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994년, 고3 첫 등굣날이었다. 고2때 단짝과 같은 반에서 만났다. 설레는 마음으로 새로운 담임선생님을 서로 기다리고 있었다. 남학생이라면 누구나 기대하듯 아름다운 여자 담임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둘은 "설마 학생주임 선생님이 우리 담임이 되는 건 아니겠지?"라며 낄낄 대고 있었다. 잠시 뒤의 불행도 예상하지 못한 채….

공포의 담임선생님을 만나다

고3 나의 담임선생님은 무시무시한 학생주임이었다. 이미지는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한 장면.
 고3 나의 담임선생님은 무시무시한 학생주임이었다. 이미지는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한 장면.
ⓒ 싸이더스

관련사진보기


교실 문이 드르륵 소리와 함께 열렸다.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출석부를 들고 들어오는 사람은 바로 우리가 설마 하던 그 학생주임 선생님이었다. 그는 우리 학교에서 무섭기로 소문난 선생님이었다. 마치 그의 몸은 격투기 선수와 같았고, 공포의 당구큐대까지 늘 옆에 장착하고 다니시는 분이었다.

암울했다. 살다 살다 이런 불행이 있나. '올해 1년은 죽었구나'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울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나의 선량한 짝꿍은 마음을 고쳐먹게 해줬다. '담임선생님이 무서우면 반 분위기가 좋을 거야, 고3인데 마음 다잡기 더 좋을 거야'라며 나를 토닥여줬다. 나는 그 친구의 위로로 기운을 내 고3생활에 적응해나가기 시작했다.

고3 담임 선생님이 얼마나 무서웠는가 하면, 1년 동안 우리 반 친구들은 야간자율학습을 '땡땡이' 치지 않았다(합법적으로 야간자율학습에 빠지는 운동부를 제외하고는).

무서운 선생님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 같은 게 있다. 무서운 선생님들이 가르치는 과목은 지루하고 암기할 게 많았다. 예외 없이 우리 담임 선생님 과목 '한국지리'도 그랬다. 그분은 자신만의 암기법도 알려주셨다. 그런데, 그 방법이 더 외우기 힘들고 복잡했다. 우리 담임선생님은 항상 말씀 하셨다. "담임과목의 담임인 반에서 성적이 제일 잘 나와야 한다"고. 그러면서 더욱 열정적으로 혼신의 암기법을 알려주셨다. 물론 우리들은 쩔쩔매며 우왕좌왕 외워대곤 했지만.

절친 짝궁의 공부포기

고3 나의 절친 짝궁이 공부를 포기했다. 이미지는 영화 <명왕성> 중 한 장면.
 고3 나의 절친 짝궁이 공부를 포기했다. 이미지는 영화 <명왕성> 중 한 장면.
ⓒ SH필름·JUNE필름

관련사진보기


그해 초 나와 짝궁은 열심히 공부했다. 내 짝은 특히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수시로 밤을 새워 아침에 와서 졸기 일쑤였다. 그렇게 미친 듯이 공부하던 친구가 어느 날부터 공부에 손을 놓기 시작했다. 난 걱정이 돼 그 이유를 물었다. 친구는 내게만 조용히 통증이 가득한 가정사를 털어놓았다. 그 친구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따로 결혼해서 사신다고 했다. 처음엔 의붓아버지와 같이 살았는데 첫째 형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친구와 여동생을 데리고 나와서 어렵게 산다고 전해줬다.

그래서 더 열심히 공부하던 친구는 어느 날 술 취한 자신의 형의 눈물을 보았다고 했다. 늦은 시각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형을 우연히 만났다고 했다. 그렇게 만난 형은 자신도 못 알아볼 정도로 만취했다고 한다. 친구는 "나도 대학가고 싶다"고 흐느끼며 혼잣말을 하는 형을 봤다고 했다. 그 순간 자신이 더 이상 짐이 될 순 없다고 느꼈단다. 그래서 자신은 4년제 대학이 아닌 취업을 빨리 할 수 있는 전문대를 가야겠다고 결정했다며 슬그머니 공부에서 멀어져갔다.

그렇게 나와 마음을 맞추며 열심히 공부하던 짝은 자리를 비웠다. 함께하는 친한 친구가 뒤처지니 나 또한 기운이 빠지기 시작했다. 나는 당시 독서실에서 숙식하며 학교를 다녔는데, 내 어깨도 마음도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래도 기운을 낼 수밖에 없었다.

우리를 보듬어주신 괴짜선생님의 엉뚱한 거짓말

그래도 내가 지치지 않고 끝까지 공부할 수 있었던 건 괴짜 수학선생님이 계셨기 때문이다. 그 선생님은 1년 내내 우리에게 희망과 열정을 주셨다. 운동부까지 수학을 공부하게 만들 정도였으니. 수능 보기 1주일 전인가? 그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사실 나 너희들한테 거짓말했다. 실은 1년 만에 수학수능점수 올리는 거 거의 불가능하다."

