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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14년도 예산안에 대한 정부 시정연설을 마친뒤 인사하고 있다.
▲ 박근혜 대통령 첫 시정연설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14년도 예산안에 대한 정부 시정연설을 마친뒤 인사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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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정국 인식과 해법은 변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18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과 야당의 특검 요구 등 정국 현안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하지만 기존에 밝혔던 입장을 사실상 되풀이 하는 수준에 머물러 정국 경색을 풀기에는 역부족일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의 취임 후 첫 시정연설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국정원과 국군 사이버사령부 등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사건에 대해 야권이 요구하고 있는 특검을 여야 합의를 전제로 수용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대목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최근 야당이 제기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포함해서 무엇이든 국회에서 여야가 충분히 논의해서 합의점을 찾는다면 존중하고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여야 어느 한쪽의 의견이나 개인적인 의견에 따라 움직일 수는 없다"며 "국회에서 여야 간에 합의해주신다면 국민의 뜻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덧붙였다.

"여야 합의 받아들이겠다"고 했지만... 사실상 거부

박 대통령은 이 같은 언급은 그동안 내놨던 메시지들을 감안했을 때 예상보다 한 발 더 나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초 시정연설을 앞두고 특검에 대해서는 박 대통령이 아예 입장을 내놓지 않거나, 언급하더라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박 대통령은 지난 달 3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사법부의 판단을 정치권이 미리 재단하고 정치적인 의도로 끌고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지금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법부의 판단과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박 대통령이 미세하게나마 태도를 바꾼 것은 내년도 예산안과 각종 법안 처리, 또 황찬현 감사원장 인준을 앞두고 야당과 접점 찾기가 불가피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국회선진화법이 버티고 있는 이상, 현실적으로 야당의 협조 없이는 국정 운영이 한발짝도 못 떼는 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2014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마치고 퇴장하자 여당 의원들은 자리에서 일어서 환송하는 한편 야당 의원들은 자리에 앉아 지켜보거나 외면하고 있다.
▲ 기립한 새누리당, 앉아있는 민주당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2014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마치고 퇴장하자 여당 의원들은 자리에서 일어서 환송하는 한편 야당 의원들은 자리에 앉아 지켜보거나 외면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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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야당의 협조를 이끌어내기는 사실상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겉으로는 특검 수용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여야 합의를 조건으로 내건 것은 사실상 거부의 뜻으로 분석되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골치 아픈 현안을 국회에 넘기고 새누리당이 특검 불가 입장을 고수하는 역할 분담을 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야당에서는 박 대통령이 여당을 방패 삼아 '립 서비스'를 하고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 이날 민주당 의원들은 박 대통령의 시정 연설이 끝난 후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았고 일부 의원들은 연설 내용에 실망감을 나타내면서 중간에 자리를 뜨기도 했다.

유감·사과 없이 기존 입장 되풀이... 여당 내에서도 "기대하는 게 이상"

여당 일부에서도 박 대통령의 언급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이재오 의원은 "여야가 합의하면 (특검을) 받아준다는 건데, 여야가 합의를 하지 못하도록 하겠지"라며 "기대하는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말했다.

특히 박 대통령의 이날 시정연설은 대부분의 사안에서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는 데 그쳤다. 극심한 정국 대치를 촉발한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과 이후 수사 과정에서 불거진 외압 의혹 등에 대한 사과나 유감 표명도 없었다.

박 대통령은 국가기관 대선개입 사건에 대해 "정부는 국민적 의혹이 제기된 사안들에 대해 빠른 시일 내에 국민 앞에 진상을 명확하게 밝히고 사법부의 판단이 나오는 대로 책임을 물을 일이 있다면 반드시 응분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정부는 내년 지방선거를 비롯해 앞으로 어떤 선거에서도 정치개입의 의혹을 추호도 받는 일이 없도록 공직기강을 엄정하게 세워나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지난 달 31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언급했던 내용과 똑같다.

국정원 개혁 문제에 대해서도 기존 입장 되풀이 했다. 박 대통령은 "국가정보기관 개혁방안도 국회에 곧 제출할 예정인 만큼, 국회에서 심도 있게 논의하고 검토해 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야당이 요구하고 있는 국회 국정원 개혁 특위 설치에 대해서는 "정치의 중심은 국회다", "국회 안에서 논의하지 못할 주제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한 언급에 비추어 볼 때 '국회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풀이된다.

민주당, 박 대통령 떠나자마자 규탄 집회... 여야 격돌 불가피

18일 박근혜 대통령 국회 시정연설 직후 민주당 의원들이 국회본청 앞 계단에서 '민주파괴! 민생파탄! 약속파기! 규탄대회'를 하고 있다.
▲ 민주당 "대통연 연설은 신독재" 18일 박근혜 대통령 국회 시정연설 직후 민주당 의원들이 국회본청 앞 계단에서 '민주파괴! 민생파탄! 약속파기! 규탄대회'를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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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은 박 대통령이 국회를 떠난 후 시정연설에 대한 규탄 집회를 여는 등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전병헌 원내대표는 "오늘 시정연설은 야당과 국민이 시정을 요구한 것은 하나도 시정되지 않은 유감스러운 내용이었다"며 "한마디로 그림자무사를 내세워 불통을 선택했다"고 비판했다.

이처럼 박 대통령이 야권의 핵심 요구 사항 두 가지에 대해 새누리당에 공을 넘기고 뒤로 빠졌지만 새누리당이 과연 얼마나 대야 협상에서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동안 정치권에서는 청와대의 뜻을 받들기 급급한  새누리당 지도부가 대야 강경 태도를 유지하는데 급급해 정국경색을 풀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대통령 시정 연설 이후에도 새누리당이 야권이 요구하는 특검과 국정원 개혁 특위 구성에 대해 꿈쩍하지 않을 경우 박 대통령의 진정성에 대한 의심은 더 커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정국 파행은 장기화 될 수밖에 없다. 당장 19일부터 진행되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여야의 격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태그:#박근혜, #시정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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