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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난 데가 많다. 남들이 두루 좋아하는 걸 별로 좋게 보지 않는 것도 그중 하나다. 이 때문에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게 쉽지 않을 때가 있다. 그때 나는 좀 괴팍한 사람이 돼버린다. 며칠 전의 일이 그랬다.

학교 행사를 마치고 또래 동료들과 가볍게 맥주 한 잔을 하러 갔다.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tvN의 인기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이하 응4)가 화제에 올랐다. 상투적으로 반복되고 있던 '뒷담화'에 질려 있었던 탓일까. 좌중 분위기가 순식간에 후끈 달아올랐다. '응4'라는 약어와 '쓰레기', '해태' 등의 인물 별칭이 어지럽게 오갔다.

나는 심드렁했다. 집에 텔레비전이 없으니 응4를 볼 기회가 없어서다. 이야기에 끼어들어 내던질 말이 있을 리 없었다. 가만히 있는 내가 안쓰러웠나(?) 보다. 한 동료가 '해태'가 내 고향 순천 출신이니, 여수 출신 인물도 나오느니 하면서 말을 걸었다. '그래?'만 하고 말았다. 드라마를 보지도 못한 내가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으랴.

잠시 후, 한 동료가 인터넷으로라도 한 번 보라고 이야기한다. '왜 봐야 해?'라며 까칠하게 대답하려다 만다. 대신 애써 관심이 조금 있다는 투로 '그렇게 재미있어?'라고 물었다. 그러자 또 다시 이런저런 응4 예찬론이 쏟아진다. '일단 한 번 보라니까'부터 '내가 드라마를 안 보지만 응4만은 꼭 챙겨본다'까지 '응4 시청 당위론'이 폭포수처럼 흘러나왔다.

그런데 나는 그 말들을 전부 '거울 반사' 하고 싶었다. 그만큼 불편했다. 내가 텔레비전이나 드라마에 관심이 없다는 건 그 자리에 모인 동료들도 어느 정도는 안다. 우리 집에 텔레비전이 없다는 것도 대강은 눈치로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내게 응4를 격렬할 정도로 권했다. 심하게 말하면, 그들은 나로 하여금 그것을 보지 않는 것이 어딘지 모르게 이상한 일인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물론 그들의 마음 잘 안다. '나'를 즐겁게 하는, 그래서 '나'가 좋아하는 책이며 음악, 영화, 드라마를 친한 사람에게 권할 때의 기쁨과 보람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는가. 악의는커녕 나를 즐겁게 하고 기쁘게 하려는 의도로 전하는 그런 말을 어느 누가 '거울 반사'하고 싶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나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동료들의 대화에 끼어들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그 재미있다는 드라마를 보지 못해서는 더더욱 아니었다. 이유가 있다.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을 일방적으로 강권하는 동료들의 '과잉 관심'(?)이 그것. 해석을 거창하게 해서 이유 하나를 덧붙일 수 있다. 바로 '우리'가 좋아하는 것은 '나(너)'도 좋아해야 한다는 획일주의!

한두 가지 사례만 있는 게 아니다. 세상이 월드컵 열풍에 빠지면, 축구에 대한 '나'의 취향과는 무관하게 수많은 '나'는 축구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 안 된다. 축구에 대한 관심이 없는 '나'는 자칫 아주 '특이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우리나라 대표 팀이 우수한 성적을 내고 있기라도 하면, 축구를 보지 않는 '나'는 간혹 국적 의심을 받기까지 한다.

김연아와 같은 스타 선수가 세상의 이목을 잡아 끌 때는 또 어떤가. 몇 년 전, 나는 한 학회에 갔다가 김연아 선수의 경기 때문에 학회 시작 시간이 자연스럽게 미뤄진 경우까지 본 적이 있다. 평소 고리타분하기 짝이 없는 학인들이 한데 모며 운동 선수를 응원하는 모습은 결코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 정도로까지 해야 했을까. 김연아에게 열광하는 그들의 눈에는 시큰둥하게 서 있는 적지 않은 '나'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응답하라 1994> 한 장면.
 <응답하라 1994> 한 장면.
ⓒ 응답하라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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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4로 돌아가자. 친구들의 성화 때문에라도 응4 시청 흉내를 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다. 벌써 11회까지 진행되었다. 한 회당 시간은 90여분. 전체를 다 본다면 16시간이 넘게 걸리는 분량이었다. 깨끗하게 포기했다. 그리고 응4 누리집과 이런저런 리뷰 기사들을 훑어봤다. 결론은?

