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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프랑스 방문 중 지난 3일 르 그랑 인터콘티넨털 호텔에서 열린 동포 오찬간담회 인사말에 앞서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프랑스 방문 중 지난 3일 르 그랑 인터콘티넨털 호텔에서 열린 동포 오찬간담회 인사말에 앞서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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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에서는 매년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절 행사로 보낸다. 추수감사절은 말 그대로 한 해 수확을 신에게 감사하는 절기다. 추수한 곡식과 과일로 제단을 쌓아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교회에서는 떡을 하거나 맛난 음식을 만들어 나눠 먹으며 공동체성을 되새긴다. 기독교계 일각에서는 추수감사절을 제국주의의 산물이라며 비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역사적인 유래를 살펴보면 꼭 그렇게만 볼 것도 아니다.

추수감사절의 역사적인 유래는 17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1620년 영국 청교도들은 종교 박해를 피해 새 영토를 찾아 길을 나선다. 청교도 102명을 태운 메이플라워 호는 2개월간 5천 킬로미터를 넘는 항해 끝에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다. 살을 에는 혹독한 겨울이 기다리고 있었다. 식량난까지 겹쳐 첫해에만 47명이 죽었다. 절박했다. 그들에게는 구원의 손길이 간절했다.

원주민인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구원자로 나섰다. 그들은 청교도들에게 경작법을 알려주고 옥수수 종자를 나눠주었다. 추수철이 되었다. 청교도들은 수확한 곡식들을 놓고 은혜를 베푼 원주민들을 초대했다. 함께 사흘 동안 감사의 잔치를 열었다. 추수감사절의 시작이었다. 이날 식탁에 오르는 감자나 호박, 칠면조 등은 원래 인디언 음식이었다. 칠면조를 서로 나눠 먹은 데서 추수감사절을 '터키 데이(Turkey day)'로 부르기도 한다.

추수감사절은 평화와 연대의 산물이다. 순수한 종교적인 의미 외에 인간적인 연민과 동정 등이 깔려 있는 역사적 산물이기도 하다. '제국주의'의 나라 미국에서 전래된 종교적 풍습이라고 반감을 갖고 볼 것만은 아닌 것이다. 최초의 추수감사절 때, 원주민 인디언과 청교도들이 함께 어울려 음식을 나눠 먹은 아름다운 장면을 떠올려 보라. 그 역사적인 연원만을 놓고 보면, 추수감사절은 널리 퍼뜨려야 할 아름다운 풍습이다.

추수감사절은 왜 '추수강탈절'이 됐을까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경남지역본부는 14일 오전 경남도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경남지역본부는 14일 오전 경남도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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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백인들은 곤경을 벗어나자 돌변했다. 그들은 인디언들이 베풀어준 은혜를 배신으로 갚았다. 서부개척시대를 거치며 인디언들은 수많은 고난을 당했다. 구대륙에서 유입된 신종 질병과 백인들의 학살 등으로 최고 1억 명의 원주민이 사망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받는 정치적·사회적 차별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추수강탈절(Thanks-taking day)'이 있다. 1975년, 아메리칸 인디언 일부가 백인들의 추수감사절에 반대하는 행사를 진행했다. 그들은 백인들의 배은망덕을 비난했다. 먹을거리를 나눠주며 고난에 빠진 백인들을 도왔더니, 힘을 되찾은 백인들이 오히려 자신들을 강탈하고 학살했다고 비판했다. 그들은 이날을 '추수감사절'이 아니라 '추수강탈절'로 불렀다.

그런데 추수강탈절은 아메리카 인디언들만의 말이 아니다. 정치인들의 목은 선거 전과 후가 확연히 다르다. 선거 운동 과정에서 간절히 한 표를 호소하며 국민들에게 고개를 숙이는 정치인들은 선거가 끝나고 당선이 확정되면 뻣뻣한을 목을 가진 근육 경직 환자가 된다. 위기 때마다 국민 도움을 받는 거대기업들은 뒤로는 온갖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며 자기들 잇속을 챙긴다.

