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세 차례 북한 여행을 다녀온 뒤 내게는 북한에 두고 온 수양딸과 수양조카가 생겼다. 피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정을 나눈 그들이 다시 보고 싶어서, 더 많은 북한 동포들과 소통하고 싶어서 올해도 다시 북한에 다녀왔다. 지난 8월 15일부터 8월 26일까지 한 차례 그리고 9월 4일부터 13일까지 또 한 차례 북한을 여행했다. 새 연재 '재미동포 아줌마, 또 북한에 가다'를 통해 북한 동포들의 지금과 북한의 여러 명소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 기자말

[기사 수정 : 2015년 4월 7일 오후 5시 16분]

백두산 천지를 바라보며 나는 "원 코리아, 우리는 하나"라고 수도 없이 외쳤다. 마음 속 절규는 울분이 돼 내 가슴을 찢는다. 남편과 내가 '만세'를 외쳐대자 일행인 유럽 관광객들이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어온다. 영어로 뜻을 설명해주고 천천히 발음해 주니 자기들도 함께 외치겠단다.

"쵸쿸톤길 만쎄(조국통일 만세)! 쵸쿸톤길 만쎄(조국통일 만세)! 톤길쵸쿸 만쎄(통일조국 만세)!"

장군봉에 올랐더니... 천지의 또 다른 모습이

백두산 천지에서 설향이를 꼭 껴안고
 백두산 천지에서 설향이를 꼭 껴안고
ⓒ 신은미

관련사진보기


남편은 백두산 천지에 홀딱 반해 사진기 셔터를 눌러대느라 정신이 없다. 세계 이곳저곳을 다녀봤지만 백두산 천지처럼 실제 풍경이 사진이나 그림보다 더 아름답게 모습을 드러내는 걸 본 적이 없다. 그 어떤 카메라도, 그 어떤 훌륭한 화가도 절대 백두산 천지를 재현할 수 없을 것 같다. 백두산 천지에 감탄하면서도 이곳의 아름다움과 웅장함 그리고 신비로움이 주는 감동을 만분의 일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감성의 메마름과 부족한 글솜씨를 한탄할 뿐이다.

백두산 천지에서 도시락을 펴고
 백두산 천지에서 도시락을 펴고
ⓒ 신은미

관련사진보기


우리는 천지를 바라보고 평양에서 가져온 '벤또'를 열었다. 음식이 너무 많다. 이미 감동으로 온몸이 가득 차 있어 음식이 입에 잘 들어가지 않는다. 남편과 나는 도시락 하나를 겨우 나눠 먹었다. 그런데 우리 일행은 셋인데 설향이는 도시락 네 개를 챙겨왔다. 왜 하나를 더 가져왔냐고 물었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병사를 만나면 주고 싶어서였단다.

한여름인데도 천지의 날씨는 쌀쌀하다. 구름마저 가리면 손이 시릴 정도다. 이곳에 근무하는 병사들은 털이 달린 두껍고 긴 코트를 입고 있다. 이런 군복은 처음 본다. 남편이 사진을 찍으려 하자, "저… 군인은 사진촬영이 안 되는데…"라며 설향이가 미안해한다. 그러더니 설향이가 남은 '벤또' 두 개를 들고 병사에게 다가가 건네준다. 병사는 모자를 벗고 고마움의 표현을 겸연쩍은 목례로 대신한다.

장군봉 올라가는 길
 장군봉 올라가는 길
ⓒ 신은미

관련사진보기


점심식사를 마친 우리는 백두산에서 제일 높다는 장군봉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장군봉까지 1000m'라고 적힌 이정표가 보인다. 가파른 돌멩이 밭을 1km나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곳에서 보는 천지는 또 다른 모습"이라며 설향이는 힘들어 하는 나를 격려한다. 게다가 얼굴을 화끈거리게 하는 말마저 덧붙인다.

"오마니, 일본놈들에게 빼앗긴 나라를 되찾으려 우리의 항일전사들은 이 혹한의 산 속에서 처절한 싸움을 하며 죽어갔습니다. 그중에는 우리와 같은 려성들도 있었습니다. 그분들을 생각하며 걸으시면 인차(곧) 장군봉에 오르실 거야요."

