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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12일 오전 8시 55분]

지난 2005년, 전라북도 군산은 핵폐기물 처리장 유치 문제로 시끄러웠습니다. 시내 거리는 찬성 측이 내건 펼침막으로 도배되다시피 했습니다. 핵폐기장에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은 핵폐기물 처리와 보존의 심각한 안전성 문제를 집중적으로 부각시켰습니다. 펼침막에는 이런 문구가 새겨지기 시작했습니다.

엄마, 아빠 걱정 말고 찬성하세요. 선생님도 안전하다고 말씀하셨어요.(삼학동 주민자치위원회)
엄마! 아빠! 기형아 사진 허위래요. 전교조 선생님들은 지금도 거짓말 하고 있어요.(군산시 여성단체연합회)
찬성! 엄마 아빠 군산이 좋아진대요.(롯데시네마)
새만금도 반대, 방폐장도 반대 군산은 언제 발전하란 말이냐?(중앙동 부녀회)
날마다 반대만 하고 사는 놈들 알고 보니 타지역에서 태어난 놈들이네.(군산축구협의회)
군산 출신도 아닌 반대 단체 주동자! 반대만 하다가 군산 망하게 해놓고 지네 고향으로 떠난다네.(강한전북일등도민운동 군산시협의회)
반핵단체여! 사람도 핵으로 만들어졌다.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도 핵폐기물이냐?([사]국책사업추진단 / 중미동 새마을부녀회)

동료 교사를 향한 '마녀사냥'

10월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세종로청사 앞에서 열린 '밀양송전탑 반대 기자회견'에서 상경한 할머니가 '핵발전소' 피켓으로 햇빛을 가리고 있다.
▲ "핵발전소 이제 그만" 10월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세종로청사 앞에서 열린 '밀양송전탑 반대 기자회견'에서 상경한 할머니가 '핵발전소' 피켓으로 햇빛을 가리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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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가 모호한 단체는 물론이고, 대형영화관이나 부녀회마저 찬성 펼침막을 내건 저간의 사정을 익히 짐작하시리라 봅니다. '전교조'를 끌어들인 의도도 의심스럽기만 합니다. 무엇보다 분노를 자아내는 것은 핵폐기물 처리장의 안전성에 대한 의혹을 불식한다고 '순진한' 아이들의 목소리를 차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게 어디 군산만의 문제이겠습니까. '발전'에 대한 왜곡된 신화에 빠져 있는 우리 사회 전체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난 사례들입니다.

당시 한 동료 교사와 함께 반대 집회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반대 시민단체들이 무슨 기자회견인가를 하는 자리였습니다. 찬성 단체들이 훼방을 놓고 있다는 연락을 받고 달려갔습니다. 현장 분위기는 험악했습니다. 함께 달려간, 유치 반대 운동에 적극적이었던 동료 교사는 집중적인 표적 대상이 되었습니다. 고성과 욕설, 몸싸움이 일어났습니다. '마녀사냥'이 이렇게 시작되겠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두려웠습니다.

그 '마녀사냥'이 현실로 일어날 뻔한 일이 있었습니다. 한참 늦은 오후 수업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난데없이 '○○○ 나와라' 하는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요란스럽게 들려왔습니다. 트럭을 몰고 학교 진입로 중턱까지 올라온 찬성 단체 회원들이 낸 소리였습니다. 반대 운동에 열성을 보이던 예의 동료 교사를 겁박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다행히 큰 불상사는 없이 끝났습니다. 하지만 당시 새겨진 '백주 테러'의 공포는 지금도 생생하기만 합니다.

반대 단체가 내건 펼침막은 게시되자마자 처참하게 훼손되거나 철거되었습니다. 군산시내는 점점 정체불명의 수많은 단체가 내건 찬성 펼침막으로 도배되었습니다. 그 가공스러운 '광풍'은 군산뿐만 아니라 경상북도 경주와 영덕, 포항 등지에도 몰아쳤습니다. 네 도시가 평생 무시무시한 핵쓰레기를 안고 살아야겠다며 집단 광기에 빠졌습니다.

폭력과 불법, 왜곡과 분열, 이간 등이 뒤범벅된 핵폐기장 주민투표는 그렇게 이루어졌습니다. 2005년 12월 2일, 투표 결과는 경주 89.5퍼센트, 군산 84.4퍼센트, 영덕 79.3퍼센트, 포항 67.5퍼센트로 나왔습니다. 경주는 기쁜 목소리로 '승전가'를 불렀습니다. 하지만 지금 경주는 건설 중인 핵폐기장의 안전성 문제와 지원금 배분 문제 등으로 갈등과 분열, 공포의 도시가 돼가고 있습니다.

핵발전은 '사양 산업'... 한국만 '나홀로 원전확대'

2012년 10월,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사고'로 희생을 당한 사람들을 묵념을 하고 있는 시민들.
 2012년 10월,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사고'로 희생을 당한 사람들을 묵념을 하고 있는 시민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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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쓰레기장은 원전 산업에서 필수적입니다. 고준위든 저준위든 핵폐기물은 환경과 인체에 치명적입니다. 완벽하게 처리, 보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준위핵폐기물(원자로에서 약 4년 동안 물을 끓은 사용후핵연료)은 10만 년에서 100만 년 동안이나 보관해야 할 정도로 그 독성이 상상을 초월합니다. 인류 역사보다 더 긴 시간입니다. 그런데 인류는 안전하고 완벽한 고준위핵폐기장 건설 기술을 아직 확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핵산업의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1979년과 1986년, 미국 스리마일 섬과 소련 체르노빌에서 일어난 핵 사고는 원전의 역습이라고 할 정도로 인류에게 엄청난 공포를 가져왔습니다. 원전의 경제성과 안전성 신화도 무너졌습니다. 꾸준히 증가하던 핵산업도 1989년을 정점으로 그 성장세를 멈추었습니다.

