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국회의원이 있으면, 그의 곁에는 항상 보좌관이 있다. 의원의 의정활동 상당 부분에 보좌진의 손길이 미쳐야만 한다. 그러나 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가슴팍에 배지를 단 의원뿐이다. 그렇다면, 늘 그림자처럼 뒤를 지키는 보좌진들의 생활은 어떨까. 밤을 새워 일해 국회의원을 빛나게 하지만, 평생 '4년짜리 비정규직'을 벗어날 수 없는 보좌진들의 정치 역정 스토리를 들어보자. [편집자말]
진선미 민주당 의원실의 박영선 보좌관이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국정원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생각하면 화가 나서 잠도 안 온다"고 말했다.
 진선미 민주당 의원실의 박영선 보좌관이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국정원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생각하면 화가 나서 잠도 안 온다"고 말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진선미 민주당 의원실의 박영선 보좌관이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최근 국정원의 대선개입 사건 관련 가장 큰 쟁점인 국정원 트위터 121만 건의 범죄일람표를 분석하고 있다.
 진선미 민주당 의원실의 박영선 보좌관이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최근 국정원의 대선개입 사건 관련 가장 큰 쟁점인 국정원 트위터 121만 건의 범죄일람표를 분석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올 1월 말부터 지금까지, 1년 남짓의 시간 동안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만 죽어라 판 사람이 있다. 수많은 '대선 개입 정황' 자료들을 들여다보느라 눈이 흐릿해지고 팔목이 시큰해진 그는 진선미 민주당 의원실의 박영선 보좌관이다.

박 보좌관은 "1년 내내 그것만 했는데 파도 파도 국정원의 불법적인 정치 개입 행위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여기까지 캐면 됐어' 했는데 또 나오고 또 나오고 있다"며 "지치기도 하지만 무섭기도 하다, 국정원에서 어떤 일들을 벌였는지 다 알 수는 있는 걸까, 물음표가 생긴다"고 토로했다. 그는 "국정원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생각하면 화가 나서 잠도 안 온다"고도 했다.

이렇게 '국정원과의 1년'을 보낸 박 보좌관을 지난 5일 만났다.

"1년 내내 국정원만 파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진선미 민주당 의원(오른쪽)은 박영선 보좌관에 대해 친자매 못지않은 신뢰와 환상의 호흡을 자랑했다.
 진선미 민주당 의원(오른쪽)은 박영선 보좌관에 대해 친자매 못지않은 신뢰와 환상의 호흡을 자랑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진선미 민주당 의원과 박영선 보좌관이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원의 대선개입 트위터 게시글 재판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진선미 민주당 의원과 박영선 보좌관이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원의 대선개입 트위터 게시글 재판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진선미 의원실 식구들이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을 본격적으로 조사하기 시작한 건, 심리전단 직원들이 인터넷 사이트 '오늘의 유머' ID를 만들어 야권 대선후보를 비방하는 댓글을 달았다는 보도가 나온 직후였다. '오유'를 파기 시작해 복수의 국정원 직원들이 대선에 개입했음을 확인하는 순간, '원장님 지시 강조 말씀' 관련 제보가 의원실로 왔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정치 개입을 지시했음이 드러난 바로 그 자료다. 이후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영향력을 차단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문건, 국정원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좌파의 등록금 주장 허구성 전파로 파상 공세 차단' 문건 제보가 줄이었다. 이때부터는 보좌관이 아닌 '탐정'의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다.

"진 의원 상임위가 정보위원회가 아니라서 국정원 정보에 접근할 권한이 없다. 그래서 정보위 소속 민주당 의원실 등에서 도움을 받아 자료를 요구해서 받고, 또 요구하고 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지시 말씀이 실제로 집행됐는지는 문서를 통해서도 확인하고 관련된 사람을 통해서 확인하고 여러 통로를 거쳐 꼼꼼하게 살폈다. 두루두루 거쳐보고 팩트상 오류가 없다고 판단되면 그때 기자회견을 준비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대선 개입 사건의 직접 관여자임이 드러난 '원장님 지시 말씀' 등 핵심 문건이 언론에 공개되기까지, 그 뒤엔 박 보좌관을 비롯해 진 의원실 소속 보좌관·비서관들의 숨은 노력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망망대해에서 바늘 찾는 심정'으로 자료를 하나씩 하나씩 들춰보며 몇 주 동안 팠는데도 허탕인 경우도 많았다. 힘이 빠지고 무기력감을 느낄 때도 있었다. 명백히 드러난 사실조차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가 '모르쇠'로 일관할 때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때마다 박 보좌관이 떠올린 건 지난 3월 24일 인천공항의 한 장면이라고 했다.

"당시는 원세훈 전 원장이 구속이 안 됐을 때다. 그가 해외 출국한다는 소식을 듣고 무작정 진선미 의원이 공항을 찾았다. 국정원에서는 출국 여부도 확인 안 해주는 상황에서 일단 가보자 했던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다. 그때를 뒤돌아보면 지금 많이 온 거다. 국정조사도 했고 원세훈 전 원장은 구속됐고, 국정원 개혁 특위까지 얘기되고 있다. 지칠 때면 '원세훈 출국 당시 마음을 돌아보자'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언 땅을 파는 심정으로 최선을 다해 싸우다 보니 여기까지 온 거 아닌가."