구름에 가려진 천지
 구름에 가려진 천지
ⓒ 신은미

관련사진보기


한참 끙끙거리며 장군봉을 향해 오르는데 천지가 구름에 가려지기 시작한다. 뒤따라 오는 철부지 남편은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담배를 물고 있다. 구름에 가려지는 천지를 힐끗힐끗 쳐다보는 남편이 그냥 있을 리가 없다. 소리쳐 설향이를 부른다.

"설향아, 설향아. 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더 가 봐야 뭐하니. 그냥 내려가자."
"아바지, 구름은 있다가도 없다 하니 조금만 참으시라요. 담배까지 피우시면서 오떻게 오르시갔아요. 제가 내려가 부축해 드릴까요?"
"됐다, 됐어, 담배 끌게."

"천지는 해방된 조국의 모습이야요"

장군봉 올라가는 길.
 장군봉 올라가는 길.
ⓒ 신은미

관련사진보기


나도 점점 더 숨이 차고 다리가 떨려온다. 이런 내 상태를 눈치를 챈 설향이가 내 허리를 감싸 안고 떠밀어 주며 항일 유격대장 같은 말을 한다.

"오마니, 뒤에서 일본군 토벌대놈들이 우리를 잡으로 추격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보시라요. 발걸음이 빨라질 거야요. 저 위에 또 다른 모습의 천지가 있습니다. 우리를 추격하는 놈들이 바로 저 구름과도 같은 건데 백두산의 구름은 있다가도 없어집니다. 거게서 보는 천지가 '해방된 조국'의 모습이야요. 그 모습을 보시지 않고 여기서 주저앉아 잡히시갔어요?"

내게는 어린애로만 보이는 이 여자 아이에게서 어떻게 이런 말이 나올 수 있는 건지. 해외동포 관광객이 힘들어 하면 그런 말을 하라고 교육을 받은 걸까? 그렇지만 이 아이는 외국인 관광객 안내원이며 해외동포 관광객 안내는 처음이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설향이에게 떠밀려서 100m 정도 더 올라갔을까. 구름에 덮혀 천지(해방된 조국)마저 가려지니 더 이상 올라가고 싶은 생각이 없어진다. 아, 쉽지 않은 일이었구나. '추격하는 자들에게 잡혀도 좋으니 주저앉고 싶다'는 얄팍한 생각마저 드니 말이다.

기어이 조국에서 제일 높다는 장군봉에 올랐다. 그러나 천지는 구름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손과 귀만 시려온다.

구름에 가려진 천지
 구름에 가려진 천지
ⓒ 신은미

관련사진보기


허무하다. 천지를 뒤덮고 있는 안개 같은 구름만이 눈 아래 펼쳐져 있다. 지금 우리 조국은 일제로부터 해방은 됐으나 구름 덮힌 천지처럼 쾌청한 모습으로 광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통일의 날이 참다운 광복의 날"이라고 말씀하신 재미동포 의학자 오인동 선생님의 말씀이 가슴에 다시금 아로새겨진다.

함께 장군봉에 올랐던 유럽팀 안내원들과 함께. 왼쪽부터 영어 안내원 방은미, 스페인어 안내원 김광혁, 남편, 나 설향이, 김일성대 일본어과 학생인 실습생.
 함께 장군봉에 올랐던 유럽팀 안내원들과 함께. 왼쪽부터 영어 안내원 방은미, 스페인어 안내원 김광혁, 남편, 나 설향이, 김일성대 일본어과 학생인 실습생.
ⓒ 신은미

관련사진보기


처음 천지를 보았던 곳으로 돌아와 보니 구름은 싸악 겉히고 천지는 에메랄드 빛을 휘황찬란하게 발하고 있다. 고개를 돌려 장군봉을 올려다보니 그곳에도 구름이 걷혀 있다. '다음에는 반드시 저곳에서 천지를 보고야 말리라' 다짐하며 백두역으로 돌아가는 궤도차량에 몸을 실었다.

삼엄할 것만 같았던 북중 국경, 하지만...

