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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편의 고전 <단테의 신곡>(왼쪽)과 <당통의 죽음>이 무대에 올랐다.
 두 편의 고전 <단테의 신곡>(왼쪽)과 <당통의 죽음>이 무대에 올랐다.
ⓒ 국립극장/예술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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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과 3일 두 편의 고전이 각각 무대에 올랐다. 한 편은 국립극장이 국가브랜드공연으로 한태숙 연출과 함께 제작한 총체극 <단테의 신곡>, 다른 한 편은 예술의전당이 게오르크 뷔히너 탄생 200주년을 맞아 루마니아의 가보 톰파 연출을 초청해 무대화한 연극 <당통의 죽음>이다.

제작진의 스케일이 남다른 만큼 연출진과 출연진 역시 타의 추종을 불허했고, 관객들의 기대감도 동반 상승했다. 실제로 <단테의 신곡>은 연일 매진 사례를 기록하며 3층 객석을 오픈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이들이 모여 공을 들인 무대라 하더라도 작품에 대한 호불호는 존재하는 법,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한 이들이 있는 반면 지금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무대와 배우들의 열연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는 이들도 다수 차지하고 있었다.

단테와 베르길리우스의 대화는 에피소드 전환 시 자칫 헐거워질 수 있는 부분을 매끄럽게 이어줬다.
 단테와 베르길리우스의 대화는 에피소드 전환 시 자칫 헐거워질 수 있는 부분을 매끄럽게 이어줬다.
ⓒ 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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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의 신곡] 강렬한 지옥 대비 심심한 천국?

단테가 망명 시절 집필한 서사시 100편으로 구성된 <신곡>은 주인공 단테가 지옥과 연옥, 천국을 여행하며 보고 들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히, 이번 무대는 국내 최초로 제작된다는 점과 더불어 한태숙 연출과 고연옥 작가의 재창작으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막이 오르자 거대한 사다리꼴의 앙상한 골조물이 관객들을 지옥으로 안내했다. 단테(지현준)와 그의 길잡이 베르길리우스(정동환)가 동행한 채 지옥의 여정이 시작된 셈이다.

무대를 통해 구현된 지옥은 참혹했다. 죄인들은 저마다의 죗값을 치러내며 고통에 신음했고, 단테는 그들을 바라보며 깊은 시름에 잠겼다. 때론 궁금증을 참지 못한 채 그들을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가 사연을 묻고, 베르길리우스에게 재차 질문을 던지며 여정을 이어갔다. 극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지 않은 시편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탓에 한 연출과 고 작가는 원작을 해석 및 분석하는 과정을 거쳐 에피소드를 채택했다. 덕분에 관객들은 극에 대한 이질감을 덜고 한층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으며, 단테와 베르길리우스의 대화는 에피소드 전환 시 자칫 헐거워질 수 있는 부분을 매끄럽게 이어줬다.

지옥과 연옥의 다양한 죄인 군상 캐릭터들은 오늘날의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지옥과 연옥의 다양한 죄인 군상 캐릭터들은 오늘날의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 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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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지옥과 연옥의 다양한 죄인 군상 캐릭터들은 오늘날의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스스로 목숨을 버린 죄로 인간의 모습을 잃은 '자살나무'나 형수와 시동생 간의 불륜으로 뜨거운 불길 속에서 살이 타들어가는 고통을 느껴야 하는 '프란체스카(박정자)'와 '파올로', 죽은 손자의 살을 뜯어 먹으며 배고픔을 이겨내는 '우골리노', 교만하게 살아온 죄로 거대한 돌덩이를 등에 지고 살아가는 '굴리엘모' 등이 그들이다.

하지만 지옥과 연옥의 고단한 여정으로 기력을 소진한 탓인지 천국은 다소 심심했다. 어떻게 견뎌 얼마를 오른 천국이거늘, 마침내 도착한 천국은 지옥과 연옥에 비해 들을 거리에 심지어 볼거리도 상대적으로 약했다. 물론 그 의미는 심장했다. 베아트리체로 상징되는 천국, 즉 사랑은 단테의 성장에 발판이 되어줄 뿐 전부가 될 순 없다며 결국 서로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자기반성 그리고 그 아픈 시간을 통해서만이 닿을 수 있었던 천국으로의 여정 그 끝에서 단테는 세상을 살아가는 힘은 결국 자기 안에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세세한 움직임까지도 숨길 틈 없이 보여주는 투명한 구조물에 세련된 조명을 투과함으로써 무대에 대한 시각적인 효과를 극대화시켰다.
 세세한 움직임까지도 숨길 틈 없이 보여주는 투명한 구조물에 세련된 조명을 투과함으로써 무대에 대한 시각적인 효과를 극대화시켰다.
ⓒ 예술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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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통의 죽음] 미장센은 살리고, 혁명신은 숨었나?

객석 곳곳에서 들려오는 대화에 귀를 기울여보니, '당통의 죽음'과 '가보 톰파'는 몰라도 '이자람' 그리고 '박지일'과 '윤상화'가 출연한다면 어느 작품이라도 믿고 기꺼이 관람을 하겠다는 관객들이 꽤 많았다. 이는 달리 해석하면, 연극 무대에 대한 애정이 일정수준에는 미치고 있다는 점을 의미하기도 했다.

<당통의 죽음>은 프랑스 혁명 이후 핵심 지도자들에게서 나타난 심리적 혼란을 그리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당통과 로베스피에르, 당통은 혁명이 가져온 무분별한 살육과 이를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공포정치에 회의감을 느끼며 술과 여자로 공허함을 채운다. 한편, 로베스피에르는 점점 피의 맛에 중독되면서 당통과 격돌하고, 급기야는 당통 일파를 구속해 단두대에 올려 처형을 감행한다.

극은 두 시간여 동안 러닝 타임 없이 진행되는데, 대사는 많고 빠른 데다 배우들의 마이크 착용으로 (대사)전달이 고르지 않아 집중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오프닝 혁명신에 대한 아쉬움도 적잖다. 멀티 연기라면 절대 빠지지 않을 이자람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굶주림과 지친 심신으로 예민해진 군중들의 모습을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였다.

당통 역의 박지일과 로베스피에르 역의 윤상화는 배역에 대한 고밀도 연기로 객석을 압도했다.
 당통 역의 박지일과 로베스피에르 역의 윤상화는 배역에 대한 고밀도 연기로 객석을 압도했다.
ⓒ 예술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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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장센만 보면 지금껏 봐온 어떤 작품보다도 훌륭하고, 신선했다. 세세한 움직임까지도 숨길 틈 없이 보여주는 투명한 구조물에 세련된 조명을 투과함으로써 무대에 대한 시각적인 효과를 극대화시켰고, 승강무대장치의 활용 역시 눈에 띄었다. 믿고 보는 배우들이 출연한 만큼 당통 역의 박지일과 로베스피에르 역의 윤상화는 배역에 대한 고밀도 연기로 객석을 압도했다. 특히, 당통과 로베스피에르가 대립하는 장면은 연기는 물론이거니와 비주얼로 볼 때 이번 무대의 백미로 손꼽히기 충분했다.

관객들 사이에서 작품의 평가는 엇갈려도 무대에 대한 애정과 관람에 앞서 큰 용기를 필요로 했다는 점에서는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었다. 안 보자니 찜찜하고, 보자니 깜깜했으나 결국 보고 나니 본의 아니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두 편의 고전 무대, 공연기간은 짧았지만 오래도록 회자될 작품임에는 틀림없어 보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문화공감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정지선의 공연樂서, #문화공감, #단테의 신곡, #당통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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