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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62년 쿠바미사일 사태 때의 사초라고 할 수 있다.
 책은 62년 쿠바미사일 사태 때의 사초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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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회담대화록 전문 때문에 한동안 정국이 바람 잘 날이 없다. 볼 수 없는 사람들이 봤다고 하고, 본 사람에게 전해 들었다고 하고, 원문이 있네, 없네 하며 각자의 입장에 따라 목소리가 높아진다.

진실은 하나인데 각자의 입장에 따라 주장하는 바라 다르니 충돌이 일어나고, 소모전이 이어진다. 지켜보는 이들에겐 지루할 수도 있지만 표로 먹고 사는 정치인들에겐 그렇지도 않다. 지지층이 사분오열 모여들고 흩어지는 것이 나쁜 일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상호간의 대화, 즉 주고받은 말의 기록이라는 것은 정확해 보이지만, 훗날 다시 들었을 때는 재론의 여지가 많다. 당시의 분위기, 조그만 느낌, 자질구레한 환경 등이 섞여 들어가기에 보다 종합적인 판단을 내려야 한다.

여기 한 대화의 기록이 있다. 자칫 세계가 핵전쟁의 위기에 빠질 수 있는 급박한 순간이었다. 13일간 지도자와 군인, 정치인들이 그들의 의견을 나누었다. 때로는 비꼬고, 조롱하며, 상대의 의견을 깎아내리기도 했지만, 침착한 지도자는 모두의 의견을 차분히 들어주며 가장 현명한 판단을 내렸다. 1962년 쿠바미사일 위기를 평화롭게 해결한 존 F. 케네디의 대화록이 책으로 묶여 나왔다. 무려 43시간의 분량이다.

눈앞에 다가왔던 3차 세계 핵전쟁의 위기

참모들과의 대화로 사태를 평화롭게 이끌어 낸 케네디 대통령.
 참모들과의 대화로 사태를 평화롭게 이끌어 낸 케네디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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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가까이, 아주 가까이 왔다."

1962년 케네디는 백악관 집무실에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랬다. 그해 이른바 '쿠바 미사일 위기'를 통해 제3차 세계대전의 그림자가 드리운 것이다. 당시 후루시초프 소련정권은 쿠바에 42기의 미사일을 설치했던 것이다. 그해 10월 14일, U-2 첩보기를 통해 쿠바에 배치된 소련의 '준중거리 탄도미사일'을 발견한 미국 지도부는 충격에 빠졌다.

미국과 쿠바의 거리는 불과 230Km. 미국의 본토가 사정거리 안에 들어온 것이다. 물론 미국은 소련보다 5배 정도 많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가지고 있었지만, 핵전쟁이 시작되면 그런 수치는 큰 의미가 없었다. 공멸의 위기에 봉착한 것이었다.

이미 백악관에 근무하는 이들에게는 가족을 대피시키라는 지령이 떨어졌다. 케네디 본인도 아내 재클린에게 아이들과 함께 워싱턴을 떠나라고 일렀다. 물론 재클린은 그 이야기를 따르지 않았다. 미국인구의 4분의 1이 죽고, 유럽도 150만 명의 사망자가 나올 거라는 구체적 수치까지 잡아놓은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당시 백악관에서 열린 것이 이른바 '엑스콤'이라는 국가비상회의였다. 대통령의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을 비롯해 딘 러스크 국무장관, 맥나마라 국방장관, 딜론 재무장관, 테일러 합동참보본부 의장, 맥콘 CIA 국장, 앤더슨 해군 제독 및 백악관 참모진들이 모여 13일간 끝없는 회의를 가졌다. 그리고 케네디는 이 대화를 비밀리에 녹음 시킨 것이다.

