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남해는 큰 섬이다. 우리나라 섬 중에서 다섯 번째로 크다. 남해로 들어서면서 어디를 먼저 가야 할까 고민이다. 남해여행, 어디를 구경할까?

 

남해대교를 건너 미조로 향한다. 어디를 먼저 볼까 고민하다 남해의 끝에서부터 여행을 시작하기로 했다. 미조는 남해의 남쪽 끝에 있는 항구마을이다. 이름이 예쁘기도 하고, 그냥 궁금했다. 미조항까지는 한참을 들어간다. 남해대교에서부터 44㎞나 떨어져 있다.

 

항구에 도착하니 어선 몇 척이 쉬고 있는 보통 항구다. 상록수림이 있는데 들어갈 수 없다. 더 깊숙이 들어가니 'ㄷ'자 형태로 잘 다듬어진 항구가 바다를 보고 있다. 조용하다. 수산물을 처리하는 부두는 갈치 상자 몇 개를 펼쳐놓고 지나가는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한 상자에 얼마요?" "23만 원." "보기에 좋은 데 비싸네." 갈치 비늘이 반짝거리고 싱싱하다.

 

멸치의 싱싱한 맛, 여행은 즐겁다

 

점심시간이 지났다. 아름다운 풍경이 있을 거라는 기대가 무너진 썰렁해진 느낌. 식당으로 들어섰다. 식당 벽에는 멸치를 터는 사진을 크게 붙여놨다. 멸치쌈밥과 멸치회를 주문했다. 회무침으로 나온 생멸치는 생각했던 것보다 크다. 우리가 볶음 해먹는 멸치와는 크기가 다르다. 부드럽게 씹히는 맛이 신선하다. 멸치의 싱싱한 맛에 남해여행은 다시 즐거워졌다.

 


막상 남해로 1박 2일 여행을 왔는데 갈 데가 마땅치 않다. 유명한 곳은 한번쯤 둘러봤다. 안 가본 데를 가보고 싶은데 마땅히 떠오르는 곳이 없다. 관광지도를 펼치니 남해 독일마을이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아직 독일마을을 가보지 못했다. 독일마을로 향한다.

 

미조항을 빠져나와 바다가 보이는 해안도로를 타고 간다. 구불구불 해안선을 따라간 길은 가끔 마주 오는 차와 깜짝깜짝 놀라기도 한다. 아름다운 풍경에 취하다 보니 운전에 집중이 안 된다. 마주 오는 차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독일마을은 멀리서부터 눈에 확 들어온다. 집들이 아주 이국적이다. 삼각형 모양의 단순한 지붕을 가진 2층 집들이 산비탈을 따라 지어졌다. 게다가 주황색으로 단장한 지붕과 하얀 벽이 단순하면서도 독특한 마을 풍경을 만들어준다. 마을을 가로질러 올라간다.

 

마을로 들어서니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다 비슷비슷한 집들이고, 집안으로 들어가 볼 수도 없다. 한 때 TV드라마 <환상의 커플> 촬영지였던 철수네 집에 들러본다. 드라마 일부분을 되새기는 것은 색다른 즐거움이다.

 

독일마을은 관광객들로 북적거리는 것과는 달리 집들은 문이 닫혔고, 마당으로 들어오지 말라는 문구를 붙인 곳도 있다. 독일로 간 광부들과 간호사들이 노년에 고국에 돌아와 조용한 여생을 보내려고 했을 텐데. 많은 관광객들로 인해 은둔자처럼 문을 꼭 닫고 살아가는 모습들이 불편해 보인다.

 

남해에서 가장 추천하고 싶은 곳은?

 

남해에는 몇 곳의 예술촌과 전시관들이 있다. 그 중에는 바람흔적 미술관이 있다. 남해를 여행하려고 관광지도를 보다가 바람흔적 미술관이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미술관 이름이 특이하다. '바람흔적'이라는 이름 하나 만으로 그곳에 꼭 가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곳에 가면 바람흔적을 만난 수 있을까?

 

미술관 가는 길은 산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구불구불 들어간다. 저수지가 나오고 도로 옆으로 주차장이 있다. 큰 바람개비 하나가 이정표처럼 서서 바람흔적이 있음을 알린다. 미술관은 보이지 않는다.

 

돌계단을 내려서면 저수지 옆으로 커다란 바람개비들이 장대처럼 줄줄이 서 있다. 아쉽게도 바람이 불지 않는다. 바람개비는 돌아가지 않는다. 그런데도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느낀다. 아! 바람흔적. 바람개비만 세워놓았을 뿐인데 바람을 느끼고 감동을 받는다.

 

주름 철판으로 만든 건물은 바람개비와 잘 어울린다. 건물로 들어서니 전시실이 있다. 입구에는 두 명의 작가를 소개한다. 벽돌이 그대로 드러난 두 개의 전시실에는 그림이 걸렸다. 검은 바탕에 화려한 연꽃을 그린 그림들과 파스텔 톤의 다양한 마을 풍경을 그린 그림들은 서로 대조를 이룬다.

 

미술관에는 찻집이 있다. 입장료가 없는 대신 차 한 잔 마셔줘야 한단다. 수제 장신구들도 판다. 그중에 눈길을 끈 것은 아나콘다 가죽으로 만든 핸드백이다. 만져보니 부드럽다. 근데 살 사람이 있을까? 커피를 마시며 저수지 건너편에 산 빛을 즐긴다. 겨울 느낌을 잔뜩 머금은 산 빛이 진하다. 남해는 겨울이 늦다.

