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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 대통령의 그림자가 한국 사회에 짙게 드리우고 있다. 지난달 25일 그의 추모예배에서 "한국은 독재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더니, 다음날 추도식에선 "유신시대가 더 좋았다"는 말까지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은 "제2의 새마을운동"을 거론하며 아버지의 업을 잇겠다고 했다. <오마이뉴스>는 14일 박 전 대통령의 96회 생일을 맞아 '신이 된 박정희'라는 연재기획을 통해 '2013년 대한민국의 박정희'는 어떤 모습인지 살펴본다. [편집자말]
'새마을운동 발상지'를 자처하는 청도군 청도읍 신도리(왼쪽)와 포항시 북구 기계면 문성리(가운데)에 놓여 있는 표지석. 오른쪽은 '새마을운동 종주도시'를 자처하는 경북 구미의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에 있는 새마을운동 동상.
 '새마을운동 발상지'를 자처하는 청도군 청도읍 신도리(왼쪽)와 포항시 북구 기계면 문성리(가운데)에 놓여 있는 표지석. 오른쪽은 '새마을운동 종주도시'를 자처하는 경북 구미의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에 있는 새마을운동 동상.
ⓒ 조정훈,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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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마을운동 발상지 청도
▲ 근대화의 기틀 새마을운동의 발상지 포항
▲ 새마을운동 종주도시 구미

'새마을운동의 고향'은 어디일까.

10년 넘게 새마을운동의 '발상지'라 주장하던 경상북도 청도와 포항의 경쟁은 2009년 경상북도를 새마을운동의 발상지로 하자는 '합의 아닌 합의'가 이뤄지면서 일단락됐다. 하지만 두 도시는 여전히 스스로가 발상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구미가 '종주도시'를 자처하고 나서면서 새마을운동의 고향은 더욱 모호해졌다.

청도, 포항, 구미는 '새마을' 세 글자를 '점유'하며 정부로부터 매년 10~50억 원의 예산을 받고 있다. 이 국비를 포함해 세 지자체는 새마을운동 사업과 관련해 매년 100~200여 억원의 예산을 편성하고 있다. 더욱이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제2의 새마을운동"을 거론하면서 새마을운동의 위상은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경북 청도와 포항은 각각 자신을 새마을운동 발상지로 알리고 있다. 또 경북 구미는 새마을운동 종주도시를 자처하고 있다. 위쪽부터 청도군청 홈페이지, 포항 새마을운동 발상지 기념관 홈페이지, 구미시청 홈페이지 갈무리.
 경북 청도와 포항은 각각 자신을 새마을운동 발상지로 알리고 있다. 또 경북 구미는 새마을운동 종주도시를 자처하고 있다. 위쪽부터 청도군청 홈페이지, 포항 새마을운동 발상지 기념관 홈페이지, 구미시청 홈페이지 갈무리.
ⓒ 지자체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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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도군 누리집에 들어가면 정중앙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동상과 함께 '새마을운동 발상지 청도'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청도군이 새마을운동 발상지라고 소개하는 청도읍 신도리에는 '새마을운동 발상지 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청도군은 2009년부터 신도리에 45억 원을 들여 '새마을운동 성역화 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2011년 8월 이 사업의 준공식엔 한나라당 의원 시절의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참석했다.

하지만 '발상지'라는 표현은 청도만의 것이 아니다. 포항 역시 북구 기계면 문성리를 새마을운동의 발상지로 알리고 있다. 청도와 마찬가지로 포항에도 같은 이름의 '새마을운동 발상지 기념관'이 있다. 2009년 9월 준공한 이 기념관엔 40억 원의 사업비가 들어갔다.

경북 구미는 발상지 대신 '종주도시'를 자처한다. 구미는 지난해 9월 '새마을운동 종주도시 선포식'을 열어 "새마을운동 종주도시의 정신을 후대에 영원히 계승할 수 있도록 결의"한 바 있다. 구미는 박 전 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곳으로 매년 탄신제와 추모제가 열리는 곳이다. 올해도 지난달 26일 추모제가 열렸으며 14일에도 탄신제가 예정돼 있다.

'발상지' 두 곳에 '종주도시' 한 곳... 모두 지자체에 '새마을과' 있어

각 지자체는 어떤 근거로 새마을운동의 고향을 자처할까. 청도와 포항은 관내 마을과 박 전 대통령의 인연을 이유로 발상지의 자격을 점유하고 있다. 두 지자체 관계자들은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대통령이 타고 있던 기차를 직접 세우고 신도리를 시찰했다"(청도군), "10만 원 상당의 시멘트로 480만 원 값어치의 공사를 해낸 문성리와 같은 새마을을 만들라고 대통령이 지시했다"(포항시)와 같은 '신화적 사례'를 소개했다.