그 이유가 학력고사와 달리 수능의 특성상 종합사고력이 필요하기도 하고 시험이란 게 당일의 컨디션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란다. 그러면서 너무 부담 갖지 말고 컨디션 조절 잘 하라고 당부하셨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분의 그날의 말씀이 선한 거짓말이셨던 거 같다. 어찌 1년의 시간 동안 공부한 게 효과가 없으랴? 다만, 1년 동안의 공부가 회한이 남을지도 모르는 시점에 그것에 흔들리지 말고 컨디션 조절해서 좋은 마음으로 시험보라는 말씀이셨던 것 같다.

학력고사와 수능을 겪은 세대들은 대개 아주 추운 날 시험을 치르곤 했다(요새는 좀 아닌 것 같지만). 시험장의 풍경은 어디나 다 비슷하리라. 이날도 시험지를 덮고 자는 사람도 있었고 시험 후에 우쭐대며 웃고 떠드는 사람, 울고불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본고사 보는 유명대학으로 '배짱 지원'

나는 담임선생님을 늦지 않게 만나기 위해 부리나케 뛰었다. 이미지는 영화 <두사부일체> 중 한 장면.
 나는 담임선생님을 늦지 않게 만나기 위해 부리나케 뛰었다. 이미지는 영화 <두사부일체> 중 한 장면.
ⓒ 필름지·제니스엔터테인먼트

관련사진보기


나는 수능 점수가 생각보다 조금 더 잘 나왔다. 그래서 그런지 두 군데 대학에는 안전하게 지원했고, 한 군데는 소위 '배짱지원'을 했다. 내가 배짱지원을 한 곳은 서울에 있는 유명한 대학이었는데, 본고사를 치렀다. 막상 시험장에 가보니 학교는 어찌 그리 크고 아름다운지, 입이 쩍 벌어지는 규모였다.

'TV속에서 보던 캠퍼스가 바로 여기구나! 정말 예쁜 여학생들도 넘쳐나고…. 아, 낙원이 따로 없구나!'

본고사 날, 들뜬 기분이라 시험을 어떻게 치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날의 시험과목은 아마 논술과 영어 정도였던 것 같다. 꼭 합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그렇게 합격 발표를 기다리던 어느 날, 집 전화가 격정적으로 울렸다. 본고사를 본 학교에서 연락이 온 것. 제출한 서류 중 미비한 서류가 있다고, 추가해서 제출하라는 전화였다. 난 방학 중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무시무시한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그날따라 날씨는 왜 이렇게 추웠던 건지.

"뭐? 진짜야? 추가서류 가져오라고 했다고? 선생님 지금 학교로 바로 갈 테니까 너도 교무실로 바로 와!"

난 전화를 끊자마자 엉덩이에 불이나게 학교로 달려갔다. 그 무서운 담임선생님은 나의 얼굴을 보시더니 전에 전혀 본 적이 없는 온화하고 행복하고 기쁨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소리치셨다.

"선생님들 저희 반에서 OO대 한 명 보냈습니다! 합격입니다. 아~, 기분 좋다! 합격이다! 만세! 만세! 만세!"

담임선생님은 기분이 한껏 '업'되셔서 내 손을 잡고 교무실에서 만세를 불렀다. 만세삼창까지 했다. 담임선생님의 무서움도 잠시. 순간 나는 얼굴이 당근처럼 새빨게지며 무척 창피했다. 하지만 나도 갑자기 자랑스러운 제자가 된 것 같아 기분은 날아갈 듯했다. 그날 공포의 담임선생님과 나는 만세삼창을 섞은 춤까지 췄다. 선생님은 서울의 그 대학교까지 태워다 주셨고, 집에 오는 버스터미널까지도 손수 태워주셨다.

그 후로 어떻게 됐을까. 아쉽게 떨어진 건지 예비합격이었는지 그 뒤로 그 학교에서는 연락이 없었다. 서운함이 있었지만 새로운 대학교에서 새로운 친구를 만나는 재미에 금방 다 잊어버렸다. 하지만 가끔 생각난다. 그 추운 겨울날, 교무실에서 그 무서운 담임선생님과 만세삼창까지 하게 만든 그 학교.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잘 나가는 그 대학교. 정말 다시 그 대학교에 전화해서 어떻게 된 건지 묻고 싶다.

'그때 왜 그런 거니? 응답하라 1995!'


태그:#대학, #입시, #응답하라, #합격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삶은 기록이다" ... 이 세상에 사연없는 삶은 없습니다. 누구나의 삶은 기록이고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사람사는 세상 이야기를 사랑합니다. p.s 오마이뉴스로 오세요~ 당신의 삶에서 승리하세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