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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인물은 저 멀리 있는 것으로 알았다. 하지만 우리 동네에도 화제의 인물은 있었다. 고양시 화정동에 있는 고양검도관을 운영하고 있는 윤혜숙(39) 사범. 알고 보니 그는 올해 열린 한국사회인검도대회 여자 장년부에서 우승을 한 인물이었다. 올해로 26회째를 맞은 '한국사회인검도대회'는 전국 최대 규모의 검도 축제로 여기에서의 우승은 검도인에겐 큰 영광이라고 한다. 지난 20일 저녁, 그를 만나 한 여성의 검도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는 의자에 앉기보다 주로 방바닥에 앉은뱅이 자세로 앉는다. 몸의 흐트러짐을 허용하지 않기 위해서다.
▲ 도장 사무실 바닥에 장판을 깔고 앉아 있는 윤혜숙 사범. 그는 의자에 앉기보다 주로 방바닥에 앉은뱅이 자세로 앉는다. 몸의 흐트러짐을 허용하지 않기 위해서다.
ⓒ 김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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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인검도대회(아래 사회인검도대회)는 가장 규모가 큰 전국 대회다. 검도인에게는 최고의 축제라고 할 수 있는 대회로 매년 7월 경에 열린다. 올해는 지난 7월 17일에 열렸다. 전국 각 지역에서 '검도 좀 한다'는 사람은 빠짐없이 참여한다.

사회인검도대회는 일반 검도인(아마추어)들이 참가하는 대회다. 일반인과 프로와의 차이는 실업팀 선수로 등록이 되어 있느냐 아니냐의 여부다. 그렇다고 선수 경력이 없는 사람들이 참가하는 건 아니다. 선수 생활을 그만둔 지 5년 지나면 자동적으로 선수등록이 해지되면서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프로선수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실업 선수팀에 소속되어 있느냐 아니냐의 차이지만, 국내 실업팀이 워낙 적어서 모든 검도인을 수용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일반인 대회라고 해서 실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은 아니다. 사회인검도대회는 '재야의 고수'라고 할 수 있는 사회검도인도 많이 참여하기 때문이다. 재야에서 평생 칼을 갈고 닦은 고수들의 실력 폭은 가늠하기 어려운 법. 사회인검도대회에서의 입상은 모든 검도인들에게 최고의 영광이 된다.

윤혜숙 사범은 실업팀에 소속되어 있는 검도인은 아니다. 작은 도장을 관장인 남편과 함께 운영하고 있다. 그런 그는 지난 10년 동안의 도전 끝에 일반인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그녀의 도전 일기

그는 항상 '도전 중'이다.
▲ 벽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갖가지 트로피들. 그는 항상 '도전 중'이다.
ⓒ 김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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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검도를 다시 시작한 지 10년이 된 해다. 그는 노력파다. 10년 동안 한 해도 빼놓지 않고 도전을 했다. 처음에 출전했을 때를 생각하면 피식 웃음부터 나온다고 한다.

"처음에는 출전했을 때는 뭐가 뭔지도 모르고 긴장으로 덜덜 떨다가 온 기억 밖에는 없어요(웃음). "

2002년도에 3위를 했는데 너무 좋았다. 그 다음에는 더 잘해야겠다고 다짐했는데 이상하게 계속 예선에서 탈락했다. 한번은 1년 내내 이를 갈며 열심히 준비해서 나갔는데 아예 예선에서 탈락한 적도 있었다. 그때는 진짜 검도를 때려치우고 싶을 정도로 억울했다.

그러다가 3년 전에 준우승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아쉽게도 결승에서 졌다. 그런데 그때 뭔가 뚫리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우승을 하지는 못했지만 준우승을 하면서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것일까?.

"그때 마음이 편해지면서 이제는 운동을 즐기면서 해야겠다는 깨달음이 들었어요. 전에는 승부에만 집착해서 했던 것이 아닌가 싶더라고요. 좀 건방진 얘길 수는 있지만, 준우승에 그쳤지만 내용은 정말 만족스러웠어요. 결과적으로 내가 이긴 경기라라는 사뭇 건방진 생각을 할 만큼 뭔가 시야가 좀 트였던 것 같아요."

그 다음부턴 그냥 즐기면서 했다. 즐긴다는 생각에 너무 방심한 것일까?

"올해는 유난히 우승을 하고 싶었지만 사실 컨디션은 너무 안 좋았어요. 그래서 그냥 입상에 대한 기대는 접고 관장님에게는 참여만 하겠다고만 했어요."

마침 날씨도 도와주지 않았다. 대회 당일에는 비도 엄청 많이 보고 아침부터 이상하게 정신도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있을 수도 없는 일을 저질르고 말았다. 자신의 도복을 가져가지 않은 것이다.

"군인이 전쟁터에 총을 두고 간 셈이었죠(웃음). 정말 초급자도 안하는 짓을 그날 한 거죠. 누구한테 빌릴 수도 없어서 대회장에서 하나 구매해서 입고 대회를 치렀어요."

그렇게 편한 마음으로 경기를 했다. 오늘은 안되겠다. 그냥 즐기고 나와야겠다는 생각에 평소에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했는데 결승에 가 있었다. 축하를 받으며 내려오다 구석진 장소에서 한 10분 정도 앉아 있었다. 울고 웃었던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그래도 여기서 우승을 했구나.

"사실 여기서 우승하면 이제 대회는 지겹다고, 끝이라고 생각했어요(웃음). 그런데 막상 우승을 하고 보니까 또 다른 도전의 의욕이 생겼더군요. 뭐 하나 또 넘고 나니까 도전할 생각이 또 들었어요."