24일 오후 인천공항 탑승장앞에서 '국내정치 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출국을 저지하기 위해 진선미 민주통합당 의원과 시민들이 원 전 원장의 사진을 들고 감시활동을 벌이고 있다.
▲ "원세훈 출국 못해!" 24일 오후 인천공항 탑승장앞에서 '국내정치 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출국을 저지하기 위해 진선미 민주통합당 의원과 시민들이 원 전 원장의 사진을 들고 감시활동을 벌이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특검 통해 대선개입 공범들 모두 수사해야"

진선미 민주당 의원실의 박영선 보좌관이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증인선서 거부 상황을 설명하며 "증인선서를 하지 않아 위증죄로 처벌받지 않는다는 법의 허점을 이용한 꼼수였다"며 "참으로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진선미 민주당 의원실의 박영선 보좌관이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증인선서 거부 상황을 설명하며 "증인선서를 하지 않아 위증죄로 처벌받지 않는다는 법의 허점을 이용한 꼼수였다"며 "참으로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사실 진 의원의 보좌관으로서 국정원 사건을 맡아 온 그의 '전직'은 언론개혁 시민운동가였다. KBS 노조에서 10년, 언론개혁시민연대(대외협력국장)에서 4년여를 몸담았다. 그러나 국정원을 향해 싸울 때나, 언론 개혁을 위해 싸울 때나 거대한 벽을 향해 발버둥친다는 느낌은 그대로라고 했다.

박 보좌관은 "15년 동안 언론운동을 할 때도 화두는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 경제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었다"며 "그러나 현실은 바뀐 게 거의 없고 오히려 '전패'의 기록만 남고 있다"고 아쉬움을 내비쳤다.

그는 "언론운동 활동가들에게 미안한 마음, 아린 마음이 있다"면서도 "지금 국정원 건을 다루며 민주주의 회복을 거창하게 얘기하지만 국정원의 언론 개입이 없었다고 보진 않는다, MBC 파업 관련해서도 국정원이 개입했고 미디어법 투쟁에도 국정원 댓글이 엄청 많았다, 현재 언론 운동 진영에서 역할을 하진 않지만 대열에 같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보좌관은 "정권을 뺏긴 근본 원인을 언론으로 본 이명박 정권 이후 치밀하고 철저하게 언론을 장악했고, '언론'의 범위가 확장된 만큼 온라인을 통해 직접 여론에 개입하는 형태로 진행된 거 같다"고 짚었다. 모든 것이 국정원으로 귀결되는 '기승전국정원'인 셈이다.

모든 것의 '결론' 국정원 문제를 풀기 위한 방편으로, 박 보좌관은 특검 실시에 기대를 걸고 있다. 박 보좌관은 '특검이 사실상 무산된 거 아니냐'는 우려에는 "그동안 국정조사는 된다고 했나, 원세훈이 구속될 줄 누가 알았냐"며 "특검을 통해 대선개입 사건의 총체적 공범들을 모두 수사해야 한다, '반값등록금·박원순 제압 문건' 등이 꼭 특검에 포함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보좌관은 "국정원 개혁 과정의 한 배를 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배에 함께 타고 있는 진 의원을 향해서는 "엄청난 사건을 앞에 두고 단 한 번도 주저하거나 물러서지 않았다, 항상 긍정적인 마인드로 우리 방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서로에게 힘이 됐다"며 "내가 보좌진으로서 한 역할도 있지만, 결단의 시기마다 주저 않고 해준 의원의 역할이 굉장히 컸다"고 추켜세웠다.

"국회·시민·언론의 힘으로 장기집권 끝내야"

진선미 민주당 의원실의 박영선 보좌관(왼쪽 두번째)이 '국가정보원의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소속 의원들과 함께 서울경찰청을 찾아 지난해 국정원 정치개입 의혹 댓글들에 대한 증거 분석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디지털증거분석실로 향하고 있다.
 진선미 민주당 의원실의 박영선 보좌관(왼쪽 두번째)이 '국가정보원의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소속 의원들과 함께 서울경찰청을 찾아 지난해 국정원 정치개입 의혹 댓글들에 대한 증거 분석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디지털증거분석실로 향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국정원 사건과 관련 자신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는 게 부담스러운지 박 보좌관은 "모두 함께 한 거다, 관련 전문가들의 도움도 많이 받았고, 민주당도 함께 했고 우리 방 사람들 모두 고생했다"며 "네트워크를 잘 활용한 거지 내가 뭐 특출났다고 더 잘 알겠냐"고 자신을 낮췄다. 

그에게 마지막 질문으로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의 본질이 뭐라고 생각하냐'고 물었다. 대답 대신 긴 한숨이 돌아왔다. 그리고 간신히 입을 뗐다.

"보수정권의 장기 집권 플랜… 아… 너무 비극적이야."

박 보좌관은 "그래도 그들의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며 "국회뿐 아니라 시민의 힘, 건강한 언론의 힘으로 장기집권을 끝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태그:#국정원 대선개입, #진선미, #박영선
댓글9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