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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정치와 이미지 전략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려니 걱정부터 앞섭니다. 원래 이야기 하려는 의도와는 다르게 엉뚱하게 오해가 될 여지가 많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실제로 이렇게 오해하면 힘이 빠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이미지 전략과 이미지 정치와 관련된 이야기는 정치 컨설팅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니만큼 잘 정리하겠습니다.

여기서 예시로 든 사례들은 '옳다 또는 그르다'를 떠나서 독자 여러분께서 이해하기 쉬운 사례를 든 것입니다. 정책 혹은 공약의 가치판단이 아니라는 점, 꼭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유권자는 '옳다 또는 그르다'로 판단하지 않고 '좋다 또는 싫다'로 판단한다는 선거판의 명언이 여기서도 적용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잘 숙지하셔서 예비후보자(정치인)에게는 영감을, 착한 시민(유권자)에게는 선택의 기준을 제공했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봅니다. - 기자 말

넌 누구냐?

얼마 전 '천의 얼굴을 가진 미녀'라는 제목의 인터넷 기사가 떠서 살펴보았더니 참 재미있는 기사라서 스크랩 후 강의할 때 사용합니다. 다음 그림입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칼리 페이지(Carly Paige)는 순수하게 메이크업만으로 새로운 얼굴을 창조해 냈다. 이미지의 창조성을 의미한다.
▲ 천의 얼굴을 가진 미녀 메이크업 아티스트 칼리 페이지(Carly Paige)는 순수하게 메이크업만으로 새로운 얼굴을 창조해 냈다. 이미지의 창조성을 의미한다.
ⓒ Carly Pai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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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네 명은 각각 마릴린 먼로, 잭 스패로우, 안젤리나 졸리, 마이클 잭슨으로 분장을 한 한 사람의 얼굴입니다. 칼리 페이지(Carly Paige)라는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자신의 얼굴에 이렇게 천의 얼굴을 그려 넣은 것이지요. 지금도 활발하게 고흐나 아인슈타인 등의 얼굴을 만들어(?) 페북에 공개한다고 합니다.

앞서 연재에 저는 이미지란 이중성과 동시에 창조성을 지닌다고 말씀 드렸습니다만, 그리고 그 무엇보다 그 만들어진 이미지가 '강해야'한다면서 여러 가지 사례를 말씀 드렸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렇게 칼리 페이지와 같은 '사진'이야길 할까합니다. 결론 먼저 말씀 드리자면 칼리페이지가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인물을 창조하는 행위로 정치인 이미지 메이킹을 하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묻기 때문이지요.

"넌 도대체 누구냐?"

최초의 이미지 메이킹 정치인, 링컨

기록에 의하면 링컨은 한 소녀에게 수염을 기르라는 '편지'를 받고 수염을 길렀다고 합니다. 주인공은 뉴욕 웨스트필드에 사는 11살 소녀 '그레이스 베델'인데 나중에 링컨이 대통령으로 당선이 된 후 일리노이에서 워싱턴D.C로 가던 중 뉴욕에 들러 그레이스를 만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링컨이 소녀 팬으로부터 편지를 받을 정도로 준수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느냐? 사실은 "아니올시다!"입니다.

<런던 타임스>의 윌리엄 러셀이라는 기자는 링컨의 외모를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그는 키가 크고 수척해 보이는 긴 팔을 가지고 있었으며 손과 발이 매우 컸다. 그의 얼굴은 너무 튀어나온 코를 포함해 비대칭적이었고, 울퉁불퉁하고 노란 피부와 숱이 많으면서 제멋대로인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걸음걸이는 불안정했고, 패션과는 거리가 먼 옷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실제로 링컨은 변호사 시절부터 같은 측 변호인 에드윈 M. 스탠튼에게 '긴팔원숭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링컨은 키가 193㎝나 되고 - 마르판 증후군(Marfan syndrome)이 의심된다고 합니다 - 그 긴 팔다리로 탓에 걷는 모습이 휘청 거려 스탠튼은 항상 비인격적인 말로 깎아 내리곤 했다고 합니다. 물론 이 스탠튼은 나중에 링컨의 마지막 임종을 지킨 최측근이 되었죠.

하여튼 이런 외모가 유권자의 호감을 살 수 없겠죠. 링컨은 이를 수염으로 커버했습니다. 또 아무리 못 생겼어도 자주 접하게 되면 정이 드는 것이 그때나 이제나 사람의 심리는 같은가 봅니다. 또 링컨은 이런 사람의 심리를 이해했는지 몰라도 자신의 모습이 담긴 사진 수천 장을 미국 전역에 뿌립니다.

하지만 1860년대의 감광기술은 아직 발전이 덜 되었기 때문에 한 장의 사진을 찍기 위해 몇 분 동안 똑같은 자세를 취해야만 했지요. 하지만 링컨은 각고의 노력을 통해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는 이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몇 분을 꼼짝 않고 그대로 있었다. 최초의 이미지메이킹 정치인이라 할 수 있다.
▲ 링컨의 사진 그는 이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몇 분을 꼼짝 않고 그대로 있었다. 최초의 이미지메이킹 정치인이라 할 수 있다.
ⓒ 인터넷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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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의 경쟁자인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출신 스티븐 A. 더글러스(Stephen A. Douglas)는 링컨의 이런 노력에 대해서 "애들 장난"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치부했습니다.

