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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되면 해가 짧아 새벽도 아침도 오후도 모두 밤 같아진다. 겨울새벽은 여름새벽과 빛드는 양부터 달라 벗어놓은 안경을 찾을 만큼 튀튀하게 밝아 온다. 그래서 아침에 눈을 뜨고도 '아직 밤이다, 아직 밤이고 싶다' 하며 주문 아닌 중얼거림을 하곤한다. 누구에게나 아침은 힘들겠지만 유독 겨울이 싫은 나에겐 고된 시간이다.

그래도 일어나고, 그래도 출근 준비를 해서 대부분 여유 시간 10여 분은 두고 집을 나선다. 대학교 때부터 들여온 버릇이라 시계는 10분 앞서 달리고 있고, 내 걸음은 10분만큼의 여유가 있다.

지하철 역까지 가는 길은 버스로 두 정거장이다. 버스나 지하철 모두 회사까지 가는 노선이 있으나 올 가을부터 나는 버스가 아닌 도보와 지하철을 택했다.

'너도 출근하니? 나도 출근한다!'

[고된 출근길 영광의 상처가 남는다.]
 [고된 출근길 영광의 상처가 남는다.]
ⓒ 조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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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는 우선, 사람이 너무 많아졌다.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있는 사거리를 기준으로 아랫쪽에 사는 주민들은 근처 지하철역이 5호선과 2호선, 2곳이 있다. 2호선은 신도림으로 가는 '지옥철' 입구 같은 곳이고, 5호선은 여의도로 가는 노선으로 사람들이 몰리지만 2호선보다는 수월하다. 때문에 대부분의 버스는 5호선 쪽으로 향하며 사람들은 두 정거장을 위해 온몸을 구겨 넣는다.

이사온 지 1년쯤 되었는데 1년 전에는 이렇게까지 몸을 구기지는 않았다. 적당한 사람들 간의 밀착감만 있으면 무사히 두 정거장은 갈 수 있었다. 내가 이사온 후로 (물론 나도 신축 빌라로 분양 받아왔지만) 신축 빌라가 무성하게 들어섰다. 지금도 곳곳에서 공사가 한창이다. 노선과 차수는 한정되어 있고 사람은 늘어나니 10분을 서둘러 정류장에 나가보아도 사람은 언제나 그득그득이다.

다음으로, 사람들이 억세다. 정류장에서 보면 모두 고만고만한 골목에서 나온다. 요즘 세상, 얼굴보고 인사하는 다정한 이웃은 개나 주라지만 알고보면 모두 같은 골목 같은 동네에 사는 주민이다. 그럼에도 너무나 전투적으로 버스를 타기 위해 밀고 차고 누른다.

만원버스에 타다보면 '으헛, 꺅, 어머' 등등 다채로운 신음과 비명이 들려온다. '너도 출근하니? 나도 출근한다!'는 인상으로 내 몸을 찍어누르는 그들은 어쩌면 슈퍼에서 마주쳤을지 모르는 내 이웃일텐데, 말로 인사도 하기 전에 몸으로 인사를 한다. 몸으로 밀고 타지 않으면 안 되는 그들의 속사정은 아마도 '이 버스를 타지 않으면 나는 지각일세!'라는 외침인 걸 알고는 있다.

나 자신을 위해, 조금만 부지런 떨어볼까

이렇듯 나는 사람들 때문에 버스틑 타지 않고 두 정거장을 걸어다닌다. 두 정거장을 걸으면 내 걸음으로 15분 정도 걸린다. 아침 운동도 하고, 평소보다 5분 정도만 서두르면 된다. 아침 5분 잠 꿀맛이야 내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침이 고된 것보다는 낫다 싶다.

여유롭게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면 남은 관문은 하나 더 있다. 에스컬레이터에서의 몸싸움이다. 이 지하철 역은 에스컬레이터가 1인용으로, 한 사람이 타면 여유 공간이 없다. 버스에 우루루 내리는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는다면 그냥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맡기면 되지만, 마침 역 앞에 버스가 도착하고 우루루 내린 사람들은 여유 공간 없는 에스컬레이터를 비집고 들어가 뛰어간다. '뛰지마시오' 안내문이 무색하다. 그렇게 뛰어간 이들은 여의도행 지하철을 타러온 많은 일행들과 조우해, 김포공항으로 가는 건너편 나보다 한참을 뒤처진다. 대체 왜들 그렇게 뛰어 다니는 걸까.

내가 사는 구는 서울에서도 인구 밀집도가 가장 높은 지역이다. 때문에 사람에게 치여서 힘겹다. 내가 양보하면 나는 한 사람이 아니라 열 사람에게 내 순서를 빼앗긴다. 새로운 집이 생겨나고 사람들은 또 우루루 모여 이곳에 둥지를 튼다. 그만큼 출근길은 꽉 막혀버린 목구멍 처럼 소화되지 못하고 체기가 올라온다. 체기에 짜증이 난 사람들은 이마에 川(내 천)자를 새기고 또 밀고 또 뛰고 또 싸울 것이다.

시민의식은 바라지도 않는다. 이미 우리들에게 시민의식이란 먹고사는 데 밀려 저 바닥에 붙은 껌만도 못하니까. 행정상 도움은 바라지도 않는다. 알록달록 들어선 신축빌라에 둥지를 틀고 사는건 우리의 득을 위해서니까.

다만, 조금만 유난을 그리고 부지런을 떨어보자. 누굴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말이다. 내가 지하철역까지 걷는 건 버스에 한 자리라도 비워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아침에 상쾌하게 씻고 깨끗하게 다린 옷을 입고 그 후덥하고 쾌쾌한 사람들의 숨 냄새로 가득찬 버스에 타기 싫어서이다. 내가 뛰지 않는 건 에스컬레이터에서 뛰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다. 엊저녁 반들하게 닦은 내 구두에 뛰다 흠집이라도 날까봐, 그리고 누군지도 모를 낯선 사람들과 몸을 비비적 대기 싫어서이다.

두 정거장을 걷고, 사람들이 한 차례 지하철역으로 들어가기를 기다려 한산해진 지하철역사로 들어가기 위해 나는 아침잠을 5분만 포기하면 된다(나처럼 10분의 여유는 없이 다닌 사람들이라면 15분이겠지만).

제발, '타인을 배려해달라' 계도 따윈 하지 않겠으니, 나 자신을 위해 조금만 부지런해보자. 나의 출근이 달라지면 내가 쌓이고 쌓여  타인의 출근도 달라진다.

자애심만 있다면 출근길에도 경치 감상을 할 수 있다.
 자애심만 있다면 출근길에도 경치 감상을 할 수 있다.
ⓒ 조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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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출근, #지하철, #시민의식, #자애심,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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