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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품은 문자, 한자 이야기>┃엮은이 엄원대┃펴낸곳 도서출판 팡세┃2013.10.24┃2만 5000원
 <세상을 품은 문자, 한자 이야기>┃엮은이 엄원대┃펴낸곳 도서출판 팡세┃2013.10.24┃2만 5000원
ⓒ 도서출판 팡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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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신 신부님처럼 종교적 직분을 맡고 계신 분들을 우린 성직자(聖職者)라고 합니다. 성직자들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는, 이미 '성직자'라는 말이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직자의 '성(聖)'자는 '귀 이(耳)'자와 '입 구(口)'자 그리고 '맡길 임任'자에서 '사람 인(亻)'변이 생략된 '북방 임(壬)'자로 되어 있습니다.

인체 기관에서 귀(耳)는 소리를 듣는 기관이고, 입(口)은 듣거나 생각한 것을 말로 전하는 기관입니다.

따라서 성직자란 자신들이 신봉하는 '하나님이나 부처님 같은 분들이 하는 말(가르침)을 잘 듣고, 듣고 깨달은 바를 신도(백성)들에게 잘 전달하는 걸 역할로 하는 사람'입니다. 

민심은 천심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성직자가 강론을 하면서 민심을 전달하고 대변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비록 하나의 글자이지만 '성(聖)' 자 한 자만으로 성직자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게 가능한 건, 단어 하나하나마다 뜻을 가지는 한자로 된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품을 수 있는 책 <세상을 품은 문자, 한자 이야기>

<세상을 품은 문자, 한자 이야기>(엮은이 엄원대, 펴낸곳 도서출판 팡세)에서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용어, 사자성어를 이루는 한자들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잘 보여줍니다. 또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를 낱낱이 풀어 헤쳐서 글자 하나하나에 담긴 뜻을 오롯하게 새길 수 있게 해줘 한자가 결코 어렵지 않다는 걸 알려줍니다.   

세상의 모든 문자 중에서 글자 한자로 의미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는 글은 한자뿐입니다. 한자(漢字)로는 '애愛' 자 한 글자로 '사랑'을 충분히 나타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어떤 문자, 영어, 일본어, 독일어, 스페인어, 불어 등 어떤 문자로도 글자 하나만으로는 '사랑'을 표현하지 못합니다. 상형(象形), 형성(形聲), 회의(會意) 문자 등으로 되어 있는 한자는 글자 하나하나 마다 뜻을 갖고 있는 뜻글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용어들 또한 대부분이 한자를 바탕으로 합니다. 한글만을 알고 사용하는 용어(단어)가 씹지 않고 삼키는 음식 맛이라면, 단어를 이루고 있는 한자에 담긴 의미까지 알고 사용하는 용어는, 음식을 잘 씹었을 때 우러나는 달착지근함에 소화까지 잘되는 그런 맛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乭(이름 돌)은 石 아래에 우리말 닿소리 'ㄹ'모양의 '乙'을 덧붙여 '돌'이라 읽는다. 전형적인 한국식 한자다. 이와 같은 형태의 글자로는 乧(음역자 둘), 旕(엇시조 엇, 땅 이름 엇) 등이 있다. 이런 형태 외에 아예 우리나라에서 새로 만든 한자도 많다. 羘(밥통 양), 畓(논 답), 垈(터 대), 媤(시집 시) 등이 그것이다. 또한 한·중·일이 쓰는 같은 모양의 글자라도 우리만 그 뜻을 달리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膳(선)은 중국과 일본에서는 '반찬'이지만 지금 우리는 주로 '선물'이라는 뜻으로 쓰고 있다." - <세상을 품은 문자, 한자 이야기> 271쪽.

초등학교 1학년만 돼도 그 어렵다는 법전도 한글로만 써 있으면 누구나 다 읽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읽긴 읽어도 무슨 뜻인지는 제대로 모를 것입니다. 초등학교 4학년 세 명 중 두 명은 책을 읽고도 무슨 뜻인지를 모른다고 합니다. 읽은 글을 제대로 알려면 단어를 이루고 있는 한자를 알아야 하고, 단어에 담긴 뜻을 충분히 새기려면 한자를 이루는 구조와 의미까지를 알아야 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2010년에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조사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학부모 89.1%, 교사 77.3%가 초등학교에서 한자 교육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러함에도 한자교육이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는 건 '한자는 어렵다'는 사회적 선입견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키스'는 '집문接吻', 짝사랑은 '척애隻愛'

接(사귈 집)에서 扌(손 수)는 뜻을, 妾(첩 첩)은 음을 나타낸다.
吻(입술 문)에서 구는 뜻을, 勿(말 물)은 음을 나타낸다.
接吻은 키스의 한자어이다. 달리 親口(친구; 천주교에서 성무를 집행할 때 예수의 말씀을 기록한 서적이나 성물에 대하여 존경과 복종을 나타내기 위하여 입을 맞춤), 親嘴(친취), 啜面(철면), 啜蜜(철밀), 合口(합구), 口吸(구흡), 舐油(지유)라고도 한다. 그 성격은 조금씩 다르다. 고유어로는 '심알(마음의 노른자위)을 잇는다'라고 한다.
- <세상을 품은 문자, 한자 이야기> 433쪽.

대학생 때 '주조공학'라는 과목을 수강 한 적이 있었습니다. 수업 첫날, 출석을 확인하던 교수님께서 다른 과(전공) 학생이 주조 과목을 신청한 걸 확인하시고는 "왜 이 과목을 수강 신청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서야 알았지만 '주조공학'을 신청한 학생은 양조장집 아들이었습니다. 그 학생은 주조는 당연히 '주조(酒造, 술 만들기)를 배우는 것으로 알고 신청하였던 거였습니다.

그때 주조는 금속을 녹여서 가공물을 만드는 걸 배우는 '주조(鑄造)'였는데 말입니다. 모두 '주조'라고 읽지만 엄연히 다른 뜻임을 한자의 생김새에서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 중에서 이처럼 동음이의어인 게 한 둘 아닙니다. 남녀가 만나 평생을 기약하는 걸 왜 혼인(婚姻)이라고 표현하는지 역시 혼(婚)자와 인(姻)자에 담긴 의미를 알게 되면 그 오묘한 뜻에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입니다.

같은 키스라도 'kiss'라고 쓴 글자에서 느껴지는 어감과 집문(接吻), '입술사귐'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달라집니다. 짝사랑은 隻愛(척애)로, 대나무는 妬母草(투모초)로, 연꽃은 荷華(하화), 보신탕은 戌羹(술갱)으로 쓴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의미까지 새기게 되니 한자에 담긴 뜻이 재밌고 깊어집니다. 

무조건 외워야 하는 한자는 질릴 정도로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한자(漢字) 한 글자 한 글자가 어떻게 구성되었고,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가를 알다면 글자와 단어에 담긴 의미는 저절로 새길 수 있을 겁니다. 모르고 보면 한없이 어렵기만 한 한자지만 <세상을 품은 문자, 한자 이야기>를 읽으면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한자도 있고, 한국식 한자도 있는 걸 발견하며 세상만사를 품는 넉넉함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세상을 품는 문자가 한자라면, 한자를 품어서 아는 것이야 말로 세상을 가슴에 품는 커다란 공부가 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세상을 품은 문자, 한자 이야기>┃엮은이 엄원대┃펴낸곳 도서출판 팡세┃2013.10.24┃2만 5000원



세상을 품은 문자, 한자 이야기

엄원대 엮음, 팡세(2013)


태그:#세상을 품은 문자, 한자 이야기, #엄원대, #도서출판 팡세, #짝사랑, #술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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