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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회 방송하는 <팟캐스트 윤여준> 중 '윤여준 칼럼' 전문을 <오마이뉴스>에 지상 중계합니다. [편집자말]
역시 권위주의적 리더십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8일 국회에서 행한 시정연설을 보면 형식적으로는 국회 중시이지만 내용적으로는 국회 경시다. 그런 점에서 권위주의적이라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 중 4번째로 국회 본회의에서 직접 시정연설을 한 것이나 매년 국회에 나와서 시정연설을 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국회를 존중하는 태도다. 또 국회가 정치의 중심이라고 말한 것이라든지 무엇이든 여야가 합의하면 존중하겠다는 것과 새해 예산안과 경제 활성화 관련 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호소한 것 등도 일단 입법부를 존중하는 태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내막과 내용에 들어가 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박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국회를 정치의 중심으로 여기는 모습을 보인 일이 없다. 오히려 집권여당을 무력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야당을 국정의 동반자로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그 결과 국회가 정치의 중심이 아니라 갈등과 대결의 중심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여야 합의로 국회에서 통과돼서 제도화되면 대통령은 당연히 이를 존중해야 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호의적 배려로 존중 여부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현재 다수당이자 집권당인 새누리당이 대통령의 통치 도구로 전락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마당에 대통령의 뜻과 무관하게 야당과 합의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그러므로 대통령의 시정연설은 형식논리로는 흠잡을 데가 없어 보이지만 실제 내용에 있어서는 매우 공허하다는 것이다. 정치적 쟁점을 둘러싸고 여야가 극한 대결을 지속해오고 있는 상황 속에서 새해 예산안과 경제관련 법안을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서 원만하게 합의 처리한다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대통령의 시정연설이 끝난 직후 여야가 보여준 반응이 바로 이것을 증명하는 것 아니겠는가?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2014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마치고 퇴장하자 여당 의원들은 자리에서 일어서 환송하는 한편 야당 의원들은 자리에 앉아 지켜보거나 외면하고 있다.
▲ 기립한 새누리당, 앉아있는 민주당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2014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마치고 퇴장하자 여당 의원들은 자리에서 일어서 환송하는 한편 야당 의원들은 자리에 앉아 지켜보거나 외면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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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극한 대립으로 저물어가는 박근혜 정부 첫해

그러면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그럴 것을 사전에 몰랐을까? 그랬을 리 없다. 여당이 노리는 것은 양비론일 가능성이 높다. 여당은 어떤 불리한 정치적 이슈라도 양비론을 조성하면 손해 볼 것이 없다는 계산을 한다.

국민의 신뢰를 잃고 있는 야당을 상대로 양비론을 형성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고 본다. 청와대와 여당은 앞으로 야당을 국정의 발목을 잡는 세력으로 몰아갈 것이고 내년도에 만약 경제와 민생이 어려워질 경우에는 그 책임의 상당 부분을 야당의 국정 발목잡기 때문이라고 주장할 것이 뻔하다. 결국 여론의 압력으로 야당을 압박하겠다는 계산인 것이다.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자세히 보면 그런 속내가 읽힌다. 지금까지 역대 대통령들의 국회 시정연설은 모두 '국민 여러분'과 '(국회)의원 여러분'이라는 표현을 번갈아 사용했다. 이번 박 대통령의 경우에는 연설문에 모두 7차례 이런 대목이 나오는데 매번 '국민 여러분'과 '의원 여러분'을 묶어서 함께 사용했으며 한 번도 어김없이 '국민 여러분'을 앞세웠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이고 또 국회 본회의장에서 국회의원을 상대로 행하는 연설인 만큼 '국회의원 여러분'을 앞세우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국회의원을 통해 국민과 소통한다는 뜻에서 그런 것이다. 그런데 매번 '국민 여러분'을 앞세운 것은 다분히 의도적으로 보인다. 국정수행에 관한 60% 대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박 대통령이 야당 의원들을 향해 무언의 압박을 가한 것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박 대통령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국민의 선거로 당선되는 대통령은 취임 첫해가 제일 중요하다는 점이다. 취임 첫해에 중요한 국정과제를 제시해서 정치권과 국민의 동의를 얻음으로써 국정과제의 추진에 국민 역량을 결집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취임 첫해를 어떻게 보내느냐 하는 것이 나머지 임기 4년의 성패를 가늠한다고 본다.

