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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식 전골로 소고기와 기호에 따라 두부, 버섯, 양배추, 파 등 다양한 야채 종류가 들어간다. 익힌 재료들을 날달걀에 찍어 고소하게 먹는 것과 두툼한 면을 넣어 삶아먹는 것이 포인트.
▲ 스키야키(すきやき) 일본식 전골로 소고기와 기호에 따라 두부, 버섯, 양배추, 파 등 다양한 야채 종류가 들어간다. 익힌 재료들을 날달걀에 찍어 고소하게 먹는 것과 두툼한 면을 넣어 삶아먹는 것이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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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리는 오늘도 축 처진 어깨다. 그는 피아노 앞에 앉아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든다. 통통 울리는 가락이 어쩐지 어설프다. 그러나 음정을 맞추는 것보다 중요한 건 자신의 마음을 조율하고 있다는 것. 자유연구 숙제가 주어졌던 중학교 3학년 때, 그는 집 근처에 있던 교회 스테인드글라스의 오묘한 매력에 빠져 처음 문지방을 넘어섰다.

사진 찍으러 왔다가 그저 아늑한 분위기가 좋아진 민감한 사춘기 소년에겐 삶이 수세에 몰릴 때마다 마음의 위안을 주는 이곳이 해방구나 다름없었다. 그때의 아이는 스물 셋이 되었지만 여전히 그는 겨울 찬바람이 머물러 있는 텅 빈 예배당을 종종 혼란스러운 자아를 내려놓는 도피처로 삼곤 한다.

그가 중학교에 입학하던 4월엔 유난히 봄비가 자주 내렸다, 쉬는 시간이면 친구들은 교실에서 왁자지껄 놀았지만 내성적인 그는 새로운 환경을 낯설어했다. 그저 멍하니 후드득 떨어지는 불투명한 빗방울을 보며 음악을 듣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다 한 친구가 호기심에 그를 건드렸다. 그러나 유우니는 별 반응 없이 무덤덤했고 그는 부아가 치밀었는지 점점 더 짓궂은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새로운 '꺼리'가 필요했던 악동들은 유우니를 표적으로 삼고 주위로 몰려들었다.

처음에는 은근히 비꼬았다. 그의 어눌한 말투나 행동 하나하나를 이들은 문제아의 전형으로 낙인찍어 시도 때도 없이 괴롭혔다. 정도는 심해졌고 언어폭력에 더해 신체적 위해를 가하기 시작했다. 두려웠던 유우니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얘들아, 왜 그래…."
"그냥, 네가 보기 싫으니까!"

반 친구들은 냉담했다. 자신들에게 대항할 구석이 없는 유우니는 그저 교실의 낙오자일 뿐이었다. 아무도 유우니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의 편에 서는 순간 자신도 따돌림을 당할거란 걸 알고 있었다. 심지어는 그가 내심 의지했던 단짝 친구마저도 겉으로는 위로하는 척 하면서 배신했다. 어느 날은 실내화가 없어졌다. 그 다음엔 과제 준비물이 사라졌다. 이들의 악행은 브레이크가 파열된 고물 자동차처럼 점점 더 가속이 붙었다. 친구들은 그를 위협하여 주머니를 허락 없이 뒤지거나 강제로 지갑을 뺏어 돈을 꺼내갔다. 게다가 때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유우니는 참았다.

그와 비슷한 성격을 가진 젊은이들을 일본에서는 흔히 만날 수 있다(허락을 받아 찍고 게재한다).
▲ 스마트폰으로 번역하고 있는 유우미 그와 비슷한 성격을 가진 젊은이들을 일본에서는 흔히 만날 수 있다(허락을 받아 찍고 게재한다).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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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메였어, 근데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는 성격이야. 분노나 좌절 같은 감정을 잘 못 느껴. 그렇다고 기쁘다거나 하지도 않아. 내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편해, 말하면 상황이 더 귀찮아지거든. 단짝 친구가 나를 위로하며 도와주는 척 하다가 배신할 때에도 그러려니 했어. 일본인들은 원래 고양이 같은 습성을 가지고 있거든. 기분이 수시로 바뀌지만 절대 드러내지는 않지. 특히나 부정적인 감정은 더욱 그래.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야.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세일즈맨이라는 게 그래. 불만이 접수되더라도 고객에게 사사로운 감정을 드러내면 안 돼. 하루 8시간 동안 난 영혼이 없는 듯 살아. 기계적으로 일하는 게 흥미도 없고, 희망도 없어. 학교에서도 그랬는데 졸업하고 나서 여기에서도 동료들이 무시하고 귀찮게 굴어. 다들 나를 싫어하나 봐. 그래도 난 상처받거나 신경 쓰지 않아. 만약 그랬다면 난 이미 자살했을 거야. 나에게 슬픈 느낌이 없다는 건 어찌 보면 다행스러운 일이야. 봐, 지금 내리는 눈도 넌 로맨틱하다고 하지만 난 사실 별 감흥이 없어, 그냥 무심해. 비가 오던 그 때도 그랬어. 소박한 꿈이 있다면, 이지메 없이 그저 적당히, 조용히 살고 싶다는 거야. 하루하루 몹시 무미건조하게."

