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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까지 봉사활동과 여행으로 보냈던 아프리카에서의 3년은 황홀했습니다. 그것은 자본주의화되고 개인화되어 가는 우리에 대한 성찰이었고, 아직도 더불어 살아가는 아프리카 사람들에 대한 환희였습니다. 아프리카하면 떠오르는 어둡고 부정적인 이미지들. 그 속으로 돌을 던집니다. 그곳은 보통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었습니다. - 기자말

돈이 없어 짓다가 만 킴비씨 월세집이다. '그래도 1년치 월세를 줬으니 한 달 이내로는 어찌 되겠지' 싶은 마음으로 일단 이사는 했는데,  벌써 두 달이 되었지만 언제 집짓기가 끝날지 알 수가 없다.

방 세 개에 화장실 두 개 그리고 거실과 부엌이 딸린 집은 킴비씨네 바깥채. 문짝도 아직 달려있지 않다. 우선 급한 대로 화장실이 딸린 방을 청소하며 하나둘씩 킴비씨에게 졸라댔다.

좌식 생활인 한국 사람에게 시멘트로 대충 발라버린 바닥은 까칠해서 영 감촉이 좋지 않다. 잠자는 방만이라도 타일을 깔아줄 것을 요구하고, 현관문과 수도, 전기가 급선무임을, 보는 족족 징징댔다.

그러나 시간은 늘어지고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다. 우리 식대로 하자면 시쳇말로 '날림 공사'인데, 탄자니아식으로 하면 이것이 정상일 게다. 한마디로 '마무리'란 개념이 없으니까 말이다.

1년치 월세 줬는데... 두 달이 지나도 집짓기는 '진행중'

탄자니아에선 인플레이션이 심해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않는다. 대신에 최고의 재테크로서 여윳돈이 생기면, 도시화와 베이비붐 세대의 결혼 적령기에 따른 수요의 증가로 일단은 집을 짓고 본다.
▲ 내가 살던 집 탄자니아에선 인플레이션이 심해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않는다. 대신에 최고의 재테크로서 여윳돈이 생기면, 도시화와 베이비붐 세대의 결혼 적령기에 따른 수요의 증가로 일단은 집을 짓고 본다.
ⓒ 이근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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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과 벽이 만나는 모서리나 구석의 마감질은 뭐가 어려워서 그랬는지, 시멘트 가루가 떨어져 며칠 지나면 수북이 쌓인다. 창문 틀에 못 하나 박았는데 담쟁이 넝쿨 자라듯 금이 생겨커져만 가고, 그 틈으로 아침 햇살까지 들어오고 자빠졌다. 킴비씨를 불러 함께 그 언저리를 긁어냈더니 창문 틀을 겨우 지탱할 벽돌 몇 장뿐, 속은 텅 비어있다.

그래서 푼디(기술자)를 불렀다. 허나 이 푼디 역시 지극히 '정상'인 탄자니아 푼디라 미장 솜씨가 개판이다. 왜 창문 틀까지 허옇게 시멘트를 발라 놨는지 모르겠다. 이틀이 지나니 또 금이 생겨 벌어진다. 수도 꼭지는 이사한 첫 날 도르르 헛바퀴 돌더니만 빠져버렸다.

수도 전문 푼디가 와서 새것으로 교체했지만, 일주일 만에 다시 그 모양이다. 현관 문에 고정된 자물쇠는 첫 날부터 열쇠도 들어가지 않아 킴비씨가 섭외한 또 다른 푼디가 와서 바꿔 주었는데, 아예 밖에서만 잠기고 안에선 잠겨지지 않는다. 하도 킴비씨를 괴롭히는 것 같아서 그대로 살려 했는데, 오늘부터는 밖에서도 열쇠가 들어가지를 않는다.

방바닥은 지라드(도마뱀의 일종)의 배설물로 가득 차서, 자고 일어나면 온 방안이 천장에서 떨어진 검은색 똥으로 가득하다. 킴비씨의 두 아들이 사다리를 타고 지붕 밑으로 올라가 청소한다고 했지만, 정도만 약간 덜 할 뿐이다.

정말 우습게도 이들이 올라가 천장 구석 모퉁이에 끼인 똥들을 참깨 털듯이 털어내, 방바닥으로 쏟아낸 것은 소독제까지 탄 양동이 물을 열 번 넘게 길어다 대청소를 마친 후였다. 그래서 그네들이 돌아간 뒤로 다시 스무 번 넘게 양동이를 길러야 했다. 왜 미리 얘기하면 안 될까? 매일 청소로 몸살을 앓고 있는지를 뻔히 알터인데. 이들은 선순위, 후순위의 개념이 명확하지 않다. 무엇이 먼저이고 무엇이 나중에 해야 할 일인지, 그리고 어떤 것부터 해야 두 번 일을 안 하는지 말이다.

