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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 정상회담 지각생으로 낙인 찍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번 한·러 정상회담에도 어김없이 지각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하지만 한·러 정상회담의 결과는 장밋빛 미래에 대한 비전으로 발표되었습니다. '유라시아 시대'를 만들 것이라는 구상과 함께 러시아 극동 하산과 북한 나진항을 잇는 54㎞ 구간 철로 개·보수와 나진항 현대화 작업, 복합 물류 사업 등이 핵심인 이른바 '나진-하산 프로젝트'에 우리나라의 기업들이 적극 참여하겠다며 양해각서(MOU)를 교환했다는 것까지 발표되었습니다.

이에 KBS를 비롯한 언론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13일 공식 방한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자신의 대북정책에 대한 확실한 지지를 확보하는 성과를 거뒀다"고 보도했습니다, 특히 북한 핵문제와 관련, '북핵 불용'과 북한의 '핵무기 보유국 불인정'에 대해 러시아 측의 명확한 입장을 끌어냈다며 6자회담에 대해서도 재개를 위해 공동 노력을 기울이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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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러 정상회담 결과는 보도하는 KBS .
ⓒ KBS 방송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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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러시아 정상이 6자회담 재개에 대해 "회담 재개의 여건 조성을 위해 공동으로 노력하겠다"고 합의했다니 다행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내막을 들어다보면 무언가 이상합니다.

모든 당사국 "9·19 공동선언에 따른 회담 재개에 노력"... 그럼 누가 문제일까?

우선 양국 정상의 합의문에 있는 북한 문제에 관한 합의 31조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습니다.

31. 양측은 국제사회의 요구와 유엔 안보리 관련 결의에 반하는 평양의 독자적인 핵·미사일 능력 구축 노선을 용인할 수 없음을 확인하고,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따라 핵보유국 지위를 가질 수 없음을 강조하였다. 양측은 북한이 관련 유엔 안보리 결의 및 2005년 9월 19일자 중화인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일본, 대한민국, 러시아연방, 미합중국의 공동성명을 포함한 비핵화 분야에서의 국제적 의무와 약속을 준수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양측은 2005년 9월 19일자 공동성명의 목표에 따라 6자회담 참가국들과 공동으로 회담 재개의 여건 조성을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하였다.

이 합의 조항에서 유엔 결의에 반하는 북한의 독자적인 핵미사일 능력 구축을 용인할 수 없다는 것은 비단 러시아뿐만 아니라 중국도 동의하고 있는 일반적이 사실입니다. 중국 역시 더 이상의 핵실험 등을 자제하라며 북한의 유엔 제재 결의에 동참한 바 있습니다. 또한, NPT 조약에 따른 핵보유국 불인정 문제는 굳이 정상회담에서 합의하지 않더라도 당연한 사항입니다. 인도나 이스라엘이나 파키스탄이 핵보유국이지만 그들은 NPT 조약에 따라 '핵보유국'으로 지칭되거나 분류되지 않을 뿐입니다.

북한이 NPT 조약을 탈퇴하고 자체 핵무기를 개발한 것도 따지고 보면 NPT 체계하에서는 핵 개발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핵보유국'이라는 공식 지위가 유명무실하다는 판단을 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남는 것은 바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6자회담' 부분입니다. 이번 합의문에서도 양측은 9·19 공동성명에 따른 국제적 의무와 약속을 준수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북한도 강조하고 있는 사항입니다. 북한은 9·19 공동성명의 이행을 미국이 약속 위반했다며 이를 핵 개발의 명분으로 삼고 있으며, 미국은 북한이 거듭된 핵 개발로 이러한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고 반박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중국, 러시아, 미국, 한국, 일본, 북한 모두가 9·19 공동 성명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지만, 그 해석이나 이행 여부를 두고 제각각 첨예하게 이해가 대립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문제로 인해 6자회담의 필요성이 증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상호 간의 이해 차이로 인해 6자회담이 재개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며 바로 한·러 정상회담 합의문에서 언급한대로 '회담 재개의 여건 조성'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가장 중요한 회담 당사국 간의 입장 차이는 바로 '북핵 폐기'라는 전제 조건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습니다. 미국과 한국 등은 북한이 회담 재개에 앞서 북한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겠다는 선언과 함께 핵 포기 절차에 구체적으로 나서야 회담을 재개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북한은 이른바 '행동 대 행동' 원칙을 내세우며 핵 폐기 전제 조건이 회담 재개의 전제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회담 재개의 여건 조성에 관한 노력은 누구나 동의하는 것인데 과연 무엇이 문제인지가 남습니다. 다시 말해 미국과 한국이 주장하는 '북핵 폐기 우선'이라는 전제 조건에 대한 입장이 회담 재개에 있어 아주 중요합니다.

이에 대해 중국은 이러한 전제 조건을 철회해야 한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우선 조속한 회담 재개'라는 원칙을 내세우며 상호 입장 차이가 분명한 미국과 북한을 설득하고 있는 중입니다. 러시아는 어떨까요. 놀랍게도 이러한 '전제 조건'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은 매우 분명했습니다.

푸틴 대통령 "6자회담 전제조건 제거돼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한국을 방한하기에 앞서 KBS와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 기자가 "6자회담 재개와 관련해 사전 전제조건을 요구하는 측이 있고요. 또 즉각적으로 6자회담을 재개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요"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이에 푸틴 대통령은 "현재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정체돼 있는 6자회담의 재개입니다"며 "그리고 재개를 방해하는 장애 요소는 당연히 제거해야 하며 만약 재개를 위한 사전 조건을 계속 제시한다면 회담은 재개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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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와의 인터뷰에서 '전제조건 제거'를 역설하는 푸틴 대통령 .
ⓒ KBS 방송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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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푸틴 대통령은 "회담을 재개하기 위해서 당사국들이 한자리에 모여 논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이 방법이 가장 가능성 있는 방법이며 반대로 아주 첨예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할 경우, 만약 최후통첩과도 같은 조건을 제시하면 필요한 결과로 이어질 수 없다"며 전제 조건을 내세우는 미국과 한국 측을 정면 비판한 것입니다.

푸틴 대통령은 "회담을 재개하기 위해서는 회담이 당사국 모두에게 중요하다는 인식과 선의를 가지고 접근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교착 상태에 빠진 6자회담 재개 문제가 전제 조건을 내세우는 당사국들의 태도에 달려 있다고 비판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입장이 한국에 와서는 뜬금없이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정책을 '확실히' 지지한다"는 것으로 둔갑해 보도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아무리 정부가 기업의 투자를 강요하더라도 기업들은 그저 시늉만 낼 뿐 남북한 간의 관계가 계속 악화되는 속에서 선뜻 북한 관련 투자에 나설 기업은 없을 것입니다.

박근혜 정부는 러시아와의 장밋빛 미래를 국민에게 선전하기 전에 그 전제가 되는 남북 관계의 정상화와 신뢰 구축을 먼저 실행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태그:#한러 정상회담, #블라디미르 푸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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