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친일 가수' 남인수(南仁樹, 1918~1962, 본명 崔昌洙·姜文秀)의 생가는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에서 최종 말소될 것인가.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위원장 김정배)가 10일 오후 회의를 열어 '남인수 생가'의 문화재 등록 말소 여부를 최종 결정하기로 해 관심을 끈다.

9일 문화재청 관계자는 "문화재위원회 회의가 10일 오후 4시경 열리는데, 남인수 생가 문제 등이 다루어질 예정"이라며 "결정이 나면 문화재청장의 결재를 받아 보도자료를 통해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난 3월, <오마이뉴스> 보도 뒤 문화재청 조사 나서

경남 진주시 하촌동에 있는 '남인수 생가' 안내판과 집.
 경남 진주시 하촌동에 있는 '남인수 생가' 안내판과 집.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경남 진주시 초장동 하촌마을(일명 드무실)에 있는 '남인수 생가'는 2005년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153호로 지정되었다. 집은 본채와 사랑채의 2개 건물로 되어 있고, 슬레이트 지붕이다. 현재 주인이 1994년 매입했다.

'남인수 생가'로 지목된 집이 남인수가 태어나지도, 자라지도 않았다는 사실은 <오마이뉴스>가 지난 3월 28일 단독보도(관련기사 : '친일가수' 생가가 문화재?... "그는 여기 안 살았다")하면서 알려졌다. 그 뒤 문화재청이 역사 인물 등록 문화재 21건을 대상으로 지난 4~9월 사이 '역사인물 관련 등록문화재 적정성 검토 일제조사'를 벌였다.

문화재위원회 근대문화재분과 위원들이 지난 9월 진주 드무실에서 현지 조사를 벌이기도 했고, 문화재위원회 근대문화재분과는 지난 10월 회의를 열었는데 참석 위원 9명 전원 찬성으로 '문화재 등록 말소'하기로 합의했다.

당시 근대문화재분과 회의에서는 '남인수 생가'를 '등록 말소'하거나 1개 동만 '남인수 가옥'으로 하는 두 가지 안이 제시되었는데, 등록 말소로 의견을 모았던 것이다.

남인수는 지금의 '남인수 생가'에서 태어나지도, 자라지도 않았던 것이 사실로 확인되었다. 남인수는 원래 이름이 '최창수'였으나 어머니(장화방)가 개가하면서 아버지(강영태)의 성을 따서 '강문수'로 개명했던 것이다.

장화방은 드무실 비각 근처에서 주막을 했는데, 남인수가 주막에서 태어나 자랐다는 것이다. 그 주막은 없어진 지 오래다. 지금 생가라고 하는 집은 남인수 부친의 본처가 살았던 집이다. 이는 지금 드무실에 살고 있거나 출향한 팔순·구순의 두 인사가 같은 내용으로 증언하고 있다.

또 남인수는 진주 봉래초교(당시 진주제2공립보통학교)를 나왔는데, 1926년 학적부를 보면 주소는 '진주시 평안동(지금의 하촌동)'으로 되어 있고, 아버지 '강영태'와 어머니 '장화방'으로 기록되어 있다. 집 주소에 정확한 번지가 나와 있지 않다. 한국전쟁 때 진주지역 호적부가 소실되었는데, 그래서 남인수의 호적 자료는 찾을 수 없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3월 노인들의 증언과 민족문제연구소 진주지부의 조사 내용을 토대로 "문화재로 지정된 집은 남인수 생가가 아니다"고 보도했던 것이다. <조선일보>와 <뉴스1>이 지난 10월 문화재위원회 문화재분과 회의에 근거해 비슷한 보도를 하기로 했다.

남인수는 15살 때 '시에론 레코드사'에서 <눈물의 해협>으로 가수 생활을 시작했고, 남인수라는 이름은 작사가 강사랑이 지어준 예정이다. 그는 <애수의 소야곡> 등을 불러 '가요 황제'로 불린다.

문화재청은 2005년 진주시 하촌동에 있는 집을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뒤 대문 앞에 '남인수 생가'와 '근대문화유산'이라는 안내판을 설치해 놓았다.
 문화재청은 2005년 진주시 하촌동에 있는 집을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뒤 대문 앞에 '남인수 생가'와 '근대문화유산'이라는 안내판을 설치해 놓았다.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그런데 그는 친일 행적이 뚜렷하다. 민족문제연구소는 2008년 <친일인명사전>을 펴내면서 그의 이름을 수록해놓았는데, 그는 1942~1943년 사이 <강남의 나팔수> <남쪽의 달밤> <낭자일기> <병원선> <이천오백만 감격> <혈서지원> 등의 '친일 군국가요'를 불렀다.

또 그는 내선일체를 주장한 영화 주제곡 <그대와 나>를 장세정과 불렀는데 이 영화는 대표적인 친일영화다. 해방 이후 그는 정훈국 문예중대 소속 군위문 활동에 참여했고, 대한레코드가수협회장, 한국가수협회장, 한국연예협회 부이사장 등을 지냈다.

문화재청은 2005년 '남인수 생가'를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로 지정하면서 남인수팬클럽에서 낸 자료 중심으로 결정했고, 당시 확인 등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진주시는 지난해 남인수 생가 정비 예산(1억3000만 원)을 배정해 놓았다가 올해로 이월해 놓았고, 아직 사업에 들어가지 않았다. 진주지역 방송사들은 진주시의 예산 지원을 받아 1996년부터 '남인수 가요제'를 열어 왔는데, 친일 행적이 드러나면서 2006년부터 폐지되었다.

이기동 민족문제연구소 진주지부장은 "문화재 등록 말소에 대해 특별히 이의제기가 없는 것으로 안다"면서 "문화재위원회 근대문화재분과에서 등록 말소의 의견을 모았는데, 최종적으로 10일 문화재위원회 회의 결과를 지켜볼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울 종로 '이중섭 가옥'과 '이상 가옥'은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가 이후 해당 인물과 관계 없다는 것으로 뒤늦게 밝혀져 등록 말소된 사례가 있다.


태그:#남인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