그는 남부럽지 않은 가정에서 자라났다. 부모님이 모두 교사인데다가 유럽에만 수차례 가족여행을 다녀올 정도로 경제적으로도 부족하지 않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사춘기를 겪으면서 극도로 내성적이 되었다. 고립된 자아의 유일한 해방구는 음악이었다. 텅 빈 예배당에서 피아노를 치는 것만큼이나 관심을 끄는 건 애니메이션 엔젤비트에서 극중 밴드로 나온 'Girls dead monster'의 음악이었다. 대화를 하면서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는 그가 이런 음악을 소개할 때에는 아주 잠깐 환한 표정을 짓곤 했다.

피아노를 칠 수 있는 교회가 일상에서의 안식처가 되고, 피아노를 가르쳐 주는 한국인 여학생이 유우미에겐 그나마 속을 털어놓는 친구가 된다.
▲ 안식 피아노를 칠 수 있는 교회가 일상에서의 안식처가 되고, 피아노를 가르쳐 주는 한국인 여학생이 유우미에겐 그나마 속을 털어놓는 친구가 된다.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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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미안한데 나 8분 있다가 가봐야 해. 우리 집엔 밥 당번이 있는데 오늘 저녁은 내 차례거든."
"시간에 매우 민감하구나."
"시간에 집중해야해. 난 1분 1초를 계산해서 생활해."

자기만의 수화와 더듬는 말로 서툴게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그에게 시간은 유일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조건이었다. 감정을 선택하는 것에 무딘 대신 그는 다른 무엇을 날카롭게 인지함으로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강해지고 싶은 걸까? 시간에 쫓겨 급하게 신발을 고쳐 신는 그의 얇은 발목에는 모래주머니가 채워져 있었다.

눈과 비와 바람을 막아주는 훗카이도의 수준 높은 버스 정류장. 미닫이 문이 있으므로 실내는 비교적 안온하고, 여름철엔 모기 걱정으로부터 해방된다. 시골 지역에는 사람들 왕래가 별로 없으므로 종종 모험을 즐기는 여행자들에겐 숙박시설로 이용되기도 한다.
▲ 훗카이도 버스 정류장 눈과 비와 바람을 막아주는 훗카이도의 수준 높은 버스 정류장. 미닫이 문이 있으므로 실내는 비교적 안온하고, 여름철엔 모기 걱정으로부터 해방된다. 시골 지역에는 사람들 왕래가 별로 없으므로 종종 모험을 즐기는 여행자들에겐 숙박시설로 이용되기도 한다.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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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으로 마음을 준 곳이 바로 이 교회야."
"스테인드글라스가 예쁘다는 다른 교회도 다녔었다며?"
"거긴…스테인드글라스만 예뻤어. 암튼 그건 비밀이야."

누구라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텅 빈 동네 작은 교회, 이곳엔 유우미가 칠 수 있는 피아노가, 피아노를 가르쳐 주는 또래의 상냥한 한국인 친구가 있다. 단언하건대 이곳에서만큼은 그가 꿈꾸는 무미건조한 삶이 불가능할 것이다. 분명히 나는 보았으니까, 집으로 돌아가는 유우미가 웃고 있는 얼굴을.

비교적 맑고 화창한 날씨였다. 하지만 오후부터 본격적으로 심술궂은 겨울 날씨가 시작되었다. 엄청난 바닷바람과 함께 토마코마이에 첫 눈이 내렸다.
▲ 일본 자전거 여행 첫째 날 비교적 맑고 화창한 날씨였다. 하지만 오후부터 본격적으로 심술궂은 겨울 날씨가 시작되었다. 엄청난 바닷바람과 함께 토마코마이에 첫 눈이 내렸다.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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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http://blog.naver.com/miracle_mate
현재 위치 : 훗카이도 하코다테 다음 예정지 : 아키타



태그:#일본여행, #세계일주, #자전거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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