내려가는 궤도차량에서 바라본 대평원
 내려가는 궤도차량에서 바라본 대평원
ⓒ 신은미

관련사진보기


궤도차량 아래 드넓은 평원이 펼쳐져 있다. 마치 말이라도 타고 광활한 평원을 달리는 기분이다. 이 평원을 따라 남으로 남으로 달려가면 내 고향 대구가 있고, 그곳을 지나 바다 건너에는 제주가 있다. 아, 아름다운 나의 조국이여! 나를 낳아준 그대를 위해 나는 정말 아무 것도 한 일이 없구나.

궤도 차량에 오른 설향이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있다. 손을 잡아보니 얼음덩이 같이 차다. 손을 꼭 잡아 녹여줬다. 내 온기가 전해졌나 보다. 설향이가 나에게 눈인사를 한다.

차창 밖으로 본 북중 국경. 사진 가운데 계곡이 북한과 중국의 경계다.
 차창 밖으로 본 북중 국경. 사진 가운데 계곡이 북한과 중국의 경계다.
ⓒ 신은미

관련사진보기


역에 내린 우리는 호텔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고도가 낮아지는지 나무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계곡이 보인다. 천지의 물이 계곡으로 흐르는 것이다. "이 계곡 한가운데 조선과 중국의 국경선이 있습니다"라고 영어 안내원 방은미가 말해준다.

철책도 없고 경비를 서는 군인들도 보이지 않는다. 평화로운 국경이다. 계곡에서 가재를 잡다 몇 발자국 북으로 가면 중국인 것이다. 문득 세계에서 가장 중무장돼 있다는, 발걸음 한 번 잘못 내디디면 지뢰를 밟아 큰 상처를 입거나 목숨을 잃는 우리 휴전선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 계곡은 중국과의 경계를 이루며 길게 이어져 있는데, 아래로 내려가면 폭이 더 넓어진다고 한다. 그리고 그 안에는 아름다운 폭포를 비롯해 절경을 이루는 곳들이 많이 있지만 관광지로 개발된 곳은 없단다. '천연 그대로'라는 말이 이럴 때 어울리는 듯. 그 계곡이 평지까지 흘러내려 강을 이루는데, 그 강이 바로 압록강이다.

김일성 주석이 머물렀다는 항일유격대 백두산 밀영 가봤더니

밀영의 사령부 건물
 밀영의 사령부 건물
ⓒ 신은미

관련사진보기


우리는 호텔로 돌아가기 전에 한 군데 더 참관할 것이란다. 목적지는 김일성 주석이 이끌었던 항일유격대의 비밀사령부인 '백두산 밀영'. '밀영'이라는 말이 주는 느낌 그대로 밀림속을 헤쳐간다. 좁은 산속 도로를 달리려니 나뭇가지들이 버스를 스친다.

2012년 5월, 세 번째 북한 여행 당시 나는 이곳을 다녀간 적이 있다. 그러나 지난 기행문 연재 때에는 이 밀영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언론을 통해 백두산 밀영이 가짜라고 전해 들었으며, 내 머릿속에도 '가짜'라는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이다. 가짜를 보면서 무슨 감흥이 생기겠나. 하지만, 나는 지금 밀림을 헤치며 이곳까지 오면서 뭔가 느낀 바가 있다.

어려서 나는 북한의 김일성 주석은 가짜라고 배웠다. 선생님들은 진짜 김일성 장군은 말 위에 올라 백발에 긴 수염을 날리는, 연세가 지극하신 분이라고 가르쳤다. 또 그 당시 소련에서 귀국한 북한의 김일성 주석은 불과 30대 초반이었으니, 김일성 주석은 소련이 내세운 가짜라고도 가르쳤다. 나는 오랫동안 그렇게 믿어왔다.

밀영 내부 모습. 김일성 주석(맨 왼쪽)과 김정일 위원장(가운데)의 어린 시절 사진이 걸려 있다.
 밀영 내부 모습. 김일성 주석(맨 왼쪽)과 김정일 위원장(가운데)의 어린 시절 사진이 걸려 있다.
ⓒ 신은미

관련사진보기


2011년 10월 첫 북한여행 당시 묘향산에 있는 국제친선박물관이라는 곳을 간 적이 있다. 그곳은 세계 곳곳에서 김일성 주석에게 보내온 수십만 점의 선물들을 전시해 놓은 곳이었다. 놀랍게도 거기에는 '반공'을 앞세워 국민들을 통치했던 박정희·전두환 등 남한의 전직 대통령이 보낸 선물들도 있었다(관련기사 : 박정희·전두환도 김일성에게 선물... 깜짝 놀랐다). 그것은 이해할 수 있다. 외교적인 수사를 동반한 제스처일 테니까 말이다.

