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각을 밥 먹듯이 하는 게으름뱅이, 이틀에 한 번 머리감는 지저분한 여인네(가끔 내 머리에서 나는 냄새를 내가 맡을 때도 있음). 20일 오전 6시 깜깜한 새벽. 아직 데워지지 않은 찬물에 머리를 감고 밀양 동화전 마을로 가기위한 준비를 했습니다.

오전 7시30분에 창원역에서 두 후배를 차에 태워 1시간 거리에 있는, 송전탑 95호기와 96호기 건설 예정지인 '밀양시 단장면 사연리 669-1번지',  밀양에 송전탑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쳐놓은 동화전 마을 천막으로 향했습니다.

어제는 경찰의 저지선에 막혀 96호기 공사 현장이 있는 산입구에 돗자리를 깔고 침낭 속에서 하루를 힘겹게 보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공사 현장이 있는 산 속으로는 한 발도 들여놔 보지도 못했다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어제처럼 될 것을 예상하고 노숙의 무료함과 추위를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했었습니다. 책 세 권, 돗자리, 무릎 담요, 깎아먹을 감...(부끄럽습니다.)

96호기 공사 현장까지 가는 것은 제지 받을 것이 뻔했지만 그곳 산꼭대기에 멋진 황토방(주민 농성장)이 지어져 있고 어젯밤에 올라가신 주민 한 분이 거기를 지키고 계시기 때문에 가야 했습니다.

마침 밀양 시내에서 연대오신 분들이 따뜻한 김밥을 사오셨기에 천막에서 몇 줄은 나눠먹고 두 줄은 들고 산을 향했습니다.  첫 번째 경찰 저지선을 맞닥뜨렸습니다.

경찰 :  주민분 아니면 못 올라가십니다.
나 : 어제 올라가신 분에게 식사 전달하러 갑니다.
경찰 : 밥은 어디 있습니까?

가방에 들어있던 따뜻한 김밥을 대답 대신 보여주었습니다. 더 이상 제지 없이 이름과 전화번호만 확인하고 너무도 쉽게 두 사람의 출입이 허락되었습니다. 어쩌면 격한 실랑이까지 해야 되는 상황이라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갔었는데 순간 긴장이 확 풀렸습니다. 여자후배를 마을 천막에 남기고 남자 후배랑 산을 올랐습니다(남은 여자후배는 주민분 비닐하우스에서 당근과 양배추 일을 거들었습니다).

경찰 저지선을 넘자마자 산을 오르는 가파른 오솔길이 나왔고 산도 길도 위험해서 길따라 늘어선 나무들에는 사람이 의지할 수 있는 튼튼한 밧줄이 산 정상까지 늘어서 있었습니다.

산꼭대기에도 어김없이 공사 현장과 국민의 안위를 걱정하는 경찰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전력 직원들로 보이는 사람들도 조끼를 입고 공사 현장을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밥을 가져온 사람임을 확인하고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황토방으로 들어섰습니다.

출입문을 열고 주민 손씨가 나오고 있다.
▲ 황토방 출입문을 열고 주민 손씨가 나오고 있다.
ⓒ 김영혜

관련사진보기


그야말로 불 뗄 수 있는 아궁이와 방 한 칸이 전부였지만 방안은 어린 시절 시골 사랑방 같이 정겨웠습니다. 나무로 깎아 만든 물건을 올리는 선반이 있었고 천장은 지붕을 받치는 굵은 소나무가 맨살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천장에 드러난 지붕을 받치는 나무
▲ 황토방안 천장에 드러난 지붕을 받치는 나무
ⓒ 김영혜

관련사진보기


선반엔 햇반, 라면, 커피 등 비상식량들이 빼곡했고 천장에 살을 드러낸 나무 위에는 '2012년 11월 6일'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황토방안 나무선반에 비상식량등이 가득하다. 왼쪽 아래에 커다란 촛대가 있다. 여기엔 전기가 없다. 바깥 경찰천막쪽에선 발전기 소리가 밤새 요란하다고 한다.
▲ 황토방안 황토방안 나무선반에 비상식량등이 가득하다. 왼쪽 아래에 커다란 촛대가 있다. 여기엔 전기가 없다. 바깥 경찰천막쪽에선 발전기 소리가 밤새 요란하다고 한다.
ⓒ 김영혜

관련사진보기


방 천장 드러난 나무에 완공일이  기록되어 있다.
▲ 황토방안 방 천장 드러난 나무에 완공일이 기록되어 있다.
ⓒ 김영혜

관련사진보기


아마 이 황토방 완공일인 것 같습니다. 1년 하고도 보름이 더 지난 시간이었습니다. 아마 이곳 주민분들은 그보다 더 이른 날짜에 송전탑 건설 반대의 오랜 싸움을 예견하며 이 황토방을 지으셨을 것입니다. 그 무거운 마음이 방 곳곳에 묻어났습니다.