"청도군 청도읍 신도리엔 1957년부터 삼무(三無)운동이란 게 있었다. 노는 사람, 술 먹는 사람, 노름 하는 사람을 없애자는 거다. 1969년 태풍이 몰아쳤을 때도 신도리 주민들은 부지런히 마을 복구작업을 진행했다. 경남지역 수해시찰을 위해 경부선 열차를 타고 이 모습을 본 박 전 대통령은 기차를 세우고 내려 현장을 시찰했다. 이후 1970년 4월에 박 전 대통령이 신도리를 지칭하며 '이게 바로 새마을운동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 청도군

'새마을운동 발상지'를 자처하는 청도군 청도읍 신도리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용했다는 대통령 전용열차 모형이 전시돼 있다. 1969년 경부선 열차를 타고 경남지역 수해시찰을 가던 박 전 대통령이 신도리를 지나다 마을 주민 모두가 복구작업에 매진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열차를 세워 직접 마을을 시찰했다고 알려져 있다. 청도는 1970년 박 전 대통령이 신도리를 지칭하며 '이게 바로 새마을운동이다'라고 말한 것을 이유로 새마을운동 발상지를 자처하고 있다.
 '새마을운동 발상지'를 자처하는 청도군 청도읍 신도리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용했다는 대통령 전용열차 모형이 전시돼 있다. 1969년 경부선 열차를 타고 경남지역 수해시찰을 가던 박 전 대통령이 신도리를 지나다 마을 주민 모두가 복구작업에 매진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열차를 세워 직접 마을을 시찰했다고 알려져 있다. 청도는 1970년 박 전 대통령이 신도리를 지칭하며 '이게 바로 새마을운동이다'라고 말한 것을 이유로 새마을운동 발상지를 자처하고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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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시 북구 기계면 문성리는 1970년 10만 원 상당의 시멘트를 정부로부터 지원받아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 480만 원 값어치의 마을 공사를 해냈다. 48배의 이익을 올린 역사적인 일이다. 이후 1971년 9월 17일 박 전 대통령이 직접 헬기를 타고 문성리에 와 국무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박 전 대통령은 '문성리와 같은 새마을을 만들라'며 전국에서 산발적으로 벌어지던 '새마을 가꾸기 사업'을 전국민 차원의 새마을운동으로 끌어올릴 것을 지시했다." - 포항시

1970년 포항 문성리에서 정부가 지원한 10만원 상당의 시멘트를 갖고 480만원 값어치의 공사를 해냈다는 실적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1년 문성리를 찾아 직접 국무회의를 열고 "문성리와 같은 새마을을 만들라"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이를 이유로 포항은 새마을운동 발상지를 자처하고 있다.
 1970년 포항 문성리에서 정부가 지원한 10만원 상당의 시멘트를 갖고 480만원 값어치의 공사를 해냈다는 실적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1년 문성리를 찾아 직접 국무회의를 열고 "문성리와 같은 새마을을 만들라"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이를 이유로 포항은 새마을운동 발상지를 자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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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의 경우 "새마을운동을 주도적으로 선도해나가겠다는 개념"이라고 종주도시의 의미를 설명했다. 남유진 구미시장은 지난해 9월 열린 '새마을운동 종주도시 선포식'에서 "1970년 새마을가꾸기 사업 이후 42년 간 새마을 깃발을 단 한 번도 내려본 적이 없는 역사적인 도시"라고 강조했다. 이어 남 시장은 "1978년 구미시 개청 당시 새마을과를 신설하여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한 번도 그 명칭을 변경하지 않은 채 새마을운동을 추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구미시청에는 안전행정국 소속의 새마을과가 있다. 포항시청 역시 안전행정국 아래에 새마을평생학습과가 있으며 청도군청에도 새마을과를 운영하고 있다.

청도의 새마을운동 발상지 기념관에 설명된 내용(위)과 포항의 새마을운동 발상지 기념관에 마련된 'OX퀴즈' 내용. 서로가 새마을운동 발상지임을 강조하고 있다.
 청도의 새마을운동 발상지 기념관에 설명된 내용(위)과 포항의 새마을운동 발상지 기념관에 마련된 'OX퀴즈' 내용. 서로가 새마을운동 발상지임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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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간 253억원 국비지원... "새마을운동 다섯 글자면 지원 문제 없어" 비판

세 지자체는 매년 정부로부터 새마을운동과 관련된 예산 지원을 받고 있다. 2009년 이후 새마을운동 지원사업에 사용된 국비는 총 약 253억 원. 특히 2010년까지 19억 원이던 정부의 새마을운동 관련 예산은 2011년 70억 원으로 급격히 늘어 2012년 80억 원으로 정점을 찍었다. 이는 2010년까지 청도만 올라있던 지원 대상 명단에 2011년부터 구미와 포항이 가세했기 때문이다. 특히 구미는 2011년~2013년까지 지원액 201억 원 중 절반이 넘는 120억 원을 받았다.