지난 98년 동아일보 취재진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순금으로 제작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선물로 바친 1937년 6월5일자 동아일보 '보천보 전투' 호외. 기사 왼쪽에 '김일성(金一成)'이라는 글귀가 보인다.
▲ 김정일에게 바친 동아일보의 '선물' 지난 98년 동아일보 취재진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순금으로 제작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선물로 바친 1937년 6월5일자 동아일보 '보천보 전투' 호외. 기사 왼쪽에 '김일성(金一成)'이라는 글귀가 보인다.
ⓒ 노순택

관련사진보기


그러나 정작 나를 충격에 빠뜨린 것은 <동아일보>에서 보내온 금속판이었다. 김일성 장군이 군대를 이끌고 보천보라는 곳에서 일본군을 격파했다는 당시의 <동아일보> 기사를 금동판으로 제작해 선물한 것이다. <동아일보>는 김일성 주석에게 왜 그런 선물을 한 것일까?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지금까지 내가 '가짜' 교육을 받았단 말인가' 생각했다.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독립운동을 하던 바로 그 김일성 장군이기 때문에 그런 선물을 했을 터. 그렇다면 이 '밀영'은 좌익 우익을 떠나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 있어 귀중한 장소가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다.

ⓒ 신은미

당시 이곳을 비롯한 만주 일대에는 항일독립군 말고도 또 다른 종류의 조선인 군인들이 있었다. 바로 일본에 충성을 맹세하고 우리의 독립군들을 잡으러 다니던 조선인 일본군 장교들 그들이다. 조선의 남아로 태어나 빼앗긴 나라를 되찾으려 독립군에 가담하지는 못할망정 어찌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언젠가 친일 행위자들을 놓고 벌이는 논객들의 토론을 본 적이 있다. 한 논객은 "당시 일본은 우리나라였고 일본정부는 우리의 정부인 상황이었으므로 그들의 행위는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궤변을 늘어놨다. 그분에게 묻고 싶다. 똑같은 상황이 다시 벌어질 경우, 우리의 청년들이 일본군 장교가 돼 나라를 되찾겠다고 총을 잡은 독립군들을 잡으러 다녀야 하냐고. 그것이 비참한 역사를 앞서서 살아온 어른으로서 우리의 젊은이들을 향해 할 수 있는 소리냐고.

생존해 있는 일본군 장교 출신 친일인사들에게 호소한다. 자라나는 우리의 어린아이들에게 올바른 국가관을 심어주기 위해서라도, '내가 젊어서 독립군이 되질 않고 일본군 장교가 된 것은 옳은 선택이 아니었다'고 돌아가시기 전 한 마디만 해 주실 것을 간절히 부탁드린다. 그리고 남과 북 모두에게 바란다. 적어도 우리 독립운동사만은 공정하게 다뤄줄 것을.

밀영에 흐르는 계곡 소백수.
 밀영에 흐르는 계곡 소백수.
ⓒ 신은미

관련사진보기


밀림을 헤치고 우리 버스는 백두산 밀영에 도착했다. 소백수라 불리는 계곡에 수정같이 맑은 물이 흐른다. 그러나 이 계곡물에는 독성이 있다고 한다. 잘 기억이 나질 않는데 아마 잇깔나무의 독성 때문에 그렇다는 것 같다. 이 물을 오래 마시면 피부가 상하고 치아가 빠지기까지 한단다. 그래서 항일 유격대원들은 식수로 이용할 샘을 제일 먼저 찾아 나서야 했다고 한다. 이 험한 산속에서 어떻게 항일 운동을 했는지, 그들의 애국심에 숙연해질 뿐이다.

