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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학원이나 과외 없이 아이들 키우기 힘든 세상. 그 비용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 하는 엄마들도 많습니다. 학원 교육을 염두에 두고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도 있고 학원을 장려하는 교사도 있는 현실이지요. 공교육이 그만큼 무너졌다는 말이겠지요. 그런 세상에, 그런 공교육에 아이를 보내면서 아이의 자유의지만을 믿고 아이를 키우는 '간 큰 엄마'가 돼보려고 합니다. 그렇게 키워도 망하지 않을 듯한데, 저와 제 아이를 격려해 주실런지요? - 기자 말

"툭!"
"……툭!"
"툭!"
"왕 치사!"

인터넷 공유기를 끄고 켜느라 아이와 기 싸움 벌이는 중이다. 알뜰폰으로 바꾸기도 어렵고 스마트폰을 없앨 수도 없어 매장 직원의 권유대로 아이 스마트폰 요금제를 바꿨다. 일정량만 쓸 수 있는 표준요금제로. 거기다 인터넷을 막아놓기까지 했다. 애초 그 제안을 받았을 때 엄마는 망설였다. 이게 아이를 사랑하는 방법일까 싶어서… 그런데 아이가 먼저 표준요금제로 바꾸겠다고 선언! 그날 당장 바꿨다.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드나 싶었다. 그런데 스마트폰의 오묘한 세계를 잘 몰랐던 엄마는 뒤통수를 맞은 격이다. 와이파이 뜨는 곳이면 인터넷을 막아놓아도 아이는 자유자재로 스마트폰 세계를 유영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인터넷 공유기가 있는 우리 집안은 와이파이 바다! 공유기 끄는 엄마와 다시 켜는 아이 틈바구니에서 공유기 스위치가 죽어나고 있다.

아이는 잡혀주지 않는다

기계치인 엄마가 하루 만에 스마트폰의 모든 기능을 꿰뚫는 녀석을 이길 방도는 애초 없었다. 갈 길을 모르겠거든 그 자리에 우뚝 서서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분명히 하고 사방을 훑어보는 방법이 제일이다. 내가 제일 잘하는 거, 그나마 잘 먹혔던, '솔직하게 말하기 공법'을 쓰기로 결정한다.

"스마트폰, 네가 알아서 해라. 단 네가 너 자신에게 도움 되는 뭔가를 하고 있다는 증거를 보여줘. 엄만 쓸데없는 일에 네 인생 낭비하는 것 같아서 너무 속상해. 엄마 마음 좀 알아줘."
"뭐하면 되는데?"

그래서 협상 맺은 것이 논어 구절 쓰고 검사 받기. 자의로 하는 일이 아니므로 대가를 주기로 했다. 매일 두 구절씩 쓰는 데 천 원. 집안일을 하거나 본래 자신의 일을 하는 데 물건이든 돈이든 어떤 대가도 주지 않던 나의 양육방침을 역행하는 결정이다. 논어를 훑어보던 녀석은 한 구절이 겨우 두세 문장임을 확인하고 흔쾌히 받아들인다.

논어 두 구절에 천원씩. 아이가 뭐라도 해야 살겠는 엄마가 택한 신의 한 수다. 아이의 자유의지는 잠시 모른척하고 돈으로라도 아이를 잡아보겠다는. 공자님! 퇴계 이황님! 우리 아이를 부디 보살펴주세요.
▲ 논어야 천원을 부탁한다 논어 두 구절에 천원씩. 아이가 뭐라도 해야 살겠는 엄마가 택한 신의 한 수다. 아이의 자유의지는 잠시 모른척하고 돈으로라도 아이를 잡아보겠다는. 공자님! 퇴계 이황님! 우리 아이를 부디 보살펴주세요.
ⓒ 한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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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나 스마트폰에 고개 박고 있는 아이를 볼 때면 엄마는 '논어는?' 하고 눈빛을 번뜩인다. 녀석은 재빠르게 논어 구절을 써놓은 노트를 가져다 놓는다. 갈겨쓰지는 않았다는 것에 조금 안도하고 천원을 노트에 끼워 돌려준다.

"쓰면서 마음의 울림 같은 건 없어?"
"글쎄…."
"천 원 때문에 쓰는 거야?"
"그렇지."
"천 원 값어치는 있었으면 좋겠다."

몇 천년 동안 회자되는 성인 말씀이 녀석에겐 고작 천원 용돈벌이 밖에 안 되는 모양이다. 그나마 매일 꼬박꼬박 쓰고 있으므로 엄마는 백원 어치 위안을 얻는다. 엄마는 배우려는 사람이라면 꼭 논어를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천 원 때문에 쓰는 한이 있더라도 구절을 옮기면서 조그마한 배움이라도 있기 바란다. 아직 동상이몽이다. 하루에 천 원, 한 달에 3만 원을 허공에 날리는 꼴이다. 

잡혀주지 않는 아이를 보며 불안에 떠는 게 우리 시대 엄마들이다. 지금 당장 뭔가 하지 않으면 아이가 영영 기회를 놓칠 것 같고, 공부 잘해서 급 높은 대학에 가는 것이 그나마 유일하게 보이는 길이니, 불안한 부모들은 실력 좋다는 학원을 알아보고 영재교육원을 기웃거리고 자녀교육 강좌를 들으러 다닌다.