내가 이사한 후부터 일 순서를 보자면, 타일-방범 철문-방문-페인트-샤워실 전기 및 온수기 설치 순이었는데, 계획된 일정 없이 갑자기 들이닥쳐서 공사하는 식이다. 그러니 한 번에 공사하고 청소해서 개운한 집안을 만들기란 순전히 내 꿈이었던 셈이다.

타일 깔고 나서,  문 달고 나서, 또 페인트칠 하고 나서, 온수기 설치하고 나서 물을 길어다 온 집안에 퍼부어 쓸어내리기 바빴다. 정말로 한 달 동안 징글징글하게 청소만 했다.

무려 한 달간이나 느려터진 공사로 (공사의 집적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며, 이는 체계적인 준비도 없거니와, 있어도 이를 진행하는 데 있어 계획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과정의 문제에 있다. 예를 들면 푼디를 불러도 이들이 제때 정해진 날짜에 와서 일하는 법도 드물거니와 마쳐놓은 일도 다시 보강해야 할 만큼 솜씨가 형편없다. 해서 결국은 애초의 공정이 있다 하더라도 갈수록 뒤죽박죽이 되고 만다) 집안은 온통 개판이고,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셈이다.

그래도 '언제 끝나요?' 하고 물어보면,

'함나 시다, 바다에(노 프라블럼, 곧)'
'바다에가 대체 언제냐구요? 벌써 보름이 지났다구요'
'바다에~'

'벽만 안 무너지면 다행'이었는데... 자욱한 시멘트 향기가

킴비씨 집 마당은 항상 사람들로 떠들썩하다.
▲ 우리집 마당 킴비씨 집 마당은 항상 사람들로 떠들썩하다.
ⓒ 이근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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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타 리, 내가 집 예쁘게 칠해줄게.'

상큼한 늦잠에 빠진 일요일 아침, 창문을 두드리는 킴비씨의 얼굴이 화사하다. 부스스 일어나 보니, 집 앞엔 어느새 베이지색 통을 멘 페인트공이 와 있다. 외벽과 거실 다음으로 안방까지 들어온 페인트 냄새에 머리가 띵해 한참을 나갔다 들어와보니, 창문 아래 벌어진 틈에서 푸석푸석한 시멘트 가루가 한 바가지 떨어지고 있었다.

'미스타 리, 내가 그냥 써비스 확 풀어버렸지. 봐, 꼼꼼하게 몇번을 칠했다고.'

벽을 쳐가며 칠했다나? 개판인 미장탓에 울퉁불퉁한 벽 표면을 제 딴엔 힘을 줘가면서 한 모양이다. 어쩐지 그의 얼굴이 소낙비 맞았다 했더니. 내 그동안 성심성의껏 들어주는 킴비씨가 고마워서, 벽이 안 무너지면 다행이라는 식으로 그대로 살아보려 했건만, 안 하느니만 못하고, 게다가 자욱한 시멘트 향기에 못 살겠다.

교회에서 돌아온 킴비씨에게 쪼르르 단숨에 달려가 일러바쳤더니, 일요일이라 집에서 쉬던 미장 푼디를 불러준다. 그가 일을 마치고 떠난 후, 생색내려다가 뻘쭘해진 페인트 푼디는 다시 칠을 한다. 그러나 얼마 뒤, 구석과 벽 아래, 천정 언저리에서 배가 불룩하게 들떠버린 페인트가 노란 은행잎처럼 우수수 떨어진다.

달콤한 일요일. 바람도 쏘지 못하고 이게 무슨 짓이람. 물걸레로 바닥을 훔치는 와중에도 나를 놀리듯 나풀거리는 은행잎에 열불이 난다. 벌떡 일어나 부엌으로 가서 숟가락을 들고 왔다. 최후의 페인트까지 모조리 박박 긁어낼 셈이다. 이 끝도 모를 악순환을 끝낼 방법은? 죽은 듯이 엎드려 살지 못한다면, 성한 내 몸뚱아리로 할 수밖에.

아프리카에선 개밥이란 개념이 없어, 이 배고픈 생명체는 항상 내 집 앞에 진을 친다
▲ 내 방문 앞 개 두 마리 아프리카에선 개밥이란 개념이 없어, 이 배고픈 생명체는 항상 내 집 앞에 진을 친다
ⓒ 이근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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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탄자니아 생활, #탄자니아집, #탄자니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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