2009년 이후 새마을운동 지원사업 국비지원현황
 2009년 이후 새마을운동 지원사업 국비지원현황
ⓒ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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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정부의 예산지원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업성이 없음에도 새마을운동이라는 명칭 때문에 국비가 투입되고 있다는 것. 청도새마을휴게소가 그 예다.

신대구부산고속도로를 따라 청도를 지나다 보면 '청도새마을휴게소'를 만날 수 있다. 이 휴게소는 세 달 전만 해도 '새마을' 세 글자가 빠진 '청도휴게소'였다. 청도는 명칭변경의 이유로 "새마을운동 발상지로서의 위상 제고와 홍보시책의 일환"을 들었다. 이에 부응해 안전행정부는 2014년 예산에 청도새마을휴게소 이용객을 대상으로 새마을캠프장을 조성하고, 자전거도로인 새마을 그린로드를 설치하는 데 국비 18억 원을 편성했다.

김현 민주당 의원은 "청도휴게소를 이용하는 이용객은 연간 350만 명인데 이는 휴게소 1위인 여주휴게소의 1/3에도 못미치는 숫자"라며 "또 2013년 신도리를 찾은 방문객은 3만5000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 30억 원(국비 15억, 군비 15억)을 들여 1만2000평의 캠핑장을 짓고, 6억 원짜리 자전거도로를 만들겠다는 것이 얼마나 허황된 계획인가"라고 안전행정부의 예산 지원을 비판했다.

이어 김 의원은 "새마을운동 다섯 글자만 붙으면 사업성이 없어도 예산지원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국가재정 건정성을 훼손하고 있는 새마을운동 지원사업의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새마을운동 부상, 공권력이 시민주권 압도하려는 것"

2009년 이후 새마을운동활성화 사업 예산
 2009년 이후 새마을운동활성화 사업 예산
ⓒ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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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예산 지원을 포함해 구미, 청도, 포항은 1년에 얼마나 되는 새마을운동 관련 예산을 쓰고 있을까. 현재 세 지자체는 새마을운동 관련 사업으로 적게는 79억 원부터 많게는 208억 원의 예산을 편성하고 있다. 지난해 세출예산서(추경예산)를 보면 청도 208억7809만6000원(새마을운동활성화 사업), 구미 161억3470만6000원(새마을선진화운동 사업), 포항 93억7310만9000원(새마을평생학습과)의 새마을운동 관련 예산을 사용했다.

올해에도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의 예산을 편성했다. 청도는 올해 새마을운동 활성화 사업으로 약 168억 원을 편성했고, 2차 추경예산을 통해 약 197억 원의 예산을 잡았다. 지난해 청도는 새마을운동 활성화 사업에 2차 추경예산까지 약 192억 원의 예산을 편성했으며, 3차 추경예산까지 거쳐 약 208억 원의 예산을 쓴 바 있다. 올해에도 3차 추경예산을 편성한다면 지난해보다 소폭 상승한 예산을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

포항시청의 새마을평생학습과도 올해 예산으로 약 71억 원을 잡았고 1차 추경예산을 거쳐 약 79억 원의 예산이 편성됐다. 새마을평생학습과의 경우 지난해 약 61억 원의 예산을 잡았다가 2차 추경예산을 거쳐 총 93억 원의 예산을 사용한 바 있다.

청도와 포항에 각각 있는 새마을운동발상지 기념관.
 청도와 포항에 각각 있는 새마을운동발상지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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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는 새마을선진화운동 사업으로 지난해 약 110억 원을 쓴 데 비해 올해는 처음에는 대폭 축소된 약 40억 원의 예산을 편성했다가, 1차 추경예산에서 2배가 넘는 약 84억 원으로 예산을 늘렸다. 구미는 매년 대체로 2차 추경예산까지 편성해 새마을선진화운동 사업비를 늘려왔다.

박 전 대통령을 비판한 <알몸 박정희>의 저자 최상천 전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새마을운동이 떠오르고 있는 것은) 국가주의를 복원하기 위한 움직임"이라며 "공권력이 시민주권을 압도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최 교수는 "전국민이 동원된 게 새마을운동 아닌가, 아프리카에서나 통용될 이야기다"라고 쓴소리를 했다.


태그:#박정희, #새마을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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