검도인대회는 아직은 남성의 비율이 높지만 예전에 비해 여성의 비율이 증가하는 추세다. 올해 대회도 여성 참가자가 작년보다 눈에 띄게 증가했다고 한다. 참가자들 중에 장년층이 가장 많다. 국내 검도대회에서 여성부 경기가 만들어진 지는 15년.

"아무래도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되다 보니까 고단보다는 초단이 많아요. 제가 20대 초반에 우러러 봤던 사람이 지금은 고단인 7단에 분포되어 있어요. 지금 검도를 시작하는 여성이 많아지니까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이런 식으로 고단자층이 넓어질 것 같아요."

그의 도장에도 여성 회원이 많다.

"아무래도 여자 사범이 있으니까 그런 면도 있을 거에요. 여자들이 도장의 문을 열고 들어오기가 아직 까지는 쉽지 않거든요. 그러나 검도를 하고 싶어하는 여성들이 많이 늘어나는 것은 분명해요."

여성 검도인의 직업은 정말 다양하다고 한다. 주부부터 시작해서, 교사, 상담사, 간호사, 병원 레지던트, 대학생 등. 이렇게 다양한 직업의 여성들이 검도에 관심있었다는 사실에 그도 도장을 하면서 놀랐다고 한다.

검도의 매력이 뭔지 물어봤다.

"검도의 매력이요? 음. 너무 많지요(웃음). 은근히 대등하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 아닐까 해요. 그야말로 남녀노소 힘에 차이 없이 대등하게 칼을 맞대고 할 수 있는 스포츠는 많지 않잖아요. 그게 검도의 가장 큰 매력이에요. 그런 점에서 희열을 많이 느껴요."

검도는 고도의 정신 집중을 요하는 운동이다.

"단기간에 되는 건 아닌데 꾸준히 하다보면 어느 순간 집중력이 늘어났다는 것을 느껴요. 칼을 맞대고 상대를 대하면서 잠깐 눈 깜작할 사이에 승부가 결정나는 것이기 때문에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거죠. 상대가 언제 어떻게 어디로 공격해 올지 예측할 수 있어야 해요."

모든 정신이 상대 움직임의 결을 따라가야 하기에 집중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예부터 검도는 운동 이전에 마음을 수양하는 도구로 삼기도 했다.

"여성 검도 세계 제왕이 되고 싶어요"

그는 “검도의 기본은 인격 수양”이라고 말한다.
▲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는 모습. 그는 “검도의 기본은 인격 수양”이라고 말한다.
ⓒ 김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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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혜숙 사범은 원래 고등학교 때부터 검도에 관심이 있었다. 아니 칼 자체에 매력을 느낀 것인지 몰랐다. 다른 여학생들은 패션용품이나 액세서리를 고르며 까르르 웃음꽃이 필 나이. 그는 '검'부터 잡았다. 그냥 무작정 좋았다.

"굳이 말한다면 영웅심의 발로였을까요? 무협영화에 보면 칼로 나쁜 악당들을 처단해 주는 것이 너무 멋있었어요."

내면의 영웅주의를 밖으로 발산할 만한 계기를 희구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검도를 제대로 배우고 싶었는데 그때는 어디서 배울 만한 곳이 마땅치 않았다. 대학교 1학년 때, 검도 동아리를 만든다고 써 붙인 대자보를 봤다. 당장 동아리를 찾아갔다. 당시 유명했던 경기도 검도회의 김재열 선생님에게 선이 닿아, 선생님이 직접 와서 검도 기초 이론에 대해서 가르쳐 주었다.

그때는 학교에서도 특별히 검도 동아리에 지원을 해준 것이 없어 여건이 열악했다. 학교 옥상 위에서 배웠다.

"선생님이 한 번 와서 한 가지 자세를 가르쳐 주면 한 달간 그것을 연습하고, 다음 달에 또 한 자세 가르쳐주면 한 달. 또 그것만 연습하는 식으로 배웠다. 한 달 내내 한 동작만 연습한 셈이죠. 그때는 검도에 미쳤었어요. 전철을 타면서도 손잡이를 검도라 착각하기도 했으니까요(웃음)."

그러던 중에 선생님이 도장 하나를 오픈했으니까 그리로 오라고 했다. 그곳이 지금의 고양검도관이었다. 그때 도장 관장이 지금의 남편이다. 한동안 그곳에서 운동을 했다. 그냥 막연하게 검도가 좋은데 검도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으니 더없이 좋았다. 검도에 빠지면서 전공을 잊고 그냥 검도만 생각하며 살았다. 학교를 졸업하면서 바로 결혼했다. 한동안 주부로 있다가 아이 낳고 결혼을 한 후 29살 무렵에 다시 검도를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검도를 남편한테 인정을 받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검도를 하면서 인정을 받고 싶었던 게 먼저였던 거죠. 지금의 검도 스타일은 다 남편 스타일이에요."

물론 일상생활에서는 그렇지 않지만 검도장 안에서만큼은 남편이 아니다. 오로지 스승에 대한 예의를 다 한다. 어떤 경우에도 스승에 대한 존중심을 잃지 않는 것. 그게 검도 정신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목표가 없는 줄 알았는데 조금씩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특히 여자들만의 대회라고 일컫어지는 미르치과기 대회라는 게 있어요. 그 쪽도 한 번 도전해 볼 생각이 있어요. 여성 검도 세계 제왕이 되고 싶어요(웃음). 지금 제가 5단인데 개인적으로는 6단을 위해서 노력해야겠지요. 그리고 심사위원도 도전해 보고 싶어요. 또 여러 가지 자격증에도 도전하고 있고. 내가 가질 수 있는 자격은 다 갖고 싶어요."

그는 여전히 도전 중이다.


태그:#검도, #여성, #고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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