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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한다. 도착하면 연락할게. 오랜만에 식사나 하자."

여장을 풀기도 전에 찾아올 것처럼 파라과이에서 출국을 알려왔던 친구가 일주일 넘게 연락이 없었습니다. 소식이 궁금했지만 이메일 말고는 달리 연락할 방법이 없어 답답해하던 차에 한국에서 사용할 휴대전화 번호라며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친구에게 전화해봤습니다. 살아있음을 알게 해주는 반가운 목소리와 달리 친구는 그간 소식을 전하며 한탄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에 도착한 날부터 장염으로 지독하게 고생했다는 소식과 함께 말입니다.

친구는 병상에 누워 자신이 물갈이를 하고 있음을 알았답니다. 그것도 난생 처음 해외여행을 간 여행객처럼 말이죠.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그 사실을 말한다는 게 여간 남사스러운 게 아니었답니다. 장염으로 고생하는 친구에게 어머니는 "'나 외국물 먹었네' 하고 유난스럽게  군다"라며 혀를 차시면서도 안쓰러움을 감추지 않더랍니다.

친구는 중간에 1년 정도 한국에 들어온 적이 있긴 했지만, 파라과이에 이민을 간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살려고 부단히 노력하더니, 지난달에는 늦은 나이에 졸업 논문을 쓰고 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졸업을 하고 잠깐 고국에 온 친구를 반긴 건 '장염'이라는 고국의 텃세였습니다. 10년이 넘는 이민생활을 경험한 친구에게 한국은 이미 물마저 낯선 땅이 됐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물갈이 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던 거죠.

친구의 장염 소식을 듣자니, 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코앞이었던 날 몽골로 쫓겨간 한 아이가 떠올랐습니다. 한국 이름은 '민수'(가명), 몽골에서는 '징기'(가명)라 불리는 아이. 지금부터 강제 추방 과정에서 인권침해를 받았다는 이유(관련기사 : 몽골 청소년 강제추방 논란... "반인권적 사태" 비판)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었던 민수의 이야기를 그의 입을 빌려 재구성해 싣습니다.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강제추방된 학생

드넓은 초원에서
 드넓은 초원에서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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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 베노!"(안녕하세요의 몽골말)

저는 몽골 아이, 아니 몽골 청년 징기입니다. 한국에서는 저를 '민수'라고 부르죠. 저를 아는 사람들은 제가 몽골어로 먼저 인사하고, 몽골 이름으로 소개하는 게 어색할 수도 있을 겁니다. 사실 이렇게 말하는 저 역시 어색하니까요.

저는 '떼(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월드컵 열기가 여전하던 2002년 가을에 대한민국에 입국했다가, 10년 만인 지난 2012년 가을에 몽골로 돌아왔습니다. 지금이야 돌아왔다는 말을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는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대한민국에서 '강제추방'된 학생이었습니다.

가을 하늘은 참 높고 푸르잖아요? 몽골 가을 하늘 역시 높고 푸릅니다. 특히 광활한 초원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가슴을 뻥 뚫리게 해주는 매력이 있습니다. '뻥 뚫린다'는 말을 해놓고 나니 지난 가을, 초원에서 눈이 퉁퉁 붓고 가슴이 먹먹해질 때까지 울었던 기억이 나네요. 실컷 울고 나니까, 뻥 뚫리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게 가슴이 허해져서 그런 건지, 속 시원해져서 그런 건지 모르지만, 그 순간 왠지 낯설고 어색했던 초원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요.

'잘 돌아왔다. 잘 돌아왔다.'

'토~닥 토~닥', 초원은 가슴이 뻥 뚫리도록 울던 저를 달래며 등을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울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막 쫓겨난 제게 드넓은 초원은 휑한 가슴에 마른 풀잎만 가득한 찬바람 날리는 대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 품처럼 푸근하기를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낯설지도 않을 거라 여겼던 초원이었습니다.

하지만 10년 동안의 한국생활은 저에게 초원을 외지로 만들어놨더군요. 어색함이 많이 사라진 지금도, 사방을 둘러봐도 한 사람 보기 힘든 광활한 초원보다 오히려 한국의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과 가끔 어깨를 부딪쳐도 이상할 것 없는 북적이는 길거리가 안방 같은 포근함을 던져줍니다.