오후 두 시가 넘어 황토방 안에 주민분만 남겨두고 산을 내려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민 외에는 있을 수 없다는 경찰의 말이 있었고, 그것이 핑계가 되어 내려오기는 했지만 함께 밤을 새고 고립감을 막아주고 힘있는 연대가 되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내려오는 길은 더 힘들었습니다. 경사가 급하다 보니 발과 무릎이 심하게 아파왔습니다. 나중에 들었지만 70~80대 어르신들이 매일 같이 이곳을 오르내리셨다고 합니다. 지금은 주민 2명씩만 출입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산 아래 천막에 도착했을 때는 점심 시간이 한참이 지난 시간이었습니다. 아침에 밀양 시내에서 연대오신 분들이 사온 닭이 밀양산 구지뽕과 마늘, 대추와 어우러져 한솥 가득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닭다리 하나씩 들고 뜯자니 산꼭대기 공사 현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녁밥을 핑계 삼아 닭국물을 들고 다시 산으로 오르기로 했습니다. 당연히 오를 수 있을 거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경찰 앞에 섰으나 아침과 다르게 제지를 당했습니다. 그새 경찰 지침이 바뀌어서 외지인이 올라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농성 주민을 위한 음식 반입은 무조건 허용하기로 한 국가인권위의 권고가 있었고 경찰과 주민의 합의가 있었으나 우리가 너무 늦게 와서 지침이 바뀌었답니다. 연대하러 왔는데 일을 더 덜어드리지도 못하고 말썽만 피운 꼴이 된 듯하여 마을 분들에게 죽일 놈이 된 듯 죄송할 따름입니다. '주민만이 올라갈 수 있다'고, 녹음한 듯 반복된 말만 되뇌입니다.

"그러면 경찰들이 전해주세요." 이것도 '안 된다'입니다. 허리가 90도로 꺾인 여든 두살의 할머니가 지팡이를 하고 올라오셔서 "내가 갈게" 하셨습니다. 경찰은 대답 없고 둘러싼 우리들의 가슴은 갑자기 시큰하고 먹먹해 왔습니다. 경찰은 할머니의 출입을 허락할 판이었습니다.

드디어 막말이 나왔습니다. 경찰이 이 정도 상황 판단이 안 되냐고. 부모도 없느냐는 둥, 대한민국 경찰이 부끄럽다는 둥... 결국은 교대를 위해 산꼭대기로 오르는 여경이 식사를 가져가기로 했습니다. 주민들은 다시 마을 천막으로 향하고 나는 여전히 씩씩거렸습니다.

10월 2일 바드리입구 주민천막에  어르신이 누워계신다. 밖에는 천막철거를 두고 대치하고 있다.
▲ 농성장안 10월 2일 바드리입구 주민천막에 어르신이 누워계신다. 밖에는 천막철거를 두고 대치하고 있다.
ⓒ 김영혜

관련사진보기


마을 앞 천막으로 들어왔습니다. 젊은 사람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인 마을입니다. 제일 젊은 분은 어제 혼자 있다가 경찰들과 실랑이가 붙어 경찰서로 연행됐고, 두 번째 젊은 분은 비닐하우스 일하러 가서 저녁 때라야 올 수 있고, 세 번째 젊은 언니(52세)는 어제연행된 분의 증언을 위해 김해중부경찰서로 지금 가야 한다는데... 컵라면으로 다같이 저녁을 먹고 한참 후에야 어르신들이 천막을 나섰습니다. 나가다 말고 전부다 지팡이를 찾으십니다. 하나 같이 허리가 90도입니다. 다시 한 번 속이 뒤집힙니다.

도시에서 퇴직을 하고 시골로 오신 분, 아이들 다 키우고 고향으로 오신 분, 평생 이곳 동화마을의 흙과 바람과 나무들과 살아오신 어르신들, 그리고 그 속에서 사랑과 배려, 분노와 증오를 배우며 커가는 아이들. 사람이 갈라지고 인정이 사라지고 불신이 곳곳에서 도사리고 그 속의 삶들은 불안하기 짝이 없고. 끝이 있기나 한지, 끝은 어떤 것이 될지...

어르신들 밥이라도 제대로 챙기려면 외지의 젊은 누구라도 와야 할 것 같습니다. 11월 30일, 밀양으로 전국에서 2000여 명이 연대하러 온다고 합니다. 벌써부터 주민들은 그날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내 마음의 짐을 덜기 위해서라도 동화마을을 다시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산진입로 옆에 마을분의 땅위에 주민농성장.
▲ 마을주민농성장 산진입로 옆에 마을분의 땅위에 주민농성장.
ⓒ 김영혜

관련사진보기




태그:#밀양송전탑, #동화마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