최악의 순간에도 평정을 잃지 않은 케네디 사초의 진실

당시의 엑스콤 회의 장면.
 당시의 엑스콤 회의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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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노회한 참모진들은 경험 없는 젊은 대통령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르메이는 대통령을 거의 비웃는 듯한 태도로 다시 내뱉는다. "그런 조치는 뮌헨에서의 유화 정책만큼이나 잘못된 방안입니다. 제가 판단하기에는 지금 당장 직접적인 군사적 개입을 하는 것 말고는 다른 해법이 없습니다." 르메이의 발언은 군 최고통수권자에 게 조언을 하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 르메이는 당대의 겁쟁이를 상징하는 최고의 비유, 즉 1938년 뮌헨에서 이루어진 히틀러에 대한 유화 정책을 끄집어내 대통령의 얼굴에 집어던진 것이다. 이어 상·하원의장, 자문위원 등 참석자 거의 모두가 한 방 먹이자는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 128쪽

케네디의 동생마저도 매파적 입장을 견지했던 당시의 분위기는 호전적이었다. 그럼에도 케네디는 개방적 질문과 토론을 이끌어냄으로써 응집력이 강한 수뇌회의 멤버들의 집단사고 현상을 막으려고 애썼다. 당시 수뇌회의에서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의사대로 토론에 임하였고, 차관들은 자신의 장관들과 결렬한 토론을 벌이기도 했던 것이다.

1977년에서 1999년까지 23년간 케네디 도서관의 역사학자로 일한 저자 셀던 M. 스턴은 녹음테이프를 다각적인 방법으로 되풀이해 들으며 그날의 진실에 다가서려 노력했다. 1983년부터 1997년까지 단계적으로 진행된 쿠바 미사일 위기 테이프의 기밀 해제 작업에 관여하기도 한 스턴은 이 일이 역사학자의 '궁극적인 판타지(ultimate fantasy)'였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러면서 저자는 케네디 대통령은 거의 화를 내지 않았다고 전한다. 위기가 절정에 이른 시기에 엑스콤 자문위원과 의회지도자들의 가차 없는 비난에도 쉽게 동요하지 않았고, 누구도 심하게 몰아붙이지 않았다고 한다. 짜증나고 화가 날 상황이어도 목소리조차 높이지 않은 것이 케네디의 모습이라고 기술한다.

완벽한 영웅은 아니었어도, 미국인이 그리워하는 대통령

당시 쿠바에 배치 된 소련의 미사일.
 당시 쿠바에 배치 된 소련의 미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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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대통령의 동생이자 법무부 장관이던 로버트 케네디가 썼던 <13일>이라는 책에는 젊고 용기 있는 미국 대통령이 소련의 핵 위협을 놀라울 정도의 냉철한 판단으로 절묘하게 막아낸 것으로 그리고 있다. 하지만 '쿠바 미사일위기, 거짓말, 그리고 녹음 테이프'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케네디 대통령을 완벽한 영웅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케네디는 때때로 횡설수설하기도 하는 불완전한 상황인식을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그것이 인간의 본 모습일지도 모른다. 28일 개봉한 영화 <버틀러 : 대통령의 집사>에서도 처음부터 케네디가 흑인정책에 확고한 신념을 가지진 않은 걸로 그려졌다. 단 진실의 실체를 파악했을 땐 누구보다 강력한 믿음으로 밀어붙인 이로 기록되어진다. 책에 나타난 케네디의 모습도 그러하다. 

애초에 케네디가 비밀 녹음기를 설치하고 기록을 남긴 것도 그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다. 그는 정책이 실패했을 때 말을 바꾸는 이른바 '별'들의 모습에 환멸을 느껴 대화를 후세에 남겼다고 한다. 겉으로 내보이진 않아도 분노의 심정을 역사에 기록해두려는 그만의 방식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지난 22일은 케네디 사후 5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미국인들은 물론 세계 각지의 조문객들로 그의 무덤은 외롭지가 않다고 한다. 불과 3년의 짧은 재임기간이었지만,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케네디 대통령. 책을 읽다보면 그가 조국에서 그토록 잊히지 않는 것은,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결과를 이끌어낸 그의 의사결정 과정도 한몫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덧붙이는 글 | 셀던 M. 스턴 저 / 박수민 역 /모던타임스/2013.11.22/ 1만5천원



존 F. 케네디의 13일 - 쿠바 미사일 위기, 거짓말, 그리고 녹음테이프

셀던 M. 스턴 지음, 박수민 옮김, 모던타임스(2013)


태그:#케네디, #쿠바미사일, #소련, #대통령, #사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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