그 후 지금까지 30여 년간 전세계적으로 가동 원전 개수 및 발전용량은 거의 증가하지 않고 있습니다. 1956년 최초로 원전을 건설한 유럽은 정점에 달했던 1988년에 원전 개수가 177개이던 것이 2013년 현재 131개로 줄었습니다. 세계 최대의 핵발전소 국가인 미국은 스리마일 사고 이후 30년 동안 단 한 개의 원전도 새로 건설하지 않았습니다.

요컨대 지금 핵발전은 사양산업입니다. 김익중 동국대 교수의 <한국 탈핵>(2013, 한티재)을 보면, 세계 원자력산업의 동향을 조사해서 매년 보고서를 내고 있는 마이클 슈나이더(Mycle Schneider) 박사의 원전 개수 예측 그래프가 나옵니다. 가동 중인 원전과 현재 건설중인 원전을 동시에 고려한 이 그래프를 보면, 앞으로 30년 후면 세계 원전 개수가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45년 뒤인 2058경에는 원전 개수로 10개 이하로 추락합니다. 핵발전이 지구에서 거의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현재까지의 추세와 미래 전망 등을 모두 고려해 보아도 핵산업에 투자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이 금방 드러납니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이런 세계적인 추세를 버리고 '나홀로 원전 확대' 정책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어제(10일), 산업통상자원부가 제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안(2013년~2035년)을 국회 산업통상지원위원회에 보고했습니다.

산자부는 2035년까지 원자력 발전 비중을 현재의 26.4퍼센트보다 2.6포인트 높인 29퍼센트로 결정했습니다. 원전 개수로 치면 41기가 필요한 비중이라고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23기의 원전이 가동 중에 있습니다. 정부 계획에 따르면, 현재 건설 중(5기)이거나 건설 계획이 잡힌 원전(6기) 이외에 6~8기를 추가 건설해야 합니다.

지난 이명박 정부는 2030년 원전 비중을 41퍼센트로 잡은 바 있습니다. 이 수치에 비하면 29퍼센트는 상당히 낮춘 것입니다. 하지만 필요한 원전 개수는 이명박 정부의 42기와 별 차이가 없습니다. 전체 전력 비중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율이 낮아졌음에도 원전 개수가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은 정부가 전력 수요를 크게 부풀린 것에서 그 이유를 찾고 있습니다. 반핵 시민단체들에서는 원전 확대를 위한 전력수요 '뻥튀기' 의혹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우리 가족이 어묵을 못 먹는 이유

박근혜 대통령이 10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우리 수산물 시식회에서 윤진숙 해양수산부장관(오른쪽부터), 이종구 수협중앙회장, 김연화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회장(왼쪽) 및 출입기자들과 생선회를 시식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10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우리 수산물 시식회에서 윤진숙 해양수산부장관(오른쪽부터), 이종구 수협중앙회장, 김연화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회장(왼쪽) 및 출입기자들과 생선회를 시식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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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발표는 박근혜 정부가 '탈핵'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핵의 위험성과 핵 사고의 가공할 위력을 실감한 세계 각국이 탈핵 후 재생가능에너지 정책에 집중하고 있는 '글로벌 스탠더드'와는 너무나도 다른 행보입니다. 지난 28일, 환경운동연합이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 1천 명 중 원전의 안전성을 걱정하는 비율이 77.8%에 이르렀습니다. 56.1%는 원전 증설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다수 국민의 의견을 '탈핵'으로 보는 이유입니다. 원전 확대 정책을 포기하고 '탈핵'을 선언해야 합니다.

해물짬뽕처럼 이런저런 수산물이 마구 섞여 있어서 그럴까요. 어묵은 참 맛있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길거리에 나서면 포장마차에서 뜨거운 국물과 함께 먹는 어묵 맛에 푹 빠지곤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식구는 어묵을 먹지 않습니다. 아니 못 먹습니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에서 일어난 핵발전소 방사능 누출 사고 때문입니다. 저희 가족이 하늘 무너질까봐 걱정하며 사는 사람들일까요, 아니면 이른바 '괴담'에 넘어간 탓일까요. 그 무엇이 되었든 앞으로 당분간은 어묵을 입에 대지 못할 것입니다. 정부에 대한 불신과 방사능에 대한 공포 때문입니다. 저희 가족만의 문제는 아니리라 봅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천하 태평입니다. 어제 박근혜 대통령은 수산물 소비 촉진을 위한 '깜짝 이벤트'를 연출했습니다. 청와대 춘추관에 마련된 수산물 시식회에 참석해 회와 찜 요리를 먹으면서 수산물 안전성 홍보에 나선 것입니다. 일본 핵발전소 방사능 누출 사고로 인한 '수산물' 공포 탓에 국내 수산물 소비가 급감하고 있는 상황을 염려한 차원이었겠지요. 수산 어민을 염려하는 '나라님'의 자상함, 좋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 '이벤트'로 국민들의 불신과 의혹이 사라질는지요. 그들만의 한바탕 '회' 잔치가 씁쓸하게 다가오는 아침입니다.

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탈핵, #재생가능에너지 정책, #박근혜 대통령, #제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안, #수산물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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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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