응4는 후일담 드라마다. 모든 후일담 갈래가 그런 것처럼, 그것은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프레임을 바탕으로 한다. 현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되, 과거의 연장으로서만 받아들인다. 그래서 후일담 갈래의 진정한 정치성은 그 현재로 이어지는 과거의 '색깔'에 따라 좌우된다.

응4의 과거는 어떤 색깔일까. '오렌지족'으로 통칭되는 엑스(X)세대, 또는 신세대가 나타난 때는 1991년이었다. 흔히 1991년 이후 세대는, '정치 과잉'이었던 그 이전 세대와 달리 문화적 감수성에 더욱 민감해진 세대로 분류되고 해석된다. 그래서였을까. 1991년 이후 우리나라는 대중문화가 유례 없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고, 젊은이들의 문화적 욕구가 다채롭게 분출되었다.

1994년은 그때로부터 3년이나 지난 시기다. '정치'는 해묵은 단어가 되었다. 자본에 포섭된 상업적인 대중매체와 스포츠는 '문화'의 외피를 쓰고 수많은 젊은이의 눈과 귀를 그러모았다. 응4의 색깔은 바로 그런 탈정치적인 맥락 속에서 결정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문제는 바로 이 '탈정치'에서 비롯된다. 이 세상에 '탈정치'는 없다. 달리 말해 세상 만사는 모두 '정치적'이다. '탈정치'는, 엄밀히 말하면 '탈정치로 포장된 정치'의 수사적 표현일 뿐이다. 왜 그런가. '정치 과잉주의자'라는 비난을 받더라도 할 말은 해야겠다. 정치가 불필요한 세대, 혹은 정치가 무용한 시대는 결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응4의 대학생들이 살아가는 1994년에는 '정치'가 없다. 정치가 눈꼽만큼도 보이지 않는다. 정치가 없으니 현실이 보이지 않는 건 당연하다. 명문대생의 풍요로운(?) 하숙 생활 이면에는 달동네와 반지하방을 전전하던 지방 고학생 출신들의 힘겨운 자취 생활이 있었다. 대학에 들어가 이른바 '캠퍼스의 낭만'을 즐기던 45.3%(1994년 전문대까지 포함한 대학진학률이다. 4년제만 놓고 보면 고작 29%에 불과했다.)와 달리 54.7%의 고 3 졸업생들은 정글 같은 사회로 나가 피땀을 흘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들의 이야기, 그들의 숨결을 응4에서는 그 어디에서고 찾아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응4의 '1994년 세대'는 아이엠에프(IMF)의 직격탄을 맞은 첫 희생자다. 당시 사람들은 그들을 '저주받은 세대'로 불렀다. 한 마디로 그들은 힘겨운 세대였다. 응4의 대학생들이 학교를 졸업해 사회로 나올 때쯤 대한민국은 '구조조정'이라는 말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들의 20대 중·후반과 30대는 간난신고 그 자체였다. 그런 현실이 12회 이후에 조금 그려질까. '나정'의 남편 '김재준'을 찾아가는 듯한 현재의 극 전개 과정이나, 누리집의 '인물 관계도'만 보아서는 그럴 가능성이 별로 높아 보이지 않는다.

나는 지금 응4가 은연중에 강조하는 어떤 것에 딴지를 걸고 싶다. '그땐 모두 그랬지'에 담긴 획일주의와 같은 것 말이다. 왜 작가는, 그리고 응4에 열광하는 '우리'는 "'그땐 모두 그랬지'주의"에 그토록 쉽게 빠져드는 걸까. 채 한 줌도 되지 않는 서울 지역 명문대생들의 이야기에 비명문대생과 지방대학생, 비대학생들이 겪어야 했던 시린 현실의 이야기가 도맷금으로 묻혀 버려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우리'를 이토록 쉽게 "'그땐 모두 그랬지'주의"에 포섭하게 만드는 거대한 획일주의가 무섭다. 그것은 지나간 과거의 정치적인 올바름 여부를 따지는 일을 어렵게 만든다. "과거는 과거고 현재는 현재"라는 말도 안 되는 논리가 횡행하게 한다.

응4에는 역사가 없다. 응4에는 정치와 현실이 거세된 과거만 존재한다. 그 과거는 '순수'와 '낭만'으로 착색되어 있다. '우리'를 아련함에 빠지게 한다. 하지만 그뿐이다. 응4의 과거는 더위와 갈증 끝에 마시는 캔맥주 한 모금일 뿐이다. 마시고 배설하고 나면 아무것도 없다. 응4에 '획일적으로' 열광하는 분위기가 못내 씁쓸한 이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응답하라 1994>, #후일담 드라마, #탈정치, #획일주의, #"'그땐 모두 그랬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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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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