속조항'

한 기업의 광고공모전 요강. '수상작품 및 응모작품의 저작권은 회사에 귀속된다'는 말이 유의사항에 적혀있다.
 한 기업의 광고공모전 요강. '수상작품 및 응모작품의 저작권은 회사에 귀속된다'는 말이 유의사항에 적혀있다.
ⓒ 인터넷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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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법 제10조 2항에는 '저작권은 저작물을 창작한 때부터 자동적으로 발생하며, 원칙적으로 창작한 자에게 주어진다'라는 문구가 있다. 즉, 창작자는 자신의 저작물을 이용하고 변형할 수 있는 일체의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공모전에서는 창작자의 권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기업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지난 11월 열린 한 기업의 디자인 공모전 요강에는 '응모 및 당선 작품의 판권·사용권·저작권·지적재산권 등 모든 권리는 귀사에 귀속됩니다'라는 내용이 명시돼 있었다. 실제로 11월 11일부터 17일까지 일 주일간 공모전 누리집 '스펙업'에 올라온 모집요강 게시글 34건 중 23건에 저작권 귀속조항이 포함돼 있었다. 많은 공모전들이 창작자들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는 수상자뿐 아니라 응모자의 저작권까지 모두 귀속된다는 것이다. 이로써 기업이 수상작이 아닌 작품의 아이디어 등을 사용하더라도 창작자는 그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없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때문에 인터넷 상에는 공모전에 참여했다가 저작권이 귀속돼 다른 공모전에 출품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변형하거나 개인적인 사용을 하지 못한다는 학생들의 불만이 늘고 있다.

S기업의 광고 공모전에 참여했던 허진우(26)씨는 "내가 제출한 작품이 당선되지 않았는데 유사하게 변형돼 TV광고에 등장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며 "어떻게든 보상받고 싶었지만 이미 저작권이 기업 측으로 넘어간 상태라 불가능하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이처럼 응모와 동시에 저작권을 포기하게 돼 향후 창작자의 작품에 대한 사용 수익 등의 보상은 어렵다. 특히 문학작품이나 디자인, 아이디어 공모전의 경우 작품의 변형을 통한 활용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저작권이 귀속되면 다시 사용하거나 변형할 수 없어 2차적 생산이 불가능한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저작권이 인정되지 않으면 창작물 변형 등을 통해 사용의 수익이 발생할 경우여도 창작자는 이익을 보지 못한다. 대기업 광고의 경우 한 번의 노출로 발생하는 수익이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 때문에 이는 창작자의 큰 손실로 볼 수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대학생들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공모전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 대학생 김광석(24)씨는 "스펙을 쌓으려면 공모전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출품조차 못한다"며 "공모전에서 기업과 대학생 사이에 '갑을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고 평했다.

기업 측 "공모전은 강요 아닌 선택"... 법적으로는 문제 없어

하지만 기업의 입장은 달랐다. A기업의 한 인사담당자는 "공모전은 강요가 아닌 개인의 선택"이라며 대학생들의 자율적인 참여임을 강조했다. 그는 "대학생들에게는 스펙이 되고, 기업에게는 좋은 소스가 될 수 있다"며 "서로가 윈윈 관계"라고 설명했다.

현업에 종사하다보면 생각이 고착화 되는 경우가 많아 대학생들의 신선한 아이디어가 필요하다는 것이 기업의 입장이다. 이 담당자는 "대학생 공모전을 개최하면 값싸게 아이디어들을 모을 수 있다"고도 말했다.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 박남규 계약팀 담당자는 "저작권이 권리를 넘어 재산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해 저작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저작권, 재산이다"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 박남규 계약팀 담당자는 "저작권이 권리를 넘어 재산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해 저작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이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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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박남규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 계약팀 담당자는 "대학생들이 저작권 침해를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저작권은 권리를 넘어 재산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며 "눈앞에서 돈을 뺏겠다는데 가만히 지켜보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기업의 공모전 저작권 귀속 조항은 현행 저작권 법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공모전은 민법상 '현상광고'에 해당한다. 법적 해석은 주최 측의 공모를 '청약'으로, 출품을 이에 대한 '승낙'으로 본다. 계약자유의 원칙상 현상광고의 계약 내용은 자유롭게 정할 수 있어 응모 시 저작권을 양도한다는 조건의 청약도 가능하다. 기업이 제시한 청약에 대한 승낙은 대학생의 자유의사이기 때문에 법에 어긋나지 않는다.

모든 기업이 창작자의 저작권을 귀속하지는 않는다. 주최 측과 창작자의 계약 관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명시해 모집하는 공모전도 있다. 길벗스쿨에서 주최한 지식교양만화상 공모전의 경우, '수상 작품의 저작권은 저자에게 있고 출판권과 배타적 발행권(저작물을 발행하거나 복제·전송할 수 있는 권리)은 길벗스쿨에 있음'이라고 명시했다. 또한 '선인세를 넘는 판매분에 대해 추가 인세를 지급한다'는 조항을 둬 기업과 창작자가 서로의 권리를 배려할 수 있게 했다.

특허청 "가이드라인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지난 9월 취업정보업체 인크루트가 공모전 참여 경험자 18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공모전 참여자의 아이디어 보호 강화를 위한 요구 사항' 설문에서 '아이디어에 대한 권리귀속'이 36.1%로 가장 많았다. 또한 '아이디어에 대한 활용 및 보상' 항목이 24.6%로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권리 귀속이나 아이디어 활용에 대한 보상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년부터 공공기관이 주최하는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아이디어의 권리가 제안자에게 귀속된다는 점이다. 정부는 지난 13일 제5차 창조경제위원회에서 '공모전 아이디어 보호 가이드 라인'을 확정했는데, 여기에 ▲ 주최 측의 비밀준수 의무 등 명시 ▲ 주최 측의 아이디어 활용 때 제안자 선택권 강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대학생 공모전 저작권 보호에 대해 박남규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 계약팀 담당자는 "가장 먼저 저작권이 '존중해야 하는 권리'임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진단했다. 이어 "남의 저작권도 보호하고, 내 저작권도 보호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기반 돼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지적재산권학 홍승기 교수는 "기업에서 대학생과 서로 만족할 수 있는 공모 계약을 맺을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며 "국가에서 나서서 억울하게 저작권을 뺏기는 대학생들이 없도록 조치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행 법 상으로 저작권 귀속조항이 어긋나지 않기 때문에 대학생들의 저작권 보호를 위해서는 사회적 인식 개선과 함께 제도적 해결책이 필요해 보인다.


태그:#저작권, #공모전 ,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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