 

가천다랭이마을에서는 해넘이가 보일까

 

겨울은 해가 짧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가볼 곳이 있다. 가천다랭이마을이다. 해질녘 마을 풍경이 궁금했다. 석양에 빛나는 마을 풍경을 기대하고 열심히 달려갔지만 기대는 아쉬움으로 변했다. 마을은 산 사이로 움푹 들어간 곳에 자리를 잡았다. 해는 산 너머에 있다.

 

마을 골목길을 따라 내려간다. 집집마다 민박집 표지판들을 붙이고 벽에는 벽화를 그려 놓았다. 허름한 담 벽에 게시판이라는 글도 보인다. 예전 이곳에는 마을 각종 소식들과 군 홍보내용들이 붙어 있었을 텐데. 지금은 역할이 없어 깨끗한 빈 벽으로 있다. 할 일을 빼앗겨 버린 벽은 허전하다.

 

 

암수바위의 우람한 모습을 보고 해안으로 내려선다. 바닷가 큰 바위에는 구름다리를 걸어 놓았다. 서쪽하늘은 해를 보여주지 않는다. 짧은 노을이 아쉽기만 하다. 갯바위에 서 있는 관광객들은 작은 노을이라도 눈으로 담아보려고 바다만 바라보고 있다. 어둠이 빨리 내리니 여행도 빨리 마무리한다.

 

아침 일출을 보고 싶지만 게을러졌다. 숙소 창으로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아침을 맞는다. 금산 보리암을 갈까 하다가 용문사로 향했다. 용문사로 가는 길은 미국마을을 지난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등산객들이 산행준비에 부산하다. 용문사가 있는 곳은 호구산으로 등산하기에 좋은 산이란다.

 

절집으로 오르는 길은 계곡을 끼고 가파르게 올라간다. 계곡에는 느티나무들이 크게 서 있어 시원한 기분이다. 절집 가까이에는 커다란 고로쇠나무들이 노란 단풍으로 물들이고 있다. 연한 노란단풍을 가진 고로쇠나무는 단순하면서 매력적이다.

 

용문사는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지었다고 하니 아주 오래된 절집이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편안함을 주는 구조를 갖췄다. 전형적인 'ㅁ'자 형식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강당으로 쓰는 누각이 있고, 양편으로는 요사가 있다. 마당을 건너서 높은 기단 위에는 대웅전이 자리를 잡았다.

 

대웅전은 아담하다. 단청이 바랜 대웅전 건물은 너희들보다 오래됐으니 얌전히 들여다보라고 주의를 주는 것 같다. 대웅전 뒤편으로는 차밭이 가지런하게 조성돼 있다. 차밭 끝에는 잘 자란 소나무들이 몸매자랑을 하고 서 있다. 차밭에서 내려다본 절집은 까만 지붕들이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다. 아름답고 편안한 풍경이다.

 

겨울에도 물회를 먹을 수 있을까

 

남해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유배지였다. 그래서 유배문학이라는 장르를 만들어 유배문학관을 조성했다. 유배자의 한결같은 마음은 님을 향한 그리움이다. 지금 같으면 부인이나 연인이었겠지만 당시 유배자들이 간절히 원했던 님은 우리가 생각한 님이 아니다.

 

유배자들은 정치의 중심에 선 분들이다. 그분들은 유배를 와서도 다시 정계에 복귀할 수 있기만을 바랐다. 그래서 님의 마음이 바뀌기만을 학수고대하지 않았겠는가? 복귀와 유배의 반복된 정치생활. 정치는 중독인 것 같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유배문학관을 나오면서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문구를 만난다. 남해로 유배 온 서포 김만중은 "지금 우리나라의 시문은 자기 말을 버려두고 다른 나라의 말을 배워서 표현하므로, 설령 아주 비슷하다 하더라도 이는 단지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하는 것과 같다"고 했단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다. 지금도 외래어의 범람 속에서 산다.

 

남해에서 물회를 먹을 수 있는 곳이 있다. 남해를 다시 찾은 건 지난여름에 먹었던 물회 맛을 다시 보고 싶은 이유도 있었다. 서상항으로 향했다. 겨울에도 물회를 하는 지 전화로 물었더니 어서 오라고 한다.

 

서상항은 작은 항이다. 항구 끝에는 물회를 하는 집이 몇 집 있다. 내심 맛이 다르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있었지만 다시 먹어봐도 새콤달콤한 물회 맛이 좋다. 냉면사리를 넣어서 마무리하는 깔끔한 물회는 남해에서 색다르게 먹는 최고의 별미다.

 

이제 여행을 끝내야 할 것 같다. 들어올 때 남해대교로 들어왔으니 나갈 때는 삼천포대교로 나가야겠다. 먼 곳으로 돌아가지만 그게 남해 여행의 맛이다. 들어오는 곳과 나가는 곳이 다를 수 있는 섬. 다양한 다리를 보면서 남해를 빠져나오는 기분이 좋다. 삼천포 시내가 보인다. 삼천포로 빠져 볼까나.

덧붙이는 글 | 11월 23일과 24일 남해 풍경입니다.


태그:#남해, #바람흔적미술관, #다랭이마을, #용문사, #독일마을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