한 표가 아쉬운 대통령 후보는 뭐든 해야 한다. 2012년 10월 20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 조합원 4만7천여 명이 참석한 대규모 총회가 열렸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새누리당 심재철 최고위원의 대독을 통해 "국민들께 신뢰받는 깨끗한 공직사회를 만들어주시기 바란다. 공무원들의 지위 향상과 근무여건 개선에 노력하겠다"는 축사를 전했다.

새누리당은 반 년 전에 치러진 4·11 총선에서 '전교조·전공노의 정치활동 자유화'를 내건 통합진보당 공약을 비판한 '민망한'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한 표가 아쉬웠다. 감추고 싶은 '과거' 따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민망함이 주는 부끄러움은 당연히 참아낼 수 있어야 했다.

그 덕분이었을까. 결국 새누리당은 박근혜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만의 노골적인 정치 논리에 따라 일련의 자연스러운(?!) 수순을 밟고 있다. 전교조는 '노조 아님' 통보를 받았고, 전공노는 서버 압수수색을 당했다.

대통령의 공약 파기는 민주주의 흔드는 '국기 문란'

KTX 민영화 반대 3차 범국민대회가 노동자, 시민단체, 정당인 등 4000여 명(경찰 추산 2500명)이 참석한 가운데 10월 26일 3시 서울역에서 열렸다. 노동자·학생 연대그룹, 전국학생행진, 학생변혁모임이 합동 공연을 벌이고 있다.
 KTX 민영화 반대 3차 범국민대회가 노동자, 시민단체, 정당인 등 4000여 명(경찰 추산 2500명)이 참석한 가운데 10월 26일 3시 서울역에서 열렸다. 노동자·학생 연대그룹, 전국학생행진, 학생변혁모임이 합동 공연을 벌이고 있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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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의 어르신 '뒤통수 때리기'는 또 어떠한가. 그는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 원씩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20만 원이면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한 푼이 아쉬운 노인들로서는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노인들은 선거에서 박 대통령을 확실하게 밀어줬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소득 하위 70%에게만 10~20만 원으로 차등지급하겠다며 자신의 약속을 깨뜨렸다. 180만에 이르는 이 나라의 어르신들은 지금 과연 어떤 심정일까.

박근혜 대통령의 약속 위반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박 대통령은 작년 대선 전에 국민과의 합의 없이는 철도 민영화를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얼마 전 정부는 외국자본의 철도 산업 참여를 보장하는 세계무역기구(WTO) 정부조달협정(GPA) 개정안을 '기습 처리'했다. 철도 민영화의 물꼬를 튼 것이다. 철도 민영화는 철도 산업 자체뿐만 아니라 공공성에 대한 국민 의식에까지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여간 중대한 사안이 아니다. 그런데도 한 마디 변명도 없이 약속을 위반한 것이다.

이에 비하면, 4대 중증질환 100% 국가 보장 공약 파기, 저소득층 영아에 대한 분유·기저귀 값 지원 공약 파기, 고위험 임산부에 대한 정부 지원 공약 등의 파기는 오히려 소소해 보인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낙하산 인사는 새 정부에서 없을 것"이라는 취임 초의 공언은 "박근혜 정부의 새 공공기관장 45%가 '낙하산'"이라는 신문 기사로 되돌아와 국민 뒤통수를 치고 있다.

추수강탈절의 당자사들 중에서도 자신의 선거 공약을 파기하는 대통령은 가장 심각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대통령의 공약 파기는 '약속'으로 이루어지는 민주주의 정치의 근본을 뒤흔든다. 일종의 국기 문란인 것이다. 지금 박 대통령은 야당으로부터 '공약 뒤집기의 달인'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우리 모두의 불행이라 아니할 수 없다. '추수감사절'의 역사적인 유래와, '추수감사절' 대신 '추수강탈절'을 쓰는 아메리카 인디언 후예들의 이야기를 박 대통령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박근혜 대통령, #추수감사절, #추수강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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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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