"너 몽골 사람 맞니?"라는 말

그런 저를 보고 사람들이 말합니다. "너 몽골 사람 맞느냐?"고. 이런 말, 참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의 이런 질문 속에 '한국서 살고 오더니 유난을 떤다'는 핀잔이 섞여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혼란스러웠습니다. 한국에서는 몽골 아이라고 해서 내쫓았는데, 몽골에서는 몽골 사람 맞냐고 묻다니…. 이게 말이 됩니까?

강제출국 되기 앞서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 사흘을 보내는 동안, 퀴퀴한 냄새가 나는 담요에서 잠을 설치고 부족한 식사로 늘 배가 고팠습니다. 그랬던 터라 몽골에 가면 우선 배불리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외국인보호소에서 인천국제공항 출입국 대기실까지 가는 호송버스 안에서 손목을 옥죄는 은색 수갑을 차고 있을 때도, 10년 만에 돌아가는 몽골 생활에 대한 걱정에 앞서 뭘 먹어야 할지를 고민할 정도였습니다. 정말 원초적인 고민이었습니다. 한참 먹고 자랄 나이잖아요.

그런데요. 그런 제가 몽골에서 제일 먼저 경험한 게 뭔지 아십니까? 바로 '물갈이'였습니다. 말이 됩니까? 몽골은 제가 태어난 고향이잖아요. 물갈이는 여행객들이나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고향에서 물갈이하니까, 친척들이 그러는 거예요. "너 몽골 사람 맞냐"고.

물갈이하면서 제일 먼저 생각났던 게 뭔지 아세요? 김치였어요. 혀끝에서 시큼하고 매운맛이 감도는 김치가 침을 고이게 했습니다. 제 정체성과 관계없이, 제 몸은 지금도 저를 한국 땅에 사는 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 몸이 기억하는 것은 정체성과 다른 면이 있는 셈이지요. 갑자기 정체성 이야기가 왜 나오느냐고요?

한국아이 민수와 몽골아이 징기

미등록 이주아동 강제추방 규탄 기자회견, 국가인권위 앞.
▲ 이주아동 강제추방 규탄 기자회견 미등록 이주아동 강제추방 규탄 기자회견, 국가인권위 앞.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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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언제나 제게 '한국 아이'이길 강요했습니다. '우리나라'라는 이름으로 말입니다. 학교에서 공부하고,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뛰놀고, 길거리에서 군것질하고, 한일전 축구경기를 응원할 때도…. 무엇을 하든지, 저에게 허락된 '우리나라'는 '대한민국'뿐이었습니다.

올림픽에서 박태환 선수가, 손연재 선수가 경기에 임할 때도 심지어 한국 선수와 몽골 선수가 레슬링 시합을 할 때도 친구들은 "떼~한민국, 짝짝짝 짝짝"을 외쳤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10년을 살면서 저는 당연히 한국어로 말하는 것이 모국어를 쓰는 것인 줄 알았고, 한글을 읽고 쓰는 것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한국 아이가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날도 그랬습니다. 친구들이 다퉜던 그날. 몽골인 주제에, 불법체류자 주제에, 주제넘게 통역을 한답시고 경찰서에 겁 없이 발을 들여놨을 때도 제가 몽골 아이, 불법체류자 취급을 받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 했습니다.

사건 당일, 한국 아이들과 몽골 아이들 사이에 말다툼이 있었습니다. 누군가 '몽골 새끼'라고 뱉어낸 욕설이 싸움의 발단이었습니다. 싸움이 시끄러웠던지, 경찰 지구대가 출동했고, 싸움을 말렸던 저는 싸움 당사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과 달리 그 자리를 피하지 않았습니다. 경찰들은 싸움하다 붙잡힌 몽골 아이들을 조사한다면서 제게 통역을 부탁했습니다. 밤새 통역을 하고, 통역이 끝난 후에는 '앉아있으라'는 경찰의 말에 누워 쉬지도 못하고 의자에 앉아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조서를 다 꾸민 경찰은 저를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로 보내더군요.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저는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는 서류에 사인을 강요당했고, 미성년임에도 수갑을 채워 화성외국인보호소로 보냈습니다. 저는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 강제추방을 앞둔 어른들과 한방에 억류됐습니다.