밀영에서 바라본 정일봉
 밀영에서 바라본 정일봉
ⓒ 신은미

관련사진보기


밀영 뒤에 '정일봉'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높은 봉우리가 보인다. 그나저나 내겐 백두산 밀영에 대해 풀리지 않는 의문이 하나 있다. 바로 이 밀영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태어났다는 이야기가 바로 그것. 내가 배운 바에 따르면 김정일 위원장은 옛 소련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어느 것이 사실인지 알 도리가 없다. 다시 한 번 남과 북 모두에게 바란다. 부디 진실만을 가르치기를.

나도 총을 들고 밀림 속을 다닐 수 있을까

백두산 베개봉 호텔
 백두산 베개봉 호텔
ⓒ 신은미

관련사진보기


우리는 밀영을 떠나 숙소인 베개봉호텔에 도착했다. 먼저 도착한 한 유럽팀이 각자의 자전거를 조립하고 있다. 알아보니 이들은 '사이클링 관광단'이란다. 본국에서부터 자신들의 자전거를 가져와 관광지를 오가며 사이클링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지금 북한의 조선국제려행사에서는 사이클링 관광, 항공기 애호가들을 위한 관광, 건축물을 돌아보는 관광, 낚시 관광, 심지어는 북한의 산과 하천만을 구경하는 관광 등 여러 종류의 관광 상품을 제공한다. 그중에서 내 관심을 끄는 상품은 북한의 하천을 돌아보는 관광 프로그램이다. 이 관광단에 속한 한 유럽인은 "자연 그대로의 강은 정말 아름답다"고 말했다.

감자를 굽고 있는 유럽 관광팀
 감자를 굽고 있는 유럽 관광팀
ⓒ 신은미

관련사진보기


또 다른 무리의 유럽 사람들은 벌써 감자를 굽고 있다. 구수한 감자 냄새가 사방에 퍼진다. 지난해 이곳 베개봉 호텔에서의 추억이 되살아난다. 이 지역에서 군 생활을 했다는 수양조카 방현수와 내 남편은 서로 자신들의 군대생활이 더 힘들었다며 구운 감자를 먹으며 나름 진지한 논쟁을 벌였다. 그 시절 기억 속에는 온통 방현수 조카가 들어가 있다(관련기사 : "북한 당국에 감사" 이 유럽인들 왜 이러는 걸까요).

수양조카 현수는 지금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세포등판'이라는 곳에 '로력동원'을 나갔다는데, 언제 평양의 집으로 돌아올는지…. 천진난만하고 유머가 넘치는 현수가 그리워진다.

호텔 마당에서 구운 감자를 먹으며 남편은 호텔 직원에게 올해 감자 농사가 어땠는지 묻는다. 호텔 직원은 풍년이라고 답한다. 북한의 식량 문제에 관심이 많은 남편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언젠가 '나무껍질을 먹었다'는 새터민들의 얘기를 듣고서 남편이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남편은 매일 새터민들이 운영하는 누리집에 들어가 북한의 쌀값을 알아본다. 장마당 쌀값이 내려가면 "같은 돈으로 더 많은 쌀을 사겠구나"라며 미소를 짓곤 한다. 반면, 쌀값이 올라가면 그날은 우울한 표정을 짓는다.

호텔방 발코니에서 바라본 숲
 호텔방 발코니에서 바라본 숲
ⓒ 신은미

관련사진보기


호텔방으로 들어온 나는 발코니에 서 맞은 편 숲을 바라본다. 오늘 본 천지의 선명한 모습과 함께 항일 유격대원들의 처절했던 독립투쟁이 상상 속에서 그려진다. 그리고 내 자신에게 물어본다.

'그 시대로 다시 돌아간다면 과연 나도 총을 들고 이 밀림 속을 다닐 수 있을까'라고. 그리곤 다짐을 한다. 꼭 그러고 말 것이라고.


태그:#북한, #통일, #민족, #여행
댓글67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이화여대 음대 졸업.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 음악박사. 전직 성악교수 이며 크리스찬 입니다. 국적은 미국이며 현재 켈리포니아에 살고 있습니다. 2011년 10월 첫 북한여행 이후 모두 9차례에 걸쳐 약 120여 일간 북한 전역을 여행하며 느끼고 경험한 것들 그리고 북한여행 중 찍은 수만 장의 사진들을 오마이뉴스와 나눕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