기록에 남아 있지는 않지만 링컨의 이런 노력은 아마 당시에는 대단히 획기적인 반향을 가져왔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새로운 것에 항상 관심을 갖거든요. 결과적으로 당시의 새로운 뉴미디어 사진술의 효과를 가장 먼저 인지하고 활용한 링컨은 이미지 정치의 선두주자로 기록된 것입니다. 1860년대가 이럴진대, 2014년에 큰 꿈을 가진 정치인이라고 한다면 '사진 찍기'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는 것은 두말 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아서 문제죠!

"저 자식 봐... 꼭 대통령처럼 생겼잖아?"

얼굴 하나로 대통령이 된 사나이도 있습니다. 바로 미국의 제 29대 대통령 워렌 하딩(Warren G. Harding, 1865.11.2~1923.8.2)입니다. 워렌 하딩은 참 얼떨결에 관직에 나갔고, 얼떨결에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최악의 미국대통령으로 꼽히는 사람입니다.

외모만 대통령처럼 생겨서 그는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으나 역사는 가장 무능한 대통령으로 기록하고 있다.
▲ 워렌 하딩(Warren G Harding) 미합중국 제 29대 대통령 외모만 대통령처럼 생겨서 그는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으나 역사는 가장 무능한 대통령으로 기록하고 있다.
ⓒ 인터넷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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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까요? 당시의 대통령 우드로 윌슨은 원칙론과 도덕정치에만 치중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경제는 엉망이고 외교에만 신경을 쓰는 윌슨 대통령에게 미국 국민들은 신물을 냈습니다. 대선을 치르나마나 공화당으로 정권이 넘어가게 되어 있는 겁니다. 공화당의 후보 쟁탈전은 자연 치열할 수  밖에 없었지요. 9차례 투표에도 후보를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워렌 하딩은 6명의 후보 중 6등이었습니다. 

1920년 워렌 하딩은 모든 이들의 예상을 깨고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고 대통령에 선출이 되지요. 그가 그간 의회에서 한 일이라고는 - 발언 한 번 없었다고 합니다. - 적(敵)을 만들지 않은 일이라고 합니다. 그의 성격이 좋아서가 아니라 어떤 일이든 적을 만들 만큼 분명한 자신의 의견을 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9번에 이르는 투표로 지칠 대로 지친 공화당의 원로들은 모나지 않은, 고분고분 말을 잘 들을 것 같은 워렌 하딩을 공화당 후보로 추대할 때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저 자식 봐... 꼭 대통령처럼 생겼잖아?"

공교롭게도 1920년 선거는 미국 여성들에게 처음으로 투표권이 주어진 선거였고 그는 60%가 넘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미합중국의 제 29대 대통령으로 선출이 됩니다. 그는 그 누구보다 대통령에 어울리는 이상적인 용모와 풍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용모와 풍채는 국익(國益)을 위해 쓰인 것이 아니라 사익(私益)을 위해 쓰였다고 합니다. 포커 게임과 골프, 술, 특히 여자 사냥을 즐겼다고 하고 서른 살 아래의 '조카'라고 불리는 '금발미녀'와 아이까지 있었다고 하네요.

워렌 하딩을 대통령으로 만든 오하이오의 갱(The ohio Gangs)이라 불리는 그의 동료들과 친척들은 하딩으로부터 권력을 나눠받고 흥청망청 나라를 거덜이 나도록 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금주법이 시행되던 때, 백악관을 빠져나와 친구들과 함께 밀조 위스키를 마시며 포커를 즐겼습니다.

워렌 하딩은 알래스카주 유세(遊說)를 마치고 아내와 함께 돌아오면서 여행을 하다가 1923년 8월 2일 샌프란시스코에서 갑자기 사망합니다. 그의 아내는 부검을 거부했기 때문에 삽시간에 '독살설'이 퍼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순진한 미국 국민들은 워렌 하딩에 대해서 애정과 존경을 보냈습니다. 전국에서 추모행사가 열렸고 그의 장례기차가 도시를 지날 때에는 추모군중이 너무 많아서 기관사는 속도를 줄여야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가 사망 한 후 속속 각종 스캔들과 부패사건이 폭로되면서 워렌 하딩은 미국 역사상 가장 형편없는 대통령으로 기록이 되었습니다. 그의 어록에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이것도 옳은 것 같고 저것도 맞는 것 같고…힘드네. 하나님이란 참으로 굉장한 직업이야!"

하지만 워렌 하딩은 여하튼 간에 '얼굴'하나로 대통령이 된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4편에 계속>

덧붙이는 글 | 사진찍기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항상 제 글이 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좀 나눠서 설명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만만찮게 힘이 듭니다. 이제 선거와 관련해서 여기 저기서 말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예비후보자 여러분! 미리미리 사진 찍어두세요. 나중에 시간 없어서 사진 못 찍습니다.



태그:#이미지 전략, #칼리 페이지, #링컨, #워렌 하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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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요한, 1969년 서울 산(産), 2000년부터 방송에 관심 있어 주변을 맴돌다 2005년 우연히 얻어 걸린 라디오 전화인터뷰부터 시사평론 방송시작, 2014년부터는 경제 Agenda에 집중, 시사경제평론을 하면서 몇몇 경제채널 출연하고 있음, 어떻게 하면 쉽게 이야기 할 수 있는지 종일 고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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