보호소에 있는 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할 정도로 불안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추방 당일에는 어른들과 다를 바 없이 손목에 수갑이 채워진 채 호송차에 실려 인천공항으로 이송됐습니다. 인천공항에서는 물조차 먹지 못하고 두세 시간을 대기했다가 수갑을 찬 채로 일반인들의 왕래가 잦은 통로를 지나 비행기 앞에서야 수갑을 풀 수 있었습니다. 그 기간의 경험은 마치 감옥에 갔다 온 것 같았습니다.

한국 아이이길 강요했던 대한민국, 결국...

어른들은 그렇잖아요. '아이들은 싸우며 크는 거라고'. 그런데 한국 경찰은 몽골에서 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싸움한 아이들과 함께 저를 강제 추방했습니다. 언제나 한국 아이이기를 강요했던 대한민국은 결정적일 때, 저를 한국 아이로 대해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어쩔 수 없는 '몽골 아이'였습니다.

요즘도 이곳 어른들은 장난스럽게 묻습니다. "너 몽골 사람 맞느냐?"고, 한국에서는 제가 너무 한국사람 같으니까, 반대 의미로 묻기도 하겠죠? "너 몽골 사람 맞느냐?"고 말이죠. 사실 몽골이나 한국이나 어른들은 늘 제게 "너는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묻고 또 묻습니다.

저는 몽골 사람이 맞습니다. 칭기즈칸의 후예, 맞습니다. 당대 세상을 떨게 했던 칭기즈칸의 뜨거운 피, 그의 DNA가 저에게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언제나 자랑스러워하는 청춘, 맞습니다.

강제추방은 저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인식하게 해줬습니다. 몽골에서 대학에 가고, 다시 한국 유학을 계획 중인 저는 요즘 이런 농담을 합니다. '출입국에 감사한다'고. 세상을 원망과 눈물만으로 살 수 없잖아요. 앞날이 밝은데, 감사하며 살아야죠.

제 몸의 기억력에 달려있겠지만, 한국에 다시 갈 수 있다면 얼마간은 물갈이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것만은 분명합니다. 저는 몽골 아이에서 청년으로 자란, 징기라는 이름으로 한국을 찾을 것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대한민국을 좋아하는, '몽골 청년'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미래를 꿈꿀 것이라는 거죠.

다만, 이 한 가지는 기억해주세요. 저처럼 어린 나이에 '감옥에 갔다 온 것과 같은 경험'을 하는 아이들이 더 이상 생기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 말입니다. '한국 아이'면 어떻고, '몽골 아이'면 어떻습니까? 이주아동들을 그냥 '아이'로 봐주세요. 부모와 함께 자라야 하는 아이로 봐주세요. 그 아이가 비록 미등록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강제추방 이후, 한국에서는 어떤 일이?] 국가인권위는 위 사례 진정 건에 대해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 제3조 제1항에 따라 피해자의 최선의 이익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될 수 있도록 적절한 구제조치를 취할 것과 출입국관리법령의 규정 마련과 재발 방지대책을 수립할 것"을 지난 7월 9일 법무부장관에게 권고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10월 30일 법무부는 이를 수용한다고 국정조사에서 밝혔습니다.

"저 같은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게..."
"미워하는 감정보다는… 돌아가고 싶다… 그립다. (같이 공부했던)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 저 같은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게…."

지난 4월 10일, 국회인권포럼과 '추방 몽골인 학생 복교와 재발방지대책촉구 인권연대'가 국회의원 제2세미나실에서 공동주최한  '미등록이주아동의 기본권 실태와 개선방안 토론회'에서 '몽골인 학생 추방의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공익인권법재단 황필규 변호사는 민수가 강제 퇴거된 후의 생활을 전하며, 한국으로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몽골로 강제 퇴거된 직후, 민기는 도시의 고등학교에 들어갔으나 다른 학생들이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몽골 글자를 잘 몰라 수업의 70% 이상을 이해하지 못하며 칠판 필기도 쫓아가지 못하는 등 적응하지 못하고 그만뒀습니다. 현재는 시골에서 공부하며 몽골에 적응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편, 민수의 이모는 민수의 물갈이 소식을 전하면서 "아이가 몽골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게 안쓰럽다"며 "이모인 나와도 의사소통이 힘든데, 본인은 더 힘들지 않겠느냐, 한국으로 돌아가길 원한다"고 대책위 관계자들에게 하소연했습니다.



태그:#물갈이, #장염, #불법체류, #미등록이주아동, #강제 추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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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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