전임자인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 취임 초 내각 구성에서 '강부자', '고소영' 인사라는 평가를 받은 데 이어서 광우병 파동으로 인한 촛불 사태를 맞아 1년 내내 상황을 만들어가기는커녕 오히려 상황에 끌려가기 바쁜 처지였다. 박 대통령의 경우는 어떤가? 취임 초 인사가 참사라는 혹평과 함께 윤창중 사건으로 멍이 든 데다가 국정원 댓글 사건과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관련 사건 등으로 인해 여야 간 극한 대결로 취임 첫해가 다 저물어가고 있는 상황 아닌가?

이렇게 보면 박 대통령의 남은 임기 4년도 상황이 그리 녹록치 않을 것이 분명하다. 결국 그 부담은 고스란히 박 대통령의 몫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세상 모든 일에는 다 대가가 있는 법이니까.

정치 복원 없이는 경제도 민생도 살릴 길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을 위해 18일 국회에 도착하자 국회 방호원 등이 본청 앞에 있는 통합진보당 농성장을 막아서고 있다.
▲ 가로막힌 통합진보당 농성장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을 위해 18일 국회에 도착하자 국회 방호원 등이 본청 앞에 있는 통합진보당 농성장을 막아서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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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은 지금부터라도 국정운영의 방식을 전면적으로 바꿔야 한다. 산업화 시대의 권위주의 방식이 아닌 새 시대에 맞는 민주적인 방식으로 하루 속히 바꿀 것을 진심으로 호소한다. 그러자면 여야 간의 극한 대결로 실종상태에 빠져 있는 한국 정치를 회복하는 것이 핵심적 과제라고 본다. 오랜 세월에 걸친 권위주의 시절, 한국 정치에는 '행정부 우위'의 전통이 뿌리를 내렸다. 민주화 이후에는 '입법부 우위' 시대가 열렸으나 아직도 '행정부 우위'의 인습적인 사고와 행태가 상당 부분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대통령직은 행정부의 수반에 불과하지만 국가를 대표하고 국가 체제의 수호자라는 점에서 우월적 위치에 놓이는 것인데 우리의 경우에는 그런 역할보다는 다수당인 집권당을 이용해서 국회를 지배하려 들었기 때문에 야당의 격렬한 반대를 불러와 극한 대결의 정치를 유발해왔다. 박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대통령의 초월적 위상은 어디까지나 국가원수라는 대외적 차원과 체제의 수호자로서의 역할에 있다는 것을 박 대통령은 명확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박 대통령은 시정연설에서 말한 것처럼 국회를 정치의 중심으로 분명하게 인식하고 입법부와 입법부를 구성하는 여야 의원들을 존중해야 한다.

물론 정치 실종에는 여야를 망라한 정치권의 책임도 적지 않다. '입법부 우위'는 정치를 통해 국가를 통치하라는 뜻인데 특히 야당(특정 정당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며, 민주화 이후 야당은 모두 그랬다는 뜻)은 툭하면 국정을 보이콧할 뿐만 아니라 행정부와 사법부를 정치화시켜서 극한 대결의 폐습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정치의 복원은 대통령과 정치권 모두의 책임이지만 문제를 풀어가는 책임은 누구보다도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에게 있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한국 정치의 오랜 폐해를 바로잡아 정치를 복원시키는 데 중심적 역할을 해야 할 무거운 책무를 짊어지고 있다. 정치의 복원이 없이는 경제도 민생도 살릴 길이 없다는 것을 박 대통령은 명심하시기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윤여준 기자는 전 환경부 장관이며, <팟캐스트 윤여준> 진행자입니다.



태그:#윤여준,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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