그렇게 아이 키워놓고 노후에 덕 좀 보자는 생각도 크지 않다. 자식세대가 부모세대를 봉양해야한다는 생각은 이미 지나간 패러다임이고 내 세대부터도 절실하게 부모세대를 책임져야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아이가 제 살 길을 찾아 잘 가기만을 원할 뿐이다. 그런데 그게 이렇게나 머리 아픈 일이었다. 

눈100개 CCTV는 방전됐다

전에 애들 학교에서 만난 어떤 엄마가 나에게 진지하게 물은 적 있다. 그 엄마도 그저 자신의 아이를 사랑하는 엄마였다.

"학원 안 보내면서 불안하지 않으세요?"
"보내면 덜 불안하기는 한가요?"
"그럼요. 내 눈앞에서 놀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

'학원 가서 노는지도 모르죠'라고 속으로 뇌까렸다. 아이를 위한다지만 사실 엄마 맘 편하자고 아이를 학원에 맡기는 거라고 판단했다. '아이를 다른 방법으로 사랑하시죠'라는 충고까지 머릿속에 떠올랐다.

좁은 학원에서 싱그러운 청춘을 소비하느니 집에서 노는 게 나을 거라 생각했다. 아이들은 방바닥에 뒹굴뒹굴하다 남는 잉여 시간이 지루해  몸이 비틀어질 지경이 되면 자신이 원하는 뭔가를 하고, 자신이 선택한 것이므로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내 아이가 그 잉여 시간을 기계와 노는 것으로 풀어버릴 줄은 미처 몰랐던 날이었다.

그날의 기고만장한 오만함의 대가를 지금 톡톡히 치르는 중이다. 눈 100개 달린 CCTV가 되어 핸드폰을 집어 드는 아이의 손을 따라가고 컴퓨터를 켜는 아이의 등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제 요새 속에 숨어들면 CCTV는 인공지능을 발휘한다. '쓱쓱' 소리가 나면 공부하는 거고 거의 미동이 없으면 핸드폰 하는 거다. '논어!' 하면 노트를 쑥 내밀고 제 요새로 사라지는 녀석에게 이젠 잔소리하는 CCTV 노릇할 수도 없게 되었다. 머리 아프고 눈 아프고 맘 아프다. CCTV가 방전되었나보다.

호르몬 날뛰는 사춘기는 복잡한 세계

서울에 첫눈 온 날 아이는 사랑하는 아이돌과 그의 팬클럽에 대한 애정을 손등에 문신하듯 새기고 다녔다. 수정액 아깝다! 했더니 반 애들도 다 그런다며 예쁘지? 한다. 그래 너 사춘기 맞다.
▲ 손등에 아로새긴 첫눈의 감격과 B1A4 사랑 서울에 첫눈 온 날 아이는 사랑하는 아이돌과 그의 팬클럽에 대한 애정을 손등에 문신하듯 새기고 다녔다. 수정액 아깝다! 했더니 반 애들도 다 그런다며 예쁘지? 한다. 그래 너 사춘기 맞다.
ⓒ 한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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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되는 것도 많고 생각하면 복잡한데 핸드폰하면 마음 편하단 말야."

앞집 엄마가 자기 딸 친구 삼아 꼬맹이 두 녀석을 데리고 시골 친정집에 간 날 저녁, 방해꾼 없이 아이와 '진심토크'를 벌인다. 아이가 좋아하는 닭발 요리를 사이에 두고 마주앉으니 오랜만에 엄마를 독차지한 녀석은 신이 났다.

이런저런 얘기하다 엄마는 '핸드폰이랑 컴퓨터가 그리 재미나니?'라고 묻는다. 아이는 아이돌 SNS 따라잡기 하고 <응답하라 1994> 드라마를 보느라 그런 것들 보고 있음 마음 편해서 그러는 거라고 읍소한다. 그러니까 나름 스트레스 푸는 중인데, 그 시간이 좀 길 뿐이라는 것.

"뭐가 널 복잡하게 하는 건데?"
"얼굴도 맘에 안 들고 다리도 너무 두꺼운 것 같고 앞날도 모르겠고…."    

'외모'와 '미래'라는 형이하학적, 형이상학적 고민이 한꺼번에 공존한다니 듣기에도 복잡하다. 그렇구나. 아이는 몸 속에 생체리듬을 리모델링하는 호르몬이 돌아다니고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숙명처럼 느끼는 사춘기구나. 그 긴장감을 사이버 세상에서 풀고 있는 거구나.

하긴 엄마의 사춘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책은 펼쳐놓았으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팝송 따라 부르느라 책장은 넘어가질 않았다. 노을과 빨갛게 사멸해가는 저녁 해에 빠져 있던 어느 날은 그 저녁 해를 가리는 고층 건물을 다 부숴버리고 싶어서 안달하기도 했다. 오죽하면 대학가면 드넓은 잔디밭에 앉아 저녁 해를 맘껏 볼 수 있을 테니 대학 가자! 라고 결심했을까. 정작 대학 가선 저녁 해가 지기도 전에 술집 전전 하느라 해가 지는지 뜨는 지도 관심 없었지만. 

"너 복잡한 사춘기인 거 인정!  하고 싶은대로 해. 대신 응사(응답하라 1994) 보고나서 리뷰 한 편씩 써." 
"뭐어?"
"아무리 그래도 드라마로 네 사춘기 채우는 건 못 봐줘. 그니까 제대로 보고 리뷰 써봐."
"휴… 대신! 쓴 거 안 보여줄거얏!"

아이와의 진심토크는 현실성 없는 협박과 소극적 저항으로 막을 내렸다.(계속)


태그:#사춘기, #CCTV엄마, #논어, #응사, #잉여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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